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 위반-61화 (61/75)

#61화

[하린아.]

“……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이야기 해도 흔들리지 말고, 문제 생기는 건 없어.]

진중한 음성에 하린은 덜컥 두려움이 생겼다.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괜히 불안했다.

“왜요, 뭐가 문제라도 생겼어요……?”

[오늘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거야.]

“……네? 왜, 왜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예요? 아니면 또 우기익이에요?”

[네가 걱정할까 봐. 그게 걱정이네.]

뉴스에서나 듣던 일이 왜 태형에게 생기는 것인지. 그 와중에 태형은 하린이 불안해할까 봐 계속 안심될 수 있는 말을 내뱉었다.

[다른 생각하지 마. 걱정도 하지 말고.]

“……걱정 안 해요.”

하린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최대한 감정을 티 내지 않으려 했다. 자신보다는 이것을 겪는 태형이 더 힘들 테니까.

“대신 끝나자마자 바로 저 보러 와 주셔야 해요…….”

[알겠어.]

겁 많고 세상을 무서워하던 소녀는 점차 동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직도 세상이 무섭냐고 물어본다면, 아직도 무서웠다. 다만, 세상을 알게 되니, 삶을 알게 되고. 주변을 알게 되니 나를 알게 된다.

전보다는 덜 무서웠다.

태형과 전화를 끊고 바닥에 그대로 앉아 벽에 기대어 누웠다.

“아…….”

차가운 바닥의 온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문득 더욱 큰 그리움이 다가왔다.

만일 태형이 지금 하린의 모습을 봤다면 왜 바닥에서 그러고 있냐고 하면서 안아 올려 소파에 올려 줬을 것이다.

보고 싶다.

방금 목소리 들었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더욱이 그가 보고 싶었다.

얼굴을 내리고 바닥에 파묻어 어둠을 만들었다. 동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잡아 이끌어 빛을 보게 했다.

“의지하려 하지 마.”

억지로 말을 내뱉었다.

“생각해. 멍청하게 행동하지 마.”

태형이 도와주는 것, 떠먹여 주는 것 이제 이런 것에 독립해야 했다.

혼자 사는 건 외롭고 싫었지만. 홀로 있는 법, 사는 법을 하나씩 배워야 했다. 그래야 그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

하린은 고개를 올려 천장을 바라봤다. 진화도 태형도 없는 빈집이 유독 커다래 보였다.

하린은 처음 보았을 때의 태형을 상기했다.

자신을 구해 준 처음, 우기익의 집에 아침 일찍 왔던 두 번째.

……결혼해 달라고 매달렸던 때.

그때의 하린도 태형과 이런 관계의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먹이 사슬이었다. 그저 우기익보다 강해 보이는 태형에게 매달렸다.

그가 우기익보다 강하니까 이 개미지옥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단순한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서도 왜 우기익 같은 인물과 결혼으로 엮이나 궁금했었다. 그 관계에서 태형은 얻을 것이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았으니까.

“왜 아저씨 같은 사람이 진화랑 결혼하려고 하나 궁금했었는데.”

목표는 우기익이었나.

우기익의 근처에 있기 위해 친딸과 결혼을 하려 했다…….

만일 이것이 맞는다면, 태형의 분노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거였다. 성공을 하기 위해 돈을 위해 가문을 위해가 아니라.

자신의 복수를 위해 결혼도 할 수 있는 사람.

“부모님은 한 번에 돌아가시고. 입양과 파양을 반복했고.”

태형은 가족사를 기본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동생이 자살해서 죽었다고 했지.”

그나마 들었던 내용을 하나씩 꺼내다 붙이며 이 이야기를 처음과 끝을 붙여 보았다.

“아저씨는 가족에 대해 불안함이 큰 사람.”

동생이 죽고. 돈과 명예를 쫓던 사람.

돈과 양부모의 인정을 받고, 삶이 윤택해지니 지금껏 외면해 왔던 어린 시절의 불행을 꺼내어 본다.

그리고 본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은 동생.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아저씨가 한국에 왔다.”

자신의 삶을 보상받고자. 복수를 통해서.

우기익의 파멸을 위해서.

“아, 그럼 우기익이 지금 위태로웠던 것도 사실은…….”

지금까지 하린은 태형이 자신 때문에 우기익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채무 관계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리엄 부동산 투자 사기도 아저씨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생겼다.

태형이 오고 우기익의 명예와 위치가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으니까.

돈과 명예 모든 것을 양손에 잡고 있던 우기익이 한꺼번에 그것도 멍청하게 당했다.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검찰 조사를 받는다고.”

하린은 핸드폰으로 관련된 기사 같은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기사화된 자료를 찾아볼 수 있었다.

[최근 ‘리엄 부동산 투자 사기’의 리엄이 NP 한국지사 강태형 지사장과 동일 인물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와 같은 내용을 듣고 강태형 씨 측에게서는 터무니없는 억측이라며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도 받겠다며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맞다고 해도, 태형이 달리 보이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우기익이 얼마나 지독한 자인지 알고 있었으니. 그리고 그런 태형 덕분에 산 사람이 자신이었으니까.

다만, 어디까지가 그의 생각인지 의문이었다.

더불어 우기익이 그냥 당할 자는 아니라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다.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해 줄 때에도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저 그것에 동요할 하린을 걱정할 뿐이었다.

과연 검찰 조사는 태형의 생각일까, 아니면 살고자 하는 우기익의발악일까.

만약 우기익의 발악이라면,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건 무엇일까.

하린은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지독하고도 삭막한 침묵이 싫었다.

틀어놓은 TV에서는 앵무새같이 비슷한 이야기들을 내뱉었다.

강태형과 우기익의 이야기.

[속보입니다. 글로벌 기업 NP의 강태형 한국지사장 검찰 조사 소환에…….]

겁먹지 말자.

생각해 보면 태형과 하린은 비슷한 상황이었을지 몰랐다. 지독하게도 둘은 우기익의 피해자들이었으니까.

“우기익의 몰락.”

두려움에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이것은 비단 태형 혼자만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린도 지금껏 원했지만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할 일들은 태형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지.

진동 소리,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시선만 돌려 화면을 확인하니 조 대표의 전화였다.

아까 봤는데 무슨 일이지? 싶다가도 마침 조 대표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기에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괜찮습니까?]

갑자기 물어보는 안부였지만. 조 대표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아마도 태형이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뉴스에까지 나왔으니, 그것을 보고 걱정이 되어 연락을 했을 거였다.

“괜찮아요. 안 그래도 조금 아까 검찰 조사 받을 거라고 연락이 왔었거든요.”

하린은 괜히 웃으며 최대한 감정이 괜찮은 척 말했다.

[괜히 조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하린 양이 괜찮다고 하니까 다행입니다.]

“그…… 조 대표님.”

[왜요?]

“한 번 더 도와 달라고 요청 드리면, 안 해 주실 거예요……?”

[강 지사장 일이면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어요.]

조 대표는 혹여나 검찰 조사 관련된 것에 힘을 써 달라고 할까 봐 걱정스러운 투였다.

“아뇨, 이건 저를 위한 거예요.”

나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다.

복수, 라는 거 하고 싶었다.

* * *

태형은 하린과 전화를 끊고 바로 검찰로 향했다. 손목에 걸린 시계를 확인해 보니, 저녁 7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음, 최대 48시간.

이틀까지만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데.

태형은 앞으로 있을 검찰 조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태형은 이미 한국에 오기 전부터 몇 년 동안 복수를 계획하면서 조금씩 돈을 뿌려 왔었다.

그리하여 지금에 이른 단계에서는 태형의 돈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었다.

그 돈을 뿌린 정보들은 그들에게도 있겠지만 태형에게도 존재했다. 말하자면 굳이 척지어서 좋을 것이 없었다.

‘우기익이 마지막 발악하긴 했지.’

사실관계를 알고 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리엄과 태형을 엮어서 압박하려고 했던 생각은 꽤 나쁘지 않았다.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제일 독보적인 이미지인 사기꾼 ‘리엄’을 태형에게 씌우는 거니까.

물론 우기익이 실패한 원인은 우기익은 태형이 한국의 권력층과 이토록 유대 관계를 쌓아 왔는지 몰랐다.

뭐, 자신을 누가 서울 시장에 올려 준 건지도 모르는데.

검찰로 들어가는 길, 안내를 받으며 들어가니 미리 협의가 이루어진 검사가 미리 와 있었다.

반듯한 인상의 짧은 머리.

“오셨습니까?”

태형을 보고 90도로 인사하는 검사를 보며 태형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매우 공손한 태도. 총장이 신경 쓴다고 하였는데, 확실히 신경을 쓴 티가 났다.

우기익이 머리를 써도, 평생 소용없을 거였다.

“요즘, 검찰 총장님이 걱정이 많으십니다.”

지은이 : 퍼플독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7703

© 퍼플독

※ 본 전자책은 <툰플러스>가 저작권자와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무단복제와 무단전재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