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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위반-19화 (19/75)

#19화

“……에?”

너무 직설적인 질문에, 하린은 넋이 빠진 듯 입을 벌렸다. 그의 질문이 너무 반인륜적이었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그, 그게…….”

“아니면 좋아서 했던 겁니까? 그런 거라면…….”

하린이 변명하려 하자, 조 대표는 태연하게 하린을 놀렸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하린이 손을 휙휙 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좋아서 한 적 없고 그, 그게, …….”

그러나 거짓말을 못 하는 하린이기에 최대한 꾸며 보려 했지만 실패였다. 오히려 말을 덧붙일수록 점차 더욱 이상해졌기에 변명하려던 말을 이내 줄이고 인정했다.

“……네 맞아요.”

조 대표는 그런 하린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치욕감에 부들거리는 게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 웃으세요.”

“신기해서요.”

……신기? 하린은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 치욕적인 상황이 신기하다는 걸까.

하린은 미소를 짓는 조 대표의 얼굴을 보며 괴리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재벌로 태어나 태생을 갑으로 살아온 사람은 이런 것쯤 신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대표님은 제 불행이 신기하신가 봐요.”

“네. 신기합니다.”

말이 탁 막혔다. 자격지심이 하린의 목을 조르는 것만 같았다.

“생각보다 이 정도로 불행한 사람은 흔한 것 같아 보여도 찾기 힘들거든요. 난 불행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상한 놈으로 보이죠?”

내 불행이 신기하고, 좋다는 사람.

하린은 이 사람을 어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단순히 하린을 무시하면서 말하는 말은 아닌 것을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왜요?”

“뭐 그게 중요한가요. 그대는 그대가 제일 중요한 것을 챙겨야죠.”

하린도 지어 보였던 표정을 그 역시도 짓고 있었으니까.

“하린 양의 불행, 내가 도와주겠습니다.”

“저, 저는 이해가……이해가 되지 않아요. 왜 대표님이 저를 도와주시겠다고 하는지도, 행동이 왜 달라지신 건지도.”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하린 양이 있는 불행에 나도 있는 것 같으니까.”

상황은 무심했고. 기회는 농간의 연속이었다.

하린은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몰랐다. 이 자가 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지.

“계속 아버지께 휘둘리며 살고 싶습니까? 하고 싶지도 않은 행동 억지로 하면서.”

하린에게 조 대표는 우기익이 있는 선상의 사람이었다. 불편하고 불안함을 조장하게 하는 사람. 세상의 포식자로 언제나 제 뜻대로 할 사람.

그런 사람이 약자로만 살아온 자신에게 이런 말은 하는 건 가식 혹은 위선으로 보였다.

그러기에 혼란스러웠고,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하린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제가 도움을 받으면……저에게 뭘 요구하실 건데요…….”

도움을 받고 안 받고의 유무도 중요했으나 하린은 그가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가 더 궁금했다. 더불어 이렇게 행동하고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려고.

세상엔 공짜는 없다.

이것이 지금껏 살아온 하린의 진리였다.

“3번 만나면서 알아나가 보죠. 그리고 우리의 모든 일을 우기익에게 말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말해 줘요.”

“그리고요?”

“저는 그거면 됩니다.”

하린이 이해되지 않는 얼굴을 하자, 조 대표는 웃음뿐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어질했다. 그토록 힘들 땐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는데, 왜 갑자기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생기는지.

아이러니했다.

“궁금한 건 차차 설명해 주겠습니다.”

“네, 네?”

조 대표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덕분에 하린은 위를 쳐다봤다. 위에서 비치는 조명 덕분에 눈이 부셨다.

“앉아만 있으면 답이 나옵니까? 뭐라도 해 보죠.”

* * *

낮의 회사.

업무 중인 태형의 옆에 있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발신자표시는 김 비서. 그는 간략해 대답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우하린 양이 조 대표와 만나고 있답니다.]

당연하게도 김 비서를 통해 우하린과 우기익에 미행이 붙어 있었다. 우기익은 붙여 놓은 지는 되었지만, 우하린은 최근 눈에 걸리기 시작한 이후로부터였다.

나랑 만나자마자 조 대표를 만나러 갔다. 썩 달가운 정보는 아니었으나 특이사항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데이트 중으로 파악이 되어서…….]

우하린이 특이 사항이라고 판단이 된 이상 김 비서에게도 우하린은 특이 사항이었다.

태형은 잠시 생각했다.

도망가게끔 해 준다고 했는데 왜 갑자기 조 대표와? 설마 나를 믿지 못했던 건가.

“사진 확보된 거 있습니까?”

[잠시만요, 받은 내용 전달하겠습니다.]

우기익이 시킨다고 하는 애였다면, 그렇게 호텔에서 도망 나오지도 않았을 거다.

그것이 정말 데이트라고 한다면, 그것은 문제였다.

전화를 받던 태형은 김 비서가 전달해 준 사진을 받았다. 잔잔한 강물에 돌덩어리를 던진 듯 미미하게 파동이 이었다.

백화점에서 하린과 조 대표가 있는 사진이었다. 둘이 웃으며 옷을 사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데이트 장면 같아 보였다.

정말이지, 우하린은 태형이 놓은 자리를 벗어나는 인물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하는 거지?

그보다 먼저.

“조 대표, 라는 인물도 더 상세하게 좀 알아보세요. 아무래도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껏 관리 인물로는 이 여사를 두고 있었다. 조 대표는 이 여사의 힘에 진, 그저 패배자라고 판단했으니까.

설마 조 대표가 우하린을 자극하는 건가.

조금의 걸림돌도 용납되지 않는다. 태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 복수를 위해 인생을 걸었으니까.

“둘이 지금 어딥니까?”

* * *

“마셔요.”

백화점을 갔다가 다시 강남의 모 카페로 왔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조 대표를 따라다니니 묘하게 재미있긴 했다.

직접 커피를 들고 온 조 대표는 하린 앞에 음료를 두며 하린이 마실 음료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커피, 하린은 딸기라테였다.

생과일이 들어간 병 음료를 따서 한입 마시자 달콤하고 상큼함이 입 안에 맴돌았다.

오, 맛있다.

“맛있습니까?”

“……네. 맛있어요.”

맛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들어온 질문에 하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생각을 간파당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대표님도 이런 곳 오세요?”

“금장식에 대리석 바닥에서만 살 것같이 보이겠지만, 난 사실 이런 걸 더 선호해요.”

“아하.”

하린은 빨대에 입술을 대며 말을 이었다.

“저는 대표님들은 항상 호텔 같은 곳만 다니시는 줄 알았어요……. 뭔가 친근하신 것 같기도 하고.”

하린이 음료를 마시는 모습을 보며 조 대표는 미소를 지었다. 꼭 그 모습이 아기가 젖이라도 빠는 모습이었다.

“아참, 옷 감사해요……. 잘 입겠습니다.”

조 대표는 하린을 조금 더 알기를 원했고,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하린은 혼란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자리를 이동하게 한 거였고.

그때 당시 생각난 곳이 백화점이었다.

“옷, 잘 어울립니다.”

노란색의 원피스.

가격 걱정하지 말고 사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하니 고작 고르게 십만 원짜리 원피스 하나였다.

지금껏 입고 나온 옷 스타일이 하린의 옷 스타일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으나, 저 정도로 다르다니.

분홍 기 가득한 피부색 위로 노란색 원피스. 꼭 유치원생을 보고 있는 느낌에 조 대표는 간신히 웃음을 감추려 했다.

“그런데 대표님……. 저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아요.”

“뭔가요?”

하린이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뜸을 들이는 동안, 조 대표는 꼬았던 한쪽 다리를 풀어 다른 쪽으로 꼬았다.

“왜 저한테 잘해 주시는지요…….”

“음, 우 대표는 우리가 결혼하길 바라죠. 그리고 우리 쪽 집안도 하린 양과 제가 결혼하길 바라고.”

“네에.”

“나랑 결혼 않으면 우 대표가 하린 양을 그냥 두겠습니까? 또한 하린 양 말고 다른 여자와 또 맞선을 보게 될 테고. 여기까지는 이해됐나요?”

“네.”

“내가 원하는 거는 딱 한 가지입니다.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우기익에게 하기 전에 나에게 말하고 할 것.”

저번에도 했던 말이었다.

하린은 의아했다. 자신은 우기익에게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보고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보다도 조 대표는 자신이 사주받을 거라는 것을 단언하고 있었다.

“나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고, 하린 양은 아버지께 벗어나고. 어때요, 꽤 괜찮은 거래 아닌가요?”

“왜 대표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제가 아버지께 말하는지. 저는 그런 이야기를 아직 들은 적도 없고-.”

“흠, 아직 들은 적이 없다.”

그는 꽤 친절한 유치원 교사처럼 말했다. 그러고는 하린의 손에 있는 반지를 가리켰다.

“손에 걸린 그 반지 말입니다…….”

그리고 말을 잇는데 그의 말은 완벽히 나올 수 없었다.

그의 뒤에서 바로 태형이 나왔으니까.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으로 둘의 대화는 잘려 나가버렸다. 조 대표는 의문 모르게 일어나 그를 맞이했고.

하린은 넋이 나가 있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조 대표님.”

지은이 : 퍼플독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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