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이어지는 시간 (7)
2018.07.16.
‘죄인’의 모습으로 죄를 청하는 태자를 내려다보던 마고의 작은 입술이 달싹이며, 답이 아닌 질문을 던졌다.
“정녕 네가 과욕을 부린 게 확실하느냐?”
“……네.”
어쩔 수 없는 긍정.
궁지에 몰린 자가 참혹하게 내뱉는 긍정은 거짓보다 못한 것이었다.
마고는 태자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운 눈매를 가늘게 밀어 눈꼬릴 세웠다.
“정녕, 과욕이다 이 말이냐. 네 죄다. 이 뜻이고?”
한 자 한 자 끊어 말하는 마고의 시선은 이미 태자 너머의 어딘가로 향한 지 오래였으나 머리를 조아린 태자와 그를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떨군 염휘는 알지 못했다.
죽기를 각오한 태자에게선 다시 긍정의 말이 새어 나왔으나, 마고는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다시 한번 목청을 돋워 되물었다.
“네 생각도 그러하느냐?”
그래서 마고가 또다시 물었을 때, 염휘는 태자를 가로막고 섰던 것이다.
천신마고께서 제 아우를 벌하실까봐 염려되어, 그것이 저를 향한 질문인 줄 알고.
미우나 고우나 태자는 염휘에겐 어린 시절의 그 아이였고, 그래서 늘 모질어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염휘는 태자 앞에 서고 나서야 마고의 시선이 그들 너머를 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기분 나쁜 예감이 등줄기를 사납게 훑어 올렸다.
전신이 빳빳하게 굳고, 저도 모를 노기가 치밀었다.
되짚어 생각하니 마고의 말은 대단히 의미심장했다.
마치,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소행인 것처럼 들렸다.
지금 마고의 시선이 어디의 누구에게 닿아 있는지 알아버릴 것 같아 염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뒤돌아 누구인지 두 눈으로 보면, 절대로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형님……?”
기묘한 정적에 고개를 든 태자 역시 마고의 시선과 염휘의 태도에서 무엇을 깨달아 버렸다.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차오르는 분노.
그것은 다시 머리를 조아린 태자도 마찬가지였는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느라 그의 마른 등이 크게 오르내렸다.
“운명이라, 이렇게 지독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잔뜩 쉰 목소리에 알알이 들어찬 분노가 옅게 떨렸다.
태자는 여전히 돌바닥에 시선을 대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투둑-.
시큰거리는 숨소리 사이로 습한 소음이 울렸다.
투둑
툭
그의 손등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점차로 늘어났다.
“운명이라 버텨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명아.”
이 설명하지 못할 심사야 염휘라고 다를 바 없었지만, 염휘는 무너질 것 같은 상태자를 달래듯 불렀다.
그 역시 잔뜩 잠긴 목소리였으나, 태자는 염휘의 목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형님.”
어린 시절이후로,
휘를 발견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소리 내 부르지 않았던 것이었다.
휘를 가진다 함은 ‘형님’을 배신해야 하는 일이라, 태자가 포기했던 다정한 부름이었다.
그래서 소희를 포기한다 마음 먹은 그때부터, 태자는 염휘를 귀왕이 아닌 형님이라 불렀던 것이었다.
태양궁의 대전.
차가운 돌바닥에 꿇려져 그보다 더욱 시린 마음을 혼자 여미며 소리 내 불렀다.
형님이라고.
극한에 몰린 지금 태자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 참혹한 심사를 알아줄 이는 같은 운명에 괴로워했던 염휘뿐이라.
태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는 얼굴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염휘를 올려다보며 다시 한번 불렀다.
“형님!”
분노로 가득 찬 울부짖음이었다.
어린 시절,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여주던 ‘형’을 찾아 부르던 그 표정으로, 태자는 상처 받은 모습을 그대로 내보이며 환을 찾았다.
여직 미소짓던 마고까지 눈을 감아버릴 처량한 표정이었지만 염휘만은 그에게 미소지었다.
“오냐.”
“형님.”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며, 동기간의 정을 저버린 날을 후회하는 태자의 피 같은 사죄였다.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미간을 일그러뜨린 염휘는 시종일관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우……리가 누가, 누굴 용서한다는 것이겠느냐.”
그저 멋모르고 서로에게 상처 내기에 바빴던 것을.
제 상처에 허덕이느라 버티기도 벅찼던 것을.
하늘거리는 그의 은발이 차게 빛을 뿌렸다.
풍성한 속눈썹이 내리뜬 그의 홍안을 단단히 감춰, 적어도 염휘는 황금으로 물들어 난폭해진 제 심사를 간신히 감출 수 있었다.
태자.
또 다른 이름의 상처받은 자를 일컬음이었다.
염휘가 감히 그를 치죄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저것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간의 가슴앓이가 얼마나 독했는지.
알기 때문에 그는 태자를 끝까지 미워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의 순간에 항상 그를 용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의 단죄를 바라는 염라의 불들에게 ‘상천의 지존’의 자리가 비게 둘 수는 없다 못 박았고. 자신 역시 그렇게 속이려 했다.
그래서.
소희의 영이 부서졌던 그 순간에도 그녀를 따라가겠다 청했을 뿐, 이 일의 원흉인 태자를 단죄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울컥.
가슴 깊은 곳에서 용암같이 뜨겁고 사나운 것이 순간순간 그의 심장을 찢고 넘치려고 했다.
파라라라락.
거칠게 비단이 떠는 소리가 적지 않게 울렸다.
“진정하거라.”
마고는 염휘가 드디어 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끓어오르는 심사를 터트리려 함을 눈치채고 조용히 그를 불렀다.
“환아, 염휘야. 내 아이야.”
“……마고시여.”
“명아, 내 가여운 것.”
“…….”
마고는 넝마가 되도록 마음이 찢긴 두 젊은 왕을 보며 천신의 목소리를 냈다.
“이것 또한 안배된 운명이었단다.”
이겨내거라.
이미 은은히 빛을 뿌리는 마고는 소녀이며, 천신인 원래의 모습을 감추지 않고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허나. 너희가 본 것이 전부는 아니지.”
운명은 아무도 붙잡을 수 없는 것.
막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 도도한 흐름을 가진 것이지.
그 장대한 흐름에 휩쓸려 고생한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운명이 늘 고약하기만 한 것은 아니란다.
큰 울림을 가진 마고의 목소리가 잔뜩 흥분한 이들을 진정시켰다.
천신의 권능을 담은 목소리에 들끓던 영력이 가라앉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마고는 염휘와 태자가 한결 진정된 것을 보더니 다시 매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대번에 가벼운 걸음으로 콩콩 뛰듯 소희에게 다가갔다.
순식간에 변한 그녀의 반응에 염휘와 태자가 놀란 것도 잠시,
눈을 감고 부서진 단 위에 뉘어져 있는 소희의 가슴에 손을 담구는 모습엔 경악하고 말았다.
“마고시여!”
자지러지듯 염휘가 마고를 부르고, 태자마저 찢어질 듯 두 눈을 치뜬 그 순간.
마고가 소희의 가슴에서 손을 빼냈다.
작은 주먹이 불룩했다.
마고의 손에 들린 것은 생명의 환.
사신의 일곱 관문을 모두 건넌 덕에 이제 소희에게도 생명의 환이 생긴 것이었다.
소희에게 주어진 것은 밝고 영롱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고는 소희에게서 생명의 환을 하나 더 꺼내 들었다.
붉게 물들어 곱디고운 것은 염휘의 눈에 익숙한 것이었다.
“그……!”
다급한 염휘의 부름에 마고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빙글 돌렸다.
양 머리채에 매달린 오색실타래가 눈이 아리도록 화사했다.
“곱지 않느냐?”
“……어쩌실 것입니까?”
살려주실 거라 믿었건만, 생명의 환을 모조리 거두는 마고의 모습에 염휘의 목소리가 절로 차갑게 굳었다.
겁먹은 그의 심박이 거칠게 솟았다.
“귀가 아프구나.”
넌 입보다 더 수다스러운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마고는 염휘를 향해 똑바로 시선을 던지며, 빙글거리는 말투를 숨기지 않았다.
“아수라가 아주 깜찍한 일을 한고로, 일이 쉽게 풀리게 되었지. 사실 이것도 다 운명이었겠지만.”
마고는 그 말과 함께 두 개의 생명의 환을 한데 터트려 쥐었다.
파삭-.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생명이 환이 깨지는 소리가 굉음처럼 염휘의 고막을 후려쳤다.
“아아…….”
기어이 소희의 목숨을 꺾어버리는 모습에 염휘가 기겁한 것도 잠시.
마고는 두 개의 생명의 환을 터트려 합치고 둘로 쪼갰다.
깨진 환이 흩어지지 않고 마치 반죽처럼 마고의 손안에서 뭉쳐지는 것은 분명히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켜보는 염휘와 태자는 제 심장이 짓이겨지는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발…….”
태자에게서 신음 같은 부탁이 새어 나왔다.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다 싶었다.
어떤 마음으로 보내드린 분인데, 아무리 마고라 하셔도 그렇지.
생명의 환을 저렇듯 무자비하게 다루실 수는 없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고는 빙글거리는 웃음을 지우지 않고 손의 것을 한참을 조물거려 다시 둘로 나누었다.
청명한 듯 맑은 것과, 생기를 머금은 고운 것이 마고의 손에서 다시 환이 되어 나타났다.
오늘의 마고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연이어 보였다.
천신 마고는 권능을 함부로 쓰지 않는 분이셨다.
갈라지는 대지와 쏟아지는 불벼락에 인계가 초토화되다시피 하던 재앙의 날에도 그녀는 울어주었을 뿐 친림하지 않으셨다.
그런 분께서 지금 생명에 직접 관여하시다니.
믿기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표정은…… 과히 보기 좋지 않구나.”
얼빠진 염휘와 태자를 향해 마고가 인상을 찌푸렸다.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기에 그녀의 말은 마치 투정같이 보였으나, 한없이 지엄한 목소리에 염휘와 태자는 깜짝 놀라며 표정을 단정히 갈무리했다.
“이것은 네 몫이지.”
혀를 끌끌 차면서도 마고는 손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생기를 머금고 곱게 물든 붉은 환을 소희에게 다시 넣어주었고,
청명한 듯 맑은 것은 아직도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태자에게 던져주었다.
“명아. 받거라. 너의 ‘휘’란다.”
마고의 말을 헤아릴 새도 없이 갑작스레 날아드는 생명의 환에 태자가 혼비백산해 두 손으로 냉큼 받아 챘다.
떨어뜨릴까봐 긴장한 손에 땀이 한가득이었으나 생명의 환은 그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무색하게도, 손에 닿자마자 터져버렸다.
푸른 빛가루를 머금은 찬란한 빛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 내렸다.
“이, 이런……!”
불어오는 바람에 빛가루가 마치 운무처럼 넓게 퍼졌다.
“안 돼!”
“명아!”
염휘 역시 놀란 듯 태자를 부르며 다가서려 했으나 마고의 손이 그를 제지했다.
눈물이 채 마르지 못한 눈을 크게 부릅뜨고는 정신없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빛가루를 잡으려 애쓰느라 태자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를 놀리듯 너울 치며 흩어지는 빛가루가 마치 의지를 가진 듯 그의 앞에서 형상을 그려냈다.
허둥이는 그의 손이 한곳으로 뭉쳐드는 빛가루에 막 닿기 전, 고운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전하.”
익숙하고, 사무치는 목소리.
꿈에서도 늘 그리워했던 목소리였다.
제게는 한 번도 들려준 적 없던 다정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가 그를 사랑스럽게 불렀다.
그의 정수리로 떨어져 내리는 목소리에 태자는 뻣뻣하게 온몸이 굳어버렸다.
“전하.”
다시 한번 그를 청하며 수줍은 목소리가 울렸으나 태자는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뻣뻣하고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삐걱거리듯 들린 고개가 드디어 그를 부른 목소리를 찾아냈다.
“……소희?”
믿기지 않는 현실에 태자가 되묻듯 불렀다.
“정말…….”
정말 소희였다.
하늘거리는 보드라운 소매 사이에서 나온 하얀 손이 그를 향해 뻗어 나왔다.
“찬데 그러고 계시면 무릎이 아프실 것입니다. 일어나세요.”
그 심성만큼이나 다정하고 상냥한 말투.
고운 손을 거리낌 없이 뻗는 그녀는 소희였으나, 그녀가 아니었다.
희고 고운 손, 언제나 아름다운 얼굴이며, 마른듯한 몸까지 모두 그대로였지만.
태자 앞에 있는 소희는 낮 하늘을 베어 넣은 듯 푸른 눈에 그와 똑 닮은 백금발을 하고 있었다.
경악한 것은 태자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이것이 대체……!”
당황한 염휘의 목소리 역시 이내 연이어 들려오는 ‘소희’의 부름에 흩어져 버렸다.
“환? 여기가…….”
조그맣게 울리는 어리둥절한 목소리가 환을 찾았다.
“둘이야!”
아수라를 보듬어 안고 있던 풍천에게서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하는 말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달 마마께서 둘이 됐습니다!”
그의 목소리 역시 놀란 기색을 지우지 못한 날것이었다.
감히 천신 마고 앞에서, 지존들의 일에 함부로 나서지 못해 있는 듯 없는 듯 아수라를 보듬고 숨죽이고 있었건만.
소희가 둘이 되어버린 이 상황에 그라고 제정신일 수가 없었는지 기어코 목청을 돋운 참이었다.
“이게 어찌 된……!”
태자만큼이나 경악한 목소리가 햇살을 타고 따스한 공기에 파고들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에 답을 바라 시선이 마고에게 모여들었다.
짜랑-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타래를 흩날리며 마고가 기분 좋게 웃었다.
“어찌 되긴.”
의기양양한 듯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지존이 둘이니 비도 둘이어야 맞지.”
모두가 황망한 가운데 오직 마고만이 느긋했다.
“둘입니까?”
“오냐. 둘이란다.”
마고는 염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기묘한 대화를 가르고 소희의 목소리가 작게 울렸다.
소희는 저를 뉘어놓은 단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잘되지 않자 그대로 염휘에게 두 팔을 뻗었다.
당연하게 그의 품을 바라는 소희를 바라보던 염휘가 그제야 정신이 난 듯 단숨에 안아 들었다.
작고 마른 어깨가 한 팔 안에 쏙 들어왔다.
그녀를 따라 향긋한 복숭아 내음이 물큰 풍겨 나왔다.
천도를 드신 탓이었다.
“하아…….”
염휘는 소희를 품에 안고 그녀에게 풍기는 향긋한 체취를 깊게 들이마셨다.
바로 그녀였다.
그는 바로 자신의 소희를 찾아냈다.
태자 앞의 소희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나, 그의 소희는 단위에 죽은 듯 누워있던 그녀가 확실했다.
영이 깨져, 착실히 부서지던,
그의 마음 못.
그의 고운 분.
그의 품에 잠겨든 작은 머리에 턱을 괴고 있자니 은근하게 피어오르는 천도향이 익숙했다.
상천의 선인들이 풍기는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몇 번이고 음미하듯 들이마실수록 들이차는 건 확신이었다.
역시 소희가 확실했다.
“어서요. 일어나세요.”
지척에서 ‘또 다른’ 소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본능처럼 시선이 향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애교 있는 목소리로 태자를 붙잡아 일으키는 소희 역시, 염휘의 시선을 끌었다지만 정작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염휘는 고민하는 대신 마고에게 묻는 가장 빠른 방법을 택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영민한 아이가 아니더냐. 어째 묻는 것이야?”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지존의 비자리가 비어서야 되겠느냐?”
마고는 염휘의 짐작이 맞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수라가 제 목숨을 내준 덕이지. 명이도, 환도 아수라에게 빚을 진 셈이야.”
나도.
마고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태자에게 새로이 ‘휘’를 내려준 마고는 어린 소녀의 모습에 맞는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로써 모두 정리가 된 게지?”
짜랑.
고개를 갸웃거리자 마고의 머리타래를 타고 맑은소리가 울렸다.
정리는 됐지만, 정신은 나지 않았다.
모두가 바라던 일을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해결해준 마고는 ‘귀여운 녀석’이라고 중얼거리며 눈을 감고 잠든 아수라의 뺨을 가볍게 만져주었다.
사실 아무도 몰랐겠지만, 마고도 아수라를 되돌리는 건 무척 힘들었다.
영이 깨진 소희보다도 더.
아수라의 생명의 환은 진작에 깨졌고, 흘러나온 아주 옅은 생명력이 남아 겨우 희미한 숨날을 붙잡고 있던 상황이었다.
대물림이 시작되기 전 찰나의 순간 아수라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흩어지던 영력을 모아 주는 것은 마고도 진땀이 날 만큼 힘들었지만, 기어이 해냈다.
이 고약한 운명에 휩쓸려 그 좌를 잃고 대물림을 하고, 심지어 후대에 이른 녀석이 ‘휘’를 내주기까지 한 것이다.
그러니 이 귀여운 것을 마고는 모르는 체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수라를 깨운 그 말처럼, 아수라에게 남은 운명의 실타래는 몹시 두둑했다.
마고는 자신이 정한 규칙을 깨트리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절대 운명을 거스르지 않았다.
운명의 실타래가 남은 이상, 마고는 반드시 살려내야 했다.
마고는 자신이 어렵게 붙들어 맨, 아수라를 바라보며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일어나렴.”
“으음…….”
너도 들어야 하지 않겠니.
희게 질린 뺨을 가볍게 손끝으로 두드려 아수라를 깨운 마고는 그의 두 눈에 깃든 넘치는 생명력이 만족스러운 듯 작은 콧소리를 냈다.
“좋아. 모두가 모였고. 전부 해결이 됐으니 이제 왜 그런지는 알아야 할 테지.”
짝 소리 나게 손뼉을 친 마고가, 가볍게 손가락을 퉁겼다.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