소설리스트

계약 위반-65화 (65/75)

#65화

“뭐?”

“세상일이 아주 지독해. 어쩜 하필이면 이렇게 만나냐고. 그렇지 않은가?”

우기익은 아주 재미있는 일을 말한다는 듯이 히죽 웃었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

“그게 아니고서야 내가 왜 굳이 우하린을 입양해 왔다고 생각하나.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 우기익이 설마하니 샌드백으로 우하린을 입양해 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우기익은 태형이 서있는 쪽으로 일어나 가까이 걸어갔다.

“그때의 기술은 내가 결국 들고 왔는데, 괜히 우하린이 자신의 핏줄이니 뭐니 알아서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파서, 입양해 온 거네.”

그리고서는 미리 챙겨 왔던 종이 서류를 강태형에게 건넸다.

“내가 줄 수 있는 증거는 여기 이것뿐일세. 그러니 믿으려면 믿고, 싫으면 믿지 말게나.”

우기익은 지금 묘하게 본질을 흐리고 있었다. 태형의 보모와 하린의 부모 이야기.

하린 출생의 비밀 등으로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에 정신이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 내용 중에 필요한 진실만 골라서, 내뱉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쏙 제외하고.

이를테면 트럭 사고로 위장하여 4명의 사람을 한 번에 정리한 것.

“봐봐.”

서류에는 연구소장의 개인 신상과 가족사진이 있었다.

태형은 종이 봉투 안에서 사진 몇 개를 꺼내어 보았다.

사진에는 부부 둘의 사진과 딸 한 명이 보였다. 태형은 작은 여자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다른 사진들.

서류들도 확인했다. 우하린의 입양 당시 서류. 어린 시절 얼굴이 다 나와 있는 증명사진.

우기익의 집에서 우진화와 찍었던 사진 등등. 여러 증거가, 연구소장의 딸이 우하린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내 부모는…… 트럭 사고로.”

“해외로 갈 수 있는 항공권을 구해. 그리고 현금 10억.”

우기익은 태형의 말을 자르고 그대로 들어왔다. 태형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에게 좋을 건 없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냥 우하린에게 전달할 거야.”

우기익의 마지막 발악은 생각보다 강했다. 더군다나 태형이 정말이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내용인지라, 그는 지금 정신이 혼미했다.

이게 믿어야 하는지. 아니면 믿으면 안 될지.

“내가 말하는 게 좋은가?”

우기익은 흔들리는 태형의 감정을 누구보다도 일찍 발견했다. 그래서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우하린은 자기 부모가 누군지도 몰라. 이참에 알려 주는 것도 좋겠지.”

밀어붙이고, 몰아세운다.

생각할 틈? 주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이게 진실인 것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은 한 가지였다.

“네 부모는 상당히 검소하고 청렴한 사람이다. 사람을 잘 믿는다고. 그러다가 믿는 사람에게 뒤통수 맞고 죽었으니, 너는 너무 사람을 믿지 말라고.”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승자는 우기익에게 향하고 있었다.

“말해줘야겠네.”

생각지도 못한 정보, 그리고 지금을 찾을 수도 없는 정보를 태형은 이길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 내용의 주인공은 태형이 아니라 우하린이었다. 결국 상처를 받는 건 그녀였으니까.

“어때 좋지 않은가.”

“하……잠깐.”

“양아버지로서,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주는 거지. 네 남편이 사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네 남편의 친부모가 네 부모를 죽인 원수다.”

태형은 두 눈을 감았다. 이렇게 끌려다니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방법이 없었다.

우기익이 당장에라도 우하린에게 찾아가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쑤셔 넣으며 그녀를 난도질할 것이 뻔했다.

매번 하듯이. 우기익은 잔인하고 무도한 자였다. 우하린은 그것을 그대로 당하고 분노하고 또…… 울겠지.

태형이 고뇌하자 우기익은 그 앞에 히죽거리며 웃고 좋아했다.

“나는 나 혼자만 죽지는 않을 거야.”

“……그래. 10억.”

강태형의 유일한 약점. 그 지점을 우기익은 간파한 거였다. 태형이 대답하자 우기익은 광기에 찬 눈을 번뜩였다.

내가 이긴 거다.

결국 이 싸움의 승자는……!

“개소리하지 말라고 그래요.”

앳된 여성의 목소리. 우기익과 강태형은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하린이었다.

* * *

사무실을 찾아온 건 조금 더 일찍이었다. 김 비서와 전화를 끊자마자 찾아왔다.

물론 우기익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왔기에 잠시 고민을 하였지만 우하린은 오늘 마음을 먹고 왔다.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끊어 버리겠다고.

그리고 왔을 때 하린은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듣고야 말았다.

이게 무슨…….

“아, 우하린의 부모가 연구소장인 건 알고 있나?”

“뭐……?”

“네 부모가 우하린의 부모를 죽였다고.”

태형에게 이 이야기를 우기익이 하고 있는 것을 듣고 하린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우기익이 하는 말을 들었다.

거기서 나오는 연구소장의 딸이 나였어…….

아, 그래. 그렇지.

우기익이 단순히 아무 애를 데려다 키울 인간이 아니지. 이전에 조 대표에게 부탁하여 사고당한 부부 4명의 조사를 했을 때 연구소장의 인적 사항도 받아서 보았었다.

그때 어린아이의 사진만이 부족했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우기익이 그 입양 관련 등 직접적으로 개입을 했으니 다 삭제했던 거였다.

그러니까 하린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기익에게 유린당했다.

아비 어미를 여의고, 보육원에 보내져 입양되고 키워지고…… 결혼까지.

그 모든 일에 우기익이 관련되어 하린의 인생을 난도질했다.

그러고 나서는 태형에게 돈을 뜯기 위해 자신을 팔아서 돈을 얻으려고 했다.

‘트럭 사고로 조작해서 아저씨 부모 죽인 건 쏙 빼놓고 편할 대로 말하고 있네.’

하린은 우기익이 하는 말을 들으며 가소로워했다.

“일이 이 정도로까지 왔는데 설마, 우기익에게 돈을 준다고는 하지 않겠지. 아저씨도 평생을 복수를 위해 달려왔는데……. 고작 나를 위해.”

하린은 내용을 들으면서 태형이 하는 말에 집중했다. 과연 그는 이번에도 비슷한 선택을 할 것인가.

평생을 달려온 복수극을 나 때문에 접지 않기를. 고작 나를 지키겠다고.

우기익에게 져 주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렇지만 결국 태형은 하린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 주지 않았다. 감정이 뭐라고, 사랑이 뭐라고.

평생을 다 바쳐 준비한 복수를 제 손으로 뭉개냐는 말이다.

결국 듣던 하린은 둘의 대화에 개입했다.

“저를 빌미로 돈 뜯어낼 생각하지 마세요. 이미 다 들었으니까.”

하린이 갑자기 나타나자 태형은 놀랐고. 우기익은 얼굴을 구겼다.

목적지까지 다 왔는데 우하린이 나오면서 망해버렸다.

“평생을 제 부모가 만든 기술로 호의호식했으면, 그쯤 하세요. 그만하시라고요.”

“이년이 다 만들어놨는데…….”

“당신은 그냥 범죄자야. 나를 빌미로 이득 보려고 하지 마세요.”

우기익의 얼굴 성난 악귀처럼 변했다. 그러든 말든 오늘 하린은 끝을 볼 작정이었다.

“자신 사퇴하고, 자수하세요. 벌 받으세요.”

“내가 왜 죄가 있어. 죄라면 강태형 이 새끼가……!”

마지막까지. 끝까지 자신의 죄는 인정하지 않는다. 지긋지긋했다.

“아니. 그 과거 연구소가 왜 불탔는지. 왜 트럭 사고로 다 죽었는지 다 밝히시라고요. 해외로 가겠다는, 개 같은 소리 하지 말고. 평생 한국에서 지금껏 만들어 놓은 죄 다 받고 죽으세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속 안에 쌓아 두던 것들을 내질렀다.

“지금껏 리베이트받은 목록, 금고에 고이 숨겨 두었던 거 제 손에 있어요.”

“그게 왜 네년 손에 있……!”

“신고할 거야. 당신 이제 끝이야.”

지금껏 우기익에게 고통받던 일들이 천천히 파라노마처럼 이어졌다.

그 이후 우기익은 자신의 생각했던 것처럼 되지 않자, 난동을 피웠다.

“네년도 그렇고 이 새끼도 다…… 다 죽일 거야. 그냥 그날 너희 두 연놈을 죽여 버렸어야 했어!”

온갖 욕을 해대고, 화풀이를 했다. 태형의 사무실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왜 나만 망해야 하는데. 왜! 너희들은 뭐가 그리 깨끗해서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데. 네놈들의 부모는 뭐 그리 달랐던 줄 알아? 그것들도 다 돈의 노예였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안간힘을 쓰던 것들이었다고!”

아마도 우기익이 오늘 한 제안은 그에게 있어 마지막 살길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하린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막아 버렸으니. 그 고약한 성질머리로 무엇이 가능하겠는가.

우기익은 성난 황소처럼 하린을 노리려고 했다. 아마도 인질이라도 삼을 생각이었을 터.

계속해서 참던 태형이 그것을 보고 참지 못했다.

퍼억-!

태형이 우기익의 목을 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팔 한쪽을 뒤로 꺾어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했다.

“여기서 널 죽이고 싶지만. 참는 거야.”

우둑. 관절이 나가는 건지 뼈가 금이 가는 건지 살벌한 소리가 들렸다.

“경찰 불러서 너를 잡아가게 하는 걸 감사히 여겨.”

“아악! 악!”

우기익은 짐승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태형에게 힘으로 제압되어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 뒤에는 김 비서가 경찰을 불렀고. 난동을 피우는 것을 경찰들이 진압했다.

난리 통에 정신이 어지러울 때, 태형이 하린의 손을 붙잡았다. 고개를 올려다봤다.

“집에 가자.”

지은이 : 퍼플독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7703

© 퍼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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