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21살 생일.
우하린은 죽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하린은 그것을 바로 실천했다.
굼뜨거나 느리게 행동하면 양아버지인 우기익에게 얻어맞았기에, 어릴 때부터 강제적으로 근면 성실하게 움직인 습관이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그래, 우기익이 영 쓸모없는 인간은 아니었구나.
“이상하게 잘 풀리네.”
하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평소 모질게 굴었던 하늘도 이런 그녀의 삶을 불쌍히 여기신 걸까.
이상하게 그날은 모든 것이 잘 풀리는 날이었다.
이를테면, 양아버지의 눈을 피해 바닷가로 향하는 기차표를 손쉽게 구했다든가.
혹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당장 죽어도 괜찮을 것 같은 아름다운 바다를 발견했다든가.
매우 충동적으로 향한 것 치고는 퍽 괜찮은 과정 그리고 결말이었다.
자살 기도부터.
강태형, 그를 처음 만나는 것까지.
* * *
처음 보는 바닷가에서 죽겠다는 결심은 매우 충동적이었지만.
그 마음만큼은 충동적이지 않았다.
몇 주 전 양아버지에게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매일같이 생각하던 것이니까.
하린은 매일같이 고민했다.
무엇을 해야 이 지옥을 벗어날까.
우기익, 그 인간 손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이주 후에 진성 화학, 조 대표랑 상견례가 있다.”
“누구……상견례요?”
“당연히 네년이지. 누구겠어.”
“아, 아버지…… 조 대표라면 저랑 15살도 넘게 차이가 나요. 그리고 저 아직 대학생이에요!”
짜악-!
뺨을 내리치는 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아주 오랜만에 맞는 우악스러운 손길이었기에, 뇌가 흔들리듯 시야가 번져 보였다.
물론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최근에 손찌검이 덜했다는 것일 뿐, 과거에는 수없이 얻어맞았다.
맞는 이유는 붙이기 나름이었다.
“그럼 최소한…… 대학교라도 졸업하게 해 주세요. 그때까지만이라도…….”
“지금까지 키워 준 값어치는 해야지. 내가 너 대학교 보내 주려고, 여태 널 키워 준 줄 알아? 고아 년 먹여 주고 키워 줬더니.”
우기익이 이렇게 나올 때면 몸을 바짝 숙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들면 매만 벌 뿐이고, 상황은 악화하곤 했다.
그렇기에 하고 싶은 말을 목구멍 뒤로 숨기며 시선을 억지로 내렸다.
다만 거친 호흡만큼은 진정되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감정은 널뛰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 공천을 받을 예정이고. 다음에는 대통령까지 내다보고 있지. 남자가 정치를 하려면, 돈이 필요한 법이고.”
그는 하린의 순종적인 태도에 퍽 맘에 든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하린의 목소리는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아…….
그리고 그가 너그러운 척 하는 설명을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절망을 엿보았다.
언젠간, 성인이 되고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우기익의 손에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안일했다.
“진성 화학, 조 대표에게 정치 자금 일부를 받았다.”
도망가는 그 날을 위해, 폭력의 굴레 속에서도 몸을 바짝 엎드리며 살기를 바랐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고, 자존심 한 줌 남기지 않고 털어 내며 살아남았다.
그랬는데…….
이게 그 결과이자 미래라니. 눈앞이 절멸하듯 검게 물들었다.
그래, 나는 그에게 노예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우기익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최근 정치에도 뛰어들었다.
어마어마한 돈을 넣어 공천을 꿰찼고, 서울시장을 노리고 있는 거였다.
이 말은, 결국 이 인간의 손에 벗어날 수 있는 공간 따위는 대한민국에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니 넌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능력을 거세당한 어린 여자애 따위를 사용하는 건 그로서는 아주 손쉬웠다.
제 입맛대로 주워다 사용하고, 쓰고 활용했다. 죽을 때까지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였다.
그는 아주 지독한 자였다.
자신의 친딸도 제 안위를 위해서라면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무서운 작자인데.
피가 섞이지 않은 자식쯤, 뭔들 못할까.
언젠간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살고자 발버둥 치던 의지.
그 모든 것을 잃었다.
“내가 죽으면 당신은 과연 어떤 표정을 할까.”
진성 화학 조 대표에게 이미 돈을 받았다고 했다. 하린이 죽으면 못마땅하지만, 돈을 다 뱉어 내야 할 것이다.
그가 얼굴을 붉히며 분노할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이라도 당신에게 엿 먹이고 죽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해.”
조 대표라는 인간은 새파랗게 어린 여자들만 골라서 만난다는 둥, 도망간 아내가 있다는 소문이 있다는 등의 악질적인 소문이 무성한 남자였다.
그딴 아저씨에게 팔려 가느니, 이 결정이 천만 배 낫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자위했다.
그 앞에서는 맞을 때도 울지 않던 눈이 아무도 없는 곳에 오니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마지막으로 보는 모습을 눈에 끊임없이 담았다.
“그래 잘 생각했어.”
새벽의 바닷가.
저 멀리서 동이 터오고 있었고, 인적 드문 곳으로 찾아왔기에 다행히 사람은 없었다.
차가운 공기가 불어와 머리를 흩날리게 했다.
그래, 나는 자유를 찾는 거야.
죽어서야 가능한 자유.
고아원에서 우기익의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좋은 미래를 겪었을까.
회안이 담긴 생각을 했으나, 그다지 도움이 되는 생각은 아니었다.
신발을 곱게 벗어 두고, 맨발로 모래를 천천히 밟았다. 홀린 듯이 바다로 들어가니 바닷물이 햇빛에 반사해 아름답게 반짝였다.
“그래도 다행이다.”
별로 살지 못한 삶 마지막의 기억은 아름다운 바다라는 사실이.
그녀는 자신의 짧은 삶을 애도하며, 마지막으로 쥐어진 시간을 애도했다.
물길 사이로 들어가자, 아직은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물은 더욱 차가웠다.
이거 익사로 죽는 게 아니라 저체온증으로 죽는 거였나?
허리쯤까지 들어가자 더욱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뼈와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하린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몸에 힘을 풀었다.
철썩-
바닷물에 몸이 그대로 뉘어지는 소리.
얼굴까지 물에 잠기고 몸은 저절로 깊은 곳으로 향해 들어갔다.
그래, 평온 그리고 안식.
나는 비로소 이제야 평화를 찾는 거야.
폭력 없는 삶. 두려움에 떨지 않는 삶. 하린이 평생을 원하던 삶이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할 때쯤이었다.
코로 물이 들어오고 괴로움이 동반되기 시작했다. 평온한 안식이 고통으로 뒤집히는 순간, 하린은 죽음을 직감했다.
괜찮았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처럼 찾아오던 고통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으니까.
그래, 이게 내 마지막이야.
괴로움에 부릅뜨던 눈이 서서히 감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 먼 곳의 의식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이보세요. 이보세요!]
하린은 걸음을 멈추었다.
검은 바탕에 종착지도 보이지 않는 곳을 하염없이 걷던 하린은 주위를 살폈다.
여긴 뭐지……?
[정신 차려 보세요!]
알 수 없는 곳. 하린은 눈동자를 살피고 자신의 몸을 살폈다.
바뀐 것은 없었다.
그러나 다시금 불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던 그 순간…….
눈이 번쩍이며 빛이 들어왔고.
“으읍! 켁!”
지옥에서 눈을 떴다.
지옥을 닮은 현실. 하린은 그것을 느낄 새도 없이 아까 먹었던 바닷물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코에서도 입에서도 막혀 있던 물이 나오자 코와 목이 찡하게 매운 감각이 생생하게 올라왔다.
산소가 통하지 않았던 뇌는, 고통을 호소했다. 어지러웠다.
“당신 미쳤어?”
정신을 다 차리기도 전에 단박에 어깨가 붙잡혀 몸이 강제로 돌아갔다.
호흡을 고를 새도 없었기에 잔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폐부로 들어오는 산소에 나는 지금이 현실임을 자각했다.
“켁…….”
사고는 돌아왔지만, 몸은 다 돌아오지 않았기에 정신없는 빈틈에는 공간이 벌어졌다.
그 덕에 눈앞에는 하린과 같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하고 있는 남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정신없는 하린을 잡아 흔들며 말을 걸었다.
“정신 차려.”
남성에게 잡힌 몸이 강제적으로 움직여졌다.
나 왜 살아 있어.
죽지 않은 거야?
몸을 흔들어도, 다 돌아오지 않는 정신에 남성은 하린의 뺨에 손을 올렸다.
짝-
아, 턱이 돌아간 후에야 느껴지는 통증. 아픔은 미미했으나 멍하게 울리던 뇌에 자극을 주기엔 충분했다.
덕분인지 아까보다 정신이 돌아왔다. 천천히 고개를 올려 눈앞에 보이는 남성을 인지할 수 있었다.
검은 머리에 아주 유려한 외모의 선을 가지고 있는 잘생긴 남자.
“이 새벽에, 사람도 없는 곳에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다 죽어 가던 사람을 살린 사람치고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와 반대로 제 손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은 매우 뜨거웠다.
젖은 옷 때문에 추운지 그도 손끝을 묘하게 떨고 있었다. 문득 그에게 얻어맞은 뺨이 아파지는 것만 같았다.
물론 매번 더 강하게 얻어맞았기에 그다지 아프지 않았는데도, 하린은 눈이 붉게 물들도록 눈물을 흘렸다.
사실 뺨이 아픈 게 아니었다.
살았다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이, 좌절감이 밀려와서였다.
“으흑.”
그냥 더 큰 아픔이 찾아올 것을 알았기에, 더 이상 아프기 싫어서 죽기를 바란 건데.
살아났다는 사실이 원통했다.
다시금 지옥 같은 현실을 버텨 나갈 생각을 하니 죽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두려움과 공포가 느껴졌다.
역시나 신은 나를 버렸다.
신은 단 한 번도 하린의 편을 들어준 적이 없었기에.
“나를…….”
아무 말도 못하고 흐느끼던 하린이 중얼거렸다.
물이 들어찼었던 성대여서 그런지, 목소리를 잔뜩 긁히고 갈라져 나왔다.
“왜 살렸어요.”
이 지옥에서, 누가 살고 싶다고.
천천히 들어 올리는 시야에 그가 가득 들어찼다.
이름도 모르는 이 남성은 인상을 구기며, 회한이 담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나는 누군가의 연민을 받고자 한 적이 없었다.
그냥…… 그냥, 죽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것마저도 이 험난한 세상은 허락해 주지 않았다. 남성은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
정신을 차리려는 듯이.
“하.”
그리고 이내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냉랭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는 옆에 떨어져 있던 소지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무슨 행동인지 몰라, 하린은 그저 남성을 바라만 봤다.
“이거 병원비 하세요. 그리고 다음번에도 죽고 싶다면…….”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하린 앞에 오만 원권 몇 장을 쥐여 주었다.
거지에게 적선하는 이런 돈 따위 받고 싶지 않았으나 그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고 또한 단호했다.
“이런 비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봐.”
존댓말과 반말을 묘하게 섞어서 말하는 남성의 머리카락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졌다.
성직자처럼 고결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천사의 얼굴에 악마와 같은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까와 달리 감정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뭔가…… 복잡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남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일어났다.
멍하니 그가 준 돈을 쥐고 있던 하린은 높아진 시선에 따라 고개를 들어 올려 그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그의 뒤로 햇살이 비추니 더욱이, 천사의 모습을 한 악마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이유는 너무 많아서.
감히 지칭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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