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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위반-62화 (62/75)

#62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달해 주세요. 그러고 보니 검사님 성함이.”

“아, 제 명함이 있습니다!”

태형의 말에 검사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어 주었다. 태형은 그것을 받아 내용을 살피고는 고개를 올려 검사를 다시 보았다.

“감사합니다. 이번 일 지나고 총장님과 사석에서 뵙기로 했는데 다음에 밥이라도 같이 하면 좋겠습니다.”

“저야 너무 영광입니다.”

“제가 영광이죠.”

우기익의 수로 태형이 엮이자 태형도 비슷한 수로 대응해 준 거였다. 그까짓 조사? 받으면 된다.

생각보다 삶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 정보를 누가 만드는지가 중요하지.

“하필이면 이상한 지라시가 돌아서 괜히 수고를 시켜 드리는 것 같습니다…….”

“뭐, 국민 정서도 안 좋고 이상한 소문 들고 다니는 것보다야 이게 저도 편합니다.”

이 검사, 뭔가 들은 게 확실한지 태형의 눈에 들려고 갖은 말을 다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태형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받아 주는 거 어렵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려 했다. 뭐 사실 형식적인 조사였기에 의미 없는 질문을 내뱉었다.

“아, 커피라도 타오라고…….”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도 여기서 꽤 있으셔야 할 텐데…….”

살짝 목소리가 잠긴다. 최근 잠도 자지 않고 일만 했더니 피곤하게 날카로워지는 것이 티가 났나 보다.

“그렇다면 물이면 충분합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우기익이 지금껏 해 왔던 불법적인 일들도 증거를 가지고 있었으니 돈도 명예도 잃은 우기익이 더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지금이야 발버둥 치고는 있었으나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잘 있으려나.’

다만 제일 걱정되는 건 우하린.

그녀만 생각하면 태형은 불안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이런 과보호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참아야 한다고 생각은 했으나 그녀를 보고 있으면, 꼭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눈이 닿는 곳 안에만 두게 했다. 보이지 않으면 괜히 불안했다.

그나마 최근은 우진화가 오고 생기를 되찾았다는 말에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과연 이게 맞는 것인가.

나의 사랑의 방식이라고 하여 이걸 고수하는 게 맞는 것일까.

이번 일이 끝나면 어디까지 밝혀야 할 것인가. 아니, 다 밝힐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이 많았다.

괴물을 죽이기 위해 괴물을 자처했고. 결국 자신조차도 괴물이 되었다.

그리고 하린을 바라보면 자신에게 보이는 그러한 추악한 면모를 숨기고 싶었다.

맑고 깨끗한 우하린 옆에서, 자신도 올바른 모습이 되고 싶었다. 과연, 자신이 하린에게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 * *

같은 시각, 조 대표는 하린을 보러 다시 그녀가 있는 집으로 왔다.

하린은 그가 오자 자신이 생각했던 계획과 조 대표에게 원하는 것을 말했다.

하린이 조 대표에게서 원하는 것은, 인터뷰. 정확히는 우기익에게 학대당하며 살았던 불행 그 자체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였다.

청렴하고 자수성가한 기업인 출신의 서울 시장. 그 아래에서 자란 딸.

다른 이들은 행복하게 살아온 줄 알지만,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세상에 말하고 싶었다.

물론 최근 투기 의혹과 함께 여러 구설이 올라 탄핵이니 뭐니, 말이 돌긴 했지만.

그것이 그를 시장 자리에서 내리게 할 만큼의 일은 아니었다.

그럼 그의 딸이 지금껏 당해 왔던 억울한 일들을 밝힌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우기익이라는 사람이 너무 무서워 생각도 못 했었지만, 지금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하린의 말을 듣던 조 대표는 내용을 듣고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됩니다.”

“……왜요!”

조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하린이 허망하게 바라봐도 소용없었다.

“왜긴요, 정말 강 지사장에게 제가 칼이라도 맞기를 바라는 건가요? 누가 봐도 너무 위험합니다.”

“위험할 일 없어요.”

아니 왜 다들 나의 위험에 민감해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삶을 생각은 해 봤습니까? 혹은 모든 사람이 하린 양을 동정하고 불쌍하게 여길 겁니다. 그런 삶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감당 가능해요. 저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말한 거예요.”

“우 시장의 건은 너무 건이 큽니다. 하린 양의 맞은 사진과 멍 사진 얼굴 등이 인터넷과 모든 사이트에 뜰 거라는 겁니다.”

“그게 뭐 어때서요.”

강경한 조 대표만큼 하린도 단호했다.

하린의 모습을 보고는 조 대표는 어린 여동생 대하듯 한숨을 푹, 쉬더니 안 되는 이유를 다시 말해줬다.

“그래요. 범죄도 아니고, 어디 가서 손가락질당하는 일은 아니죠. 다만…… 삶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평생 주홍 글씨처럼 남아 살 겁니다.”

그의 말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의 말뜻에 담긴 진심도 알았다.

“난 하린 양이 그냥 정상적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이왕 결혼한 거 잘살고, 남의 이목에 신경 쓰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냥 행복하게 평범하게 말입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자신도 그만큼 고려하고 하는 거였다. 나도,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거 감안하고 말이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요. 여론도 안 좋고 이목이 쏠려 있을 때.”

조 대표는 하린과 좁히지 않는 간극에 한숨을 쉬며 두 눈을 꾹 감았다.

“무슨 말인지는 알았습니다. 다만…… 강 지사장도 알고 있는 겁니까?”

“……아니요.”

“그럼 더더욱 안 됩니다.”

“조 대표님…….”

결국 설득이 되지 않았다. 왜 이런 상황에서 태형의 이름이 나오는지. 하린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울상을 지었다.

“이건 아저씨랑 관련 없어요. 그냥 제 문제라고요.”

“그래도 안 됩……”

“그럼 제가 할게요.”

조 대표가 단호하게 대답하는 와중, 하린이 아닌 다른 음성이 들렸다.

하린과 조 대표의 시선이 현관으로 향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제가 인터뷰하는 건 괜찮은 거죠.”

우진화였다.

“……마침 병원도 다녀와서 진단서도 뗄 수도 있고, 그냥 제가 가정 폭력으로 신고하고 인터뷰할게요.”

“진화야…….”

현관에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우진화. 진화는 몸은 힘들지언정 목소리 하나만큼은 또랑또랑했다.

“그런 얼굴로 안 봐도 돼. 이건 내가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괜……찮겠어?”

“언니도 새 출발 하듯, 나도 새 출발 해야지.”

피식 웃음 짓는 우진화의 얼굴.

“지긋지긋해. 이제 이 핏줄의 고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 모습을 보는데, 썩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하린이 힐끔 조 대표를 바라봤다. 조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할…… 수 있나요?”

그 모습을 보고 진화가 조 대표에게 물었다.

“후회 안 할 자신 있나요.”

“네.”

두 여자 다 우기익 때문에 정말이지 죽을 뻔한 일들을 겪으며 살았다. 삶이라는 거 정말 신기하다. 그토록 무섭고 두려웠었는데.

용기가 한번 나면 두려움이 줄어든다. 죽을 고비도 넘겼는데 뭐 그리 세상이 무서울까.

오히려 우기익이 떵떵거리며 잘사는 것이 더 두렵고 무서웠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 대표는 두 여인을 바라보며 표정 관리를 하려 애썼다.

어린 두 사람이 살고자 하는 선택치고는 삶의 무게가 조금은 무거울 수 있기에.

우하린은 말렸으나 우진화까지는 말릴 수는 없었다.

“바로 하죠. 이런 건 시간 끌어 봤자 도움이 되는 것 없습니다.”

“제가 뭘…… 하면 되는 걸까요.”

시선이 한 번에 하린에게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몰리는 시선에 하린은 눈동자를 굴렸다.

“일단 우기익을 폭행으로 고소할 거예요. 그리고 기자들에게 지금껏 당해 왔던 사실을 폭로할 생각이었어요.”

굳이 많은 것을 덧붙이지 않아도 되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우기익의 본성과 이면을 보여 주는 것일 뿐.

“알겠습니다. 그러면…… 아는 지인 기자들을 지금 불러 주겠습니다. 하고 싶은 거 원하는 것 그때 다 말하세요. 내일 아침이면 커다랗게 뜰 수 있도록 해 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린은 조 대표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진심으로 감사의 표현을 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우진화가 하린에게 물었다.

“그럼 언니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뭐야?”

“내가 원하는 건 궁극적으로……. 우기익 서울 시장 사퇴야.”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것뿐인데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 생겼다.

“혹은 국민의 손으로 탄핵을 시키는 것.”

입 밖으로 생각을 내뱉고. 행동을 옮긴다. 지금껏 해 보지 못한 거였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내가 원하는 첫 번째 복수야.”

지은이 : 퍼플독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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