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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위반-25화 (25/75)

#25화

우진화 면접 날. 아침이 도래했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우기익의 타박을 들으며 준비했던 우진화는 사실 아침부터 그다지 긴장하지 않았었다.

왜냐, 아버지가 다 준비했을 테니까.

오늘은 그저 절차상의 하나일 뿐이니까. 우진화는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며 이번 면접을 준비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시간에 맞게 회사에 도착했는데…….

왜.

“학벌도 인턴으로 지원하기에 부족하고.”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거지?

우진화는 면접 장소에 앉아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모든 것이 예상과 어그러지면서 말도 못할 정도의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다.

“그렇다고 그렇다 할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 눈앞의 변수는 당장 발등에 떨어져 활활 불타고 있었다.

냉랭한 목소리가 면접실 내부를 날카롭게 지나갔다. 서류를 넘기는 소리와 한 남성의 목소리.

태형이었다.

“저, 저도 당연히 준비한 것이…….”

“고작 자격증 몇 개와 그럴듯하게 포장된 자기소개서면 될 줄 알았습니까. 왜 이 지원자가 최종심까지 올라왔습니까. 인사팀에서는 대체 뭐를 본 거죠?”

태형의 시선이 직원들에게로 향하자 다들 태형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시선을 회피하기 바빴다.

지사장이 인턴 면접까지는 관여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지금껏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다들 생각도 못 한 터였다.

“이번 채용부터는 블라인드 진행을 통해 스펙이나 대학교명을 보지 않는…….”

“누가 그런 거 물어봤습니까.”

대답을 하던 사람은 인사팀장인 한 과장이었고, 태형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듣지도 않고 그를 타박하고 있었다.

사실 지원자고 직원이고 할 것 없이 흡사 심문하는 분위기였다.

태형은 우진화를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한 과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진화의 입사를 돕던 인물, 그리고 우기익에게 돈을 받은 사람.

“이 자기소개서만 봐도 그렇습니다. 누가 이 자기소개서를 20살이 쓴 글로 봅니까. 더군다나 경험도 아무것도 없는데 블라인드로 뭘 보고 최종심까지 뽑은 겁니까.”

블라인드 테스트는 우진화를 뽑기 위한 꼼수였을 뿐.

한 과장이 불안하게 입술을 축이며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자, 우진화 또한 초조한 듯 손끝을 뜯었다.

우진화.

우기익의 아래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생각하나 그래 봤자 그녀도 20살.

당연히 이런 사회생활의 분위기는 처음이며, 이런 압박감 또한 첫 경험이었다.

그러기에 그 초조함을 말할 수 없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충분했다.

“그럼 우진화 지원자에게 묻죠.”

태형은 한 과장을 한심하게 바라보다 이내 우진화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진화 지원자의 무엇이 최종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하죠?”

우진화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화들짝 놀라며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뭐, 뭐라 말해야 하는 거지……?

태형이 없었다면 당연히 우기익이 바라던 것처럼, 면접은 적당한 말로 주고받으며 끝났을 것이다.

그렇기에 면접에 대해 준비하지 않은 우진화는 말을 하는 것조차도 힘들어 할 수밖에 없었다.

“네, 네?”

“우진화 지원자의 강점을 말해 보세요.”

“제 강점이요?”

“없습니까?”

날카롭게 반응하는 태형을 보며 우진화는 순간 압박을 받아 더욱 대답하지 못했다.

어, 어쩌지.

뭐라도 말해야 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진화는 뭐라도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이 면접도 끝이다.

분명 이대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에 가면 아버지께 개 패듯 맞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하린은 조 대표와 결혼까지 할 기세인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야만 했다.

“제…… 강점은 남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상대의 요구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강점입니다.”

순간 면접 전에 한 과장이 했던 말을 상기했다.

혹 다른 면접관이 까다로운 질문을 했을 때 ‘요구’ 혹은 ‘결과’와 같은 단어를 섞어서 쓰면 효과적이라고.

“그러한 결과로…… 나이는 다른 지원자들보다 어릴지 몰라도 이러한 강점을 활용하여 좋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진화의 대답에 한 과장의 표정이 눈에 띄도록 밝아진 모습을 보며 그녀는 속으로 내심 안심했다 이렇게 하면 되나 보다.

“우진화 지원자.”

“네.”

그때 태형이 끼어들었다.

진화는 자신의 예비 약혼자가 될 남성을 바라봤다. 저번에 본 인물이지만 다시 보아도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어려운 사람이었고 또한 무서운 감정을 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이번에 꼭 인턴으로 들어가 이 남자의 눈에 들 것이다.

기필코.

“자기소개서 안 봅니까?”

“네?”

“비슷한 본질로 자신의 강점을 주관이 분명하다고 쓰셨습니다. 지금 자신이 쓴 글과 말이 충돌한다는 생각은 안 듭니까?”

자기소개서의 내용은 우기익이 준비한 대필이었고, 우진화는 그 내용을 대충 한 번 훑어본 것이 다였다.

우기익은 그저 웃으면서 적당히 호응이나 해 주면 된다고 했기에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는 그저 서류일 뿐이었으니까.

“이렇게 최소한의 것도 말이 맞지 않는 사람을 나는 신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거지.

우진화는 허망한 표정으로 태형을 바라봤다. 그는 꼭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았다.

아버지에게서 자신을 지켜 줄 산. 그 산은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절대 너의 편이 되어 주지 않아.

“굳이 따로 통보할 필요 없습니다. 탈락입니다.”

* * *

우진화가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하린은 조금 늦게 기상했다. 어제, 갑작스럽게 태형과 전화하고 나서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늦게 잠든 탓이었다.

“하아.”

하린은 일어나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제 태형과 전화 통화를 하며 느낀 감정은 처음엔 즐거움이었고, 이후엔 당혹감이었고, 마지막은 좌절이었다.

그가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 같은 말을 할 때는 너무 좋았으나 이후, 마음의 준비를 했냐는 질문에는 당황했다.

한국 뜰 준비, 라는 말을 듣고는 순간 생각난 것은 아쉬움이었다.

왜?

하루라도 이 집안에서 도망가고 싶었잖아. 자살해서라도 나가고 싶었잖아.

“마지막 질문은 하지 말걸.”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 질문은 후회였다. 다시금 어제 태형의 반응을 상기하니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민망함이 들었다.

“네가 알 필요 없는 질문이야.”

그 정도로 싸늘한 음성은 첫 만남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더군다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절대로 말을 편하게 하지 않는 그였다.

지잉-

문자 한 통이 날아오는 소리에 하린의 상념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자나요?」

조 대표였다. 핸드폰을 잡는데 다시 한번 진동 소리가 들렸다.

「안 자면 우리 점심 같이 먹을래요?」

사실 하린이 마음이 무거운 이유 중에도 조 대표가 한몫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조 대표를 이용하고, 도망가려 했기에.

그는 진심으로 하린을 대해 주고 있었다. 그 마음을 보았기에, 그의 진심을 이용하는 것이 죄스러웠다.

“이렇게 좋은 분께, 내가…….”

말을 뱉다가 이내 끝마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누구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매일같이 두려움에 떨고, 맞을까 봐 걱정하는 주제에.

“누굴 걱정해.”

하린은 씻으러 들어가면서 조 대표에게 연락을 남겼다.

「저 방금 일어났어요. 씻고 연락드릴게요!」

씻고 나와서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니트 원피스에 두꺼운 모직 코트를 입고. 화장은 평소처럼 옅게 했다.

그리고 방을 나오면서 조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준비 다 끝냈어요.”

통화 연결음은 짧고 가볍게 지나갔다. 그는 하린의 통화를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빠르게 전화를 받아 주었다.

[그래요? 그럼 점심 먹을 수 있겠네요~?]

“대표님은 출근…… 안 하세요?”

[와, 하린 양 방금 되게 뼈 때린 거 압니까? 저 지금 일 안 하냐고 타박한 거죠?]

“아?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건데…… 죄, 죄송해요.”

어제 태형과 전화할 때 태형은 아주 당연하게 업무 중이었고. 조 대표는 아주 당연하게 논다고 했다.

어젯밤 태형과의 대화가 생각나서 물어본 말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실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목소리가 침울해졌다.

[죄송하면 점심 먹어요. 그리고 대표는 원래 출근 안 하는 겁니다. 하린 양이 아직 뭘 모르네…….]

하린이 전화 통화를 하며 거실 쪽으로 나오는데, 거실에서 큰소리 났다.

매타작 소리였다. 짜악-

“멍청한 년이 네년 때문에 들어간 돈이 얼만 줄 알아!”

“잘, 잘못했어요. 가, 갑자기 지사장님이 며, 면접에…….”

하린은 나오다 그 모습을 보고 멈칫했다. 눈동자를 굴리며 본능적으로 상황을 살폈다.

그러면서도 저도 모르게 겁을 먹어 뒷걸음질 쳤다.

면접에서 그다지 좋은 결과를 못 받아 온 것 같은데.

머리로는 빨리 조 대표를 빌미로 집을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었으나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학습된 고통이었다. 보통 우진화가 혼날 때, 그 옆에 있던 죄로 하린도 보통 같이 맞았으니까.

[하린 양? 무슨 일이에요. 무슨 큰소리가 나오는 것 같은데.]

핸드폰에서 조 대표의 음성이 울렸다.

아, 그게. 하린은 입을 뻐끔거렸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 과장 그 새끼도 그렇게 큰소리를 치더니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그리 말하며 우기익은 손에 잡히는 것을 우진화 쪽으로 던졌다.

꺄악! 우진화가 겁에 질려 소리 지르는 음성이 그대로 귓가에 꽂혔다.

[기다려요. 내가 집으로 바로 갈게요.]

지은이 : 퍼플독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7703

© 퍼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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