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비틀린 웃음 (4)
2018.05.21.
머리를 쓸어내리던 소희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뗐다.
“이제 두 관문이 남았습니다.”
“네.”
“이십 년을 기다리게 하였으니, 서둘러 두 관문도 넘고 싶습니다.”
언젠가 환이 불만인 듯, 장난인 듯 속삭였던 말을 소희는 잊지 않았다.
‘그대는 나를 이십 년 기다리게 하였지. 그리고 그보다 더한 마흔아홉 날을 기다리게 하시는군?’
열기를 그득 머금은 남자의 웃는 목소리가 가슴을 얼마나 뜨끈하게 헤집었는지.
눈앞의 준미한 사내는 알 리가 없었다.
그를 마음에 품은 뒤로 매일, 하루라도 더 빨리 영을 벗어나고 싶고,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던 소희의 조바심을.
몰랐을 것이다.
궤를 따르지 않아 놀랐지만, 기다림을 덜어 기뻤다.
그것은 환과 태자. 모두를 위해서 잘된 일이었다.
소희는 한층 더 맑아진 홍안을 하고선 웃었다.
누군가의 온기를 빼앗고, 모르는 체 등을 돌릴 것이라 다짐했으니.
그이의 몫까지 힘껏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 자리를 잡을 것이다.
웃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두 뺨에 내려앉는 보드라운 달빛을 받으며 그대로 환하게 웃었다.
“그래, 무척 기쁜 말입니다.”
짐 역시 손꼽아 바라는 바입니다.
환은 혼잣말인 듯 입안에서 전하지 못할 말을 나직이 굴렸다.
“허나, 다섯 번째 관문은 바삐 넘기셨으니, 나머지 두 관문은 쉬엄쉬엄 넘으세요. 그러다 영체에 무리가 갈까 걱정입니다.”
하지만 소리 내어 건네는 말은 역시나 그녀의 사정을 살피는 다정한 말.
조심스럽게 뻗어진 손가락이 바람처럼, 가볍게 뺨을 쓸고는 떨어졌다.
산들바람보다 더욱 가벼운 손길에 소희는 문득 아쉬워져 환이 쓸고 지나간 자리를 가만히 더듬었다.
진작에 사라진 온기였으나, 그래도 그 자리를 제 손으로 감싸고 있으니 한결 마음이 푸근했다.
‘비’에 맞는 대우를 받으셔야 한다며 말을 조심하더니 이제는 그 행동도 한결 더 점잖아졌다.
무심결에 툭툭 나오던 말이 그 며칠 사이 한결 다듬어졌고, 불쑥불쑥 내밀어 욕심껏 보듬던 두 팔도 무척 조심스러워졌다.
환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사실 소희는 한걸음 물러선 듯 예의를 차리는 환이 내심 섭섭했다.
저는 바삐 쫓아가고 있는데 달 마마께 예우하여야 한다며 뒷짐 지고선 그저 웃어 주시는 걸로 만족하라 하는 것 같아 영 부족하다 싶었다.
그러나 늘 그 너른 품에 숨이 막히도록 안아주십사 청할 용기는 없고. 그저 곁을 뱅글뱅글 돌며, 입맛을 다시는 딱한 처지라.
소희의 홍안에 불만이 어렸다.
‘이럴 때면 장하십니다. 하고 한 번쯤 안아주시면 어디 덧나냔 말이지.’
자신이 무척이나 대범해진 것도 모르고 이제 힘껏 안아 주지 않는다 앙앙거리는 것이니, 자꾸만 불만에 가득찬 눈초리가 쌜쭉해진다.
“흐음.”
소맷부리에 담아 온 귀여운 것을 보여주려 뒤적거리던 환의 눈썹이 슬쩍 솟았다.
눈앞에 고운 분이 어째서 제게 눈을 흘기는지 모르니 의아했던 탓이었다.
작고 예쁜 입술이 자꾸 달싹이다 짓씹길 수차례.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 하여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것이 저런 원망 어린 눈빛이라니.
더러 억울하다 할 참이었으나 그저 때가 되면 알려주시려니, 그만 보고도 모르는 체 넘겼다.
환은 그녀가 얼마나 귀여운 투정을 하고 있는지 까마득히 모르고, 달래볼 심사로 그녀에게 보여주려 소매에 담아 온 작은 것을 꺼내 들었다.
“이것 드리려고.”
보란 듯이 손바닥에 올려 작고 보드라운 그것을 소희의 눈앞에 가져다 대 주었다.
‘구르륵-’
“이건 무슨 새입니까?”
그래서, 좋아서 반색하는 저 모습보다 더 달큰한 속사정을 놓치고 말았다.
환은 제가 얼마나 큰 손해를 입었는지도 모르고 소희가 좋아서 두 뺨을 붉게 물들이는 것에 넋이 나가버렸다.
“흠흠.”
귀여운 모습에 절로 두 뺨에 은근히 열이 치밀었다.
그는 다시 헛기침을 하며 손에 들린 작은 새를 소희의 손바닥 위로 올려주었다.
“이건, 짐이 내어드리는 새랍니다.”
“네?”
“살아있으나, 산 것이 아닌 새라면 아실까요?”
환은 기름한 눈매를 부드럽게 휘며,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살아있으나 산 것이 아닌 새.
그것은 환의 영력으로 만들어낸 ‘새’ 같은 것이었다.
염라의 불들은 월력을 받아 태어나는 달 아이들과는 달리, 마고께 생의 좌를 분배받아 태어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영력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었다.
분신이라 하기엔 소소했고, 작은 영체라고 하기엔 신묘한 것들.
풍천이 부리던 흑조가 그것이었고, 환이 내미는 은조가 바로 그것이었다.
“보통 새를 많이 만듭니다.”
환은 소희의 손바닥에 올라온 새의 작은 머리를 검지로 슬슬 쓸며 말을 이었다.
구르륵-
작은 것이 온기를 쫓아 머리를 기대는 모습이 퍽 귀여워 소희는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 손바닥 위에 올려준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짐작하는 그것이 맞을까.
벌써부터 설레어 목이 탔다.
“그러니. 이 녀석을 부탁드립니다.”
“정말, 정말요?”
점잖은 체 물러나는 이 분을 좀 애태워야지 하고 앵돌아진 마음이 그새 풀려버려 조급한 소리를 낸 것도 모르고 소희는 그저 좋았다.
“네.”
“먹이는…… 안 먹습니까?”
소희는 은빛 깃털을 고르고 있는 새를 두 손으로 가만히 감싸 안아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먹이는.”
“안 먹는군요?”
“밤 산책만 내보내 주세요. 달빛이면 충분합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아이.
소희는 달빛을 먹고 사는 새를 낯설어하기보다, 그저 이 귀여운 것을 제 것으로 거둘 생각에 이제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신묘한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신을 느낄 새도 없었다.
직인이 놀러 와 주었을 때도, 소청조를 귀여워해 작은 새를 위한 간식거리를 듬뿍 찻상에 올렸더랬다.
직인이 손위에서 과자를 부숴 새에게 줄 때는 저도 한 번만, 소리가 절로 나올 뻔 한 것을 참느라 무척 애먹었었다.
사실, 직인도 직인이지만 소희는 상천으로 다녀오고 난 후 소청조, 그 작은 파랑새가 그리웠었다.
까만 구슬 같은 눈이 끔뻑거리고 기분 좋을 때 목을 긁는 구르륵 소리며, 하늘을 날며 크게 우짖을 때 나는 높은 휘파람 소리 같던 그 날카로운 목청까지.
모두가 한 번씩 떠올라 그녀를 그립게 했다.
그런데, 환이 그의 영력을 나눠 작은 것을 만들어 준 참이니 그것이 얼마나 귀여울지는 두말 할 나위 없었다.
“어머나. 귀여워라.”
동그랗게 부푼 가슴은 희게 빛이 나고 날개는 은빛인 새는 영락없이 환의 모습을 따고 있었다.
석류알 같은 맑은 홍안을 깜박거리며 기분 좋은 듯 구르륵거리는 소리에 소희는 절로 웃음이 났다.
“제가 데리고 있어도 되는 것입니까?”
소희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환에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기억에, 영력으로 빚어낸 새는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풍천이 상처를 입고 흑조를 날리던 날, 돌아온 흑조는 다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두고 풍천이 얼마나 애달파하며 받아 들었는지, 기억이 선명했다.
심지어 서왕모께서도 귀하다는 환단을 내주시며 새를 살리지 않으셨던가.
영력을 나눈 새라는 것은 단순히 꺼내 쓰고 넣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주인에게서 생을 받았다는 점에서 살아있지 않다고도 말하기 어려웠다.
환은 조심스러운 소희의 말에 몹시 흡족한 듯 연신 웃는 표정이었다.
“그럼, 그럼, 그대께 드리려고 오늘 만들었답니다.”
“정말 예쁩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이 아이에게 소식을 전하라 하세요.”
환은 소희의 말에 ‘새’를 선물한 진짜 목적을 은근히 알려왔다.
“이제 영력이 깃드셨으니, 글줄을 묶는 것만 알려드리면 새에게 쉽게 소식을 전하라 이를 수 있어요.”
고단하게 본궁을 오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주 멀지 않은 거리를 신경 쓰는 것이 우스워 보일 법도 했다.
환이 호들갑스럽게 군다 여길 법도 했지만 소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러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 것 같아서,
본궁으로 가던 회랑.
그 끝과 끝에서 마주친 두 사람이 어땠는지, 그날의 기억이 환에게 어떻게 남았는지 굳이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았다.
상처를 주었다.
그 회랑서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는 그의 마음을 알 것도 같고, 두 번 다시 그 회랑을 걷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해, 아직은 아물지 않은 그 날의 상처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새를 날리면, 빨리 와주실 것이지요?”
“부르시니 가야지요.”
“하루 종일 날려도 밉다 하지 않으실 것이지요?”
부러 투정 부리듯 이야기를 하고.
“밉긴요, 한달음에 올 것인데요.”
더욱더 애틋하게 받아주는 것이다.
두 눈을 물들인 붉은 기운이 서서히 마음을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구르륵-
그리고 소희의 온기 어린 손바닥 위의 작은 새가 기분 좋은 듯 울었다.
“달밤에 놓아주라 하셨지요?”
“그럼 이 녀석을 데리고 밤 산책이라도 하시렵니까?”
“저야 좋은걸요, 이 아이 핑계 삼아 매일 산책가자 조를 것입니다.”
“저런. 진작 선물 해드릴 것을.”
환은 들으라는 듯 아쉬운 목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희에게 큰 손을 뻗었다.
커다랗고, 힘이 넘치는 남자다운 손.
언젠가 그녀의 목을 잡아 뜯었던 그 무서운 것을 이렇게나 설레이며 바라보게 될 줄이야.
이 손이 이렇게 든든하게 느껴질 줄이야.
소희는 환이 내민 손에 제 손을 올려놓고는 힘줘 맞잡았다.
“그러게요.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요.”
그리고는 환의 말에 가볍게 대꾸하며 다시 한번 손에 들린 새를 다정히 바라보았다.
달밤을 홀로 눈물로 지새우진 않았을 텐데요.
언제 해도 늦은 후회에 다정한 마음을 담아 소희가 자신을 기다려주는 환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볍게 떼인 발이 저를 기다리던 남자에게 날 듯이 옮겨갔다.
“오늘부터 물리도록 즐기시면 되지요.”
“약조하셨습니다.”
“그럼요.”
“바쁘다, 지겹다 내치시기 없기예요.”
“아무렴,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렵니다.”
어머나, 두고 보시면 아실 테지요.
점잖은 체하며 걸음을 옮기지만, 얼마나 달콤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 서로 깨닫지도 못한 채 고즈넉한 밤공기를 가르며 조용한 산책이 시작되었다.
사랑스럽고 다정한 달밤.
다섯 번째 명부가 하계에 그 적을 옮겼다.
그리고 그것은 명부청의 선인의 손에서 단정히 글줄로 옮겨져 명부서에 올라갔고,
그것을 다음 날 아침 명부청을 찾은 천관이 봐버린 것은,
정말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일이었다.
*
“무어라!”
하얗게 질린 천관에게 그보다 더 희게 질린 태자가 포효하듯 목청을 돋웠다.
이번에야말로 정당하게 휘를 요구하리라 마음을 다잡던 태자에게 이른 아침부터 들이닥친 소식은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간밤이라니?”
“간밤서 명부서에 소희님의 다섯 번째 명부를 하계로 옮겨 받았다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묻는 이나, 답하는 이나 제정신이 아닌 듯 목소리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간밤이 확실한 것이냐, 그이가 확실히 적은 게 맞느냐?”
소희가 맞느냐.
그녀가 확실하다 이 말이냐.
태자의 숨겨진 숱한 질문을 천관이 모를 리 없었다.
거짓말이라 해다오.
말이 되지 못한 태자의 서글픈 외침이 귓가를 울리는 것 같아 천관은 고개를 절로 떨구었다.
제 주인은 차게 굳힌 얼굴을 해서 소리를 치고 있었으나, 사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해도 너무 한다 소리가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이럴 필요가 있는가.
천하에 귀한 분을 이렇게까지 몰아세워야 하는가.
천관마저 억울한 마음이 들고 절로 분심이 솟는 상황이 연이어 터졌다.
저라도 울고 악다구니를 쓰고 싶어졌다.
이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 누구라고 지금의 태자를 탓할 수 있을까.
천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해서, 아우들에게 ‘보쌈’을 이야기했던 건지도 몰랐다.
삼관대제라고 해서 그들의 본성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이 대대로 태자들을 얼마나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이 붙드는지, 그 태자 즉위하여 상제가 되면 고언이랍시고 번번이 나서서 사사건건 반대하는지.
그들이라고 달가울 리 없지만, 그것이 바로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그들은 삼관대제.
상제가 즉위하면 관직이야 바뀔 테지만 그들이 타고난 업은 평생을 이어가는 것.
바로 상천의 주인이 힘에 휘둘리지 않고 정도를 걷도록 조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연 그들이 옳은 것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태자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태자가 무엇을 어찌했다고.
순리대로 흐르지 않는 상황 속에 태자를 묶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드디어 그들의 소명에 의구심이 들었다.
천관은 휘몰아치는 생각을 다잡으며, 겉으로는 매끄러운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지금 세상이 무너지는 참담함을 맛보고 계시는 분 앞에서 제가 함부로 감정을 보태서는 안됐다.
설령, 이것이 도의를 벗어났다 한들. 태자를 부추겨서는 안될 일.
‘보쌈’을 하든, ‘휘’를 납치를 하든.
그 모든 것은 삼관대제가 할 일이었다.
이제 즉위가 얼마 남지 않은 태자에게 업이 쌓이도록 할 수는 없었다.
그 언젠가의 맹세처럼 태자에게 휘를 진상하리라.
천관은 천불이 이는 마음을 다독이며 이를 앙다물었다.
절로 숨끝이 거칠어졌으나 깊숙하게 허리를 굽혀 대답을 기다리는 주인에게 답을 올렸다.
“소희님의 다섯 번째 명부가 그 적을 하계로 옮겨갔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소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온 참입니다.”
침통하기 그지없지만, 한점 거짓 없이 아뢰는 천관의 목소리에는 머뭇거림 없이 단호했다.
분노하는 것과 사실을 직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 생각했다.
온당치 못한 상황을 속여서는 안 되었다.
모두가 태자를 궁지로 모는데 삼관대제만은 그의 편에 서서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했으니, 천관은 사실을 알리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내뱉는 말이 송곳인 양 가슴을 날카롭게 후비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욱신.
명치께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아려왔다.
“그게 가능하느냐?”
웅장하였지만, 얼빠진 목소리였다.
이미 무릎까지 차오른 상제의 힘을 받아들이는 태자는 태자였으되, 상제인 기묘한 상태였다.
목소리에 힘을 싣지 않아도 자연스레 권능이 실리고, 차오르는 그 힘만큼 무겁게 눌리는 육신의 족쇄를 낱낱이 느끼는 태자는 무척 지쳐있었지만 그만큼 힘이 넘치기도 했다.
그러니, 저 맥빠진 목소리에조차 권능이 실려 울리는 것이다.
천관은 전신으로 날아드는 묵직한 힘에 침음성을 삼키며 버텼다.
“하루 사이에 사신의 문이 다시 열린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이냐?”
말이 되든 아니든, 이미 열려 명부를 옮겨갔건만 태자는 떼쓰는 아이처럼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되묻기만 했다.
천관은 태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그렇습니다.”
진작에 벌어진 일을 확인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나 천관의 엄숙한 확언에 태자의 얼굴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일주일이건만.”
태자의 혼잣말에 담긴 처참함이 가슴을 저미듯 귀를 울렸다.
“고작 일곱 날마저 기다려 주시지 않겠다 하심인가.”
혼잣말인 듯 나직한 태자의 음성은 덤덤해서 더욱 서글펐다.
남 보기엔 어떨지 모르나 삼관대제에게 태자는 몹시 딱한 이였다.
천하에 존귀한 이로 나셨으나 오직 평생에 ‘휘’의 마음 그 하나를 바라왔었다.
어려서는 낳아주고 길러주신 ‘휘’의 마음을 바라 그 주위를 뱅뱅 맴돌며 울었고, 그 마음 지쳐 결국 닫고 나서 다시 담은 것이 다음대의 ‘휘’라니 이 얼마나 고약한 운명인지.
천관은 문득 치미는 눈물을 꾹 참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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