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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위반-24화 (24/75)

#24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우기익은 선거 유세 중 잠시 나와 차 안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누가 들어선 안 되니 공공연한 자리에서는 전화를 받을 수도 없었다.

우기익은 하린이 대답하지 않자 버럭 화를 냈다.

“알아들었어?!”

[……네.]

“그래서 오늘은 뭐 했다고?”

[드라이브랑, 놀, 놀이 공원 갔었어요…….]

“놀이 공원? 나이 먹은 사내새끼가 여자 데리고 가는 곳이 고작. 뭐 이상한 일은 없었겠지? 선거가 코앞이야 괜히 구설수 나올 일도 하지 말고.”

[없었어요. 그냥 제가 한 번도 가 본 적 없다고 해서 데려가 주셨어요.]

“오.”

하린의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우기익은 전화를 듣던 중에 처음으로 미간에 힘을 풀었다.

“네년 치마폭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네 말이면 껌뻑 죽던?”

[그, 그런가 봐요. 다행……이죠.]

“그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네.]

전화를 끊은 우기익은 차 등받이에 허리를 대며 숨을 돌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그래 사람이 죽을 일은 없다고. 이렇게 신이 또 돕는구먼.”

몇 년 동안 우기익은 무리하게 사업 확장을 했다. 회사 규모는 비대해졌지만, 속으로는 꽤나 큰 마이너스를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최근 몇 년은 정치하겠다고 무리하게 자산을 사용했다.

이미 현금은 말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여사와 손을 잡아, 일부 수혈을 해 줬고. 최근 의원들의 소개를 받아 ‘리엄’이라는 재외 교포 투자자를 만나 재미를 보았다.

‘하, 리엄이라는 새끼가 말한 투자 때문에 고민이었는데 이렇게 풀리겠네.’

이번 리엄이 제안한 투자 단위가 너무 커서 고민 중이었다. 그러나 손만 대면 돈이 벌려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투자 건.

자그마치 돈을 넣으면 5배는 불린다고 했다.

자산을 담보로라도 리엄에게 돈을 빌려 볼까 했는데, 이렇게 되면 이 여사에게 받을 돈으로 투자에 들어가도 되겠다고. 우기익은 생각했다.

이렇게 한 푼이라도 아쉬울 때 우하린이 도움이 되지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제 어미를 닮아 언제든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데리고 오긴 했는데, 확실히 키운 보람이 있어.”

우기익은 그리 말을 하며,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렸다. 얼추 상황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고 생각이 드니, 돈 받을 일을 당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우기익입니다- 이 여사님.”

하린을 빨리 결혼시키는 것.

“조 대표와 제 딸이 꽤나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둘이 분위기도 괜찮은 것 같으니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시키는 건 어떤가 싶어서요.”

우기익은 거만하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있다가 이내 이 여사의 음성이 나오자, 바르게 등을 세워 앉았다. 벌써부터 돈 받을 생각에 얼굴에 기름이 번들거렸다.

최근에 알게 된 리엄이라는 사람과 이 여사, 강태형.

“저희는 언제든지 좋습니다~ 제 서울 시장 선거도 있으니 비공개로 결혼해도 되지 않을까요. 당장 다음 달도 괜찮습니다. 하하.”

이 사람들만 잡으면 더 이상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다.

서울 시장은 따놓은 단상.

일이 이상하게 너무 잘 풀렸다. 하지만 우기익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것은 단순 우연, 혹은 운이 아니라 자신이라서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든지 신은 자신의 편이라고.

* * *

그 시각 태형은 내일 있을 우진화의 면접을 위해 우진화의 이력서를 살피고 있었다.

포트폴리오부터 자기소개서 등등.

어느 것 하나 돈 냄새가 안 나는 것이 없었다. 누가 보아도 우진화가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써서 사 온 것이 눈에 훤했다.

인사팀장을 돈으로 구워삶고, 적당히 서류 제출해서 보내면 될 거라는 생각이 너무 형편없었다.

“저급하긴.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인물답네.”

하긴 평생을 이러고 살았을 테지.

태형은 그것을 살피며 혼잣말을 했다. 홀로 있는 사무실에 김 비서가 들어왔다.

“우기익 쪽에서 입질이 왔습니다.”

“어떤?”

“저번에 제의했던 투자 건 말입니다. 그때 총알이 부족하다고 미루더니 갑자기 자기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돈 빌려 달라는 말은 없습니까?”

“네.”

김 비서는 대답하며, 최근 우기익의 동향이 담긴 자료를 책상 위에 올렸다.

거기에는 조 대표와 우하린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데이트 장면이 담긴 사진을 보며 태형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당장 돈 나올 구석이 없을 텐데…… 아 이 여사 쪽인가.”

스포츠카에 앉아 있는 사진.

놀이 공원에서 토끼 머리띠를 쓰고 조 대표와 놀고 있는 사진.

“우기익이 설레발을 치고 있는 것 같네.”

우하린과 조 대표의 사이가 좋아 보이니, 결혼을 빨리 시켜 돈을 요구한다. 그리고 놓치기 아까워 보였던 투자 건에 돈을 수혈한다.

“우기익 투자받아 주죠. 그리고…….”

태형은 그리 말하며 사진에서 시선을 못 때고 있었다. 하린이 방끗 웃고 있는 사진.

“비행기표는 준비되었습니까?”

“네. 오늘 저녁이면 다른 신분도 다 준비 끝납니다.”

“……그래요.”

우하린의 결혼을 빌미로 돈을 받을 예정이라면, 조만간 어그러질 것이다. 그러면 우기익은 다시금 돈이 필요한 상황이 올 것이고.

그럼 그때 태형은 차용증을 쓰게 한 뒤, 우기익에게 돈을 빌려준다. 그럼 그 돈은 ‘리엄’에게 들어간다.

리엄이 만드는 투자 건은 우기익을 잡기 위한 덫, 사기 투자였다.

집어넣는 우기익의 자산은 결국, 태형이 손아귀에 들어오게 될 것이었다.

그렇기에 우기익이 시장선거에 당선이 되든 안 되든 그딴 건 사실 태형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이제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군요.”

“……네.”

태형은 마지막 고지라고 생각이 드는 곳을 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 이상한 감정에 흔들려서 혼란하지 말자.

김 비서는 태형의 말에 작게 대답하며 못마땅함을 보였다. 그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조만한 우진화와 결혼하여 우기익 등잔 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왜 그랬냐고, 물어볼 그 날을 위해서.

“우하린의 명의로 통장 하나를 개설해서 돈을 넣어 주세요.”

“얼마 정도 넣으면 되겠습니까?”

“한 오 년 정도…… 돈 걱정하지 않을 정도면 한, 10억쯤 있으면 될까요.”

“……알겠습니다.”

김 비서가 나가고 태형은 하늘을 바라봤다. 마음이 조금은 싱숭생숭했다.

톡톡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던 그는 아주 한참을 생각에 젖어 있었다.

마음에 진 응어리, 태형은 사실 이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왜 그런지도.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갑자기 핸드폰을 잡았다. 그러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의 통화 연결음이 들리다가 바로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전화 가능합니까?”

하린이었다.

[네, 네! 저 지금 엄청 한가해요!]

“뭐 하고 있었습니까.”

[네, 네……?]

태형의 물음에 하린의 당황한 목소리가 역력했다. 그는 그런 하린의 목소리를 들으며, 사나웠던 긴장감을 무너트리며 미약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사진 중 하나를 파헤쳐 사진을 손가락 끝으로 문질렀다. 코팅된 촉감이 느껴졌다.

[저는 방금 조 대표님 뵙고…… 집에 와서 조금 쉬고 있었어요. 아, 아저씨는요?]

“나야, 일하고 있었죠.”

[아, 아! 그렇죠. 아저씨 되게 엄청 큰 분이셨지. 제가 멍청한 질문을 했네요……헤헤.]

사진에 시선이 걸려 있다. 토끼 머리띠, 상기된 피부, 방끗 웃는 미소.

딱 이 나이 때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감기는 안 걸렸습니까?”

[감, 감기요?]

“날도 추운데, 얇게 입고 다니는 것 같아서.”

[아저씨가 걱정해 주시는 건 되게 따듯한 느낌이 나요.]

태형은 하린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눈꺼풀을 깜빡거리는 시선 끝에는 사진이 계속 있었다.

조 대표 옆에서 활짝 웃는 하린의 모습이 못내 불편하다면. 자신은 그다지 따뜻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그의 고결한 품격에 금이 가고 있었다.

“……어때요. 준비는 잘 돼 가고 있습니까?”

[어떤 준비요?]

“한국 뜰 준비.”

[아……. 네.]

태형에게 온 전화로 상기되어 있던 목소리가 금세 가라앉았다. 직접 보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도 알았다.

직접 봤다면 살랑거리던 꼬리가 축, 처졌겠지.

“내일 언제 시간 됩니까?”

[내일은 저녁…… 시간 될 거예요.]

“그럼 내일, 만나죠. 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하린을 잘라 낼 시기였다. 준비도 끝났고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태형이 만든 모든 상황이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우하린을.

[……아저씨.]

“뭡니까.”

[저, 하,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물어보세요.”

[저 외국 나가면, 지, 진화랑 결혼하실 거예요?]

하루라도 빨리 보내라고

“우하린.”

태형이 풀네임으로 부르는 음성은 상당히도 차갑고 난폭했다. 무서움을 자극하기 손쉬운 목소리를 하며 태형은 하린에게 비수를 꽂았다.

전화기로 들려오는 호흡이 커진다.

“네가 알 필요 없는 질문이야.”

지은이 : 퍼플독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7703

© 퍼플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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