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114화 (114/114)

외전 3화. 그 후, 100년 (3)

2018.09.03.

“천도 한 알만 먹으면 좋겠구나.”

아침 내내 졸던 소희가 차를 한잔 받더니 한 소리라는 게 저랬다.

“네?”

“아침 내내 코끝에 복숭아 향이 맴도는 것이, 어찌나 먹고 싶은지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멋쩍은 듯 시선을 돌리며 차를 마시는 소희는 정말로 아쉬운 표정이었다.

“천도는 몹시 귀한 것이라…….”

욕심이라고는 낼 줄 모르는 이가 처음으로 먹고 싶다 원하는 것이니 구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다.

하지만 웬만한 것이어야 말이지.

천도는 조양이 죽었다 깨도 못 구할 것이라 난처할 뿐이었다.

“천도요?”

“응. 한 알만. 아니 한입만이라도…….”

소희가 작게 중얼거리며 찻물로 다시 한번 입을 가셨다.

“어머나, 그럼 염휘님께 달라 하셔요.”

“응?”

반요는 생긋 웃으며 뭐가 큰일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몇 알쯤은 가지고 계실 텐데요.”

정 안되면 서왕모께 다녀오시면 되지요.

듣자 하니 그럴싸했다.

“염휘께선 지금 어디 계시니?”

아침 내내 졸음에 겨워하던 이라곤 믿기지 않을 표정으로 대번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당장에라도 달려갈 기세라 반요가 고개를 살살 저었다.

“오늘은 동쪽 경계를 둘러보러 가신다 하셨잖아요? 풍천께서도 함께 가신다 하셨고요.”

“세상에. 그럼 사흘이나…….”

“비우시는 거죠.”

그리고는 뒤늦게서야 풀죽은 소희의 모습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옆에서 조양이 눈을 흘기며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라고 타박을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달 마마는 며칠 전부터 이상했다.

내내 졸고, 입맛도 없다 하며 상을 물리기 일쑤에, 염휘께서 걱정하시면 마지못해 몇 술 깨작거릴 뿐이었다.

조양은 또다시 하루 내내 조는 소희를 두고 달이 뜨자마자 아수라에게 달려갔다.

가만 생각하니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아, 아수라께 언질이라도 넣을 참이었다.

특히 병자는 밤에 그 병세가 더한 것이니, 여차하며 의원을 부른다지만 일이 터진다면 염휘께 단숨에 달려갈 수 있는 이는 아수라뿐이라 만나야만 했다.

하지만 조양의 이런 말을 듣던 아수라는 빙긋 웃을 뿐 걱정하는 품새가 전혀 아니었다.

“천도가 드시고 싶다고?”

확인하듯 물었을 뿐이었다.

“네, 아수라님.”

적발을 늘어뜨린 채 턱을 괴고 있던 아수라가 조양의 말에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허공을 찢었다.

‘아공간!’

말로만 들었지 일개 선인인 조양이 그것을 볼 기회란 없어서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아수라가 아공간을 열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달큰한 향이 사방을 메웠다.

어찌나 상쾌하고 달큰한지 절로 힘이 솟는 향이었다.

아수라는 아공간에 손을 넣어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천도!”

“맞아. 이걸…….”

두 손 위에 올라올 크고 탐스러운 것을 조양에게 내밀던 아수라의 손이 일순 멈칫했다.

“아니야, 직접 가야겠다.”

“그편이 좋겠습니다.”

조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도를 들고 가다 제가 실수라도 해서 저 귀한 것을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조양은 그길로 아수라와 함께 소희를 찾았다.

저녁상을 물리고 아예 침상에 몸을 뉘인 분이라 깊게 잠들었을 거라는 염려와는 달리 아수라는 거침없이 목소릴 높여 소희를 깨웠다.

“소희님, 아수라가 찾아왔사옵니다.”

의기양양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더없이 높게 공기를 울렸다.

“아…….”

잠이 함뿍 물린 눈을 해선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나던 소희의 눈이 순식간에 동그래져 아수라를 바라보았다.

“천도!”

“아니, 이러시깁니까? 저는 눈에도 안 보이시지요?”

“어머…… 죄송해요.”

아수라의 장난스러운 타박에 소희는 볼을 붉히며 사과하면서도 시선은 천도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드세요.”

이리 나오세요. 어서.

아수라는 탁자에 자리를 잡고 소희를 청했다.

“이건…… 어디서 난…….”

“2천 년 된 천도입니다. 혼례 올리고 난 후 염휘께서 세 알씩 하사하셨지요.”

“아수라께서도 안 먹고 아껴두신 것을…….”

“염휘께서 회궁하시면 받아낼 것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복중 태아가 원하니 드셔야지요.”

“네?”

“예?”

아수라의 말에 소희도 조양도 놀라 되물었다.

아수라는 소희가 놀란 모습을 충분히 즐긴 후에야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잊으셨습니까? 소희님의 생명의 환은 이 아수라가 내어드린 세 번째 목숨이라는 것.”

저는 보인단 말입니다.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리던 아수라의 시선이 소희의 풍성한 치맛자락 밑에 숨겨진 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말로. 정말로 태자가?”

“네 뭐…….”

아기가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아수라는 말을 흐리며 미묘한 눈빛을 발했지만, 소희는 얼떨떨해서 아수라의 시선을 놓쳐버렸다.

“드세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천도는 몹시 달았고, 소희는 그제야 더부룩하던 속이 만족스럽게 채워진다 생각했다.

“하나 더 드릴까요? 부족하실 텐데?”

“아뇨 충분해요.”

“흐응…… 염휘께서 꼭, 서왕모께 다녀와야겠네요.”

그리고 아수라가 했던 말의 의미를 소희는 염휘가 돌아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

“쌍생아라고?”

“네. 보입니다. 두 몫의 생입니다.”

“말도 안 된다. 대대로 별과 휘는 하나의 아이만을 낳았다.”

단호한 염휘의 말은 진실이었다.

하지만 끼어드는 낭랑한 목소리가 그보다 더 엄숙한 선고를 내렸다.

“허나, 이번 대엔 둘이니라. 염휘야.”

“마고시여!”

소리 소문도 없이 그들 틈에 현신해 턱을 괴고 염휘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무척 개구졌지만 마고가 한 말이 엄청나 아무도 그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둘이라니요!”

당황한 목소리에 마고가 다시 한번 긍정해주었다.

“둘이니라, 제대로 키우거라. 하나는 태자가 될 것이고 하나는 서왕모로 쓸 것이니라.”

“네?”

“아아, 아수라이니 말을 가리지 않아도 되겠구나.”

마고는 옆에선 아수라를 보며 능청을 떨었다.

“휘와 상제를 거두며, 제 직분의 무게를 다시 한번 견디라 명령했단다. 기억하느냐.”

“네.”

“깨끗한 영체로 거듭나 네게 맡기는 것이란다.”

“그건…….”

싫습니다.

염휘가 삼키는 말을 안다는 듯, 마고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 어떤 흠도 없는 천신으로 자랄 귀한 영이야. 네가 길러내기에 따라 비극이 다시 되풀이될 수도 있고, 후대에 너보다 자애로운 귀왕을 앉힐 수도 있지.”

“그래도.”

“말 안 들으면 엉덩일 때려주거라.”

거절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염휘는 마땅찮았다.

그 미치광이들이 소희의 태를 빌려, 자신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싫고 꺼려졌다.

모든 기억도 지워지고 천신이 될 고귀함만이 남았다 한들 싫었다.

시련이 끝났다 생각했건만, 또 한 번 원수 같은 이들을 품으라 명령하는 마고가 원망스러웠다.

“계집애처럼 흘겨보기는.”

마고는 그런 염휘를 가볍게 놀리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이야 내가 밉고, 싫겠지만 키워 보거라. 반드시 네가 키워야 했단다.”

그래야 이 일이 정말로 끝이 나거든.

마고는 침통한 듯한 표정을 짓는 염휘를 가만히 두드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별께서 천도를 찾으신다지? 서왕모에게 일러둘 테니 원껏 드리거라. 별 하나 못 먹이겠느냐.”

“하아…… 병 주고 약 주십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어디 다음번에 만나서도 이리 원망만 하는지 내가 두고 보마.”

“그럴 리가요.”

“글쎄.”

밉고 싫다던 염휘의 불만은 아이들을 보자마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참 작구나.”

“두 분을 쏙 빼닮았습니다.”

“그러느냐?”

염휘는 축하 인사를 전하는 풍천에게 슬쩍 품 안의 태자를 넘겨주었다.

“안아 보거라.”

“흐익! 찌. 찌그러지면 어쩌려고!”

“큭.”

“태자를 찌그러뜨려서야 되겠느냐, 조심하거라.”

염휘는 태자를 풍천에게 넘겨주고 어린 딸은 풍천 옆에서 웃던 아수라에게 안겨주었다.

“읏.”

“너도 조심하거라.”

“참, 작고 고우십니다.”

“그러느냐?”

“두 분을 닮았습니다.”

풍천과 아수라는 다짐이라도 하듯 두 아이를 염휘와 닮았다며 자꾸 되뇌었다.

“……흔적도 없는 게 확실하느냐?”

“흔적은 무슨. 그런 찝찝한 소리 하지 마십시오. 볼에 난 솜털 하나까지 다 두 분만 닮았습니다. 곱고, 반듯하게 길러주시면 될 것이니, 예뻐만 하십시오.”

“……너무 예뻐서 말이다.”

뒷짐을 지고 은근히 눈꼬리를 붉히는 염휘는 진심이었다.

“에?”

“분명 밉고 싫을 거라 생각했는데.”

소희는 모르는 일이었다.

쌍생이라는 것도, 이 아이들이 전대의 휘와 상제였다는 것도, 아무것도 몰랐다.

임부가 괴로워해선 안 될 것이라 입을 봉한 참이었다.

“정말 예뻐서 말이다.”

“고우십니다. 어여쁘시고요. 상냥한 달 마마께서 정성으로 기르실 것이고 다정하신 귀왕께서 자애롭게 키우실 것이니 전에 없이 훌륭한 귀왕을 내실 겁니다.”

“맞습니다.”

“서왕모로 키우신다 하였지요? 상냥하고 고운 마음으로 약성 좋은 천도를 잘 키우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렇지.

귀한 영이니, 귀하게 키울 것이야.

염휘는 두 염라의 불이 안아들고 있는 아이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랑으로 키워, 사랑을 베풀고 살게 할 것이야. 옳고 그름을 알려 치우치지 않는 눈을 갖게 할 것이야.”

“좋은 말입니다.”

“허니, 역시 별에겐 비밀로 하자. 그이는 역시 모르는 편이 좋겠다.”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세 군신의 은밀한 회동은 이어지는 덕담으로 끝이 나고 아이를 낳고 탈진해있던 소희가 눈을 뜬 건 그 후로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소희는 두 아이를 안고선 좋아서 연신 울고 웃었다.

“하나만 하세요.”

염휘의 말에,

“아이가 둘이니 어쩔 수 없어요.”

능청을 부리며 두 볼을 붉히는 소희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래, 행복했다.

그리고 염휘는 그제야 마고가 했던 그 날의 말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끝이라고 믿었고, 끝났다고도 생각했지만 염휘에게는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아 그의 마음 한구석을 검게 물들이던 것들이 진짜로 사라졌다는 것을.

그리고,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는 이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올바르게 키우리라는 것을 다짐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 모든 것이 마고의 안배라는 것이 새삼 감사할 뿐이었다.

아이가 생긴 후 늘 같던 하루가 천년보다 다채롭고, 더한 의미를 가졌다.

달 아이를 처음 내었을 때보다 더한 벅찬 마음이었다.

제 힘을 나누고, 소희의 태를 빌려 난 아이들은 달빛에서 따온 아이와 확실히 달랐다.

더 마음이 쓰이고,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이 갔다.

“아바마마.”

제 앞에 와서 두 팔을 뻗치는 이 작은 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루 만에 쑥 자라 이런 재미를 몰랐다고 하면, 교아가 덜 섭섭하려나.

염휘는 태자를 안아 들며 설핏 미소지었다.

“아바마마. 나도나도.”

태자에게 질세라 뒤이어 고운 목소리가 사랑을 바라 칭얼거렸다.

태자와 닮은 얼굴.

그러나 확실히 선이 더 곱고, 그 자태가 미려하다.

저 역시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안아달라 조르는 딸아이의 모습에 염휘가 소리 내 웃으며 한 팔에 하나씩 안고 걸음을 옮겼다.

“아이참, 버릇 나빠진다니까요.”

등 뒤에서 소희가 들으라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그도 안다.

자신이 안아주지 않았으면 소희가 안았으리라는 것을.

그저, 말이라도 엄하지 않으면 이 넘치는 애정을 어쩌지 못해 그렇다는 것을.

잔소리하는 입과는 달리, 웃는 표정인 소희가 해가 따사로운 오솔길을 따라 자신의 뒤를 따르는 이 순간이 무척 행복했다.

“오오- 휘 마마.”

아이들은 선인들이 제 모친을 일러 달 마마라 부르는 것을 듣고 자란 터라, 누구에게건 마마를 붙여 부르곤 했다.

그래서 가끔 하계로 발걸음 하는 휘와 상제에게도 늘 마마를 붙여 부르곤 했는데, 이날도 휘가 도착했다는 말에 두 녀석이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가 그녀를 반겼다.

“상제 마마!”

“휘 마마!”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날이 갈수록 혈기왕성해지는 두 아이를 잡으러 뛰던 소희가 지지 않을 목청으로 외쳤으나 이미 아이들은 상제와 휘에게 안긴 후였다.

“아이……고.”

반드시 잡고 말리라 다짐해 전력으로 뛴 까닭에 숨은 허덕였고, 이미 머리는 산발이 된 채였다.

소희는 예의 차리기는 포기한 듯 발그레해진 두 뺨을 감추지도 않고 그대로 상제 내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이리 내려와.

그 와중에도 남겨진 미련이 아이들에게 예의 있게 굴라 경고했지만, 아이들은 이미 상천의 두 마마께 고사리손을 단단히 걸고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큽.”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남도 아닌데 내외하라시면 전 서운해요.”

휘가 질색하며 오히려 아이들을 두둔했다.

“이 아이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이모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나서서 이모라 칭하며 아이들을 싸고돌기 바쁘니 소희 혼자 악당이 된 참이었다.

“이모요?”

상제에게 안겨있던 태자가 불쑥 끼어들어 묻자 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달 마마와 난 남이 아닌 것을. 한배에서 난 형제보다 더 가깝단다. 그러니 휘 마마 하지 말고 이모라고 부르렴.”

“좋군요.”

안 돼요 소리는 나올 사이도 없었다.

소희는 점점 더 말썽꾸러기가 되어가는 아이들에게 휘가 나서서 제물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휘의 말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주의를 주려던 것도 모조리 잊어버렸다.

“그러니, 내년에 태어날 동생에게 좋은 형과 누나가 되어줄 거지?”

“......휘!”

연이은 깜짝 놀랄 소리에 정신이 아득한 것도 잠시.

소희는 휘가 드디어 백 년을 버티고 태자를 회임했다는 말에 반갑고 기뻐 비명을 지르듯 부를 수밖에 없었다.

“축하, 축하드립니다.”

어쩐지 코끝이 시큰했다.

언제나 제 아이들을 보며 남몰래 짓던 한숨을 모를 리 없었다.

얼마나 태자를 기다렸을 것이냐.

그 긴 시간을 담담히 버텨내야 했을 휘의 노고와, 그간의 마음고생에 소희가 절로 감정이 북받쳤다.

“세상에. 너무 축하드립니다. 휘. 정말로.”

“고맙습니다. 별께서 이리 기뻐해 주시니…….”

눈시울을 붉히는 소희를 보며 휘 역시 눈물이 그렁해져 웃었다.

“허니, 욘석은 이리 주세요. 조심하셔야지요.”

이리 왓.

휘의 목에 대롱거리며 매달린 딸아이를 냉큼 뺏어 든 소희는 휘와 상제를 궁으로 청했다.

“잘됐습니다. 천도가 어제 도착해서 마침…….”

“욱.”

그러나 내내 웃던 휘는 천도라는 말에 대번에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휘!”

놀란 상제와, 당황한 소희까지 모두가 휘를 달랬으나, 휘는 얼굴이 희게 질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어쩐지, 천도……욱……는 싫어서…… 차를 청해도 될까요?”

“아…… 그러세요. 전 이 아이들 가지고 즐겼던 것이라. 휘께서도 즐기실 줄 알았습니다.”

소희는 놀라 허둥이며 휘를 내실로 끌었다.

“어떤 차가 좋으시겠습니까?”

소희의 질문에 휘가 냉큼 대답했다.

“서, 서녘의 달빛……이 있으심 나눠주세요. 실은 고것이 내내 생각나 하계로 온 참입니다.”

귀까지 빨개진 휘의 고백은 귀여웠다.

“상천엔 고것이 너무 귀하고, 그나마 있던 것도 아껴 마셨지만…….”

“진작 말씀하시지요! 서녘의 달빛이 하계엔 넉넉히 있답니다. 드시고 가시고 싸가세요. 있는 것 죄 드릴 테니.”

“아니 그 귀한 것을……!”

“무슨 말씀이세요. 태자를 잉태하신 휘께서 드신다면 다 드려야죠.”

소희는 당장에 서녘의 달빛을 차로 내어주고 아이들을 시켜 죄다 싸오라고 시키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날 휘는 정말로 식사도 마다하고 내내 찻잔만 붙들고 있다가 상천으로 돌아갔고, 돌아가는 상제의 두 손엔 서녘의 달빛이 그득히 들려있었다.

“세상에, 너무 하십니다.”

아수라와 풍천이 슬퍼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들려오긴 했으나, 만월의 가루를 듬뿍 넣은 꿀타래가 두 상자 보내지고는 그런 소식마저 사라져버렸다.

백 년.

모두가 행복해지고,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날이 드디어 찾아왔다.

그리고 이듬해, 상천에선 우렁찬 태자의 울음소리와 함께 상제의 웃음소리가 터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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