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화
“우기익이에요.”
왜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순순히 말하는 이 여성의 표정에는 굳건함이 돋보였다.
왜 살렸냐고, 외치던 저번과는 달리 지금의 표정을 살고자 하는 의지와 표정이 보였다.
“질문을 바꿔서, 당신 이름은 뭡니까.”
“……우하린이요.”
우하린.
태형은 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읊었다. 생각났다. 김 비서가 정리해 둔 파일에 들어가 있던 이름이다.
방금 우기익과 미팅에서 잠시 보았던 여자가 우기익의 친딸이자 둘째 딸.
그러면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가 첫째 딸일 것이다.
‘첫째가 입양아라고 했던가.’
태형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는 살짝 미소를 보였다. 조소에 가까웠다.
얼굴에 남은 애매한 멍 자국. 화장으로 가리려고 하였으나, 옅게 남은 멍 자국이 그녀의 가정 환경을 말해 주고 있었다.
우기익의 성정은 폭력적이다. 거기에 입양딸이라고 하였으니 그녀의 가정환경을 보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이것은 기회일까 아니면, 지독한 악연일까.
태형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에 운과 같이 핸들링이 되지 않는 것이 생기는 건 좋지 못했다.
특히 이번처럼. 하린인줄 모르고 구했기에 지금 돌아가던 상황은 그가 유도하여 만들어진 상황을 아니었다.
태형은 순간 짜증스러운 감정이 먼저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
그날 왜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단순히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그가 자살하려던 하린을 구한 건 지극히도 충동에 가까운 행동이었으니까.
강태형은 평소 연민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날 하린을 구한 건…….
“왜 살고자 합니까.”
낮은 음성이 허공에 퍼져 나갈 때쯤, 그의 눈썹 또한 미묘하게 움직였다. 물어보는 이 질문마저도 그 아이가 생각나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 아이.
유일하게 남았던 태형의 혈육.
그래, 그 아이가 생각나 하린을 구했다.
하필이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태형은 눈앞에 보이는 이 여자가 우기익이 키우는 딸임을 알았더라면.
그리고 구해 주는 행위가 자신의 동생을 생각하고 구해 준 것을 인지했더라면 태형은 하린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감히 내 동생이.
내 부모가 어찌 죽었는데.
어찌 그 아이를 생각하며 우기익이 키운 딸을 구할 수 있냐 말이다.
“아니.”
세상에 버려진 두 아이는 돌고 돌아 해외까지 보내져야 했고 그 사이에서 여동생은 입양된 가정에서 학대를 받았다.
“정정하죠.”
폭력적인 환경에 시들어 버린 그 아이는 그 곳을 벗어나고자 결국 삶의 의지를 꺾어 버렸다.
“왜 죽으려 했습니까?”
왜 자신이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연민으로 그녀를 구한 건 아니었다.
“……저는 제 삶을 살고 싶었어요. 단 한 번이라도 제가 선택한 삶을요.”
입양된 고아인 하린에게는 죄가 없다. 그것을 아는 태형이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갑자기 돌아가신 부모님을 증오했으며.
동생을 버린 세상을 증오했고.
무지하고 힘이 없던 자신을 증오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연관된 우기익을 증오했기에 그와 연결된 그 모든 것은 증오의 대상이었다.
“오빠 나는 내 삶을 살고 싶어.”
태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강태형 그는 지금 동요하고 있었다.
묘하게 찌푸려지는 얼굴은 아닌 척 티내지 않았으나 심연 어딘가 뒤틀린 감정에는 미묘한 진동이 이르렀다.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이 모든 것이 동생을 상기하게 한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다른 행동을 반복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날 구해 준 행동을 포함하여 오늘 이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어주는 것까지 말이다.
그는 다시금 날카로운 눈빛을 가지고 하린을 바라봤다.
“저는.”
묘하게 신경을 긁는 저 붉은 눈동자. 자신이 우는지도 인식하지 못한 여자.
“살고 싶었어요.”
이 넓은 세상 속 버틸 지지대 하나 없는 것처럼 애정을 구걸하는 주제에.
살고 싶다며 바닷물에 뛰어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대단히도 모순적이다.
태형이 골똘히 생각하며 아무 말 하지 않자, 하린은 태형의 눈치를 살폈다.
“정, 정말이에요.”
뺨이 미세하게 떨리고, 두려움인지 몸을 떤다. 그 와중에도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자신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피력하려는 것처럼 살고자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이 느껴졌다.
“이렇게 들으면 상당히 이상한 말로 알아들으실 수 있겠지만. 저는 지금 진심이에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자살이었다.”
성대를 긁으며 나오는 목소리가 평소보다도 진했다. 마치 오랜 시간 묵혀 둔 것이 나오는 쾌쾌하면서도 진득한 무언가였다.
자살, 이 무거운 단어에 담긴 의미들. 태형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생각해왔었다.
단순 도망가고 회피한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기 싫으니 내리는 결론이다.
‘그러나 그 안에도 나름에 뜻이 있었다…….’
태형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한참을 응시하다 이내 고개를 틀어 버렸다.
하린은 그것이 자신을 회피한다고 생각하고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태형의 앞에 섰다.
자신보다도 머리 하나는 차이 나는 그에게 가까이 가니 그의 말투처럼 시린 독한 스킨향이 풍겨왔다.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제 의지로 살아 본 적이 없어요. 아마도 이런 심정 이해 못 하실 거예요. 남에게 휘둘리며 사는 삶을요.”
얼마나 힘주어 말하는지 주먹을 꼭 쥔 하린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그것을 보는 태형에게도 그녀가 얼마나 긴장하며 말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하린의 심장이 쿵쿵거리는 것이 공기를 통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주 작은 균열의 시작으로 굳이 꺼내고 싶지 않던 과거의 기억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의 일, 생각도 하기 싫어서 저 멀리 어딘가에 던져두었던 기억들.
“내 맘 오빠는 평생 이해 못할 거야.”
“제 인생은 이미 수명을 다했었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런 선택한 거였고요. 처음으로 제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요. 이런 거 다른 사람은 이해 못 할 거예요. 최악의 선택이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을 겪어 보신 적 없으실 거예요.”
그 아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 하린의 모습을 보며 그때의 장면과 하린이 겹쳐 보였다.
다시는 상기하고 싶지 않았던 지옥이었다.
더불어 마지막으로 살려 달라고 부탁하는 모습까지.
“저도 제가 염치없는 거 알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그날의 그 아이도 오늘과 비슷한 말을 했었다.
“왜…… 수명이 다했다고 생각하죠.”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동요하고 있었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묘하게 피하는 시선을 보며 하린은 희망을 엿보았다.
“이건 제 삶이 아니에요.”
하린은 태형이 무슨 마음으로 그녀를 구했는지 몰랐다. 그러나 최소한 한 사람의 인생을 살렸다면.
관여했다면.
“아버지가 만들어 준 껍데기 속에서 저는 죽은 것과 다름이 없어요. 그저 숨만 달라붙은 체 그 사람이 원하는 인형으로만 살아야만 해요.”
최소한 동요라도 해 주길 바랐다.
그런 마음으로 한두 마디 내뱉던 말들이, 시작하니 멈출 수 없었다. 이런 말을 내뱉는 것도 두려웠기에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항상 가슴속에만 묵혀 두던 말들이 덩어리지어 쏟아져 내렸다.
그래, 하린이 절벽 끝자락까지 밀려가면서도 내뱉지 못한 속앓이였다.
살고 싶어, 죽고 싶어.
아니,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아침 이슬의 산뜻한 공기가 질척하게 내리붙고. 공기도 소음도 호흡 하나도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태형은 말없이 하린을 응시했고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하린에게는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었기에 그의 시선을 온전히 받으며 그의 눈을 회피하지 않았다.
하린도 태형도 그 누구도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을 때 아주 잠시지만 태형의 눈동자가 먼저 떨렸다.
“……내가 우 대표한테 지금 들은 말을 하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그렇게 속마음을 다 내뱉습니까.”
무표정한 얼굴과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목소리.
그의 모습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스치기만 해도 아플 것 같이 날카로웠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가 겁을 준다기보단 걱정의 가까운 말처럼 들렸다.
잘 아는 사람도 아닌데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말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의 눈빛이 조금은 다정하게 보였기에, 우습지만 작은 희망을 걸어 보고 싶었다.
……믿어 봐도 되지 않을까.
애정에 굶주린 아이는 작은 온기에도 희망을 보았다. 오랜 기간 실망을 반복하여 가졌기에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이었다.
그가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왜일까.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따뜻하신 분 같아서요.
지은이 : 퍼플독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7703
© 퍼플독
※ 본 전자책은 <툰플러스>가 저작권자와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무단복제와 무단전재를 금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