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50화
“잠깐 시간 좀 내줘.”
물러선 여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죠. 말해요.”
서훈은 버티고 선 채 답했다.
“그러지 말고, 소영 씨, 같이 가요. 우리 점심도 안 했는데 같이 먹을래요 ”
서 팀장이 다정하게 말했지만 소영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수그렸던 얼굴을 들자, 눈자위가 붉어져 있었지만 환하게 웃었다.
“저도 껴도 되나요 ”
“그럼요.”
호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이후에도 서훈은 소영을 향해 한마디도 입을 벌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떨어진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을 난처하게 흘깃거리는 동안 어색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두어 번 정도 젓가락을 들었다가 놓았을 때 소영이 웃으며 이야기했다.
“왜 식욕이 없어 보이세요.”
“중국 음식 좀 질려 그래요.”
그나마 제일 성격이 무심한 어소시에이트 정현 씨가 답을 했다.
“저는 맛있는데요.”
소영은 커다란 칠리소스 새우를 집어 먹으며 짐짓 밝은 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너무 맛있었는데 말이죠, 이젠 튀긴 건 다 느물거리고 그 소스가 다 그 소스라 지겹네요.”
“어쭈, 이거 나한테 시위하는 걸로 들린다 ”
서 팀장이 정현을 장난스럽게 쏘아보자 소영이 부드럽게 말했다.
“두 달이 다 되어가니 그럴 만도 하겠어요. 그래도 저는 맛있는데요.”
소영이 굴소스를 버무린 고기와 야채튀김을 한 스푼 가득 덜어놓았다. 서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제 앞에 놓여 있던 소룡포 찜기를 소영 앞으로 턱 소리가 나도록 놓았다.
“기름진 거 못 먹잖아요.”
소영의 복잡한 시선을 피하며 서훈은 일어섰다.
“저 먼저 올라갈게요.”
서 팀장이 말리는 소리도 상관없이 서훈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소영을 마주 대할 용기조차 없는 나약한 자신이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서훈은, 하지만 식당을 채 빠져나오기 전에 팔이 잡혔다.
“서훈아.”
멈춰 서자 소영은 작게 말했다.
“불쾌한 거 알아. 그런데…….”
눈가가 또 발개지며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옷자락을 잡고 있는 손도 바들바들 떨린다. 테이블 대부분이 차 있는 홀 중간에 서서 방금 떠나온 테이블의 사람들뿐 아니라 서빙하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두 사람에게 머물렀다.
“이거 놓고 나가죠.”
소영은 손을 떨어뜨렸다. 떨어진 손을 서훈은 아프도록 세게 쥐고 큰 보폭으로 걸어 나갔다. 넘어질 듯 소영이 불안하게 걸었지만 좌측 좁다란 통로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끌고 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구석자리에 멈춰 서서 서훈은 소영의 어깨를 와락 잡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손에 잡힌 어깨는 더 가늘어져 있었다. 화사한 옷을 입어 피어나야 할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작은 충격에도 부서져버릴 듯했다. 가슴이 아려 그 어깨를 조용히 쓰다듬어보다가 손을 내려버렸다.
“목요일 날 한국으로 간 거 아니었어 ”
“그날 갔다가 오늘 다시 온 거야.”
“왜 이래요, 이렇게 불쑥 와서 사람들한테 뭐라 설명할래.”
“설명 필요 없어. 회사 사람들 따위 무슨 상관이야.”
고집을 단단히 부리자 서훈도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래, 당신한테는 회사 사람들 따위겠지. 그런데 난 아니거든. 나, 어디로 숨어버려 이제 이 회사도 못 다니게 할래 ”
소영은 입술을 꾹 다물더니 그렁거리는 눈을 들었다.
“너 바닥으로 더 안 떨어지게 해. 내가 할 거야.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도 비참해야 하는 것도, 아픈 것도 내가 다 할게.”
내가 그걸 원할 거 같아!
“소영아, 제발.”
서훈은 안타깝게 불렀다. 말갛게 차오르는 눈물을 보며 결국 소리를 높였다.
“왜 그래, 정말! 나 끊으란 말이야. 그걸 못해 ”
“싫어! 안 해, 못해.”
소영은 울음만은 애써 꾹꾹 누를 수 있었지만 떼를 쓰듯 소리쳤다. 서훈은 그런 소영을 지그시 보더니 결심한 듯 냉정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난 아냐, 당신 모습도 감정도 흐려지고 있어요. 이제 나 더 이상 건드리지 말아요.”
소영이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냉혹하게 굴었다.
“그래, 변했고 많이 잊었어. 봐도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니…… 누나도 다른 사람 만나요,”
순식간에 머리에서 가슴에서 피가 말라버렸다.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뇌가 죽어가고 귓속이 먹먹해왔다.
‘서훈 씨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랑 고등학교 동문이더라구요. 그래서 자리를 한번 같이 했는데…….’
‘인물 반반하고 능력 좋은 놈이야, 네가 매달리며 결혼할래 ’
당당한 혜정의 목소리가, 차가운 정 회장의 음성이 차례로 웡웡 머리를 두드렸다.
“그래, 그렇구나.”
편안하게 말해야지, 인정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여야지, 라고 소영은 있는 힘을 다해 스스로를 설득시켰다.
고개를 숙인 서훈의 얼굴에서 지친 기색이 묻어났다. 깊고 짙은 피로, 두 달 어쩌면 여덟 해, 세월은 그에게 질기고 무거운 염증일지도 모르겠다.
“갈게요.”
서훈은 얼굴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난 말야.”
서훈의 걸음을 잡는 목소리였다.
“서툴고 이기적이야. 표현도 잘 못해. 내 감정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그러면서도 이해받기만 바라. 하지만 잘하는 건 하나 있어. 기다리고 참는 거. 두 달, 아니 팔 년을 질기게 참았어. 여기 왔을 때는 네가 아무리 뿌리치고 거부해도 참겠다고 표현하겠다고, 그러면서 기다리겠다고 맘을 먹은 뒤였어. 하지만 이제 보니 난 너무 미련해.”
눈물조차 미련하게 줄줄 흘러내렸다. 말대로 바닥까지 무너지는 참이다.
“네가 변하는 거, 그래야 한다는 걸 왜 난 몰랐을까.”
왜, 난 몰랐을까. 어떻게 이런 어이없는 믿음을 가지게 된 걸까.
서훈이도 똑같이 못 잊을 거라고. 나만큼 아플 거라고…….
손을 들어 얼굴을 말끔하게 닦아냈다.
“내가 먼저 갈게. 돌아서는 모습은 못 보겠어. 난 미련하게 또 기다리고 참을 거니까. 두 달, 스무 달……. 그러다 보면 나도 변할 수 있겠지. 네가 흐려지겠지. 그동안만큼은 뒷모습으로 기억하기 싫어.”
목이 메었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침묵만 무겁게 내려앉는 동안, 서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시린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내가 널 또 아프게만 했구나.
그리고 이제 바닥까지 떨어지고 바닥까지 남김없이 보였구나.
소영은 몸을 돌렸다. 더 보게 되면 매달릴까 봐 적어도 그렇게까지 추하게는 굴지 말자 이를 악물면서 걸어갔다.
서훈은 멍하니 뒷모습만 쳐다보았다.
그녀의 스커트 자락이 팔락팔락 무릎 근처에서 움직였다. 보라색 물결이 점점 크게 일렁이며 에워쌌다. 시간과 공간이 불룩하게 휘어지며 덮쳐들었다. 눈을 떴지만 시공이 분리되고 뒤엉킨 곳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눈매를 좁히다가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
랩탑을 들여다보던 서훈은 손을 벌려 미간을 감싸듯 쥐고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문질렀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햇살이 들어와 눈을 찌른다. 아직도 한낮이다. 길게 늘어지는 햇살도 푸른 하늘도 지겹도록, 참으로 하루가 더디 간다.
“서훈 씨, 어디 안 좋아 ”
서 팀장이 가벼운 투로 묻는다.
“아니요, 눈이 피곤해서.”
“들어가서 쉬어.”
고개를 저으며 웃어 보였지만 서 팀장은 일찍 들어가라며 채근했다.
“이 사람 쓰러지면 타격이 크거든요. 영 비실거리는데 좀 들여보낼게요.”
태성 사람들에게 너스레도 떨었다.
“어이쿠, 몸이 많이 안 좋으세요 그럼 안 되죠, 근처에 회사 사람들 주로 가는 병원이 있는데 알려드릴까요 ”
태성 쪽 담당 부장도 흔쾌히 박자를 맞춰주었다.
“아닙니다, 그런 정도는.”
“그럼 주말까지 내친김에 푹 쉬어요. 영 안색이 안 좋네. 그러고 보니.”
서훈은 조용히 웃는 것으로 답하였다. 목에 열기가 올라오고 눈동자도 불편할 정도로 화끈거린다. 점심 식사를 한 이후로는 어질어질 시야가 흔들려 어차피 자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방을 챙기고 서 팀장에게 명랑하게 인사하였다.
“죄송합니다. 내일 일찍부터 나와서 충성을 다할게요.”
서 팀장은 랩탑에서 시선을 들어 서훈을 빤히 쳐다보더니 살짝 찌푸렸다.
“이번 주말은 쉬어. 서울도 한 번 안 가고 서훈 씨 계속 일했잖아. 그래, 감기라도 걸린 거야 ”
“글쎄요, 그냥 두통약이라도 먹고 좀 자면 괜찮을 거 같아요.”
“저녁은 먹고 자. 몸 축난다.”
허허 웃자, 서 팀장은 서훈의 팔뚝을 슬쩍 쥐었다 놓으며 말했다.
“츠츳, 너 영 부실해졌다 ”
“아닌데요. 확인 차 같이 사우나나 가실까요 ”
“농담 말고, 객지에서 아프면 본인만 서러워. 관리 잘해.”
서훈은 피식 웃었다. 태성의 서울 프로젝트에 이어 중국까지 같이한 서 팀장은 이후 한 번도 소영의 일에 대해서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종종 서훈을 챙겨주곤 했다. 소영이 다녀간 이후에도 ‘보냈어 ’ 무심한 듯 묻고는 그저 어깨만 한 번 두드려줬을 뿐이었다. 다정하게 어깨를 두드려준 것도 벌써 이 주쯤 지났다. 눈앞에 보랏빛 스커트가 팔락인다. 냉혹한 남자를 바라보는 눈물을 가득 담은 눈동자도……. 서훈은 눈을 감았다가 뜬다.
“죄송합니다. 좀 일찍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무실을 떠나며 사람들에게 멋쩍은 인사를 한 번 더 해보였다.
호텔에 들어오는 길, 긴장이 풀어진 까닭인지 열기가 무섭도록 오르는 몸이 답답해 차창을 내렸다. 오랜만에 황사가 걷힌 공기가 상쾌했다. 몇 번 숨을 들이켜다가 뱉어내길 반복했다. 하지만 속에 벌건 숯이라도 삼킨 듯 어른어른 채워드는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호텔 정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열에 들뜬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둔하게 움직여지는 다리가 방문을 열면서는 물속이라도 들어온 듯,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애를 써야 할 정도였다. 눈동자까지 묵직하게 눌러오도록 관자놀이 맥이 뛰어오르고 지독한 몸살이라도 났는지 양팔과 다리가 욱신욱신 저려왔다. 목을 조르는 타이를 둔한 손으로 풀어 내리고 재킷도 와이셔츠도 벗어던졌다.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두 주 동안, 폐가 쪼그라들기라도 하는지 숨 쉬는 일이 점점 힘겨워져왔다. 서훈은 나머지 옷가지를 훌훌 벗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최대한 단순하게 머릿속 상념을 정리하고 덜어낸다.
더운물에 샤워를 하고 그리고 타이레놀 PM을 먹고 잠이 들면 그만이다. 오늘은 끝이 날 테니, 내일을 맞으면 된다.
머리 위로 물줄기가 세차게 떨어지고 귓속까지 먹먹하다.
아무 생각 없이 잠들고 싶다.
가능하다면 내일 아침까지,
아니, 가능하다면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 아침까지…….
가능하다면 꿈도 꾸지 않고,
아니, 가능하다면 활짝 웃는 소영이 나오는 꿈을…….
가능하다면, 으로 시작한 소망은 불가능을 전제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 서훈은 젖은 머리를 털어내다가 거울을 들여 보았다. 초라한 남자 하나가 노란 불빛 아래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꿈에서도 소영은 웃지 않았다. 웃어주지 않았다.
서훈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푸른색 알약 세 개와 Sleep aid 작은 흰색 알약을 꺼내 같이 삼켜버렸다. 권장량의 세 배, 그만큼만 잠들 수 있다면, 세 배만큼만. 빈속에 쑤셔넣은 약의 효과는 빠르게 번진다. 머릿속이 물컹거리며 이완을 시작했다. 미끈거리는 느낌이 천천히 어깨를 타고 팔뚝으로 내려오자 감은 눈이 무겁게 젖어들었다. 아침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새벽까지는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변하는 거, 그래야 한다는 걸 왜 난 몰랐을까.’
울고 있는 소영이 가슴을 짓누르고 상처를 후볐다. 가슴에 불이라도 붙은 것 같아 서훈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잔인한 놈.
이 독한 놈, 지독한 놈…….
심장을 뜯어내듯 서훈은 셔츠를 움켜쥐었다. 비틀거리며 걸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생수 하나를 집어냈다. 불붙는 심장에 냉수라도 퍼붓고 싶었다. 뚜껑을 열려다가 놓쳐버려 병은 도르륵 바닥을 굴렀다. 무릎을 굽히고 팔을 뻗어 병을 잡았다. 선득하게 차가운 느낌이 손 전체에 퍼져들었다. 무릎을 바닥에 붙인 채 그대로 한 병을 다 들이켰다. 식도로 들어가지 못한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흘러 셔츠와 바지까지 흠뻑 적셨지만 심장의 불길을 잡진 못했다. 어지러운 머리를 가누며 바닥을 짚었다. 힘주어 일어서다가 어찔 눈앞이 돌아가나 싶더니 도로 주저앉아버렸다. 허허, 웃다가 무릎을 짚으며 겨우 일어섰다. 허방을 딛는 것만 같은 발을 터덕터덕 움직이며 침대에 쓰러져 누웠다.
이 나쁜 놈…….
‘두 달, 스무 달……. 그러다 보면 나도 변할 수 있겠지. 네가 흐려지겠지.’
서훈은 소리 나지 않게 입을 움직였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요. 누나가 흐려질까요 ’
약 기운이 제대로 번지는 듯 소영의 모습이 커다랗게 눈앞을 가리다가 이내 캄캄해졌다. 이제 가슴이, 손가락과 이마가 그리고 발끝이 차례로 얼어붙기 시작한다.
혼곤한 수면상태에서 신경 줄을 당기는 것은 아득하게 들리는 전화벨 소리였다. 서훈은 몇 번이고 손을 뻗었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손에 쥐었다 싶은데 소리는 끝없이 울렸다. 끊어진 걸까, 어느 순간 찌르륵거리는 소리가 멈추나 싶더니 볼에 닿는 이물감이 선득해서 서훈은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으음…….’
[서훈아.]
“음…….”
‘서훈아’
소영이 웃으며 서훈을 불렀다. 풀어 내린 단발머리 옆으로 크리스털이 조르륵 박힌 머리핀이 반짝였다. 베이지색 트윈 니트 카디건, 짙은 속눈썹, 까맣고 깊은 눈동자…….
주름 스커트가 조금씩 흔들리고 커다란 목련나무, 흰 목련 송이 아래로 소영은 걸어갔다.
‘가지 마.’
누군가 목이라도 조르는 듯 소리되어 나오지 않았지만 서훈은 발이 바닥에 붙어 움직여 지지 않던 지난 꿈과는 다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 2학년 그날처럼, 지난 꿈처럼 학교 후드티를 입고 있지 않았다. 소영을 좇아 달리자 재킷이 벌어졌다. 검정 슈트 재킷 속으로 봄바람이 파고들고 넥타이가 흔들렸다.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소영의 어깨를 잡았다.
“가지 마!”
힘껏 내지르자 목소리가 터졌다. 아, 말을 할 수 있었다. 잡을 수 있었다. 서훈은 그 사실이 너무 벅차 울먹이듯 말했다.
“소영아, 가지 마.”
스물셋 소영은 볼우물을 패며 웃었다.
“안 가.”
손을 꼭 잡아주며 소영은 속삭였다.
“네 옆에 있을게.”
“가지, 마…… 소영아……. 제발.”
힘을 다해 소영의 손을 쥐었다.
“안 간다니까.”
소영은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다른 손을 들어 이마를 쓰다듬듯 스쳤다. 소영이 가슴에 기대어오자 꽃향기가 번졌다. 목련꽃 아래 목련향 커다란 나무, 쏟아질 듯 많은 목련 송이가 바람에 일제히 벌어졌다. 그리고 목련 꽃잎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함박눈처럼 떨어졌다. 목련향이 숨 막히게 둘러싸고 떨어지는 목련 꽃잎은 더 포근하고 따스했다. 서훈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운 목련향, 취하도록 마시고 싶다. 다시 숨을 들이켜는데 가슴과 목덜미에 따뜻하고 습한 바람이 스몄다. 작은 흐느낌도…….
왜 우는 거지…….
품속의 소영은 여전히 웃고 있다.
누가 우는 거야……
왜 우는 거야.
붙은 것만 같은 눈꺼풀을 억지로 떼어냈다.
“아아…….”
서훈의 소리에 가슴에 얼굴을 묻었던 소영이 고개를 들었다. 서훈은 꼭 쥐고 있는 소영의 손을, 눈물 맺힌 그녀의 눈을 천천히 담은 후에야 겨우 몸을 일으켜 침대 머릿장에 상체를 기댈 수 있었다.
“왜, 또 왔어 ”
땀과 물에 흠뻑 젖은 셔츠가 몸에 성가시게 달라붙었다.
“갈까 ”
서훈은 여전히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소영을 외면한 채로 답하지 않았다.
“가 가버릴까 ”
소영의 목소리가 가파르게 떨렸다.
“……가요. 보여주고 싶지 않아.”
“뭘 뭘 안 보여 주고 싶은데. 아픈 거 나 가지 말라고 붙잡는 거 바보같이 약 먹고 잠드는 거 뭐, 그럼 뭘 보여주고 싶은 건데 괜찮은 척 일 잘하는 거 멋있는 척 잘 사는 거!”
툭, 툭, 눈에서 뺨으로 턱에 맺히는 눈물이 빠르게 떨어졌다. 서훈은 팔을 뻗어 소영을 감쌌다.
“울지 마. 보기 싫다.”
소영은 쓰러지듯 기대어왔다. 등과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울지 마, 당신 우는 거 정말 보기 힘들어. 미치도록 아프다.”
“나 이제 흐려졌다며. 다 잊었다면서……. 그럼 왜 아파!”
서훈의 가슴을 두드리며 소영은 울음을 더 크게 터뜨렸다.
“윤서훈! 너, 내가 잘 살라고 했잖아. 누구 맘대로 이렇게 아퍼 ”
“괜찮아요.”
소영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한 채, 날카로워진 서훈의 턱에 손가락을 올렸다. 조심스레 쓰다듬다가 이내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게 괜찮은 거야 잘난 척하더니 이게 뭐야, 너 엉망이야.”
“괜찮아. 이런 거 정말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왜 왔어.”
“왜 오게 만들어. 그렇게 쫓아 보낼 때는 언제고 왜 이 꼴이야. 왜 날 천하에 몹쓸 년 만들어.”
“누가, 뭐라 그래 ”
“혜정 씨는 나 씹어 먹을 듯 보고, 팀장님 전화까지 받았어.”
“팀장님 ”
“그래, 너 아파서 일도 못 한다고 나더러 대신 일하래. 혜정 씨는 나한테 너 요새 얼마나 엉망이 됐는지 아냐고 소리치고.”
“후후.”
서훈은 조금 웃었다.
“곤란했겠다. 나 때문에, 미안해. 그냥 몸살 기운이 조금 있는 거뿐인데.”
너무 다정하고 안타까운 목소리, 저 지경으로도 눈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이 바보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