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87화 (87/114)

87. 비틀린 웃음 (7)

2018.06.01.

“아수라. 염라의 세 번째 불이던가요?”

짙게 깔린 남자의 목소리가 황금의 공간을 메마르게 울렸다.

차게 얼어붙은 눈동자가 소희를 담고서 냉혹한 목소리를 냈다.

“……태자…….”

소희는 버릇처럼 공자님이라고 부르려다, 그를 태자라고 불러주었다.

그는 태자였고, 제가 외면한 가지 않은 길이었다.

언제고 그를 단념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혼례가 아닌 이런 식이 될 줄이야.

생각해보지 않았던 상황이라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래, 태자입니다. 허나 이제 곧 상제가 될 것이에요.”

하지만 태자는 소희의 부름을 오해한 듯 날 선 대꾸를 했다.

“이제 여섯 날이 남았어요. 그러니, 그대를 이렇게 둘 수 없어 데리러 왔습니다.”

잔뜩 흥분한 태자는 소희를 향해 집착을 가리지 않고 내보였다.

“여섯 날이라니요?”

“곧, 제가 상제가 된답니다. 형님이신 염휘께서야 전시중이라 바로 내림하셨다지만, 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린답니다.”

“상제가 되십니까?”

처음 듣는 말에 그저 되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태자는 살짝 말꼬리를 올린 소희를 보며 두 눈을 활처럼 휘었다.

소희의 어깨를 두 손으로 짚으며 고개를 꺾어 콧날이 스칠 거리까지 다가온 태자가 미소 띤 입술 사이로 은근한 소리를 냈다.

“평생 태자일 줄 아셨습니까.”

그대를 바라 빙빙 돌기만 하는.

“그대는 어쩌면 제게 이렇게 매정하신지.”

말끝에 거칠어진 숨이 열기를 머금고 소희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스쳤다.

“!”

“옅어졌군요?”

태자는 거리낌 없이 다가선 자신을 경계해 바짝 굳은 소희의 목덜미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낮게 속삭였다.

“제가 새겨드린 속박의 인이 옅어졌어요. 형님께서 지우시진 못할 것이었는데 사신의 문을 건너시며 지워진 겁니까?”

한마디 한마디 나지막한 음성을 따라 따끈한 숨이 목덜미에 와 닿았다.

소희는 절로 두 손을 모아 쥐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흥분하고 분노한 것이 뻔하게 보이는 태자에게 섣불리 입을 떼 자극하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잠깐 말을 고르는 사이.

어깨를 감싸 쥐고 있던 태자의 손이 소희의 뒷목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아차 할 새도 없이 목덜미에 그의 입술이 와 닿았다.

염휘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힘을 줘 꾸욱 누르는 그의 입술에서는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으니 그거야말로 딱하다 할 판이었다.

소희는 제 목덜미에 다시 영취를 묻히는 태자를 떠밀었다.

“이러지 마세요.”

동정하게 하지 마세요.

진심을 담아 말하는 소희의 표정이 어땠는지 그녀는 몰랐지만, 바라보는 태자의 표정이 순간 흔들렸다.

“어째서…….”

“저는 이미.”

그러나 태자는 소희의 말을 기다려주지도 않고 뎅겅 자르고 짓씹듯 외쳤다.

억울해하는 목소리였다.

“저와 혼약하셨잖습니까.”

“아닙니다. 태자께서는 모르십니다.”

소희는 이미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귀왕이신 염휘와 혼사를 약조하셨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태자는 소희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공평해지십시오.”

오히려 그녀를 힐난하듯 목덜미를 잡은 손에 힘을 줘 그를 올려다보게 만들었다.

“힘으로 누르려 하심입니까?”

“바라신다면, 그럴 참입니다.”

“원하시는 게 아니고요?”

“기회조차 없을 것 같으니 전력을 다해보려고요.”

태자는 소희의 말에 막힘없이 대꾸했다.

“공평해지십시오. 휘와 별을 타고 났다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러나 저는 이미 선택을 했습니다.”

“이러니 전력을 다한다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송곳처럼 돋았다.

“그대는 형님께 마음을 주었다 우기며 제게는 기회조차 안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태자께서는 이미 인계에 계실 적에!”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런 게! 겁쟁이처럼 손 한번 제대로 내밀어 보지 못한 그것이 무슨 기회입니까! 휘가 되어 달라 한번 말도 못 해본 것이 무슨 기회였습니까!”

자신을 거부하는 여자에게 다정한 남자는 없었다.

태자는 눌러왔던 본래의 예민하고 격한 성정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터트렸다.

“전 말 한번 꺼내보지도 못하고 기다렸습니다. 혼례를 올리는 날 휘가 되어 달라 청하여 볼 생각이었습니다. 단 한 번, 그 한마디를 꺼내보려고 기다린 세월이 얼마인데.”

“태자, 진정하세요.”

“진정이라고 하셨습니까. 내게 지금 진정하라 이름이십니까.”

태자는 눈꼬리를 붉게 달구며 소희에게 낮게 속삭였다.

분명 그는 속삭이고 있으나 소리 지르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괴로움을 한껏 담은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준미한 청년의 얼굴에 어린 슬픔에 그럼에도 그가 바라는 것을 내어줄 수 없어 소희는 마음이 지끈거렸지만 입을 앙다물고 소리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중간한 배려와 위로는 그에게 다시 빌미를 제공할 것이었다.

“더 이상 얼마나 무얼 참아야 하는 것입니까!”

“……이러지 마세요.”

“무얼 참으란 말입니까? 그대를 바라는 이 마음을 참으라는 것입니까? 반려를 빼앗길 이 운명을 참으라는 말입니까!”

상처받은 짐승처럼 허덕이는 그의 말에 소희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 그가 뭘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 건가.

저 물음에 마음이 울리는 건, 바로 얼마 전까지 소희 그녀가 자신에게 숱하게 되뇌었던 원망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익숙해서 더더욱 괴로웠던 질문들.

“…….”

소희는 태자를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떨궜다.

그 누구도 바란 적 없는 상황.

그 누구도 원치 않았던 운명.

어째서 이렇게나 고약한 것인가.

셋은 서로를 바라 서로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는 것까지 닮았다.

참혹한 현실이었다.

“그대, 나를 동정하지 마세요.”

태자의 목소리가 정수리로 쏟아져 내렸다.

그가 어떤 심정일지, 무슨 뜻으로 말한 건지 알고 싶지 않을 만큼 젖어든 목소리에 소희는 목이 멨다.

“다섯 관문을 지나셨다지요? 절반을 내어달라 하지 않을 것이니 나머지 두 관문은 내 곁에서 건너세요.”

“그건 안 됩니다.”

“그거야말로 안 됩니다. 그대, 나를 동정하기 전에 기회라도 줘보는 게 맞을 테니. 가십시다.”

태자는 고개를 떨군 소희의 얼굴을 두 손으로 기어코 받쳐 들어 시선을 맞댔다.

투명하리만큼 맑은 그의 푸른 눈동자가 별빛처럼 시리게 빛을 뿜었다.

“이런 모습으로, 안된다고만 하지 말아요.”

태자는 소희의 홍안을 눈에 새기듯이 한참을 바라보다 슬쩍 웃었다.

녹아내릴 듯 달큰한 미소를 지은 그가 천천히 얼굴을 떨어뜨렸다.

놀란 소희가 움찔 단번에 몸에 힘을 주고는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태자에게 애초에 힘으로 견줄 수 있지 않았다.

뒤로 몸을 빼려던 시도는 그저 시도에 그쳤다.

“날 얼마나 무도하게 여기시는 겁니까?”

뒤로 물러서려는 그녀를 붙들고 눈을 맞춘 태자에게서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입맞춤이라도 할까봐서요?”

“…….”

민망함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소희를 내리뜬 눈으로 바라보던 태자가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그의 웃음소리를 따라 온기를 머금은 날숨이 그대로 소희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원하는 게 겨우 그런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한 자 한 자 공들여 말하는 그의 근사한 저음의 목소리가 귓가를 야릇하게 울렸다.

“전, 전부를 바라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 것으로 물들여 온전히 가지고 싶단 말입니다.”

푸른 불길이 그의 눈동자 안에서 일렁였다.

“온기 없는 은발 따위 말고, 해를 머금어 따사로운 백금을 내리고.”

노래 부르듯 느릿하게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실렸다.

“적월을 닮은 홍안 대신 하늘을 받은 벽안을 드리고 싶어요.”

얼굴을 받치고 있던 손이 그대로 머릿속으로 파고들더니 소희를 입술이 스칠 만큼 가까이 끌어당겼다.

“모조리, 탐하고 싶었어요.”

눈이라도 깜빡하면 입술이 스칠 것 같아 소희는 숨마저 참고 태자를 견뎌야 했다.

“사랑스러운 분, 마음에 가득 담긴 그대를 원껏 사랑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혼롓날을 기다리고 기다렸어요. 정말로 내 것이 되어 달라 고백하려고.”

제가 겨우 휘를 바라여 이십여 년의 세월을 말없이 맴돌았을 것이라 생각하심입니까.

그대는 저를 어쩌면 이렇게 모르셨습니까.

형님의 사정도 찬찬히 가려 챙겨보아 주시는 분이, 제가 알던 그 상냥한 분이 어째서 제게는 이렇게 무심하셨습니까.

쓸쓸한 사내의 고백이 뼈아프게 귓가를 울렸다.

도무지 그를 바라보지 못할 참이라 소희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그녀는 마음을 정했고, 기회를 주지 않겠다 다짐했다지만, 저런 절박한 모습을 본다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동정으로 그를 기만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이 있으랴.

소희는 절대로 태자를 보지 않을 참이었다.

저 준미한 청년의 얼굴이 고통에 젖어 그녀를 갈구하는 모습을 절대로, 두 눈에 담지 않을 것이었다.

“……두 관문 정도는 내게 주세요.”

상제가 될 때까진 기다려 주셔야지요.

억지였다.

궁지에 몰린 태자가 내보이는 억지.

하지만 저 절박한 마음을 짓밟지는 못할 것이라 소희는 차마 안 된다고 소리를 내지 못했다.

두 눈에 담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견디기 힘든 죄책감에 거절의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 옳았을 것이었다.

태자는 소희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허락하시는 겁니다.”

얼굴에 드리워진 온기가 거둬지고, 태자의 목소리가 한 발짝 멀리서 울리자 소희는 그제야 감은 눈을 떴다.

“가세요, 저와 함께 상천으로 가세요.”

눈이 아리도록 자신만만하게 뻗은 황금 길이 까마득했다.

“소희님--!”

아수라는 급하게 영력을 끌어올려 태자와 함께 아공간으로 사라지는 소희를 붙잡으려고 했다.

다급하게 휘두른 접선이 검이 되어 길어지는 그 찰나 검을 꽂아넣기도 전 태자가 낸 공간이 닫혀버렸다.

쩔그렁.

다급하게 던진 아수라의 검이 볼품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수라님!”

“소희님!”

아이들은 기절할 것같이 수선을 피웠다.

상태자가 무려 아이들의 달 마마를 눈앞에서 납치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아수라는 그저 모든 것이 귓가에서 윙윙거릴 뿐, 주변의 소란은 아무것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놀란 듯 크게 뜨인 붉은 눈동자.

늘 고운 소리를 하는 예쁜 입술이 절박한 소리를 내 부르던 것은,

자신이었다.

반가워하던 그녀의 표정을 찰나의 순간 봐버렸다.

모두의 안위를 챙기며 만류하던 상냥한 이가 마지막의 순간에 그의 이름을 부르던 것까지.

아수라는 지금이라도 손에 잡힐 것 같아 텅 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얼떨떨한 것보다 믿기지가 않았다.

소희의 말에 태자가 다독여지는 것 같다고 믿은 것은 그의 착각이었나.

‘아수라---!’

황금의 아공간이 닫히며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닿아있던 소희의 붉은 두 눈.

생글거리거나 울먹이거나 놀라 동그래지거나 하며 언제나 풍부하게 감정을 머금던 그녀의 눈동자가 바란 것은 그, 아수라였다.

“하, 이런.”

아수라는 아주 한참만에야 으르렁거리듯 낮게 읊조렸다.

텅 빈 손에 잡혔어야 할 가느다란 손목의 부재를 이제야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수라님! 소, 소희님을!”

반울음인 내궁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제야 말이 되어 그의 귀를 울렸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현실이 되어 버겁게 아수라에게 쏟아져 들어왔다.

“알았다.”

아수라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에게 지독히 낮은 목소리로 대꾸를 하고는 침전 구석에 나동그라져 있는 그의 검을 주워들었다.

손끝에 감기는 매끄럽고도 차가운 감촉에, 드디어 뒤늦은 분노가 터졌다.

검을 쥐고 있는 손을 타고 검붉은 그의 기운이 칼날을 물들였다.

“풍천께…… 아니다.”

아수라는 검을 접선으로 돌리려고 했지만 주체하지 못하고 터지는 영력에 쉽지가 않은 듯 몇 번을 애쓰다 그대로 검을 쥔 채로 몸을 돌렸다.

빙글 돌아가는 그를 따라 윤나는 검은 머리채가 흩날렸다.

맹수처럼 찢어진 기다란 동공이 아니더라도 이글거리며 눈동자를 달구는 검붉은 열기가 시선에 담겨 사납게 흘러넘쳤다.

“염라의 불!”

누구 것인지 모를 작은 외침과 함께,

온몸으로 투기를 흘리는 그의 모습에 달 아이들이 작게 헛바람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유백색의 얼굴을 단단히 굳히고 선 아수라는 이름 그대로 전장의 사신.

평소의 서생 같은 단정하던 그의 모습과는 달리 전혀 다른 이가 되어 있었다.

부드러운 표정은 모두 꿈인 양, 서늘하게 굳은 얼굴로 예기 어린 눈빛을 담아 무감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모습은 손에 들린 묵빛 검과 똑같았다.

“내궁을 단속하거라.”

짙고 차갑게 깔리는 목소리에 권능이 실려 공기를 무겁게 울렸다.

아이들은 아수라의 시선에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궁을 닫아걸어라.”

다시 한번 묵직하게 명령을 내린 아수라는 그대로 침전을 빠져나갔다.

소리도 없이 큰 보폭으로 성큼, 걸음을 내딛자 그의 검붉은 영력이 잔상처럼 그 뒤를 따랐다.

어둠을 삼킨 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멀어지는 아수라를 바라보는 내궁 아이들의 시선이 그가 점이 되어 사라지도록 달라붙어 있었다.

아수라는 등 뒤로 따라붙는 시선을 또렷하게 느꼈다.

이미 영력이 개방된 그에게 오감은 놀랍도록 예민해져 있었다.

아수라는 품에서 하얀 종이를 꺼냈다. 사람의 형상을 닮은 그것은 이미 예전에도 주술에 사용된 식신이었다.

손에 들린 종이 인형에 숨을 불어 넣는 그의 모습은 서늘한 숨결만큼이나 차가웠다.

차가운 불꽃을 품은 검붉은 눈이 일어서는 식신을 향해 전언을 남기자 이내 그것이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수라의 입꼬리가 슬핏 솟자 숨겨진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반들거리는 그것은 이내 아수라의 입술 사이로 모습을 감췄지만 뾰족하게 솟은 동공은 염휘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염휘시여. 소장 당장에 죽어 마땅하지만, 살아 이 자리에 온 것은 죄갚음을 하기 위함입니다.”

북풍한설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뗀 아수라는 자기혐오와 견디기 힘든 치욕에 몸을 가볍게 떨었다.

“무슨 일이더냐 아수라.”

늘 잔잔한 미소를 염라의 불을 반겨주던 염휘가 전에 없이 비감한 표정의 아수라를 보며 안색을 굳혔다.

기묘한 불안감이 아수라의 모습에서 느껴져 염휘는 곧장 영력을 개방했다.

안 그래도 조금 전에 햇살이 뒤틀려 의아하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기묘한 이물감.

그리고 그에게 죽음으로 죄를 청한다는 아수라.

절로 가슴이 차게 식어내리며 등골을 타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

탄식 같은 그의 말과 함께 그의 영력이 오간 데 없는 소희의 부재를 짚어냈다.

“납치되셨습니다.”

아수라는 희게 굳어버린 제 주인을 향해 무감한 목소리로 냉정하게 대답했다.

“소장이 무능하여 눈앞에서 태자에게 납치되셨습니다.”

“태자가?”

“태자께서 햇살로 길을 내고 침전으로 난입하셨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막히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툭-

염휘의 손에 들렸던 상소문이 큰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대전 바닥에 나동그라진 그 모습이 마치 염휘의 심정인 것 같아 아수라는 까만 눈을 내리깔았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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