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비틀린 웃음 (2)
2018.05.14.
차를 마시는 후원 정자 안으로는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왔다.
“이제 곧, 꽃이 질 테지요.”
한참을 말 없던 아수라가 바람에 흩날리는 제 머리채를 잡아 누르며 여상한 목소리를 냈다.
무척 덤덤한 말투라 별스럽지 않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는 절로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꽃이 질 무렵엔 소희님께서도 어엿한 좌를 받으실 테니. 혼례 올리시고 내려주시는 달 씨앗은 수라전으로 먼저 보내주십시오.”
아수라.
소희는 절로 떡 벌어진 입을 황급히 손으로 가리며 소리가 되지 못한 경악을 눌러 삼켰다.
세상에.
내내 그것을 생각하셨답니까.
귀엽다고 해야 할지, 집착이 무섭다 해야 할지.
날씨에서 이어지던 이야기가 어느새 다시 달 아이로 귀결되자 아연실색하고 만 것은 소희뿐만이 아니라, 풍천역시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답해주셔야지요.”
하지만 아수라는 다소간 진심이었던 모양인지 미소를 지우지 않고 가볍게 소희를 채근하기까지 했다.
“예? 네. 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소희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자 풍천이 다급하게 입을 뗐다.
당연히 도와주시려나 했건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했던가.
“안됩니다. 이런 식은 안 됩니다. 수라전에서는 이미 첫아이를 받아가지 않았습니까. 혼례 후 첫 씨앗은 풍천전으로 보내주십시오.”
더더욱 진지한 목소리로 다그치는 풍천을 보자니 소희는 절로 목이 탔다.
찻잔을 집어 드는 그녀의 눈앞으로 바람을 타고 넘실거리는 머리카락이 성가셨다.
소희는 별생각 없이 머리를 걷어내다 손끝에 걸린 제 머리색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머리의 반절이나 은빛으로 물들어 흩날리는 이 기묘한 광경이라니.
저는 이미 알게 모르게 이 하계에 이렇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현실감 없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말도 안 되라고 외치기는커녕, 부끄럽다 생각하다니.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해야 할지.
입술 끝에 매달린 미소가 자꾸만 짙어졌다.
“좋으십니까.”
그런 소희를 부른 것은 맵시 나는 동작으로 찻잔을 채우는 아수라였다.
“저는 소희님의 흑단 같은 머리타래가 참 어여쁘다 생각했는데 말이죠.”
“아. 저도 아수라님의 머릿결이 참 곱다 생각했지요.”
아수라의 말에 소희가 재빨리 대꾸했다.
그것은 진심이었다.
가늘고 결이 좋은 아수라의 머리는 빛을 받으면 검푸르게 빛을 내곤 했는데, 윤이 나는 그의 머리를 보고 있자면 소희는 제 머리타래가 부끄러웠던 적이 종종 있었다.
“달을 굽어살피는 달 마마의 머리색으로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싫지 않은 말이어서 소희는 보스스 웃음을 매단 채 되물었다.
“이미 염휘께서 달빛을 받은 머리색을 갖고 계시니, 달 마마께서는 밤하늘을 닮은 머리색을 가지셔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이 머리도 잘 어울리십니다.”
“음…… 잘 어울리십니다. 솔직히 의외였습니다. 워낙에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어서.”
“제가요?”
아수라와 풍천의 말에 소희가 묻자 단번에 답이 돌아왔다.
“그럼요, 커다랗고 새카만 눈동자가 어찌나 맑던지. 달 마마가 되어주시길 바라면서도 색내림은 안하셔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풍천까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소희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살짝 아쉽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아버지께 받은 것들이니 애착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인세에 묶여 있을 순 없는 법.
“그래도, 염휘와 닮아가는 지금이 좋습니다.”
“그렇습니까.”
작게 긍정하는 아수라의 말끝에 희미한 미소가 따라오고, 풍천이 실쭉 웃으며 당과를 집어 드는 것이 즐거운 오후였다.
붉어진 눈동자에 잡히는 두 장수의 모습이 한없이 정겨운.
*
“저런, 고초를 겪고 계십니까.”
딱한 듯 읊조리는 환의 목소리에는 그 어디에도 안타까움이 없었다.
붉은 눈동자를 긴 눈매 속에 숨긴 그는 오히려 은근히 즐거운 기색이었다.
“어휴. 말도 마세요. 정말 진땀 났단 말입니다.”
소희는 입술 끝에 물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손사래를 쳤다.
어딘지 핼쑥하기까지 한 표정은 진심이었다.
“흐응.”
코끝으로 웃는 소리를 낸 환은 곧게 뻗은 손가락으로 턱 끝을 가만히 매만졌다.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모양 좋은 입매와 함께 턱을 쓰는 느릿한 그의 손길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나른해질 것 같았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환은 자신을 홀린 듯이 바라보는 소희를 향해 웃음기 어린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난처한 그대의 모습은 두고두고 볼 가치가 있습니다.”
“예에?”
염라의 불들이 달 아이를 달라 채근했다는 말에, 저런 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소희는 무섭도록 아찔한 사내의 유려한 자태에 그만 정신을 놓은 건가 얼떨떨함을 다잡으려 했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는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이토록 귀여우시다니.”
예나 지금이나.
탁자를 가로질러 넘어오는 환의 서늘한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미풍보다 더 조심스럽게 소희의 뺨을 스쳤다.
“짐은 허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소희는 그가 혼잣말인 듯 낮게 읊조리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그는 지금 십 년 전 그녀의 부친을 만났던 그 날로 돌아가 있었다.
“충동이었다 생각했답니다.”
환은 그 말을 하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홍안을 지피는 불꽃이 먼 곳을 향한 시선을 따라 부드럽게 일렁였다.
“사실 아직도 그날의 심정은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짐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십 년의 수명을 내어주고, 어린 딸을 보살피라 재물도 안겨줄 것입니다.
환의 이야기에 소희가 진심을 담아 고개를 살포시 숙였다.
이제는 끊어진 연이지만, 간절했을 제 아비의 마음을 매정하게 내치지 않은 그에게 전하는 고마움이었다.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들창 사이로 부는 바람을 따라 가볍게 흩날리는 그의 은발마저 돌담 너머 아카시아향이 물큰 풍기던 어느 봄의 따사로운 바람을 맞고 있는 듯, 모든 것이 과거의 향에 흠뻑 물들어 있었다.
소희는 그가 말하는 풍경에 손에 잡힐 듯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는 사실 더 바랄 수도 있었을 테지요.”
그러나 그는 어린 딸의 안위를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그가 욕심낼 수 있는 한계를 분명히 긋고 시작했다.
“원래 욕심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런 듯싶었답니다.”
그래서 환은 더욱 흔쾌히 허락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은 항상 탐욕이었다.
만족을 모르는 그들의 마음은 이내 빈 곳을 지저분한 것들로 채웠는데 그중 인간을 가장 빠르고 제일 처절하게 망가뜨리는 것은 탐욕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사내의 용모를 한 그에게 기꺼이 머리를 조아린 소희 부친의 머리 위에는 이미 서리가 내린 듯 흰머리가 가득했다.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탐욕도, 자존심도 다 버리는 와중에 비굴하지 않은 그의 태도는 진실되었다.
*
“고맙습니다.”
분명 모자라다 생각했을 것이었다.
환이 내어준 것은 십여 년의 수명.
생을 관장하는 이가 아니니 그가 가진 나름의 배려였다지만,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리는 이에게서는 두 번 다시 욕심을 담은 목소리가 울리는 일이 없었다.
재물이야 깔려 죽을 만치 내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환이 내준 것은 이십만 냥.
많다면 많았지만 염라대제라고 불리는 그가 내준 것치고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온 세상의 금은보화며 진귀한 것들이 그의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서 나온 것이 이십만 냥이라 조금 더 청하면, 알량한 욕심을 비웃어 줄 참이었다.
백만 냥을 어림하고 시작한 일이었으나 초로의 사내는 한결 말쑥해진 얼굴을 한 채로 예의를 차렸다.
“목숨을 구걸하는 것으로 부족해, 염치없이 재물까지 탐하였나이다. 빈한 처지에 내보인 욕심 더럽다 타박하지 않으시는 자애로움이 그저 고맙고 고맙습니다, 귀왕이시여.”
인사를 올리며 올려다보는 그의 표정은 참 맑았다.
“…….”
아주 잠시였지만 환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는 ‘자애로워야 할’ 천의 주인의 자리를 망각하고 제게 도움을 바라던 이를 조롱하려 덫을 팠다.
아이를 위한다는 그의 마음을 믿지 않았다.
죽는다 하니 겁이나 그에게 아이를 핑계로 목숨을 구걸한 것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더러 있었다.
“……더 필요하다면 더 내줄 것이다.”
매섭게 파고드는 송곳 같은 자책이 가슴을 후벼팠다.
뜨끔뜨끔.
가슴 깊숙한 곳이 후회와 미안함으로 연신 뜨끔거리며 아팠지만, 적어도 소희의 부친에게 내보인 표정은 조각같이 한 점 흐트러짐 없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차고 넘칩니다. 제가 곁을 비우고도 아이가 살길이 마련되었습니다. 우리…… 소희 구걸하지 않을 처지가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귀왕의 은덕입니다.”
단정히 무릎 꿇고서 그를 올려다보는 초로의 사내가 보내는 진심을 담은 말에 환은 뜨끔거리던 가슴 한켠이 이내 갈고리로 긁어내는 듯 싸하고 아파졌다.
“부족할 것이다.”
깔깔하게 잠긴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울렸다.
“아닙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거라.”
그 아이 ‘구걸’이니 하는 딱한 단어를 올려도 될 분이 아니니라.
귀문의 별, 염라대제의 한 분뿐인 비가 되실 분이다.
면구함을 감추려는 그의 말은 이내 명령같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렇습니까.”
설득 아닌 설득에 납득한 듯 눈물 젖은 뺨을 훔치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는 순했다.
환은 말을 섞을수록 눈앞의 초로의 사내에게 자꾸만 마음이 기울었다.
딱히 귀문의 별을 딸로 둔 자에 대한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유난히 천성이 착하고 순한 이에 대한 반가움이었다.
“짧은 소견에 그만 실언하였습니다.”
“……츳.”
환은 백만 냥을 꽉 채워 주며, 투덜거리듯 중얼거렸다.
“원래라면 영혼의 맹약을 해야 마땅하지만…….”
심성이 이렇게나 맑으니 그럴 필요 없겠구나.
젊은 왕의 통박 같은 호의는 이어지는 소희 부친의 말에 덧없이 흩어지고 말았다.
“하겠습니다.”
“무어라?”
“맹약을 하겠습니다.”
“지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더냐?”
어이가 없으니 절로 헛웃음이 샜다.
지금 눈앞에 이 딱하도록 착한 이는 자처해서 제 영혼을 담보로 언약을 하겠다고 한다.
그 소리에 그는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이에게서 내림한 귀문의 별이 얼마나 상냥하고 바를 것인지, 이 와중에도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팔불출 같으니라고.’
그래도 짝이랍시고, 좋은 것 내림 하였다 싶으니 웃음이 나고 말다니.
“큿.”
그의 헛웃음에 소희의 부친은 저를 비웃는 것인 줄 알고 손사래를 치며 항변했다.
“농이 아닙니다. 이렇게나 과한 배려를 해주셨는데 사람이 어찌 아무런 증표도 남기지 않을 것입니까. 하다못해 쌀 한 말을 빌어도 문서를 남기는 것이 관례인 것을요.”
“영혼이 맹약이 무언지 아느냐?”
이 딱하도록 선한 사람아.
환은 대놓고 혀를 차며, 맹약을 자처하는 이에게 차근히 설명했다.
영혼의 맹약을 걸어도 부족할 판에 그가 나서서 하지 말아라 심사를 다지며 하는 설명이다 보니 내용이 무척이나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입니까?”
“그럼, 영혼을 걸고 한 맹세를 깼으니. 그이는 심판도 못 받고 바로 지옥행이니라.”
환은 홍안에 무섭게 빛을 세우며 그를 을러대듯 표정을 매섭게 굳혔다.
“그러니.”
이쯤이면 알아들었을 줄 알았으나.
“두렵지 않습니다. 소인 이 은혜를 저버리면 금수만도 못한 것이니 응당 지옥불에서 구를 것입니다.”
“하.”
기가 찰 노릇이었다.
선하다 순하다. 그 어떤 말로도 이이를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환은 손끝에서 맹약의 서(誓)가 황금빛 그물로 날아들어 소희의 부친의 영혼을 잡아 가두는 것을 내려다보며 느릿하게 눈을 끔뻑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지옥 아니었던가.
그로썬 굳이 맹약을 자처하는 이를 내칠 이유가 없어 받아들였다지만, 오늘 일은 아마 두고두고 생각날 성싶었다.
맹약의 서가 그의 영혼이 빠져나갈 틈 없이 빼곡하게 옭아매는 것이 끝나자 그의 전신을 황금으로 물들이던 빛도 사그라들었다.
갑자기 사라진 빛에 소희의 부친은 어둠이 적응되지 않는 듯 한참을 눈을 끔뻑거렸다.
“……인사하겠느냐.”
이렇게까지 무조건적인 호의를 베풀 일은 아니었지만, 환은 어쩐지 한없이 순한 초로의 사내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졌다.
그리고 수수께끼같이 뜬금없는 그의 말을 대번에 알아들은 소희의 부친은 순식간에 눈물을 후드득 떨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습니다. 하게 하여주신다면…… !”
“하거라.”
환은 금세 펑펑 우는 남자의 얼굴에 가슴 끝이 못 견디게 아릿해 재빨리 그의 뒤편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본래는 그의 아내는 명이 다하자마자 하계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영도로 올라서야 했지만, 귀왕께서 현신하는 통에 모든 것이 멈춰져 있었다.
살아서는 볼 수도, 봐서도 안 되는 영이지만 ‘귀문의 별’을 낳은 이이니.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듯 중얼거리고는 가볍게 손끝을 휘둘렀다.
그의 영력을 받은 소희의 모친이 반투명하게 드러나고, 생시의 가장 어여뻤던 모습을 한 채로 다소곳이 서서 환에게 인사를 올렸다.
“이. 이. 임자!”
반가움과 서러움 온갖 것이 한데 뒤섞인 목소리가 비명처럼 터졌다.
못 볼 꼴이구나.
환은 조금 전까지 단정하던 이가 엉망으로 얼굴을 적신 채 영을 향해 말문을 여는 모습에 왠지 울컥해 괜스레 심사 사납게 중얼거렸다.
등 뒤로 다정한 안부와 서글픈 인사, 그리고 만남을 다시 약속하는 말들이 두서없이 뒤섞이길 한참.
달빛이 기울기 직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다린 환이 지엄한 목소리를 냈다.
“이만 가야 할 시간이다.”
조금 전까지 절절하던 정을 나누던 이들의 마지막 인사가 끝으로, 귀객은 영도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가 영도에 오르자마자 엉망이 된 소희 부친의 등 뒤로 첫 햇살이 터졌다.
“귀왕이시여.”
그는 원 없이 울어 목이 한껏 잠겨있었다.
헛바람이 빠지듯 쉭쉭거리는 목소리가 귀를 불쾌하게 긁었지만, 환은 내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고 도는 연에 저 사람 다시 만나게 될 수 있겠습니까. 너무도 짧았던 인연이라 더 잘해주지 못해 욕심이 치밉니다.”
“……흐음.”
욕심이라니.
소망이었을 것이다.
산고를 못 이기고 세상 등진 아내와 나누었을 이야기란 아직 핏덩이 같은 어린 제 자식에 대한 걱정이 다였을 것이다.
세 식구 오순도순 살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운 미련이 남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럼, 그러시게.”
아마도 오랜 시간 후겠지만, 아주 잠깐 들여다본 그의 미래에 둘은 함께였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까마득히 먼 미래.
지쳐버리게 미리 말할 필요는 없겠지.
부부의 연으로 만나게 되는 건 아주 멀고도 먼 미래지만, 이미 그전에 연이 닿아있으니 이십 년 후에는 만나질 운명.
환은 어쩐지 제가 다 기뻐 실쭉 웃음이 났다.
지금 웃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별의 자리를 이십 년간 비워두고 마냥 기다려야 할 처지였다.
저도 모르게 울며불며 매달리는 저이 덕에, 이제 하계는 달 마마 없이 이십 년을 오롯이 버텨야 할 큰 위기가 닥쳤는데, 웃다니.
“알고 보니 고약한 인사로군.”
환은 돌아가련다 몸을 돌리며, 제게 인사를 올리는 소희 부친에게 퉁명스레 말을 덧붙였다.
그래, 그날 그랬었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끝에 귀왕은 빈손으로 하계로 돌아왔다.
오직 입술 끝에 매달린 희미한 미소가 보답인 것 마냥 주렁주렁 달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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