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좋은데 많이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원장실을 나오던 태형은 자신을 뒤따라 들어오는 보육원 원장을 바라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평소에도 말이 많지 않고, 무거운 분위기기의 그였지만 오늘은 더욱 침울한 분위기까지 감돌았다.
태형을 보내던 원장은 다시 돌아가려고 등을 보이다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이내 몸을 돌렸다.
“그런데 아까 뭐를 찾으신다고 하셨죠?”
태형에게 한국은 잊고 싶은 과거이기도 하고 곪고 곪은 아픔이었다.
그런 태형이 한국에 온 이유는 진실 그리고 복수 때문이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과거를 회피하면서도 진실을 바랐다. 그리고 직면해야 할 과거를 보며 고통스러워했다.
이곳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잠시 있던 곳.
갈 곳 없는 태형과 동생은 여기에 머물다 이내 미국으로 입양 갔다. 각기 다른 곳으로 입양된 둘은 어린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입양과 파양을 반복했다.
좋은 집안과 인품의 집안에 입양된 태형과 달리 동생은 그러지 못했다. 계속된 파양과 학대 가정.
태형은 상황에 굴복하고, 동생의 애원에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둘은 전혀 다른 미래를 맞이했다.
“저와 동생이 들어왔던 시기의 장부가 궁금합니다. 혹시 남아 있을까요?”
그래서 달갑지 않지만, 기부금까지 내면서 이 장소에 왔다. 이곳의 모든 것은 과거를 상기하게 했기에 가슴이 무거웠다.
그렇지만 얻어야 할 것이 있었기에 버텨야 했다.
“그때쯤이라면…… 서류가 안 남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찾아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찾아보고 연락드리죠.”
태형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저 멀리서 아이들이 뛰어노는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어린 시절의 동생의 목소리가 꼭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저 멀리서 뛰어올 것 같은…….
“감사합니다. 혹시 내부를 한번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시지요. 말씀 주신 서류는 한번 찾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원장을 보내고 태형은 작은 보육원 내부를 눈에 담았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예전에 보았던 것보다 더 작고, 낡았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거겠지.
태형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오빠! 여기 와 봐. 신기한 거 있어!”
그때 내가 널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네가 무너지지 않도록 도왔더라면.
너는 죽지 않았을까.
성인이 되기도 전에 저버린 그 아이에 대해 남은 건 죄책감이었다.
그 감정은 돈이 생기고, 힘이 생겨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큰 회의감이 들게 했다.
아무것도 없던 그때, 동생을 위해 행동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확률이 높았지만.
그런데도 ‘행동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동은 회안으로 남았고, 남은 것은 그저 감정 찌꺼기뿐이었다.
인정받고, 힘을 얻는다.
복수를 꿈꾼 그는 힘을 얻기 위해 양부모에게 인정받고자 했다.
그에게 목표는 이 두 가지뿐이었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모든 짓도 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니까.
그래서 양부모의 뜻을 따라, 회사에 양아들이라는 사실도 숨기고 입사했으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동생을 죽게 한 동생의 양부모에게 보복을 할 때쯤 태형은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죽음.
그리고 이상한 점.
연구원으로 일하시던 부모님은 트럭을 몰다, 차 사고를 내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트럭을 몰지 않았다.
더군다나, 어머니를 옆에 두고 트럭을 몰았다는 점도 이상했다. 트럭 사고가 있던 이후, 연구소장 부부도 갑작스럽게 실종되었다.
그때 우기익은 태형의 부모님이 근무하던 연구소의 투자자였다.
그리고 당시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던 기술은 투자자였던 우기익의 법인이 넘겨받았다.
모든 일들이 누군가가 기획한 것처럼 착착 이어졌다.
이후는 더 가관이었다.
우기익이 지금껏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특허, 그러니까 태형이 탐내던 기술력이 반도체였는데.
그 반도체 기술의 초안이 바로 이거였다.
모두가 죽고 사라진 이후에 남은 기술.
이 모든 사건 이후, 이득을 본 건 우기익 혼자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심증일 뿐 10년도 넘은 일의 증거를 찾기는 힘들었다.
“이제 다 왔어.”
그러나 그래서 태형이 후계자 자리를 위한 성과를 핑계로 이 한국에 온 것이었다.
직접 찾기 위해.
태형은 저물어 가는 하늘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과거에 동생과 뛰어다녔던 장면을 상기하며, 동생이 해맑게 미소 짓던 그때를 상기하면서 말이다.
웃는 미소. 해맑은 표정.
“제발 도와주세요.”
문뜩 튀어 나오는 며칠 전의 기억에 태형은 걸음을 멈추었다.
갑자기 그 여자가 생각이 나는 거지.
왜 계속 그 여자와 동생을 동일시하게 되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 여자는 자신의 동생이 아니다.
태형은 그렇게 생각하며 동요하던 마음을 정리하려 했다.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항상 죄책감이 있었는데, 평소에는 깊은 심연 안에서 숨어 있다가 이상하게도 그 여자만 보면 움찔거렸다.
“농간이지.”
묘하게 동생과 닮은 여자.
신의 장난도 아니고 우기익의 입양 딸에게 그런 생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동생을 모욕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그 여자의 표정.
동생의 마지막과 같은 표정을 지었던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더불어 그렇게 당장 꺼질 것 같은 표정을 지었으면서도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게 했다.
여러 감정이 한 번에 동반되어 태형의 심연을 요동치게 했다.
한참을 밖에 산책하던 태형은 이내 발걸음을 돌려 차로 향했다. 아무래도 이 공간이어서 그 여자의 생각이 더 나는 것 같았다.
여기를 떠나면…….
“어?”
* * *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요.”
“그, 그게…… 네?”
“가라고요. 보내 줄 테니.”
조 대표는 하린을 그냥 보내 주었다.
강압적으로 호텔 룸까지 밀어 넣은 것치고 보내 주었기에 조금은 이상했으나, 그런 생각까지 갈 겨를은 없었다.
하린은 혹여 그가 다시 붙잡기라도 할까 봐 그 길로 뒤돌아 도망쳤다. 뒷일 따위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허억. 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무슨 정신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발걸음이 닫는 대로 있는 힘껏 최대한 달렸다. 구두 신은 발이 아팠지만 참을 만했다.
얼마큼 뛰었을까, 발이 닿는 대로 가고 싶은 대로 그저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밖은 이리도 밝은데 왜 자신의 삶은 이토록 시궁창인지.
마음을 자각한 후 처참히 무너진 감정을 추수를 세도 없었다. 이런 말을 내뱉는데 심장이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처음엔 세상을 원망했고 그다음엔 우기익을 원망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자신이 제일 원망스러웠다.
난 왜 여길 왔지…….
정신을 차렸을 때쯤 하린은 처음으로 주위를 살폈다. 의식 없이 걸어온 곳의 최종 목적지는 낯익은 공간이었다.
보육원.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한 무렵이어서 오랜만에 보는 장면이었다. 익숙한 곳.
그래 우기익의 집으로 오기 전에 있었던 곳이었다. 한참은 오지 못했는데.
그토록 원해서 나와 놓고, 가족의 정이 그리우면 찾는 곳이 보육원이라니.
하린은 한참을 밖에서 바라보다, 자신의 몸을 살폈다.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지갑도 핸드폰도 룸에 두고 왔다.
몰골도 눈물에 화장이 다 번져서 말이 아니었다.
“어쩌자고 여길 온 거야…….”
내뱉는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무서웠고, 추웠으며 괴로웠다.
이대로 다시 사라져야만 하는 건가.
내가, 내가 살아 있어서 이런 비참한 일을 겪는 건가.
눈물이 눈앞을 가리고 날카로운 바람이 살갗을 에는 것 같았다.
비참한 감정과 반대로 보육원 안의 분위기는 밝디밝았다. 저녁을 먹고 난 후인지, 애들의 환호성이 밖으로 조금 새어 나왔다.
시궁창 같은 하린의 마음과 반대되어 더욱 대조되었다.
하린은 망연자실하게 하늘을 바라봤다.
아까보다 더 짙은 붉은 빛을 내는 하늘을 보자 현실을 점차 자각되었다. 두려움이 증폭되고, 불안한 감정이 널뛰었다.
“어쩌지…….”
돈 한 푼 없다. 맞선도 망했다.
집에 가면 우기익이 벼르고 있을 것이다.
하린은 아스팔트 바닥에 쭈그려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더 늙고 노망난 할아버지랑 결혼시킬지도 몰라.”
이제는 누군가 자신을 도와줄 거라는 기대도 품지 않았다.
그냥 내가 백치라면…… 더 멍청했더라면.
“그래. 조 의원, 김 의원이랑은 잘 전달해 줬고? 그래 돈이라면 바닥도 핥는 인간들이니까. 그렇게 행동했겠지. 잘했…….”
머리 위에서 울리는 중저음의 목소리.
목소리의 소유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목소리만 듣고도 누군지 알았기에 내용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올린 하린과 목소리의 남성의 두 눈이 마주쳤다.
그는 받고 있던 핸드폰을 천천히 내리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어, 잠시만.”
저녁 바람이 불어오며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리고 그 바람을 통해 들어오는 낯익은 체취에 하린은 묘하게 안정감을 느꼈다.
남성 또한 하린의 얼굴을 인지했는지 왈칵 인상이 구겨졌다.
“너, 왜 여기에…….”
그래도 괜찮았다.
눈물 자국에 지워진 화장, 노출 심한 옷. 높은 구두.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았기에.
“그 꼴은 또 뭐고.”
그의 구두가 코앞까지 왔을 때쯤 하린은 오늘 처음으로 빛을 보았다.
그리고 하린의 놀라운 표정이 점차 환한 미소로 바뀔 때쯤, 완벽하게 목소리의 소유자를 똑똑히 바라봤다.
또 만났어. 또.
“우리 세 번째 맞, 맞죠?”
세 번째 우연. 그리고 하린의 마지막 살길.
강태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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