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머리가 멍해져서 눈을 잃고, 귀를 잃은 것처럼 감각이 돌지 않았다.
정확히는 무언가가 자기 눈과 코와 입 그리고 손까지 모든 것을 절단해 버린 것 같았다.
눈을 잃고, 생각할 자유를 박탈당하고.
그 모든 존위를 잃었다.
“나에게 아이가 있었다고.”
생명, 아이, 태형의 아이.
여러 가지의 단어가 눈앞을 아른거린다. 내가 엄마였다고.
하루아침에 있는지도 모르던 아이를 위한 모성애가 생겨 난 건 아니었다.
이 일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고 슬프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었다.
아프지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일이 현실이 아니라 꿈같았다.
나는 그저, 그저…….
세상에서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이게 현실이라고.
자신이 멍청해서 아이가 있는 줄도 몰랐다. 심지어는 지켜 주지도 못했다. 잃은 줄도 모르고.
그저 허망했다.
“내가 엄마였었다고…….”
하린은 텅 빈 눈동자로, 자신의 배를 그리고 주변을 바라봤다.
어지러워.
천천히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지이이잉-
멍하니 있는 조용하고 고요한 공간 안에서 전화가 울렸다.
하린은 자신에게 전화 올 곳이 단 한 곳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강태형.
전화를 받으니 태형의 음성이 들려왔다. 평소보다는 조금은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조 대표 다녀갔다면서.”]
그는 티 내지 않으려 했던 것 같으나, 하린이 그를 지금껏 보았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네…….”
태형의 음성을 듣는데, 하린은 순간적으로 인지했다.
아, 나를 속이려고 한 게 맞았구나.
누군가가 제 목을 틀어막는 것처럼 숨이 막히고, 목이 죄는 것 같았다.
자각되지 않던 현실이, 피부로 자극이 되어 다가왔다.
모든 일들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조 대표가 왔다 갔는데, 밖에 있는 경호원들이 말을 전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숨이 점차 가빠왔다.
[“왜 이렇게 목소리가 우울해. 무슨 일 있었어?”]
“별, 일없었어요.”
간신히 말을 내뱉으면서도 하린은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했다. 아직도 그녀의 어딘가는 그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머리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나.
하린이 별일 없었다고 말하니 그의 목소리의 긴장감이 비교적 풀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회사에서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아.]
“……그래요?”
[응, 하린아.]
평소처럼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보고 싶다.]
이런 말을 듣는 데에도 말이다.
전화를 끊고, 하린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입을 막았다.
이유 모를 슬픔이 주체 없이 새어 나왔다.
“아……. 으윽.”
아무리 생각해도 태형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건 모성애가 아닌, 무능력함에 대한 분노였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었다.
평소보다 잠이 늘었고.
생리하지 않았고.
몸이 무겁고, 헛구역질하고.
“애, 가 생겨도 어떻게 모를……수가 있어.”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무지함과 무능력함 때문에 죽은 아이에 대해 미안함이었다. 제 아이가 죽었는지도 모르는 어미.
“아…… 아, 허윽.”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호흡이 뒤로 넘어가 그대로 막힌 듯 기도가 막혀 버렸다. 울다가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호흡을 제외하고, 호흡이 되지 않았다.
하린은 몸을 뒤틀며 괴로워했다.
“끅…….”
심장을 치고, 거세게 몸부림치며, 하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죄였다.
그냥 내가…… 내가 그날.
“뭐, 뭐야. 의사…… 의사!”
하린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경호원 한 명이 VIP실에 들어왔다가 놀라 나갔다.
의사를 부르는 소리가 현실 밖의 목소리로 들렸다. 호흡하고자 숨을 껄떡거리면서도 하린은 생각했다.
살아서 뭐 하지.
나만 삶이 이렇게 힘든 건가.
의식이 점차 희미해진다.
몽롱한 정신 속, 하린은 속으로 한탄했다.
강태형, 자신이 좋아하던 사람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티를 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적당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하는 진정한 성인이었다.
무엇이 이를 이토록 변하게 하였는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 당당하고 숨김없던 사람이 무엇이 무서워서 이런 행동을 하는가.
다 나 때문이야?
모든 죄의 화살이 하린에게 향했다. 하린의 얕은 자존감은 태형으로 통해 채워지고 있었다.
하린에게 강태형이라는 존재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지대, 그 이상의 존재.
신. 정신적 지주.
그런 그가.
“정신이 듭니까? 간호사……!”
무너졌다.
희미해진 의식, 그 밖으로 여러 사람의 음성이 오고 갔다. 억지로 호흡하게 하는 무언가들.
하린은 그대로 눈을 감고 싶었다.
더는 버티고 싶지 않았다.
* * *
눈이 떠졌다.
밖에는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들려왔다. 햇살이 밝게 비추고.
어제의 일은 악몽인가 싶을 정도로 밝고 화창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몸을 천천히 일으키니, 옆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익숙한 그의 향기.
“깨어났구나.”
태형이었다.
그는 정말로 걱정했다는 표정으로 하린의 손을 붙잡았다.
몇 시간 전부터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빨간 실핏줄이 터져 있고,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하린은 자신을 바라보는 태형의 얼굴을 보며 동공이 흔들렸다.
자신 때문에 그가 바뀌고 있었던 거였다. 지금의 그의 모습은…….
잡힌 손을 빼내며, 하린은 시선을 피했다.
“왜, 하린아.”
불안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를 듣는 데 감정이 좋지 못했다. 어떤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뜸을 들이던 하린의 음성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저한테, 할 말 없어요……?”
하린에게 그는 춥고, 좁은 불안한 세상에 온 구원이었다.
그를 만나 좋았고, 환하게 피어날 수 있었다.
“하린아. 무슨 말을…….”
“정말, 없……어요?”
많은 것을 바란 적 없었다. 지금처럼.
지금만 같길.
“하린아, 네가 무슨 말을 듣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다 너를 위해서…….”
매일 빌어 왔었다.
“……나를, 위해서였다고요.”
하린이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처음 보는 눈빛. 그가 변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하린을 보는 태형의 눈빛은 무방비했으며 또한 불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아이가, 죽었어요.”
“하린아.”
“아저씨 아이이고, 내, 아이예요.”
울음과 음성이 뒤섞였다.
“우리, 아이였어요. 어떻게…… 말을 안 하고 넘어갈 수 있어요.”
하린은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
“나는 아이가 생겼는지도 모르고……. 몇 주차인지도 몰랐고. 성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우리 아이는 못난 엄마 만나서 세상 구경도 못 하고 죽었다고요.”
죄의식이 토해져 나왔다.
그에 대한 죄의식.
“그날 산책하러 나가지 말걸.”
아이에 대한 죄의식.
“아니 그전에 하루만이라도 일찍 내가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병원을 갈걸.”
“…….”
“나는 왜 아이가 생겼는지도 모를 정도로 멍청한 건지. 화가 나고 증오스럽고. 이걸 심지어 모두가 숨기고 있었어요.”
태형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린은 제 감정의 깊이에 허우적거리느라 그의 표정과 감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당장 내 손에 찔린 가시가 더 아팠다.
“나는 애가 죽어도 모르고 웃고 다녔다고요……!”
하린의 절규와 같은 말에도, 태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상황을 진단하는 의사처럼 하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그냥 내가 다 박복해서예요. 다 제가 잘못된 거였어요. 제 불행이 아저씨한테도 간 거예요. 아저씨도 이런 일 겪을 필요 없었는데…… 나 때문에…….”
빨라지는 호흡.
입매를 굳히며 하린을 마주하는 태형, 둘 사이의 날 선 기류가 흘렀다.
“세상도 못 믿겠고, 무섭고, 아저씨도 못 믿겠어요. 그냥 다 무섭고 내려놓고 싶어요.”
“……이럴까 봐 말 안 했던 거야.”
날이 선 음성이었다.
“나는 네가 다치지 않는 게 우선이었어. 그 상황에서 네가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너는 자책감을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
태형의 모습을 보며 하린조차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 안에 있던 이리를 느꼈다.
태형 역시도 더 이상이 이 내용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렇다고 평생을, 속일 수는 없는 거잖아요. 평생을…….”
둘 다 거의 숨을 쉬지 않았다.
질 나쁜 감각이 뒤섞인 감각, 죄책감에 하린 역시 숨쉬기가 힘들었다.
마른침을 몇 번 삼키던 태형도 입술을 달싹이다 말했다.
“너만 지킬 수 있는 거라면 나는 더한 것도 했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였을까.
“우리 아이에게요.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의 아이였다고요.”
“……나는 네가 더 중요해.”
비틀려 있던 관계 속 둘이 가까워질 수 없었던 공간이 있었다.
울다가 지친 눈가는 눈물로 짓물러 있었고. 머리가 띵하게 두통이 찾아왔다.
“저는…….”
그리고 그 멍한 공간 안에서 태형과 좁혀질 수 없었던 틈을 보았다.
“아저씨의 죽은 여동생이 아니에요.”
쇳소리처럼 갈라진 음성. 간극은 여기서부터 나오는 거였다.
하린은 태형을 사랑했고, 연인으로 대해 주길 바랐다.
“아저씨는 제 보호자가 아니에요.”
그러나 태형은 아니었다.
나를 죽은 동생 자리에 넣고, 혼동하고 있다. 하린은 그렇게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았다.
하린은 눈물을 닦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눈을 제대로 뜨며 입술을 달싹였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말.
이름 모를 통증이, 가슴을 찔렀다.
“나를 사랑하긴 한 건가요?”
지은이 : 퍼플독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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