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불이 난 곳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었다. 안 그래도 사람들의 이목이 쏠려 있었는데, 진화의 인터뷰는 그 이목을 극대화했다.
그리고 그것은 태형의 검찰 조사에도 영향을 주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뵐 날이 있을 겁니다.”
검찰 총장의 판단 아래 검찰은 태형의 조사를 종결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무혐의.
조사가 끝나자 시작했던 것처럼 검사는 깍듯하게 태형에게 인사했다.
밖으로 나오니 김 비서가 태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략 10시간 좀 넘게 있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빠르게 조사가 끝나긴 했으나 피곤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사받는 시간에 잠을 못 자니, 생으로 버틴 것도 있었지만 최근 몇 주간 잠을 최소한으로 자고 일을 해서 더했다.
몸이 성한 곳이 없는 것처럼 찌뿌둥하고 결리는 것 같다. 태형의 눈 아래로 다크서클이 내려왔다. 그 모습을 보던 김 비서가 걱정스럽게 보며 물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응.”
몽롱한 정신 속 태형은 꺼 놓았던 핸드폰을 켜며 차에 탔다. 미리 김 비서가 사다 둔 커피를 마시니 정신이 조금은 드는 것 같았다.
“집으로 가실 겁니까?”
“……잠깐만.”
조사를 끝내고 바로 하린을 보러 갈 거라고 태형이 말한 것을 기억하던 김 비서가 힐끔 시선을 돌렸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태형의 얼굴을 보며 의아했다. 뭔가 오늘도 우하린과 문제가 생겼나?
최근 태형의 감정을 건드는 건 대부분 우하린이었기에 당연하게 든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최근 태형의 감정은 그녀에 따라 많이 좌우되었다.
「조사가 끝나면 연락해 주게. 꼭 할 말이 있어. 우하린과 관련된 이야기야.」
무슨 일인 건지, 핸드폰 전원을 켜니 우기익의 문자가 제일 먼저 떴다.
평소라면 그냥 무시했을 것 같은데 우하린의 이야기라고 하니 그냥 넘기기가 조금 찜찜했다.
「지금 제 사무실에서 보시죠.」
태형은 그것을 보고, 답장을 남기며 김 비서에게 목적지를 변경했다.
“사무실로 가자.”
“집으로 가지 않으시고요?”
“우기익이 보자고 하는군.”
“굳이 보셔야 합니까? 이제는 이유도 없으신데…….”
이제 더 이상 우기익을 볼 일이 없었다. 굳이 조만간 무너질 일만 남았는데 더 볼 일이 뭐가 있겠는가.
“우하린과 관련된 일이래.”
김 비서는 태형의 말을 듣고는 입을 다물었다. 더 말해도 의미가 없었다. 그냥 태형이 원하는 데로 시동을 켜고 핸들을 움직였다.
우하린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태형이 김 비서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김 비서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제 우기익과 태형의 싸움은 둘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우하린이 사이에 들어가면서부터 애매한 싸움이 되어 버렸다.
우기익은 살기 위해 우하린을 사용하고.
태형은 우하린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숨기며 해결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태형은 홀로이 힘든 싸움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비서는 이제 이 싸움에 우하린이 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이 싸움이 끝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태형이 차마 그 행위를 못 한다는 것.
아마도 지금처럼 태형이 군다면 생각보다 우기익은 망하지 않거나 그가 우기익에게 질질 끌려다닐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김 비서는 티 나지 않게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사무실로 가는 길, 왜인지 모르게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우기익은 아직 도착해있지 않았다. 태형은 긴장감이 풀리는지 소파에 앉아 등을 기댔다.
차라리 바로 집에 들어가서 쉬면 좋을 텐데 김 비서는 그저 아무 말 없이 태형에게 피로 회복제를 주며 입을 무겁게 했다.
“하.”
그때 김 비서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우하린이었다.
아마도 오지 않는 태형을 찾는 연락일 터.
“저는 잠시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옆에 같이 도착한 김 비서의 말에 태형은 대답하지 않고 손을 휘적거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김 비서는 밖으로 나오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예, 전화 받았습니다.”
[혹시, 아저씨랑 같이 있으세요? 조사가 끝났다고 들었는데 전화 통화가 안 돼서요.]
“아 방금 나오셨습니다. 지금 잠시 사무실 오셨습니다.”
[아, 그럼 저도 사무실로 갈게요.]
김 비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 그게…….”
우기익이 여기로 온다고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하나. 지금껏 김 비서는 관찰자의 시점이었다.
보면서도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예전 김 비서가 태형의 삶에 그의 수족이 되길 자처했던 것은 그다지 엄청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김 비서는 생계를 위해서였고, 태형은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해서였다.
정말 단순한 이유로 엮인 사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태형에 대한 충성도는 높아졌다.
그가 얼마나 이 일에 진심인지.
가족에게 죄의식을 가지며 고통받으며 살았는지 제일 옆에서 봐 왔었다.
그렇기에 김 비서도 오랜 기간 태형의 행복을 바라왔다.
“우기익 시장이 오기로 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태형이 좋은 사람과 사랑을 했으면 했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불행까지 짊어지며 살지 말고, 같이 삶을 나아가는.
그러나 우하린도 결국은 태형이 지켜 줘야 하는 존재, 괜히 말이 조금은 삐딱하게 나올 것 같았다.
[우, 우기익이요? 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궁극적으로 우하린도 태형과 함께하기로 했으면 그녀 역시도 짊어져야 할 짐이 있었다. 그것을 지금까지는 태형이 혼자 짊어지고 있었다.
과연 이런 사실을 알렸을 때 그녀는 회피할 것인가.
아니면 부딪히길 선택할 것인가.
김 비서는 은연중 하린이 회피하리라 생각했다.
[저도 갈게요.]
* * *
우기익이 도착했다. 어딘지 다급해 보이고, 광기에 사로잡혀 보이는 느낌. 태형은 그 모습을 보며 드디어 우기익이 파멸 직전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하린을 미끼로 한 마지막 발악.
“그래서 할 말이 뭡니까.”
태형은 다리를 꼬며 오만하게 말했다.
“자네와 과거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말게나, 사람 태워 죽이겠네.”
과거. 이것은 곧 태형이 누구인지 알았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우기익의 말에 태형의 표정이 굳었다.
“인생이라는 건 참 쉬운 것이 없어. 나도, 이 우기익도 맨손으로 여기까지 왔거든. 사내가 마음을 먹었으면 뭐라도 해야 하니까. 그런 점에는 나는 자네가 참 괜찮게 보이긴 하네.”
“본론을 말씀하세요.”
“나는 내가 아주 혜택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주 우연히 알게 된 기술을 시작으로 이토록 큰 부를 이뤘었으니까.”
우기익은 잠시 숨을 골랐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의 초석을 만든 이들이 있지. 자네도 그 기술을 탐냈었지? 그 사람들은 아주 사이가 좋은 사람들이었어. 연구소장 부부와 연구원 부부.”
“당신.”
“말 아직 안 끝났네. 자네가 제일 듣고 싶어 할 만한 이야기라서 해 주는데 그따위로 예의가 없으면 안 되지. 이 사람아.”
과거의 이야기에 태형은 예민해졌다. 우기익은 날카롭게 구는 태형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참 돈이라는 게 어리석고 무서워. 그렇게 사이가 좋았는데 결국 돈 때문에 사이가 틀어지더라고.”
태형은 모를 만한 사건.
그것을 말하는 우기익의 눈빛이 기괴해졌다.
“아직도 비 오는 밤이면 기억이 난다네. 연구원 부부가 내 사무실에 찾아와 손을 떨면서 말하던 것이.”
우기익은 태형을 앞에 두고 시늉을 했다.
“사, 사람을 죽인 것, 같, 같아요.”
“……뭐 하는 짓입니까.”
“기술을 빼앗는 과, 과정에서…… 그냥 툭, 밀쳤을 뿐, 뿐인데. 기, 억이 안나요. 정신을 차, 차려 보니까. 어, 어떡하죠?”
연기하던 표정을 집어치우고 다시 광기 어린 표정으로 돌아온 우기익은 태형에게 시선을 보냈다.
“누구를, 이라고 물어보니까 넋이 빠진 표정으로 말하더군, ‘연, 연구소장이요. 부부 두 명 다요. 고의는 아니었어요.’”
우기익은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갑자기 연기를 하다가 이내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지르다가.
“하! 하하. 너무 촌극 아닌가. 형님~ 동생~ 하던 사이들이 고작 기술 조금 잘나간다고 한 푼 더 벌어 보고자 결국 사람을 죽였네……!”
듣지 못할 지경이던 태형은 태형이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더 듣지 않겠습니다. 나가.”
우하린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고 하여 불렀더니. 헛소리만 하고 앉아 있었다.
“앉아.”
우기익의 목소리, 지금껏 말하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부모 이야기해 주잖아.”
허공에서 시선이 부딪혔다.
“아, 우하린의 부모가 연구소장인 건 알고 있나?”
“뭐……?”
태형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니, 우기익은 아주 밝은 미소를 보였다.
“네 부모가 우하린의 부모를 죽였다고.”
지은이 : 퍼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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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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