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며칠이 지난 후. 우기익의 집무실.
모든 일의 시작은 생각보다 별것 아닌 일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별것 아닌 일은 생각보다 큰일의 결과를 낳게 한다.
우기익은 그것을 지금, 한 자료를 보면서 느끼고 있었다.
“이, 게…….”
서류를 들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려, 종이가 읽을 수 없이 떨렸다.
얼마나 종이를 뚫어지라 바라봤는지, 우기익의 실핏줄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이 모든 짓이…….”
이 모든 게 강태형의 짓.
강태형의 과거를 모조리 뜯어보았다. 물론 강태형의 보육원 시절은 너무 예전이고, 유실되어 찾기 힘들었으나, 강태형의 동생 것은 찾을 수 있었다.
더불어 동생의 어미 아비도.
그러니까 강태형의 부모의 이름을 보자, 우기익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이 새끼…….
일부러 찾아온 게 분명했다.
의도해서 내 주변을 얼쩡거린 게 분명했다.
처음부터 나한테 복수를 하고자, 온 것이 분명했단 말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뭘 알고. 우기익은 두려움과 분노로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그 정보들을 강태형이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의문이었다.
분명 그 과거는 무마해서 분명히 다 묻어 버렸다. 더 이상은 정보를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도 없는 것을.
이 어린놈의 새끼가 뭘 알고 나타나서 복수를 하냔 말이다.
“으악!”
우기익은 화를 주체하지 못해 주변의 물건을 사정없이 때려 부쉈다.
잡히는 물건을 던지고, 밀치고.
“이 새끼가. 이 우기익을……!”
사무실에서 자료를 보고 있던 탓에, 우기익의 집무실이 엉망이 되었다. 바닥에 서류가 나뒹굴고, 서류철이고 화병이고 할 것 없이 바닥이 난장판이 되었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그런데도 우기익은 성미가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성이 나 부푼 가슴이 시근덕거렸다.
손끝이 어딘가에 베었는지, 피가 났지만 상관없었다.
“뭘 해야,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당장이라도 갚아 주지 않으면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리고는 아직도 성질이 풀리지 않은 우기익은 한참을 소리를 질러대며 난동질을 멈추지 않았다.
우기익의 비서진은, 그의 이런 행동을 처음 보는지 직원들끼리 눈을 마주 보며 몸을 사렸다.
매번 웃고 다니고 인자한 모습만 봐 왔기에 이런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야, 저기서 말리면 누구 하나 잡도리하겠는걸.”
“소문이 맞나 봐. 원래 성격이 엄청…….”
직원들조차도 처음 보는 본모습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가면이 점차 부서지고 있었다.
그의 위상도 같이 말이다.
“오 비서 어디 갔어. 오 비서!”
우기익은 점차 낭떠러지로 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낭떠러지를 제 발로 걸어가고 있었다.
물론 당사자인 우기익은 모르고 있었지만.
“……네.”
“리엄, 리엄 그 새끼랑.”
더이상 우기익이 물러설 공간이 없었다. 불현듯 한 가지 무언가가 생각났다.
리엄과 강태형이 같은 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사실 같은 인물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었다. 강태형에게 뭐라도 엿을 먹일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했다.
아직 서울 시장이었기에 강태형에게 그 정도의 엿 정도는 쓸 수 있었다. 죽더라도 혼자 죽지는 않을 거야. 누구 한 놈 잡아다 같이 갈 것이었다.
“강태형이랑 엮어.”
“네?”
오 비서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자, 우기익의 목소리가 커졌다.
“강태형이랑 리엄 그 새끼랑 같은 인간으로 엮으라고. 리엄 수배 떴으니까!”
오 비서는 그 말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했으나, 뒤이어 이해했다.
“사실은 사기꾼 리엄이, 강태형이었다고 기사를 내 버려.”
사실이 뭐 그리 중요한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중요하지.
* * *
홀로 남은 집 안에서 우기익은 축배 아닌 축배를 들고 있었다.
원래 술이라면 접대하는 자리 이외에는 잘 마시지 않는 인물이지만, 요즘은 맨정신에 있기 힘들었다.
우진화는 오늘 정략결혼으로 맺어 둔 사람과 만나는 중이렷다.
“……하, 그날의 일이 이렇게 발을 잡다니.”
그날로 인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 그 당시의 일들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우기익은 단호히 대답할 수 있었다
후회하지 않는다.
백번이고 천 번이고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자신은 주저하지 않고 과거와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우기익이 자수성가할 수 있도록 도와준 건, 그 일 덕분이니까.
그날 만일 그 연구소를 알지 못했다면 과연 자신이 이런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 수 있었을까.
과거의 우기익은 이 정도로 돈이 많은 자산가가 아니었다.
그 역시도 푼돈 모아 작은 사업을 하며 조금씩 자산을 불려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돈 따위는 모르고 그저 기술 개발에만 매진하던 연구소장과 연구원. 그리고 그것이 돈이 될 거라고 판단했던 우기익.
그가 돈을 투자하기로 한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잠깐만.”
우기익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마시던 술잔을 내려놨다.
“강태형이 연구원 아들.”
눈빛에는 광기 그 무엇을 담고 있었으며, 머리를 비상하게 움직였다.
“우하린 고년이 연구소장 딸.”
왜 자신이 이걸 잊고 있었던 거지? 우기익은 무언가를 깨닫고, 얼굴이 환해졌다.
“역시 신은 날, 버리지 않아.”
정말로 강태형이 우하린을 사랑한다면.
강태형에게 이것을 빌미로, 돈을 달라고 해도 되겠는걸.
“살길이 나올 수도 있겠어.”
먼 시절의 과거. 그날의 기억과 진실을 알고 살아가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우기익은 그것을 상기하며,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술이 달았다.
그래, 이걸로 강태형을 협박하면 먹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한참을 술잔을 드는데, 우기익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뭐야.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니, 우진화랑 결혼시키기로 한 대표였다.
“안녕하세요, 정 대표…….”
[우 시장!]
화통을 삶아 먹었나…….
왜 전화하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지랄인가. 우기익은 인상을 쓰면서도 왜 이 인간이 소리를 지르는지 집중했다.
[자네에게 실망일세. 감히 나를 이리 농락하는 게 말이 되냐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대로…….”
[제대로? 지금 제대로라는 말이 나오는가? 이번 결혼은 무효야. 당신에게 주기로 한 돈 못 주네. 계약 파기니까!]
“예? 지금 와서 그런 말씀하시면……!”
술이 취하는 상태에서 술이 깼다. 우기익은 그 와중에도 자신이 제대로 들은 건지 의문이었다.
이년이고 저년이고.
이놈이고 다 맘에 안 든다.
[당신 딸년이 내 입술을 물어뜯고 도망쳤다고!]
“예? 우진화가…….”
[내가 병원비랑 손해 배상 청구 안 하는 걸 감사히 여기게!]
우기익이 말하기도 전에 신경질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허망하게 핸드폰을 바라보던 우기익은 술맛이 다 달아났다.
그나마 살길을 모색했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우진화 이년이 정신을 못 차리고 사고를 쳤다.
“어떻게 이런 년이 내 핏줄이라고…….”
얄팍하게 있던 인내심이 사라지고 그 위로 술을 채워 넣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밤이 길 듯했다.
* * *
어둑한 달빛이 비치는 밤.
우진화는 사고를 치고 추운 밖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그렇지만 안 들어갈 수도 없고…….
우진화에게 최근은 재난이었다. 아비는 이상한 추문에 휩싸였고. 그나마 믿고 있던 집안의 재산도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제일 큰 건 돈이 없다고 하여 정말로, 자신을 나이 든 남자에게 팔아넘겼다는 것.
우하린…… 갠 이런 삶에서 어떻게 버틴 거야.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났다.
과거 자신이 우하린에게 살겠다고 뱉던 말들. 그리고 이제 자신 앞에 쏟아져 내려오는 폭언과 견딜 수 없는 상황들.
지잉이이잉-
우기익에게서 계속 전화가 왔다.
우진화는 그것을 보면서도 받지 않았다. 몇 번의 전화가 오고 나서야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다.
몇 시간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손발이 얼어붙고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렸다.
우진화는 한숨을 내뱉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그냥, 앞으로…… 이제 어떡하지.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두려움이 더 컸다. 걸릴까 봐 두려웠고, 돈도 없었다. 과연 자신이 혈혈단신 몸뚱이 하나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결국 오랜 시간 밖에서 서성거리던 우진화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우기익이 잠들어 있길 바랐다.
물론 이것이 소용없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냥 오늘 하루는 무탈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집 안 내부는 우진화의 생각처럼 되어 있지 않았다.
이게 뭐야…….
집 내부는 난장판이었다. 고약한 술 냄새와 어질러져 있는 바닥. 정확히는 누군가가 던지고 깨서 만든 어지러움이었다.
몇 걸음 걷던 우진화는 걸음이 멈춰 섰다.
아무래도 더 걸어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몸이 그대로 굳은 상태에서 천천히 몸을 뒤로 빼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진화.”
호흡이 멈추고 근육이 굳는 것 같았다. 천천히 소리가 나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 끝에 도달하자 거기엔 우기익이 서 있었다. 그것도 누가 봐도 만취한 상태에서.
우진화는 그것을 보고 시선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더군다나 손에는 골프채가 들려 있었다.
지금 이 난장판이 그럼 저 골프채를 휘두른 흔적인 거야?
현관을 갓 벗어난 자리에서 진화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머릿속으로는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도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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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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