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별비 내리는 날 (5)
2018.08.17.
본궁 정원에서 혼사가 치러지기로 한 터라, 소희와 시중드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본궁을 향했다.
궁 사이사이 놓인 회랑에는 빼곡하게 등불이 놓여 어둡진 않았으나, 아이들은 밖에 나오고 나서야 소희가 말한 ‘어둠’을 느꼈다.
“오늘 하늘이 유난히 검습니다.”
“그것 보렴. 어둡다 했잖니?”
“이상합니다. 만월에 올리는 것이 정설인데. 마고께서 부러 정해주신 날이 이렇게 어둡다니요?”
“방정은! 오늘따라 구름이 좀 낀 모양이지. 이따가는 달빛이 덩실하니 비출 테지!”
아무렴.
마고께서 친히 정해주신 혼롓날인걸.
소희는 조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 옮겼다.
간절히 바라기까지 했던 그날이건만 어째서 이렇게 떨리는지.
“오셨습니까?”
본궁 회랑 끝에서 그녀를 맞이한 환이 아니었더라면, 소희는 긴장감에 숨이 멎을 뻔했다.
“괜찮으십니까?”
발그레하게 달아올라있어야 할 두 뺨이 긴장에 딱딱하게 굳어 희게 질린 것을 본 환이 자못 염려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괜찮지요. 당연히.”
하지만 힘줘 말하는 소희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갈라졌고, 희미하게 떨리기까지 했다.
“긴장되십니까?”
소희의 두 손을 맞잡으며 시선을 맞대는 환은 어둠 속에 녹아드는 별빛같이 요요히 빛이 났다.
“……네.”
“저도 긴장됩니다.”
“네?”
“저도 혼례는 처음입니다.”
“……!”
소희는 빙긋 웃는 환의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이것이 그의 농담이라는 것쯤은 이제는 안다.
“두 번이면 큰일이게요?”
한번 웃음이 나기 시작하니 긴장감이 어디로 간 것인지, 묘한 설렘이 쉴새 없이 솟아나 흥분을 부추겼다.
소희는 볼우물이 패도록 웃으며 환의 말에 대꾸했다.
“두 번쯤 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능청스러운 환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전, 환이 노래하듯 낮은 목소리로 소희의 귓가에 은근히 속삭였다.
“어디 글줄이나 읽는 도련님인 양, 소희아씨께 청혼서를 넣어 한 몇 년쯤. 귀왕이니 별이니 하는 것 모르고 신접살림 차려보는 것도 꽤 재미있었을 테지요.”
귓바퀴를 따라 그의 말이 짜르르하게 울려 절로 두 뺨이 화끈해지고 말았다.
“그런…….”
애정을 함뿍 담은 달큰한 남자의 말에는 이길 재간이 없다.
환을 올려다보는 소희의 눈동자에 나긋한 정염이 실리고, 저도 모르게 그를 바라는 시선이 되고 만다.
“그런 표정은 함부로 짓지 말아주세요.”
수줍은 듯 달뜬 표정을 짓는 소희를 보는 환의 표정 역시, 미세하게 흐트러져버렸다.
“오늘은 보는 눈이 많답니다.”
마주 잡은 두 손이 어느샌가 뜨끈해져 있었다.
소희는 환의 애정 어린 타박에 한껏 달아오른 표정을 해서는 예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십시다. 방금 상제께서도 도착하셨어요.”
환은 말을 맺으며 그의 소유임을 드러내듯 소희의 어깨를 단번에 감싸 안아 품에 넣었다.
과시하기 위함임이 드러나는 은근한 집착.
순간적으로 눈동자에 비쳐들던 경계와 성취감에 소희는 헛숨을 삼켰다.
한 달 전, 그녀를 안심시키듯 하던 그의 말이 생생히 귓가를 울렸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였다.
소희는 그의 태도를 꼬집기보다는 오히려 품에 파고들 듯 머리를 기대며 응석부렸다.
“긴장됩니다. 실수라도 해서 망신을 당하면 어쩌지요?”
“실수할 것이 있기는 하답니까.”
느긋하게 웃는 환의 입매가 만족스럽게 늘어지고, 어깨를 붙든 손에는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런가요?”
“이미 인연의 고리도 새긴 터라, 그저 가락지만 나눠 끼는 것으로 끝이 날 것입니다.”
“그래도 긴장됩니다. 오늘 휘께서도 오셨지요?”
“오셨지요. 그대가 그렇게 바라던 금발에 벽안을 한 채 상제와 함께 말입니다.”
“아휴, 그걸 여태 기억하시기에요?”
여봐란듯이 샐쭉한 목소리를 내며 옥신각신 한 끝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회랑 끝, 화원이었다.
“아……!”
“뭐 하세요. 여태처럼 그저 씩씩하게 하시면 되는 것을?”
소희에게 찔린 명치끝이 아프다는 듯, 가슴께를 매만지며 환이 엄살을 부렸다.
하지만, 소희의 어깨를 끄는 손길엔 힘이 하나도 없이 그저 말로 재촉할 뿐 그녀의 걸음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흥. 씩씩이라니요. 우아하게 걸어갈 것입니다. 보는 눈이 몇인데 이리 망신을 주실까요.”
소희는 더 이상 떨린다느니, 긴장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키워낸 것은 하얀 매.
본래의 자신은 이런 일에 겁먹거나 움츠리지 않을 것이었다.
언제고 찾을 본 모습이니, 하루라도 빨리 의연해질 것이다.
소희는 만면 가득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는 환의 곁에서 걸음을 옮겼다.
화원은 이미 밤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화려한 오색의 불들이 하늘을 빼곡히 수를 놓고 있다.
이미 종이가 닳도록 보고 외웠기에 처음이지만 익숙한 얼굴들이 빼곡하게 화원을 채우고 있었다.
그중 반가운 얼굴도, 흠칫하게 되는 얼굴도 더러 있었으나, 모두가 귀한 손님이었다.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릴 것이다.
소희는 어깨에 두른 환의 팔을 내려, 얌전히 팔짱을 끼고는 걸음을 옮겼다.
화원 한가운데 전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나…….”
절로 감탄이 터질 만큼 아름답게 꾸며진 전각은 수많은 기억이 깃든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곳은 소희의 기억 속의 그곳과는 또 달랐다.
“달빛이…… 달빛을, 빛을 머금고 있습니다.”
크게 감격한 듯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입을 가린 소희는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전각은 용마루부터. 주춧돌에 이르기까지 단 한 구석도 빠짐없이 달 가루가 듬뿍 발려있었다.
전각의 사방 열 자는 등불이 하나도 켜지지 않았으나, 전각에서 흘러나오는 은근한 빛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 볼이 통통한 아이가.”
“반요요?”
“손바닥에 못이 박히도록 비볐으니 꼭 달 마마가 되어주시깁니다. 라고 중얼거리는 걸 들었지요.”
“…….”
소희는 환의 말에 눈물이 터질 것 같아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혼례복 짓느라 매일 같이 고생한 아이들이 밤 내내 잠도 못 자고 저 많은 달 가루를 받아냈다.
그 고생에, 그 마음에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아이들의 고생하며 단장해준 것을 눈물로 씻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소희는 죄 없는 입술을 씹으며 울컥 넘어오는 것을 계속 삼켰다.
“옳지. 울면 못 써요.”
“울긴 누가 운다고요.”
“달빛을 먹인 전각을 받은 달 마마는 그대가 처음이니, 울어도 나쁘지는 않을 테지만요.”
“정말!”
울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환은 쉴새 없이 소희를 놀리고, 얼러대며 전각으로 발걸음을 끌었다.
덕분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소희는 무사히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겨우 전각 안, 두 계단 위에 섰을 뿐이지만 후원의 이들의 얼굴이 저 멀리까지 보인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을까.
저를 바라보는 상제와 휘. 그리고 아수라와 풍천.
반요와 조양.
그리고 직인과 염라의 불들.
저 멀리서 싱글거리는 마고에 이르기까지.
“마고?”
찬찬히 사방을 둘러보던 소희는 불현듯 무심코 지나친 얼굴에 경악한 듯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를 내었다.
“마고?”
그리고 그것은 환의 입을 거쳐
“마고께서?”
상제와 휘의 목소리로 이어졌고.
곧 모두의 목소리로 되새김되었다.
“보기 좋구나.”
모두가 경악해 뒤를 돌아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오는 마고를 맞이했다.
“정말이지 보기 좋아.”
수많은 시선을 받으며 마고는 소희와 환을 향해 곧바로 다가왔다.
“오늘은 내가 귀왕께 약속을 지키러 왔지.”
인파를 갈라낸 길을 따라 비단신을 신은 작은 두 발을 깡충거리듯 가볍게 통통거리며, 마고는 삽시간에 눈앞에 와서 섰다.
“마……!”
“거추장스러운 게 너무 많구나.”
인사를 올리기도 전에 가볍게 휘둘러진 마고의 손을 타고 일어난 바람이 화원을 가득 메운 온갖 등불을 꺼트렸다.
갑작스레 찾아든 어둠과 함께 모두가 숨죽인 적막이 빚어낸 시간은 몹시 느리고도 무겁게 흘렀다.
“귀왕께 내가 오늘 드리기로 한 게 있었어.”
적막을 가르고 마고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를 냈다.
“기억합니다.”
환 역시 마고의 말에 겸양치 않고 담백하게 대꾸했다.
“그럼, 별께서 귀왕께 가락지를 끼워 드리세요.”
마고는 소희에게 일전에 건네준 반지를 환에게 끼우라 말했다.
인연의 고리를 새기는 것이 혼례의 모든 것.
이미 환이 소희를 데려온 직후 인연의 고리를 새긴 덕에, 이들은 혼례를 가락지를 교환하는 것으로 대신하려 했건만 아무래도 오늘 마고께서 혼례를 주관하시려는 듯했다.
소희는 기쁜 마음으로 품에 넣어두었던 가락지를 꺼내 환의 손에 끼워주었다.
헐렁하다 싶던 것이 환의 손가락에 끼워지자 옅은 빛무리와 함께 들어맞는 것이, 역시 마고께서 내린 귀물이다 싶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이제 환.
그가 귀문의 별인 소희에게 반지를 끼워주어야 이 혼례가 성사되었다 할 것인데. 마고께서 주시기로 한 것을 아직 받지 못한 탓에 그는 정작 빈손이었다.
“그리고 귀왕께선. 이 반지를…….”
내내 하늘을 바라보던 마고가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등불이 꺼졌다지만 달빛 한 자락 없이 몹시 어두운 밤이었다.
그러나 마고가 손을 들어 올리자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갑자기 희미한 빛줄기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 역시 마고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저건!”
누구의 것인지 모를 작은 외침에 술렁임이 시작되었다.
어둡던 하늘에서 기다리던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그 모습이 퍽 낯설었다.
달의 가운데를 파낸 듯, 마치 가락지 같은 모습의 달은 하계의 이들도 처음 보는 것이라 술렁임은 점차 커졌다.
그리고 희미하던 그 모습이 강렬하게 각막에 새겨지는 순간.
하늘을 향해 뻗어있던 마고의 손이 움켜쥐어졌다.
“본인의 과오이며, 반성이지. 애먼 별을 너무도 고생시킨 고로, 미안하였어.”
천신 마고의 사죄라니.
“……마고시여.”
상제가 앓는 소리를 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운명이라는 이름 아래 가혹하고 모질게도 상처 입은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손을 대면 더 헝클어질 뿐이라 그저 지켜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단다.
그 매듭의 끝에서.
마고는 소녀의 얼굴을 한 채로 한없이 깊어진 시선으로 소희를 바라보았다.
두 계단 위에 서 있는 것은 소희였으나, 우러러보는 것 역시 소희였다.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끝을 마주하고 있는 압박감과 그것을 버티는 힘을 가진 이의 음성을 듣고 있자니 지난날의 상처가 모두는 아니었지만 아물기 시작했다.
“고생하였구나. 별도, 귀왕도. 그리고 상제께서도 모두.”
허니 실책을 그대로 덮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가림달을 담은 이 가락지를 남기니 가납하오.
마고가 움켜쥐고 있던 손을 펴들자, 작은 손바닥 위에 놓인 반지가 그대로 둥실 떠올라 환에게 쥐어졌다.
차갑고 단단한 그것은, 일찍이 환이 마고에게 건네받았던 반지와 똑같은 모양이었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반지를 내려다보는 환에게 마고의 음성이 날아들었다.
“맞아. 귀왕께 건네드린 그것과 한 쌍이지.”
하계의 지존에게 어울리는 반지로 준비하였어.
달을 담았거든.
마고는 환과 소희에게만 들릴 만큼 작게 중얼거리고는 눈을 찡긋해서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선물은 이것뿐만이 아니니, 그대들은 조금 더 기대하시오들.”
천신 마고의 배포가 겨우 달에 그칠 것인가.
그리고는 몸을 빙글 돌린 마고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상제와 휘를 향해 손을 뻗어 보였다.
마고의 손이 펼쳐지자, 그곳에는 열기를 품은 가락지 한 쌍이 쥐어져 있었다.
귀왕께 드리는 예물이 냉기를 품은 차가운 은빛이었다면, 상제를 위한 예물은 열기를 품은 금빛이었다.
“설마.”
“왜 아니겠어요?”
“그대들에겐 해를 담아 만들어 드렸지. 그대들은 태자와 태양의 아이를 보기까지 백 년의 유예를 둘 것이나 혼례는 다음 달 초삼일에 치르세요.”
하늘을 가리키며 웃는 마고의 의도가 너무도 또렷해. 상제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도 달을 삼킨 오늘처럼 태양이 삼켜지는 날인 듯했다.
“그러겠습니다.”
“이미 반지를 드린 고로 그날 나는 참석치는 못하지만, 서운타 생각하지 마시고.”
마고는 휘와 상제를 향해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백 년 뒤쯤 볼까요? 라고 덧붙이고는 박수를 쳤다.
짝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이 점점 또렷해지며 점차로 어둠이 걷혔다.
달 가운데를 파낸 것 같던 어둠이 옅어지는 것과 동시에 마고도 자취를 감췄다.
얼떨떨하고 신묘한 광경이었다.
그 누구도 마고께서 혼례를 주관해주신 적이 없었건만.
모인 이들은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그간 고생을 했다는 귀왕의 비, 새로운 달 마마를 진심으로 반기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귀왕 내외는 진즉에 자리를 파했지만 흥 오른 객들은 밤이 새도록 모두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즐기고 한담을 나누었다.
삼일의 잔치가 열렸다.
삼일의 밤과 낮은 삼천의 모든 이에게 새로운 하계의 안주인이 생겼음을 알리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아. 시왕들께서 즐거워 보이시니 정말 마음이 놓입니다.”
침전 들창으로 바깥 사정을 하염없이 내다보던 소희의 어깨가 안심한 듯 툭 떨어져 내렸다.
“혼례 첫날밤, 시왕을 신경 쓰는 새신부라니.”
“제 사정도 이해해주셔야지요. 시왕께서 대대로 대단히 까다롭다고…… 읍!”
팔을 잡아채는 소리와 함께, 푸념하던 소희의 입술이 곧장 막혀버렸다.
달큰한 포박 아래서도 감기지 않은 두 눈이 필사적으로 바깥의 눈치를 보자 이내 들창문도 닫혔다.
“이, 이건 좀!”
잠시간 떨어지는 두 입술 사이로 불평이 새어 나오기 바쁘게 사라졌다.
한가롭던 공기가 단번에 뜨겁게 달궈지며, 화촉이 꺼졌다.
방안을 밝히던 건 화촉뿐이었으나, 오늘은 온 사방에서 빛이 은근한 날이라 완벽한 어둠이 내리진 못했다.
남자의 긴 손가락이 어깨에서 도포를 벗겨내고, 허리띠를 풀러내는 것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 소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불 좀.”
드러난 맨어깨를 움츠리며 소희가 환에게 사정했다.
오늘밤 그의 신부가 되었으나, 도무지 이 부끄러움만은 당할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환은 그런 소희의 부탁마저 방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다시 급하게 입술을 겹치며 수줍은 앙탈을 삼켜버렸다.
겨드랑이 밑으로 파고든 손이 너무 쉽게 소희를 들어 올렸다.
들렸다는 느낌과 함께 곧바로 푹신한 침상 위에 뉘어지고 가쁜 숨을 터트리는 소희를 내려다보는 황금의 눈동자가 지척에서 빛을 발했다.
환이 짚은 팔 사이로 달아오른 두 몫의 숨이 소희의 뺨을 뜨끈하게 달궜다.
불안정한 호흡을 따라 흩날리는 그의 차가운 은발이 뺨을 스치는 것이 오히려 반가웠다.
금방이라도 델 것 같은 이 뜨거운 곳에서 그나마 기댈 곳은 이 한 줌의 머리카락이라니.
하지만 그마저도 마치 장막을 치듯 환의 어깨에서 흘러내려 소희를 완벽히 그의 두 팔 아래 가두고 말 땐,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마치 호랑이가 잡아 놓은 토끼에게 묻듯 의미 없는 말이었다.
“참기 힘들 때, 참지 않아도 된다면 어째야 할지 모르겠는데.”
상냥한 맹수가 목 아래를 긁는 듯한 낮은 소리를 내며 나른한 표정으로 웃었다.
기울어진 고개를 따라 드러난 목선이 야했다.
“응?”
대답을 재촉하듯 미소를 머금은 붉은 입술이 소희의 입술을 가볍게 스치고 떨어졌다.
꿀꺽-.
소희는 가슴 위에 올려진 두 손을 공손하게 맞잡고 잔뜩 긴장해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맞아.”
그리고 그 소리를 반갑게 맞은 건 환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어요.”
꼴깍.
삼키고 싶어요.
그 말을 끝으로 환은 주저 없이 고개를 꺾어내렷다.
차가운 달빛을 닮은 남자가 주는 열기는 무척이나 뜨겁고, 눈물이 날 만큼 짜릿했다.
동그란 이마와 보드라운 입술, 그리고 희고 가는 목덜미에 숱하게 떨어져 내린 입맞춤이 비같이 빼곡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마른 어깨를 지나, 두 손이 끝까지 가리고 있던 따뜻한 살결에까지 빠지지 않고 환의 숨결이 지나가고, 마치 살아있는 불을 박아 넣은 것 같은 환의 두 눈동자에 소희가 빼곡히 들어차자 습기를 머금은 달뜬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아, 환.”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와, 가늘게 일렁이는 홍안이 자신을 품은 남자의 금안을 다급하게 찾았다.
“쉬이-.”
새색시의 가녀린 신음마저 애틋하게 닿아온 입술이 뜨겁게 삼켜버리자 왁자지껄한 하객의 즐거운 웃음소리만이 남아 달이 지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빼곡하게 들어찼다.
밤기운을 충분히 머금은 달은 첫 햇살에 기꺼이 몸을 하늘 깊숙이 묻으며 비켜주었다.
그리고 발갛게 달아오른 햇살이 들창 너머 곤히 잠든 새색시에게도 닿았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마저 따끈하게 달구는 햇살은 마치 좋은 꿈이라도 꾸는 듯 하늘로 솟은 입꼬리도 예쁘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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