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101화 (101/114)

101. 이어지는 시간 (8)

2018.07.20.

작은 손가락이 튕기며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그러자 온몸이 포박당하고, 입이 막힌 상제가 앞으로 끌려 나왔다.

그 뒤를 이어 구겨진 옷가지처럼 형편없이 처박혀 있던 휘도 함께 끌려 나왔다.

정신을 차린 지 얼마 안 된 듯, 불안하게 눈을 굴리는 모습엔 지우지 못한 얼떨떨함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이 태자에게 닿았을 때, 바르르 떨리던 시선이 순식간에 단정하게 정리되었다.

까맣게 죽어가던 낯색도 이미 돌아와 한낮의 태양을 머금은 듯 찬란하기까지 한 자태에 그의 무사함이 드러났던 것이었다.

휘가 진정되었음을 본 것이었을까.

“어서 말하렴.”

마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재촉했다.

“이대로라면 용서받지 못할 테니, 어서 말하려무나. 허락된 시간이 촉박하구나.”

가느다란 손가락이 허공을 긋자 포박이 풀리고, 막힌 입이 자유로워졌다.

“마, 마, 마고시여.”

그러나 휘는 포박이 풀리자 조금 전까지 단정했던 태도는 대번에 버리고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체면도 버린 듯 마고에게 엎드려 기어가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그 모습에 태자가 기어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휘가 털어놓을 죄가 얼마나 대단할지 무서웠던 것인지, 그도 아니면 휘의 저런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인지는 태자도 몰랐다.

시선은 돌렸다 한들, 절박한 휘의 목소리가 고막을 타고 들어오는 것까진 막을 수 없어 그는 절절한 애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휘는 정말이지 통사정을 하는 중이었다.

“이제 곧, 좌를 물릴 참입니다. 이렇게 하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노인의 목소리가 애처롭게도 떨렸다.

“그래. 이 좌를 물리기 전에 네가 날 찾아올 거라 기대해 여태 기다렸지.”

그러나 마고에게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돌아오는 대답은 일말의 재고 없이 가차 없었다.

“마고시여.”

휘는 마고의 말에 얼굴이 핼쑥하게 질려버렸다.

마고는 휘를 그냥 넘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단정한 목소리에 담긴 단호함에 휘는 엎드려 빌던 것을 멈추었다.

“이제, 얼마나 남았는가 상제?”

“길게 잡아 이 각입니다.”

“과히 꼴사납구먼.”

처음으로 마고에게서 나온 힐난조의 말이었다.

생긋 웃는 귀염진 입술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차디찬 말에 바닥에 엎드려 사정하던 휘의 등이 볼썽사납게 움찔했다.

“이 각이면 충분하니, 어서 말하시게. 휘.”

더 이상 매달려 볼 여지조차 없이 끊어지는 말에 바닥에 엎드려 사정하던 휘가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 우는소리를 했던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덤덤하고 오만한 표정이었다.

모두가 익숙하기도 한 원래 휘의 표정.

주름진 눈을 끔뻑이는 그 모습은 모든 것을 체념한 것 같았으나, 한편으로 몹시 독 올라 보였다.

염휘의 품에 안겨있던 소희가 그녀의 사나운 눈살에 가늘게 떨며, 염휘의 품에 한껏 파고들었다.

상천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태자의 전으로 찾아놓은 ‘휘’께서 저를 얼마나 마구잡이로 내동댕이치며, 날 선 눈빛을 쏘아 보냈는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해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떨지 마세요.”

염휘가 다정한 목소리로 소희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쥐며, 더 이상 당길 수 없을 만큼 힘줘 소희를 그의 가슴에 바짝 붙였다.

소희가 휘를 보자 사시나무처럼 떠는 모습에 절로 노기가 치밀었다.

휘가 아공간을 찢고 소희를 돌려보내주었다 들었지만, 염휘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돌려보내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공간을 가르고 사정없이 내던져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비명과 함께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던 소희를 받았던 두 손에 아직도 그날의 충격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죽어버리라고 떠다민 것이었다.

죽어도 상관없다고.

다쳐도 괜찮다고.

함부로 던진 것을 염휘라고 모를 리 없었다.

“휘께서 보내주셨답니다.”

소희가 저 말을 하며 잠깐 들이켠 숨에 배인 공포를 그가 몰랐을까.

하지만 염휘가 끝까지 모르는체했던 것은 그가 일을 덮길 원했고, 소희가 묻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휘에게 찾아가 따질 셈이었다면, 태자의 일이 꺼내질 참이었으니 강요된 인내를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작고 마른 어깨를 쓸어내리는 그의 손에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실려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별을 다독이는 귀왕의 따뜻한 마음씀씀이를 모르심인가.

“흥.”

웃기는 꼬락서니군.

그 모습을 눈 끝으로 담고 있던 휘에게서 표정만큼이나 삐죽한 말이 새어 나왔다.

도무지 저런 이가 어떻게 천의 어머니를 자청하던 ‘휘’였는지 알 수 없었다.

염휘는 기가 찼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저렇게 안하무인으로 굴 수 있다는 데에 질려버렸다.

저런 악독한 이를 눈에 담아 좋을 것이 무엇인가.

염휘는 손을 들어 소희의 시선을 가려주었다.

“…….”

염휘를 지켜본 것은 휘 하나만이 아니었다.

태자 역시 새로 내려진 소희가 놀랄 것을 염려해 염휘께서 하신 그대로, 휘의 사나운 시선을 가려 주려 했으나 마고께서 내려준 새 휘는 귀왕의 별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눈을 가리려 내밀어준 손을 맞잡아주었던 것이다.

“배려하시는 겁니까.”

생긴 것은 똑같았으나 그 성격이 자못 다부지고, 다정했다.

“이렇게나 신경 쓰시다니, 자상하신 분이십니다.”

그 상황에서 오히려 태자를 향해 방실거리며 웃어주는 그녀의 벽안이 보석같이 빛이 났다.

“…….”

“괜찮으십니까?”

기묘한 기분.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나는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느낌이 어색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늘 소희를 바라 애를 태우던 그것과는 다른 한없이 편하고 기분 좋은 감각이었다.

소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똑같은 목소리를 해서 제게 애정 어린 시선을 맞대오는 ‘휘’를 보며 태자는 순간 정신이 아득했던 것도 같았다.

태자는 지금 모후이자 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무척이나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지난 이십여 년간의 세월에 얽혔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었건만.

이 낯설고도 익숙한 눈앞의 새로운 소희에게서 느끼는 이 기분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다는 충동이 거세게 올라와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열기를 물고 오르는 심박이 귓가를 울리고, 날숨을 따라 기묘한 흥분이 흘렀다.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저를 올려다보는 ‘휘’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태자를 부른 건 마고였다.

“어머나.”

놀리듯 목청을 돋우며 태자의 시선을 받은 마고는 자상히 그를 다독였다.

“명아, 이젠 네 휘를 아무도 빼앗아가지 않을 것이니 먼저 이야기를 듣자꾸나.”

“항상. 항상 마고께선 그러셨지요.”

태자를 다독이는 마고의 말에 앙칼지게 대답을 한 것은 다름 아닌 휘였다.

그녀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휘’는 어디로 간 것인지 원수 대하듯 마고를 쏘아보기까지 했다.

“저런. 네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이야.”

딱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마고의 말이 도화선이라도 된 듯, 중요한 일에는 입을 꾹 다물고 서서 빈정거리기만 하던 휘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그래요. 이렇게 된 건 모두 제 탓입니다. 만족하십니까? 모두의 운명을 휘저어 버린 게 바로 이 손이다 이 말입니다.”

주름지고 형편없이 굽어든 두 손을 거침없이 들어 보이며 휘는 형형한 눈빛을 쏘아 보냈다.

그것은 마고를 지나, 염휘와 태자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향한 원망과 같았다.

“이렇게 들으니 후련하십니까?”

“휘야…….”

제 잘못을 이르는 것인지, 마고에게 죄를 따져 묻는 것인지 모를 만큼 휘의 태도는 사나웠다.

안타깝게 울리는 마고의 목소리에 휘는 한층 더 기세등등하게 소리 질렀다.

“하지만 아십니까? 저를 이렇게 만든 건 바로 마고셨습니다.”

쨍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원망과 분노가 점철되어 귀를 아프게 울렸다.

“내가 그랬다니?”

“그럼요. 마고께서 그러셨지요.”

“휘야.”

위아래도 없이 함부로 날뛰는 휘를 향해, 마고가 아량을 베풀어 점잖게 불렀으나 휘는 오히려 더 길길이 날뛰었다.

휘를 진정시키려던 마고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제 죄를 고하는 것이 아닌, 휘는 실상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분한 듯 발을 구르고,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그리고는 핏발이 쏠려 붉어진 눈을 한 채 마고를 감히 손가락질로 가리켰다.

“마고께서 이 모든 것을 자초하셨습니다! 기억 안 난다 하실 참입니까? 설마 천신께서 그럴 리가 있습니까?”

“진정하거라.”

“진정이요? 진정이요? 지금 제가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이 죄가 어째서 제 몫입니까!”

치우친 처사를 하신 마고의 몫이지!

이것이 어째서 오롯이 제 몫의 죄란 말이십니까.

지금 저를 치죄하심입니까.

휘는 말끝에 소리 높여 웃었다.

깔깔거리며 웃는 휘의 눈꼬리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

“이십여 년의 세월을 마음 졸이며 살았습니다.”

제가 잘못했다 생각했고, 죄를 지었다 믿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말입니다.

-그것이 어찌 저만의 죄입니까?

“청전의 전의 그 날을 잊으셨다 말해보십시오!”

소리를 지르며 막말을 하는 휘는 미치광이 같았다.

“……그날이.”

이쯤 되면 마고께서 휘를 멸하셔도 과하지 않을법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마고에게서 슬픈 목소리가 터졌다.

“그날이 너를 이렇게 만든 것이더냐.”

도대체 그날 무엇이, 너를 이렇게나 상처 냈던 것이냐.

이어지는 참담한 마고의 목소리에 휘가 노인의 모습을 한 채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

“마고께서 절 이리 만드셨습니다! 제 아이를, 제 아들을! 저렇게 못살게 괴롭히신 겁니다! 귀왕을 죽이시고, 아수라를 죽였습니다!”

휘는 모두 마고의 탓이라며 울음 사이사이 원망을 숨기지 않았다.

* * *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는 무거운 공기를 가르고 휘의 발광을 꾸지람한 것은 상제였다.

“그만하지 못하겠소!”

지긋지긋해서 원.

“평생을 남 탓이오? 어째서 당신은 끝까지 이러는 것이야!”

“남 탓이라구요? 그래서 남 탓 안하는 상제께선 명이를 죽이려 한 것입니까?”

휘는 발작적으로 소릴 질렀다.

“그 아이를, 감히 내 아들을 죽여 입막음하려고? 퍽이나 잘나셨습니다. 네?”

“운명의 베틀을 휘저은 당신만 하려고?”

휘께서 벌려놓은 이 더러운 꼴을 누군가는 나서서 치워야 할 거 아니오?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직접 하시지 그랬습니까.

옥신각신 서로에게 날을 세워 소리를 지르는 상제 내외의 모습은 무척이나 추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휘가 마고께 대들던 모습보다 훨씬 더.

숨소리 하나 없이 차게 죽어버린 공기를 가르고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태자를…… 왜? 운명의 베틀……?”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 못 한 소희의 목소리였다.

작게 중얼거린 소희의 목소리에 휘가 기민하게 반응했다.

염휘에게 안겨 간신히 두 눈만을 내놓은 소희를 차갑게 쏘아보며 점잖지 못하게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 내가 휘저었단다. 아니 어째서 이번 대의 별은 이런 꼴이람? 응? 그 잘나신 별께서?”

어째서 이렇게 아둔하신 것이람?

휘는 소희를 향해 서슴지 않고 비아냥거렸다.

“……무슨?”

“안 그렇습니까, 마고시여? 금번의 별은 어째서 저런 꼬락서니랍니까? 항시 당차고 자애로워 당신께 한껏 사랑을 받던 별 아닙니까?”

휘는 소희와 마고를 번갈아 가며 노려보았다.

으드득 이를 갈며, 증오를 담아 쏘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가, 네 모습에 내 마음이 무척…… 참담하구나.”

마고는 이 순간에도 착실히 무너지는 육신으로 버티고 선 휘를 보며 애잔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리 없잖느냐. 별도 휘도 모두 내가 점지 한 아이인 것을.”

“그러셔서 청천의 전에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그러셨습니까!”

“그만 좀 해요!”

마고는 순식간에 난전을 벌이는 둘을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천신 마고, 이 세계와 함께 명을 같이 하는 자.

그녀의 기억은 역사였고, 세계의 발자취.

그 어느 것 하나 잊혀진 것 없고, 비틀린 것이 없었다.

마고는 휘가 말하던 청천의 전 바로 문제의 그날을 떠올렸다.

이제는 전대라고 불러야 할 귀왕과 상제, 그리고 그들의 비까지 모두 함께 모인 자리였다.

유난히 평화로웠던 탓에, 요괴를 정화하는 것을 늦도록 미루었지만 귀왕의 태자가 성장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태자의 성장은 곧 천의 주인의 교체를 의미하는바.

그래서 귀왕은 치세에 반드시 한번은 치러야 할 것이라, 상제께 부랴부랴 청천의 전을 청했던 것이다.

하계의 사자들을 모아 군대를 꾸리고, 만월의 가루를 챙겨 나서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으나, 차마 고단하다 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청천의 전’이라고 부르기도 무색하게 요괴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 정도인 줄 알았더라면 귀왕은 그저 사자를 천의 경계에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생각했다.

굳이 바쁘신 상제까지 나설 일이 아니었다.

기뻐해야 할지, 허탈하다 해야 할지.

귀왕의 커다란 손이 하얀 찻주전자를 집어 들었다.

쪼르르륵-

자기잔에 향긋한 찻물이 넘실거리도록 채워지고, 앞에 놓인 잔을 들어 차를 음미하던 귀왕이 멋쩍은 목소리를 냈다.

“이거야 원, 차를 마시는 여유라니. 이래서야 청천의 전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럽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긴장하여 달려왔건만. 갑주를 괜히 입었나 봅니다. 하핫.”

객쩍은 농담을 곁들이며 차를 즐기던 상제까지.

둥그렇게 둘러앉은 천의 내외들과 마고, 모두의 얼굴은 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여유로웠다.

“글쎄, 걱정되어 달려왔건만. 괜히 왔다 싶어.”

마고께서도 한마디 거들었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하시며 유례없이 청천의 전에 친림하신 터였다.

마고께서 함께 해주실 줄 몰랐던 터라, 귀왕과 상제 역시 몹시 긴장을 했으나. 결과는 이토록 멋쩍은 것이었다.

전시 중에 한가롭게 찻물을 즐기며 한담을 나누는.

마고께서도 이 자리가 파하면 돌아가신다 하실 정도니, 이제 내일로 해서 군사도 물릴 참이었다.

다들 미소 아닌 미소를 물고 마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그것이 끝이 아닌 듯 마고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금번에 이토록 여유로운 건 아마도 그건 달 마마 자네 덕일 테고.”

찻물을 삼키던 마고의 시선이 귀문의 별에게 닿았다.

“예에?”

뜻밖의 소리에 놀란 별이 되물었으나 마고의 낯뜨거운 칭찬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월력을 잘 다스리시니 요괴가 제대로 자랄 수가 없는 것이지. 쉽지 않은 일을 잘 해내셨어. 덕분에 귀한 목숨 여럿을 구하셨으니, 장하오.”

별의 귀감이 될 것이야.

마고는 별을 보며 몹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연신 끄덕이는 고개를 따라 흔들리는 형형색색의 머리타래가 현란했다.

“과하신 칭찬이십니다.”

별은 놀란 것도 잠시, 특유의 덤덤한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흔들어 마고의 칭찬에 겸손하게 대꾸했다.

“생전 영들이 좋은 기운을 품고 살다 하계로 넘어오게 살펴주시는 휘께서 들인 공이 어찌 작다 하겠습니까. 실제로 휘의 치세하에 보내지는 영들이 깨지는 일이 현저히 적었답니다.”

별은 가려진 휘의 공덕을 꺼내 마고께 소상히 아뢰었다.

요괴는 하계에서 나는 것이나, 생전에 잘 돌보아 깨지지 않을 좋은 기운을 품게 해주는 것은 바로 휘의 몫.

그러니 오늘의 이 일은 휘께서도 한몫 단단히 하신 참이었다.

별의 칭찬에 얌전히 찻잔을 드는 휘의 두 볼에 수줍게 홍조가 덧그려진 것도 잠시.

이어지는 단호한 마고의 말에 그만 말랑한 두 뺨이 색을 잃고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겸양도 정도껏 하려무나. 네가 얼마나 하계를 단단히 꾸려온 것을 내 모르는 바 아니란다. 야문 손으로 자아낸 황금사의 자태가 아직도 어른거리는구나. 그 강보에 싸안아 키운 아이 역시 훌륭타 들었느니.”

“……그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훌륭하게 네 소임을 다하였느니라.”

마고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마치 마지막인 듯 별에게 말을 남겼다.

마고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옅게 굳었다.

모두의 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방금 마고는 별에게 죽음을 예고하셨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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