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다음 날, 우기익은 한 사무실에서 열심히 빌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챙기던 체면 등을 다 내려놓고선 말이다.
아침부터 날벼락이었다. 왜냐하면 정당에서 서울 시장 자리에서 자진 사퇴하라는 압박이 들어와서였다.
말도 안 된다. 지금껏 이것을 위해 들인 돈과 시간이 얼마이고. 지금 남은 것은 이것 하나뿐인데 이것마저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안 되었다.
지금껏 문제가 생겨도 도와도 주지 않고, 그렇다고 별다른 행동도 하지 않던 정당이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의원님 우리 지금까지의 정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우기익은 정당에서 제일 입김이 강한 의원에게 찾아와 빌고 있었다.
“사퇴라뇨. 제가 시장 자리 앉으려고 얼마를 들였는데요. 의원님이 가서 말 좀 해 주세요. 그래도 의원님 말이라면 들어주지 않습니까.”
“이제 찾아오지 마시게.”
우기익이 온갖 면을 구기며 말해도 제대로 봐주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의원 사무실 안으로도 못 들어가고 그 밖 복도에서 이러고 있었던 거였다.
“아니, 왜 갑자기 이러십니까……. 저 이제 시장직까지 놓으면 답도 없습니다.”
“그걸 왜 나에게 와서 사정하는가.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들을 하고 다녀선.”
“아니 투자 사기는 저만 당했습니까? 김 의원도 그렇고 다른 의원들도 당했었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나. 하여튼.”
싸늘한 눈동자가 우기익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렇게 보여도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해서도 최대한 살아야 했다. 고작 며칠 서울 시장을 하려고 나는 이런 게 아니란 말이다!
이런 수모도 조만간 다시, 권력을 찾으면 다 갚아 줄 것이다. 우기익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금의 상황을 버티고 있었다.
“난 더 이상 이제 할 말이 없네. 찾아오지 마시게.”
“의원님!”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저는 사퇴는 못 합니다. 차라리 다른 방안을 주세요.”
“방안?”
그는 우기익의 방만한 태도에 헛웃음을 날렸다.
“자네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닌 줄은 아는가? 왜 지라시로 장난을 쳐서 가만히 있는 강태형을 치냐는 말일세.”
“그게……왜.”
“사람이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그는 멍청하게 물어보는 우기익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아직까지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누구를 무시하는지 눈치가 빨라야 정치에서도 살아남는 것인데. 우기익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자네는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을 건드렸어.”
매일같이 구설에 올라 안 그래도 정당에서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나마 건드리지 않은 건 우기익을 강태형이 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정당 사람 중 강태형에게 현물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바보 같은 우기익이 눈에 훤히 보이게 강태형을 건드렸다.
그래서 강태형은 곧바로 우기익을 팽했다.
“요즘 정치하면서 그자 돈 안 먹은 이 누가 있다고.”
그러자 정당에서도 우기익을 바로 놓아 버렸다. 애초에 우기익이 탐나지도 않았다.
“예?”
우기익은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강태형이 정권에다가 그렇게 신경을 썼었다고?
“하여튼 나는 할 말 다 했네.”
왜 자신은 몰랐는가.
“다른 의원에게 찾아가도 반응은 비슷할 거네. 가만히라도 있었으면 자리는 보존했었을 것을.”
그는 그렇게 말하고 쯧, 소리를 내며 자리를 떠났다. 우기익만이 그 자리 그대로 서서 그대로 있었다. 세상 허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 맞는 것인가.
강태형…….
단순히 자산 많은 젊은 놈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이런 놈이 날 죽이겠다고 작정을 했던 거였다.
우기익은 어정쩡하게 숙이고 있던 허리를 펴면서 생각했다.
최대한 살아남을 방법을 찾자.
강태형 이걸 최대한 사용해서 생각해. 이번에도 쟁취하면 되지. 정신을 차려.
우기익은 자신의 삶에서 쉽게 얻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항상 치열하게 생각하고 독하게 마음먹고 쟁취해 냈다.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 바로 만나는 거야.”
우하린과 강태형의 사이를 최대한 알아봤다. 강태형의 아킬레스건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실 우하린과의 결혼을 우기익은 내심 의심하고 있었다. 정말 좋아서 우하린과 결혼한 건지 긴가민가했었다.
그러나 최근 경호원을 붙여 가며 신줏단지 모시듯 한다는 말을 들으며, 우기익은 강태형의 아킬레스건이 우하린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다행인가.
물론 당장은 정당에서 쫓겨날 위기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강태형을 손아귀에 쥘 수도 있는 상황이니 영 나쁜 것은 아닐 수 있었다.
분명 강태형 그 새끼라고 해도 부모 때부터 이어진 악연은 모를 것이다.
그러니까 이걸 최대한 활용해서 이 위기를 벗어날 것이다.
우기익은 그렇게 생각했다.
“신은 항상 내 편이니까.”
우기익은 버릇처럼 내뱉었다. 그러나 평생 자신의 편일 거라고 생각하던 신이 자신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때는 하지 않고 있었다.
* * *
하린과 진화 그리고 조 대표.
그들은 어젯밤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바로 실행에 옮겼다. 무슨 작당 모의라도 하는 듯이 하는데 진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조 대표의 도움을 받아, 우진화가 우기익을 폭행죄로 고소했다.
그러고 나서는 기소까지의 시간이 소요되기에 곧바로 아는 기자를 통해 인터뷰했다.
요즘 화젯거리인 우기익 서울 시장의 딸 인터뷰라고 하니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개떼들처럼 달려들었다.
내용도 자극적이게, 어린 시절부터 맞고 자란 친딸에 관한 내용이었기에 더욱 구미를 당겨 했다.
동이 트자마자 바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리고 어제 기자들과 준비해 둔 기사들을 쏟아 냈다.
고소와 동시에 특종이었다.
[우기익 서울 시장의 친딸, 골프채로 맞아 골절.]
[현 서울 시장 우기익의 가정 폭력 의혹.]
자극적인 제목과 피멍과 부은 몸 등 우진화의 맞은 사진들과 의사가 남긴 소견 내용까지.
점심쯤이 되자, 화력이 붙기 시작했다.
“어머.”
조 대표가 손을 쓴 것인지 너도나도 기사를 내고, 온갖 SNS에 도배되었다.
서울 시장의 이면, 두 가지 얼굴 등의 이름을 달고선 말이다.
경악스러운 내용과 심각한 폭력의 실태를 보고 SNS 등에서 제일 먼저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내용을 올린 지 반나절도 안 되어서 국민 청원까지 올라왔다.
[헐…… 우기익? 자기 딸을 저렇게 개 패듯 팼다고? 저게 맞아서 날 수 있는 거야?]
[짐승 새끼도 저렇게 자기 새끼 안 때리는데. 어떻게 서울 시장이라는 사람이 자기 딸을 저렇게 때릴 수가 있지? 말도 안 됨.]
[저도 어릴 때 아버지께 많이 맞고 자라서 압니다……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라도 이런 내용을 알게 돼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이런 사람이 잘되고 좋은 삶을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시장에서 내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기익을 욕하고, 탄핵을 외쳤다. 전과는 다른 무게감이었다.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과정 한가운데에 있는 우진화. 그리고 우하린.
사람들은 그녀들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고 공감해주었다. 그런 내용을 보며 하린도 그리고 진화도 마음이 울컥했다.
이제 혼자만의 그들만의 아픔이 아니라며 그녀들을 옹호해 주었다.
이런 고통에 남들이 동요해 준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우기익을 보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우기익의 탄핵이 눈앞에 와 있는 듯했다.
* * *
“염병할!”
하린이 던진 불씨에 현실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게도 우기익이었다. 의원실에서 쫓겨나듯이 나온 우기익은 강태형이 조사가 끝나 나오기를 기다렸다.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우기익은 신경질적으로 옷을 바닥에 내던졌다. 오늘의 치욕을 꼭 돌려준다며 노발대발 했다.
다음 주까지 당장 돌려줘야 할 돈이 수두룩 빽빽이었고 그것을 갚지 못하면 그땐 차압이었다.
조만간 이 집도 날아가고, 빨간 딱지로 가득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웠다.
서울 시장이 되었을 땐 옆에 와서 온갖 알랑방귀를 뀌더니 상황이 안 좋아지니 피하기 급급했다.
홀로 남은 집안, 우진화는 우하린 그년 뒤에 용케도 숨었다고 김 비서가 그랬다.
“하여간…….”
걸걸한 음성이 허공을 부유했다. 핸드폰이 우기익의 뒷주머니에서 울렸다. 우기익은 전화를 받아 짧게 물었다.
“왜.”
[혹시 보셨습니까?]
전화를 건 사람은 오 비서였다. 아직 우기익은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우진화가 자신을 고소했다는 것도 인터뷰 기사들이 떴다는 사실도.
“뭐를.”
[그게 시장님께 맞았다는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 강태형 짓인가. 우하린이 맞았다고 하더나?”
코웃음을 치던 우기익의 말에 난감한 오비서의 음성이 잘게 떨렸다.
[그게, 우진화 양입니다.]
“뭐?”
[우진화가 시장님을 폭행으로 고소하셨습니다.]
우기익은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두 눈을 깜빡거렸다.
놀라움과 분노가 동시에 들었다. 입양한 우하린보다 모든 면에서 떨어지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럼에도 친딸이라고 키운 세월이 얼만데. 고작 몇 번 때렸다고 감히, 나를 배신해……?
우하린이야 자신의 친딸이 아니니 언제든지 도망갈 년이라고 생각했었다. 원래부터도 그냥 자신의 삶에 어떤 해가 될지 몰라 데리고 와서 키운 년이었으니.
그런데……! 우진화라니.
우기익은 급격히 올라오는 혈압에 목덜미를 잡았다.
“하!”
지은이 : 퍼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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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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