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별비 내리는 날 (4)
2018.08.13.
혼사를 준비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모든 것을 소희가 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들 소희의 결정을 바랐다.
“오늘도 요것 찌를실 것이지요?”
반요는 체념한 듯 소희에게 붉은 머리꽂이를 들어 보였다.
상천에서 그 난리통에 모조리 구슬이 뜯겨 앙상해진 것을 염휘가 하계에 내려와 다시 달아준 것이었다.
짤랑.
오히려 그때보다 풍성하고 구슬 색도 맑아져 소희 눈에는 세상에 저것보다 고운 것은 없었다.
“그럼.”
즉답이었다.
반요는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머리꽂이를 쑥 찔러넣었다.
혼례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큰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혼례복으로 지어 귀왕이신 염휘와 색을 맞춘 예장 한 벌과 귀문의 별이 쓰는 대비녀가 끝이라 어찌 보면 단출하다 할 참이었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염라의 불의 행렬은 어쩔 것이며, 이미 염라궁 후원마다 가득 메운 음식들은 그 누가 봐도 아찔할 만큼 대단했다.
아직 달도 뜨지 않았건만 염라궁은 모두 흥겨웠다.
소희는 걸쳐진 은빛 도포를 야무지게 여미며 면경에 요모조모 비춰보았다.
아이들이 작정하고 단장해준 덕에 그 어디 하나 부족한 곳이 있을 리 없건만, 긴장에 자꾸만 매무새를 다듬게 된다.
“아유, 곱습니다. 이제 슬슬 나가셔야죠.”
“아, 아직 달도 안 떴지 않니.”
놀란 소희의 목소리가 작은 새가 날 듯 포르르 떨었다.
“달이야 늘 떠 계시는 걸요, 뭐.”
제가 늘어놓은 고운 머리꽂이며, 팔찌까지 아무것도 걸쳐주지 않아 퉁나발이 된 입을 가리지도 않고 반요가 불평하듯이 대꾸했다.
“그럴 리가, 오늘은 이렇게나 어두운걸.”
소희는 반요의 말에 고개를 도리질 치며, 하늘을 가리켰다.
“……음. 뭐 밖이 대낮만큼 환한데 도대체 어디가 어둡다하시는 건지.”
반요는 보란 듯이 목을 빼 훤한 후원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어두울 리가 없었다.
낮보다 더 화려한 불들이 온 사방을 가득 메우고 붉게 타오르고 있어, 아침 동이 튼다 해도 믿을 법했다.
하지만 소희는 오늘 이상하게 하늘이 어둡다 생각했다.
“다, 달 뜨면 나가는 거랬잖니?”
새색시의 귀여운 앙탈은 통하지 않았다.
“달이야 늘상 떠 계신다니까요?”
등 떠밀리듯 나서던 소희가 더 이상은 못 버틸 것을 알고선 황급히 탁자 위에 놓인 것을 집어 들었다.
“마마!”
그런 소희를 향해 조양이 놀란 마음을 감추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왜?”
“두고 가세요, 네?”
조양뿐만이 아니라, 반요까지 소희의 쥐어진 손을 보며 애원했다.
“아니야, 선물로 주신 것이니 들고 가야지.”
염려 말아라.
오히려 생긋 웃으며 소희는 손에 들린 향낭을 고집스럽게 움켜쥐었다.
* * *
그것은 한 달 전, 서왕모께서 다녀가셨다며 이야기를 꺼낸 환이 내민 것이었다.
“서왕모께서요?”
그가 건네준 향낭은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꽤 눈에 익은 것이기도 했다.
곱게 마름질 된 솜씨며, 실을 꼬아 끈을 만든 것이 마치.
“아니, 직인께서.”
아아, 그렇지요?
제가 생각하던 것이 맞아 소희는 웃을뻔했다.
“직……인께서 오셨습니까?”
절로 경계하게 만드는 이름이었다.
소희는 목덜미에 오른 소름을 감추려 옷깃을 잡아당기며, 담담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직인은 그대를 바라는 눈치였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해 돌려보냈어요.”
환은 설핏 표정을 굳힌 소희를 보며 달래듯 말을 이었다.
놀라고 무서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믿고 마음을 터놓았으나, 직인은 소희에게 심연의 물을 먹이고 심지어 ‘암시’를 걸어 상천으로 가게 만들었다.
공간을 찢은 것은 소희였으나, 상천으로 보낸 것은 직인의 꾀.
소희에게는 그날의 기억이 상처로 남아있었다.
그대로 두어도 됐고, 환은 직인을 두둔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파르라니 식어버리는 소희의 눈동자에 서리는 불안감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뗐다.
“직인께서 전대 상제의 분풀이를 당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네.”
“그 일로 그만 직인의 영체에 흠이 생겼습니다. 깨지진 않았으니 요괴가 되진 않았지만, 영체에 생긴 흠은 성정을 흐트러뜨리고, 악랄하게 만들지요. 더러 기억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네.”
환은 소희의 손을 잡으며 시선을 마주쳐왔다.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네. 압니다.”
소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이 받아들이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
굳은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억지로 떠미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기꺼이 태자를 용서했듯. 그대도 직인에게 다시 한번 마음을 열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환은 향낭을 쥔 소희의 손을 힘줘 꾸욱 눌러주었다.
“상냥하신 분 아니십니까.”
“……등 떠미는 것입니까?”
“설마요.”
톡톡.
미소처럼 가벼운 손짓이 소희의 손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 환은 두 번 다시 직인의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보름이 지나 말을 꺼낸 것은 소희였다.
“향낭을 주신 저의가 무엇일까요.”
조반을 받던 중 뜬금없이 터진 질문이었건만, 환은 마치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처럼 매끈하게 말을 이어받았다.
“사랑초를 말린 것을 넣었다고 하셨습니다.”
뜬금없는 질문만큼이나 동떨어진 답이 돌아와 소희는 되물었다.
“사랑초요?”
“운명을 짓는 분 아닙니까. 온갖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터, 혼인을 앞둔 신부에게 사랑초를 말려 향낭 가득 담아 보내주면 귀애받고 잘산다더라 하는 말을 전하시더군요.”
“사랑초?”
소희도 아는 것이었다.
인계에서도 있었던 자줏빛의 풀로, 흔하디흔해 잡초같이 천대받는 것치곤 이름이 과하다 핀잔 듣던 것이라 기억이 생생했다.
“향이 날 리가 없는데.”
달콤 상큼한 향이 물큰 풍기는 향낭을 들어 보이며 의심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자, 환이 건네받아 향낭을 열어 보여주었다.
“심연의 물 대신, 천도화 잎을 말려 넣으셨지요. 삿된 것에 상처받지 마시라 새신부에게 갖은 축원을 담으셨다 했습니다.”
더 궁금하신 것이 있습니까.
담백한 시선에 소희는 보름 동안 의심을 키워온 것이 무안해졌다.
“……쉽게, 믿을 수 없는 제 처지를 모르심이십니까.”
절로 뾰족한 목소리가 샜지만, 그 안에 숨긴 것은 끝내 직인을 의심하고 만 자신에 대한 옅은 혐오.
소희의 민망함을 눈치챘음인지, 환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저 역시 아직도 그대가 내궁에 계신지 늘 확인합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조바심이 담겨있는 말에 소희는 환을 다시 바라보았다.
잔잔한 것 같은 그의 눈동자는 웃는 눈매에 반쯤 잠겨 있었으나, 황금으로 물든 것을 가릴 수야 없었다.
“……태, 아니 상제껜 이미 휘가 내려졌습니다.”
“알아요. 그대가 아직 태자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하듯. 나도 아직 태자를 경계하는 편이 익숙합니다.”
“네…….”
“그러니, 그대의 직인을 향한 마음이야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시간을 가지세요.”
환은 소희에게 당부하듯 조용히 말을 이었으나, 소희는 그것이 환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임을 모르지 않았다.
쉽지 않은 일임을 서로가 알고 있다.
상처는 아물 것이고, 나쁜 기억도 옅어지다가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엔 많은 시간과 그보다 더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무척 애를 쓰고 있는 환과 엄청난 용기를 끌어모아야 했었을 직인을 떠올리며, 소희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뗐다.
“……시간만으로 되겠습니까.”
“그럼……?”
다정히 묻는 남자는 잔잔히 미소짓고 있었고, 그의 따사로운 표정은 소희의 마음을 조금 더 너그럽게 만들었다.
“평생 이럴 수는 없으니, 이겨내야지요. 이번 혼사에 괜찮으시다면 직인께도 걸음 해주십사 초청장을 보내드릴까 합니다.”
조금 전까지 신경을 세우던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말끔한 얼굴을 한 채 환의 허락을 구하는 소희의 모습은 다정하고도 단단했다.
“……그대는.”
환은 한 손을 들어 올려 턱을 괴고는 감상이라도 하듯 느린 시선으로 소희의 모든 것을 담았다.
무척 지루하고, 난처한 시간이었을 텐데도 소희는 태연하게 그의 시선을 받았다.
“빨리 성장하시는군요.”
아마도 이쪽이 본성이겠지만.
뭔가를 엿본 듯 어깨를 작게 으쓱이며, 말을 잇는 환은 여태 시간을 끌던 것과는 달리 빠른 답을 주었다.
“부르세요. 마다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럼 내궁으로 돌아가 바로 서신을 쓰렵니다. 그런데 전 어떻게 보내야 합니까?”
금시조를 내주시렵니까?
일전에 주신 아이는 상천에서 소동에 휘말려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환은 소희의 말에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어버렸다.
“그대, 금시조는 귀왕이 상제나 마고를 청할 때 외에는 꺼내 들지 않는 새입니다.”
왕의 새란 말이에요. 또 다른 왕, 분신.
“직인을 청하시는 것도 좋으나, 금시조는 과하니 그대의 새를 꺼내세요.”
“저의 새요? 저도 전령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귀문의 별이 되어서 전령 하나 없어서야 쓰겠습니까.”
한계를 두지 마세요.
그대는 이미 인간이 아닌 것을요.
이번 생을 끝내고 천신이 되실 분께서 한계를 두는 버릇을 가지시면 고통받는 것은 그 아래 어린 생명들입니다.
“풍천이 도를 꺼내던 모습을 기억하십니까?”
“이렇게 쓰윽?”
소희는 그저 흉내를 내려 했다.
손바닥에 도를 꺼내 드는 풍천의 모습을 기억한다는 것을 알리려 했음이었건만.
푸드덕-
“엄마야!”
왼손바닥에서 정말로 시늉이 아니라 새가 잡혀 올라왔을 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진정하세요.”
어깨를 떨며, 그런 말씀 하시지 말란 말이에요!
뻔히 웃고 있는 게 다 보인단 말이에요.
소희는 환을 향해 속으로 투덜거리며, 꺼내든 새를 얌전히 손바닥 위에 놓아주었다.
깜짝 놀란 탓에 저도 모르게 콱 쥐지는 않았는지 뒤늦게 걱정이 되었지만,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
“흠. 저는 하얀 새네요.”
매라고 해야 하나.
그러기엔 눈같이 하얀 깃털이 마음에 걸렸다.
소희는 제가 꺼낸 새를 보며 환의 답을 기다렸다.
“……맹금류를 꺼내실 줄이야.”
환은 이번에도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간헐적으로 삼키는 숨이 역시나 웃음을 참는 것이라 소희는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자신이 꺼낸 새에 마음이 더 쏠려 못들은 체 그의 답을 기다렸다.
“그대는 정말 인간의 습성을 가지고 오시길 천만다행입니다.”
“왜요?”
답해주지 않을 것이란 걸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궁금했다.
역시나 환은 답해주지 않고 용맹하게 생긴 소희의 새를 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주, 아주…….”
말을 신중하게 고르는 그에게 소희가 언젠가 보았던 풍천의 새를 떠올렸다.
“풍천 것보다 제 것이 훨씬 늠름하지요?”
“……네, 훨씬 덩치도 좋구요. 다부져 보입니다.”
“네?”
“네. 그대는 너무 빨리 본 성품을 찾지 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지한 듯 농담 같은 말에, 소희의 고개가 살짝 갸웃거렸으나, 환은 잘생긴 새를 한번 쓰다듬었을 뿐이었다.
“발톱도 날카롭군요.”
“흰 매를 꺼내셨다고요?”
아수라가 소희의 말에 즐거운 듯 웃음을 감추지 않고 높고 긴 소리를 터트렸다.
적발을 흐트러뜨리며, 깔깔거리는 아수라는 정말이지 낯설기 그지없었다.
“흰 매라니.”
퍽 우스운 소리를 들은 듯 무릎을 두드리며 한참을 웃던 아수라가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을 닦으며 소희에게 뒤늦게서야 설명을 해주었다.
“전령은 자신의 영력으로 빚어낸 것입니다. 독립된 생명체가 아니에요.”
“알아요.”
“그것은 자신의 영력에서 기인한 것이니 새의 모습은 주인의 영력을 닮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아……앗?”
“발톱이 날카롭다고요? 아하하하하하핫. 염휘께서 어떤 표정이셨는지 정말로 궁금한 것을요.”
좋은 구경을 놓쳤지 뭡니까.
소희님, 부디 이 아수라의 목숨 하나를 거두셨던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무슨?”
알쏭달쏭한 말에 소희가 멍하니 되묻자, 아수라가 눈을 찡긋, 휘어뜨리며 애교 있게 덧붙였다.
“소장이 실수를 더러 하더라도, 봐주십사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흰 매라니.
아수라는 달 마마 중 역대로 꼽힐 것이라며 내도록 웃다가 소희의 눈초리가 매서워지자 그제야 웃음을 멈췄다.
“보통은 청조같이 작은 것을 뽑아내시거든요. 심지어 담대하기로 삼천에 소문이 나 있는 전대의 달 마마께서도 수리를 뽑아내셨건만. 흰 매라니. 크흐흣.”
“아수라님!”
“예에. 마마, 소장 불러계시옵니까아.”
말끝을 쭈욱 늘이는 그녀는 분명히 소희를 놀리고 있었다.
아수라의 놀림이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와 이런 살가운 사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해 흐뭇했기 때문에 소희는 그저 작게 콧방귀를 뀌고 말았다.
“흥.”
“흰 매를 꺼내신 걸 알면 다들 모르긴 몰라도 저보다 더할 것입니다.”
크흐흣.
풍천과, 낮의 아수라의 놀림까지 견뎌야 한다니.
소희는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자신의 전령새가 싫진 않았다.
하계로 와 자신감 없고, 능력이 없는 것 같아 쓸모없다 자학하던 그때를 떠올린다면.
이 멋지고 근사한 새를 뽑아낸 것이 오히려 자랑스럽기만 했다.
흰 매라니, 이 얼마나 근사하냔 말이다.
사자들의 달 마마이니. 유약한 것보다 천배 만배 나으리라.
소희는 깔깔거리고 웃는 아수라를 보며 저도 따라 생긋 웃었다.
그리고는 웃는 아수라에게 보란 듯이 그녀의 하얀 매를 꺼내 보여주었다.
“……!”
금시조만큼은 아니나 힘이 서린 날카로운 눈매, 탄탄한 두 다리와, 갈고리같이 위협적인 발톱을 가진 하얀 매는 무척이나 근사했다.
“이…… 이렇게 크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잖습니까!”
놀란 아수라의 표정은 충분히 봐둘 가치가 있었다.
“매니까요.”
소희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감추지 않고 자랑스레 새를 어깨에 올려주었다.
처음에 꺼낼 때는 두 뼘만 했던 작은 것이, 이내 영력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자 훌쩍 자라났다.
데구르, 노란 눈알을 굴리는 매가 소희의 머리에 꽂힌 환의 영력환을 탐내듯 바라보았다.
“하아…… 기가 막혀 웃음이 나는군요.”
소장의 새보다 더 크다니.
아수라는 어쩐지 조금 분한 표정을 해서는 그녀의 새를 불러냈다.
검은 날개에 꽁지깃이 붉은 새는 무척 영리하고 우아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사나운 포식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솔개입니다.”
“솔개네요.”
새의 종류야 잘 모른다지만, 척 보기에도 소희의 새가 훨씬 늠름해 소희는 절로 우쭐한 표정이 되었다.
“소장,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새를 들여다보던 아수라가 황급히 자리를 떴으나, 이번에 웃는 것은 소희 쪽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모두를 기함하게 하던 소희의 늠름한 전령새는 그 자태만큼이나 몹시 훌륭하게도 첫 심부름을 해냈다.
푸드덕-
거친 날개소리와 함께, 새는 소희에게 직인의 감사와 축하가 담긴 참석하겠다는 답신을 받아 들고 왔던 것이다.
“꼭 가져가셔야 합니까!”
반요의 뾰족한 칭얼거림이 소희를 상념에서 일깨웠다.
“그럼, 가져가야지. 오늘 직인께서도 오실 터이니, 꼭.”
소희는 허리띠를 따라 둘러진 금줄에 향낭을 보란 듯이 매고는 걸음을 뗐다.
허리띠에 매어진 향낭이 걸음걸음 향긋한 천도향을 풍겼다.
“가자꾸나. 좀 전까지 재촉하던 아이들은 어딜 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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