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86화 (86/114)

86. 비틀린 웃음 (6)

2018.05.28.

작은 새가 발목에 글줄을 달고 파닥거려 날아간 곳은 본궁이었다.

화원의 새들은 모두 태어나길 전령새로 났던바, 새들은 글줄을 매달면 각 궁을 향해 나는 것이 본능이었다.

그리고 성장을 모두 마치게 되면 새는 단순히 궁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영력을 좇아 날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작은 새는 성장을 마치지 못한 것이라 영력을 좇는 것에 미숙했다.

그래서 새는 본궁 너머의 백기전에 있는 지관을 놓치고 말았다.

날아가던 도중 글을 받을 이를 놓친 새는 저를 불러줄 이를 찾아 본궁을 구석구석 날았다.

하지만 아무리 궁을 빙빙 돌아도 불러주는 이가 없으니 새는 본궁 안 가장 깊숙한 곳까지 찾아 들었다.

파닥이던 날개가 지쳐 탄탄한 뻗은 나무를 찾아 들고, 작은 부리가 소리를 내 서신을 받으라 재촉했다.

삐이이이

높고 선명한 소리가 서너 번쯤 울렸을까.

가지에 앉아 목청을 돋우는 새에게 기다리던 손이 내밀어졌다.

“으음. 천관의 영취가 아니더냐.”

새를 받아 올린 손의 주인에게서 지극한 목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아침에 소희를 본 내궁 아이들은 하나같이 감탄하기에 바빴다.

“세상에.”

“이제 몇 번 더 하면 백번을 채울 참이구나.”

“세상에.”

소희의 싫지 않은 타박에도 아이들의 입은 다물릴 줄 모르고 연신 감탄을 내뱉기 바빴다.

“이런 일은 듣도 보도 못한지라.”

“세상에.”

송구한 목소리가 변명하듯 입을 떼기 무섭게 다시 감탄이 터졌다.

이 와중에도 겸양을 차리는 것은 조양이었고, 쉬지 않고 감탄을 하는 것은 반요라.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했다.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하기사 달 마마 없이 이십 년을 버틴 하계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이긴 했지만요.”

머리를 빗겨주려는 듯 참빗을 들고 반요가 다가왔다.

검은 머리채가 목덜미언저리서부터 누그러들며 은근한 빛을 머금었다.

그리고 머리끝에 이르러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달을 품은 은빛임에랴.

봐도 봐도 신기한 것이고, 만져도 실감 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이 머리를 처음 본 것도 아닌데.”

며칠 전서부터 이미 머리 끝단이 은빛으로 물들었던 터라 소희는 반요가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슬쩍 돌려 다독였다.

“아니에요, 달라요.”

“무엇이?”

“달빛을 머금으셨잖아요. 염휘께서 그러시듯 영력이 깃들기 시작하셨다고요.”

“으음, 그러니?”

잘 모르는 이야기였지만, 들어두어 손해날 것은 아니었고. 소란스럽긴 해도 찬찬히 알려주는 그것이 고마웠다.

“곧, 홍안에도 영력이 돌아 빛이 깃들겠지요?”

작고 포동한 손이 빗을 야무지게도 쥐고선 윤이 나도록 머리채를 빗겼다.

쓱쓱

쉬지 않고 이어지는 날랜 소리가 경쾌했다.

“이러다가 내일, 아니 모레이시던가요? 아무튼 곧 혼례 올리시…… 엇!”

그때였다.

한참을 즐겁게 재잘거리던 반요가 빗을 떨어뜨리며 놀랐다.

“왜?”

그런 반요의 모습에 놀란 건 소희뿐만이 아니었는지 조양이 채근하듯 물었다.

“아니, 사신의 문을 건너시면 혼례를 올리실 테지요?”

“그럼?”

당연한 말을 묻는 반요에게 소희가 말끝을 올려 되물어주었다.

“세상에나! 이 정신. 곧 혼례 올리실 텐데 준비가 덜 되었어요.”

“무어? 찬찬히 하고 있댔잖니.”

부산스러워진 건 반요뿐만이 아니었다.

조양이마저 화들짝 놀라며 추궁하듯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아니, 마흔아홉 날을 채우실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지.”

“마흔아홉 날은 무슨. 사신의 문을 열자마자 첫 관문을 넘으신 분인걸.”

“아니, 그래. 그렇긴 한데.”

“뭐가 지금 안된 거라니?”

조양이 떨어뜨린 빗을 주워들며 새된 목소리를 냈다.

“혼례복이 아직 한참 남았지.”

“세상에. 세상에.”

이즈음 해서 아이들은 소희 앞이라는 것도 잊은 듯 정신없이 서로를 몰아세우기 바빴다.

“혼례복을 여태 안 지어 놓았다고?”

날 선 목소리에 놀란 듯 반요가 손으로도 부족해 고개까지 정신없이 저었다.

“아니아니. 짓고 있는 중인데 이렇게 금세 사신의 문을 넘으실 줄은 몰랐다구. 어제 넘으셨잖아. 그러니 다만 며칠이라도 시간이 더 있을 줄 알았지.”

반요는 조양이 건네주는 참빗을 받아들고는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제 잘못은 아니지만 결국 혼례복은 반요의 몫이라 그 목소리가 잔뜩 죽어 기어들어갔다.

“……그 다음날서 또 넘으실 줄 알았나.”

웅얼거리면서도 작은 손은 재빠르게 소희의 머리에 염휘가 건네준 붉은 머리꽂이를 찌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단단하게 돌려진 머리채에 잘랑거리는 붉은 머리꽂이가 한 번 더 야무지게 꽂히자 삐쳐나온 잔머리 하나 없이 단정한 머리가 완성되었다.

“그럼 이럴 때가 아니잖아.”

조양이 소희 앞에 놓인 것들을 단숨에 정리하며 반요를 채근했다.

“오늘 밤서 또 관문을 넘으시면, 정말로 모레서는 귀문의 별로 태어나시는 거라.”

조양의 채근을 듣던 반요가 거의 울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관문 지나시면 바로 혼례 올리실 거랍니까?”

“이것이!”

며칠만이라도 늦춰달라고 할 것이 뻔한 반요의 입술을 조양이 야무지게도 때렸다.

이십 년을 기다려온 염휘께 혼례복이 늦어졌으니 더 기다려 달라 할 참이니.

속삭이는 거였겠지만 잔뜩 성이 난 조양의 목소리가 소희의 침전을 사납게 울렸다.

“하여간에, 느려가지고는.”

“난 괜찮단다.”

두 아이의 다툼을 지켜보던 소희가 끝내 끼어들었다.

제 혼례이야기라 수줍었던 것도 있었으나 하계의 혼례는 어찌 돌아가는지 몰라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쉬지 않고 몰아치는 채근에 반요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자, 조양을 만류하며 손을 내저었다.

환에게도 물어봐야 알겠지만, 아이들을 다그쳐가며 혼례를 올리고 싶진 않았다.

마흔아홉 날의 궤를 따르지 않은 것은 소희의 문제였다.

괜히 아이들을 동동거리게 하는 것은 소희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

우는 아이가 지은 혼례복을 입다니.

절대 안 될 소리였다.

저 좋자고 누굴 울린단 말인가.

그것은 아이들에게도 미안했지만, 눈물로 지어진 혼례복을 입고 환의 곁에 서는 것은 이십 년을 기다린 그에게도 못할 일이었다.

소희는 진심으로 조양을 만류했다.

“난 괜찮아, 염휘께 말씀드릴 것이야.”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당연히 환도 혼례를 느긋하게 미루는 것을 찬성하실 것이라, 소희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조양을 말렸다.

“아닙니다.”

하지만 조양이는 단호했고, 반요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제가 망치다니, 제가, 제가…… 아이고. 아니야. 지금이라도.”

우왕좌왕하고 성난 목소리가 섞이니 정신이 빠져버리는 것 같았지만, 소희는 이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자자, 난 괜찮으니 우선 좀 다들 진정해보련?”

“아닙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아침상 올릴 것이고요. 좀 이따 아수라께서 오실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조양은 급한 일이 있는 이처럼 반요의 팔을 낚아채며 허둥지둥 자리를 뜨려 했다.

“아침도 천천히. 조양아 서두르지 말거라.”

그러다가 다치……

소희가 급히 침전을 나서려는 조양이를 부르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소희의 뻗어진 손은 조양이에게 닿지 못했고, 뒷말은 이어지지 못한 채 흩어졌다.

“그래. 서둘 필요가 없구나.”

익숙하고도, 낯선 미성이 소희의 등 뒤에서 나지막이 울리며 뻗은 소희의 손을 단번에 채갔기 때문이었다.

소희의 손쯤이야 단번에 덮어버릴 크고 섬세한 손이었다.

“아!”

소희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눈에 담긴 것은 놀랍게도 태자.

바로 그였다.

“태자!”

소희는 작게 부르짖으며 경악으로 벌어진 입을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황급히 가렸다.

그 모습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었다.

태자는 그 모습에 절로 입매가 느슨하게 늘어나는 것을 느꼈으나, 구태여 그의 미소를 가리고 싶지 않았다.

만면가득 따사로운 미소를 머금고 그녀를 불렀다.

“소희님……!”

꿀을 부은 듯 달큰하기 짝이 없던 목소리를 내던 남자가 소희의 눈을, 불꽃을 품은 그녀의 홍안을 보자마자 마치 데이기라도 한 듯 표정을 사납게 일그러뜨렸다.

진득한 애정을 담은 목소리로 소희를 부르던 목소리가 단번에 찢어질 듯이 비명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그! 눈이!”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새파랗게 얼어버린 두 눈동자가 분노를 가득 담아 소희에게 쏘아졌다.

“태, 태자께서?”

소희 역시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두 눈이 크게 홉 뜨여 제 등 뒤에 갑자기 나타난 태자를 담았다.

손이 붙들렸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당황한 그녀에게 고막을 찢어버릴 것 같은 비명이 울렸다.

“꺄아아아아아-!!”

“누구없습니까!”

놀란 소희를 대신해 침전을 나서려던 반요와 조양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했다.

귀가 윙윙거리며 단번에 감각이 멀어졌다.

지독하게 현실감 없는 현실에, 온갖 것이 멀게만 느껴졌다.

하계에서 상태자를 보게 되다니.

소희는 제게 위기가 닥쳤다는 것보다 큰일이 났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녀가 사술에 넘어가 상천으로 간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일임이 분명했다.

태자는 직접 움직여서는 안 됐다.

귀왕이 어떤 마음으로 그를 눈감아 줬는지를 그는 모를 터였다.

그러나, 아무리 아무것도 몰랐다 한들.

애정에 눈이 멀었다 한들.

그는 이래서는 안됐다.

이곳은 하계였다.

상천의 태자가 무단으로 들이닥칠 수 없는 곳.

소희는 그의 절박함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몹시도 그가 어리석다 느껴졌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질책도 놀람도 아닌 애매한 말이었다.

그리고 태자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뿐이었다.

모두가 놀랐지만, 아무도 놀래키지 않을 수 있는 바로 이 순간.

“돌아가세요.”

소희는 놀라 파득이는 심박을 태연한 표정으로 가리며 짐짓 엄한 목소리도 냈다.

“그런 말이나 듣자고 온 것 같습니까.”

“돌아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태자는 소희의 말에 희게 굳은 얼굴 그대로 더 이상 아무 말도 돌려주지 않았다.

다만 뒤에서부터 감아쥔 그녀의 손을 단번에 잡아당겨 그의 품에 넣었을 뿐이었다.

“앗!”

강한 힘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 그에게 안기자 태자의 도포, 보드라운 옷감이 눌리며 상쾌한 향이 진하게 소희를 반겼다.

그것은 환이 꺾어다 준 천도가지에서 풍기던 향과 비슷했다.

같은 듯하나 어딘지 조금은 다른 복숭아 내음이 시원하게도 퍼져 들었다.

소희는 익숙한 향에 순간 말랑하게 풀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자신을 강하게 끌어안고 있는 태자를 밀어내려 애썼다.

“태자! 이러시면!”

“어서요!”

그리고 그때 문밖의 조양이 다급한 목청을 돋워 누군가를 재촉했다.

“성가시게 됐군요.”

태자는 조양의 목소리에 차게 웃었다.

전혀 성가사지 않은 표정은 오히려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 보였다.

“놓으세요. 어서 가셔야 합니다. 어서.”

오히려 조양의 목소리에 놀란 건 소희였다.

소희는 환의 배려를 이렇게 헛되게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태자는 반드시 무사히 상천으로 돌아가 상제가 되어야 했다.

그러니 이곳에서 그가 잡혀서는 안될 일.

지금이라도 그가 돌아가 주기만 하면, 내궁 아이들 입단속이야 그녀가 시키면 될 일이었다.

“어서요!”

절박하게 태자의 가슴을 떠밀어 본다지만, 태자는 소희의 몸부림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힘줘 안은 손을 오히려 더 단단히 두르며 그의 심사를 말없이 전했을 따름이었다.

쾅-

침전문이 부서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소희님!”

놀란 목소리마저 반가운 이는 아수라였다.

“아수라님.”

한순간도 혼자 계시지 않게 하겠다던 말 그대로, 환이 돌아가자마자 옷을 갈아입을 짧은 틈을 기다렸다 찾아와준 염라의 불.

소희는 아수라를 보자 반갑고, 그리고 문득 아주 조금 겁이 나 그를 불렀다.

아수라는 순식간에 영력을 둘러 무장의 모습을 한 채였으나 태자가 소희를 안고 있는 탓에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다.

지척에 서서 으르렁거리듯 나직이 읊조렸다.

어둠을 머금은 동공 아래 일렁이는 불길이 그가 얼마나 화를 눌러 참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어 소희는 신음을 삼켜야 했다.

저 다정하신 분께서 화를 내고 계시다니.

“태자. 귀왕의 호의를 모르심입니까?”

“아수라, 염라의 불.”

태자는 아수라의 말에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미소지었다.

미소만큼이나 슬쩍 들린 턱 끝에서 그의 도도함이 묻어나는 듯 표정이 한껏 차가워졌다.

아수라를 담은 태자의 푸른 눈이 매서운 빛을 발했다.

“내가 누군지 아는 자가 말이 심히 건방지구나.”

“도적에게까지 예를 올리는 법은 없지요.”

“도적?”

킥-.

아수라의 말에 태자가 우습다는 듯 웃음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찬 것은 명백한 분노.

“아수라, 그러지 마세요.”

소희는 태자의 숨소리가 불안정하게 떨리는 것을 듣고, 아수라를 말렸다.

아수라의 무위를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지금 그녀는 누가 봐도 아수라의 약점이었다.

이런 상태로는 아수라에게 승산이 없었고, 오히려 그가 다칠 위험만 늘었으니 말려야 했다.

용암같이 끓어오르는 불길을 누르라 열심히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소희의 간절함을 알아챘음인지, 아수라는 단정한 입매를 한일자로 굳게 다물고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자, 돌아가세요.”

소희는 벌벌 떨리는 몸을 가누려 애쓰며 목소리를 냈다.

이 상황을 중재할 이는 자신뿐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의연하게 굴지 못했던 것은.

사방에서 살갗이 따갑게 살기를 쏘아대니 영체인 그녀가 버티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었다.

아수라의 눈빛이 아주 잠깐 가늘게 떨리는 소희의 손끝에 머무르다 떨어졌다.

옅은 한숨과 함께 아수라는 피워올렸던 영력마저 말끔하게 갈무리했다.

무방비한 아수라의 모습.

그는 분노하지도, 심지어 그녀를 구할 수도, 자신을 방어할 수도 없게 되었다.

소희는 그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그의 약점이 되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목청을 돋웠다.

착잡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으나 결코 울지 않을 것이었다.

“태자.”

“바라시니, 갈 것입니다.”

그녀가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엿들었음일까.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미동도 없던 태자가 손을 느슨히 풀며 소희에게 고개를 숙여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차…… 참입니까?”

이렇게 해결이 되는 건가 하는 안도감과 함께 순식간에 긴장이 풀리며 소희의 몸이 휘청였다.

고맙습니다, 태자.

하지만 소희의 말은 나올 새도 없이 사라졌다.

“함께.”

“무슨!”

놀란 소희를 놀리듯 싱긋 웃는 태자의 손이 가볍게 흔들렸다.

“이러다 형님께서 오시면 곤란하거든요.”

아무리 저라도 형님을 상대하는 건 무리예요.

그녀를 놓아주는 것이 아니었다.

태자는 그저 길을 내려고 팔을 잠시 푼 것이었다.

속았다는 생각도 잠시. 소희는 태자에게 붙들린 몸을 빼내려고 애를 쓰며 아수라를 바라보았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태자의 손에 납치될 것 같았다.

“아수라!”

그녀의 절박한 부름에 크게 치뜨인 아수라의 까만 눈동자를 보았다고도 생각한 것도 순간이었다.

출렁거리며 흩날리는 까만 머리칼.

내뻗어진 하얀 손.

그의 손을 따라 펄럭이는 하얀 도포까지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순간인 듯.

“아수라!”

뒤늦게 아수라를 부르는 제 목소리가 귀에 닿았을 때, 소희는 이미 황금빛이 찬란한 아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아무도 없이, 태자와 단둘인 공간이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목청을 한껏 돋운 소희의 목소리가 황금의 공간을 울렸다.

“아수라---!”

그러자 소희를 비웃듯이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적막한 공간을 떨게 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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