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비틀린 웃음 (1)
2018.05.11.
비가 그친 정오.
태자의 허락이 떨어지자,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처참한 그곳으로 달려가 바스러진 건물의 잔해들을 걷어냈다.
흉물스럽고 스산하기 그지없는 것들을 치워내는 손길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부서진 잔해들을 햇살 아래 빛으로 돌리고, 새로운 것들을 다시 받아냈다.
솜씨 좋은 선인들이 모여 부지런하게 전각을 세우는데 걸린 시간은 단 두 시진.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지만, 그것을 내려다보는 태자의 눈에 담긴 것은 경탄이 아닌 그저 초조함뿐이었다.
“전하.”
그의 뒤에 시립한 삼관대제가 태자를 불렀으나, 듣지도 못할 만큼 태자는 온 신경을 창밖의 광경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하.”
다시 한번 천관이 목청을 돋우어 태자를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태자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들은 비가 그치기가 무섭게 태자에게 불려와 계속 서 있던 참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삼관대제를 부르는 일이 없는 이었으니, 필시 용왕의 삼형제를 부른 태자의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것이 두시진 째 아무 말씀이 없으시니 목청을 돋우게 되는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말로 전하지 못할 염려를 담뿍 담아.
“형님.”
보다 못한 수관이 천관을 만류하고, 지관이 말없이 고개를 도리질 치도록 천관은 태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런 태자가 말문을 연 건, 전각의 마지막 기왓장이 올라가고, 햇살을 두르는 것으로 ‘새 전각’을 짓는 것이 마무리되고 나서였다.
“삼관대제.”
“태자 전하.”
그의 짧은 말에 삼관대제가 한목소리로 그에게 답을 올렸다.
“새 전각이 지어졌느니라.”
“……네.”
이미 두 시진 내내 전각의 주춧돌을 들어 올리는 것부터, 마지막 기왓장이 올라가는 것까지 모조리 두 눈에 담은 참이었다.
새삼스러운 태자의 말에 의아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새 전각에, 새 주인이 찾아드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태자가 소리도 없이 몸을 돌려 뒤에 시립하고 있던 삼관대제들을 마주 바라보았다.
“네?”
다소 얼빠진 소리가 나왔으나, 태자는 그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새 주인이라 하심은.”
말을 채 맺지도 못한 지관의 시선이 무엄하게도 태자의 두 눈에 닿아왔다.
짐작키에, 모든 힘을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뻔히 드러나는 정직한 시선에 태자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저런, 지관아.”
물빛을 띄고 있는 청명한 푸른 눈동자가 아름답게도 빛을 발했다.
부채를 파닥이며 늘어지는 입술을 가리는 태자의 모습은 그 와중에도 유감없이 아름다웠지만, 삼관대제들은 태자의 웃음에 바짝 얼어버린 표정이었다.
새파랗게 빛을 내는 저 두 눈이 정말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전하.”
심상찮은 태자의 모습에 지관이 서둘러 입을 떼며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태자의 부채 소리가 더 빨랐다.
촤륵 소리를 내며, 길이 든 부채가 맵시 나게 접혀 태자의 손에 잡혔다.
“걱정하는 것이냐?”
건방지게도?
태자의 눈빛이 형형하고 사나워 삼관대제들은 절로 마른 침을 삼켰다.
칼날처럼 피부를 찔러드는 그의 영력이 송곳처럼 몹시 따가웠다.
지난 사흘.
태자는 마음을 비운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분노를 괴물처럼 키운 모양이었다.
그저 웃고 있음에도 거칠게 흩날리는 그의 영력에 태자의 도포 자락이 찢어질 듯 흩날렸다.
“전하.”
신음처럼 그를 부르는 지관의 목소리에 절망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지만, 태자는 그런 지관을 보면서도 시종일관 웃는 표정이었다.
누가 보았더라면, 기분이 좋은 듯,
어여쁘게도 웃고 있었다.
새로 지어진 전각의 ‘새 주인’.
태자가 상제의 좌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야 뻔했다.
새로운 이.
그의 곁에 있지 않은 ‘휘’를 모시려 함이었다.
“안됩니다.”
다급한 지관의 목소리 끝에 차가운 시선이 닿았다.
“어째서냐.”
너는 나의 가신이 아니었던가.
살짝 고개를 기울이는 태자를 따라 빛을 머금은 백금발이 그대로 나부끼며 시야를 시리게 메웠다.
태자는 모든 결정을 내린 후였다.
지관은 다급해졌다.
궁지에 몰리는 건 태자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번번이 태자의 악수에 절망의 끝을 맛봐야 했다.
좌절하는 주인을 보며, 이번에야말로 태자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리라 다짐했건만 그의 주인은 또다시 숱한 방법 중 가장 나쁜 것을 찾아낸 것 같았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태자를 막을 방법이 그에게는 없었다.
뉘라서 태자를 막을 것인가.
그의 막막함과 억울함을 모르는 바가 아니니, 그에게 하지 마십시오 청을 올리는 것조차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제 목숨의 주인은 언제나 한 분 이십니다. 그러니 태자 전하……!”
“그러니, 라고 단서 달지 말려무나.”
태자는 지관의 말을 자르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지관은 순간 태자의 눈에 무언가가 찰랑거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순식간에 지나갔고, 그 역시 다시 태자의 눈에 함부로 시선을 맞출 수 없었기에 그저 그렇다 믿을 뿐이었다.
그가 너무나 상심해, 돌이킬 수 없는 악수를 두기 전에.
말릴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속삭이며.
“내가 어찌해야 하겠느냐.”
자조적으로 되묻는 그의 말에, 삼관대제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 역시 아침에 소희의 명부가 이미 절반 이상 하계에 매였다는 소리를 들은 참이었다.
초조하고 궁지에 몰렸을 태자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직인을 회유해, 소희를 빼돌리려던 것은 휘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두 번 다시는 이제 그녀에게 접근할 방법 따위는 없었다.
하계의 경계는 한층 더 삼엄해졌고, 들려오는 것은 ‘달 아이’까지 내주었다는 믿지 못할 소식.
태자에게 돌아올 것은 칠흑 같은 참담함뿐이었다.
삼관대제들은 지금 태자가 무엇을 하려는지 뻔히 알았지만 그를 말릴 방법이 없었다.
“일 각이니라.”
“무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압니다.”
그럼에도 그런 태자에게 애원하다시피 매달리는 것은 지관.
침통한 수관도, 그저 창백하게 질려 말을 못 잇는 천관도 아니었다.
“지금이면, 그저 그녀를 싸안고 오련다 하는 것이 말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태자의 목소리는 산들바람처럼 다정하고 유하기 그지없었다.
“압니다. 전하의 힘을 의심함이 아닙니다.”
“그럼 무어냐.”
“마지막 희망을 놓지 못하는 저의 미련입니다.”
지관은 두 눈을 붉게 물들여서는 읍소했다.
태자께 멈춰 달라, 소리 없이 애원했다.
“너의 미련이다?”
태자의 속삭임에 지관이 한 자 한 자 힘을 줘 대답했다.
“매일 같이 백기전에 고하는 저의 미련인고로, 곧 다다를 것입니다.”
제 죄를 소리 내 입 밖으로.
걸음걸음 떨어져 내리던 그 무겁고도 무서운 것을.
주인에게 낱낱이 고했다.
경악한 표정의 천관과 수관의 얼굴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저 시큰해진 눈가를 가리지 않은 채
제 주인에게 매달렸다.
“한 번 더 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무서운 죄는 제게 다 미루십시오.
새롭게 좌를 받으실 천의 주인께 하나의 흠도 남기지 마십시오.
지관은 제 목숨을 주인에게 들이밀며 정성으로 사정했다.
“기도에 응답이 없다면, 이번에 휘를 뫼시는 건 삼관대제가 할 것이니. 부디. 빛을 머금은 두 손에 업을 묻히지 마십시오, 전하.”
지관의 이런 말에는 태자조차 말을 잇지 못했다.
충직하고, 우직했다.
아니, 미련한 작자였다.
용왕의 세 아들은 대대로 용왕만큼이나 미련했다.
융통성이 없어 언제나 대쪽같이 옳은 길로 가시라 잔소리하는 성가신 것들이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제게 상제의 죽음을 기도드려왔다는 천인공노할 소리를 입 밖으로 내 업을 짓는 지관을 보면서 태자는 제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저 미련한 자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마음 둘 데 없다 투정 부렸던 지난날의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받아들였다.
자신이야말로 넘치는 마음을 받고 있었다.
울컥, 무언가가 가슴속에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하아……?”
태자는 무엇인가 마치 옷 밖으로 새어 나오기라도 한 듯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고 가슴께를 더듬었다.
전신을 녹일 듯 뜨겁고도 뜨거운 것이 느긋하게도 흘러나오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전하, 모든 것은 제가 짊어지고 갈 것이니 한 번만 더 기도를 올리도록 허락하십시오.”
지관의 비장한 한마디가 귀를 울리고.
“순리대로 모셔 올 수 있을 것이니. 한 번만.”
애원하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 뜨겁게 반응하는 가슴에 태자는 머뭇거렸다.
“이 가여운 자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굉음 같은 지관의 말이 뜨겁게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울컥.
넘치기 시작한 그것은 보이지는 않았지만 착실하게 태자의 가슴에서 시작해 전신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
“전하!”
놀란 수관과 경악하는 천관의 모습에 태자는 자신을 돌아보고는 드디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다.
“지관아.”
저 바보 같은 이의 기도가 드디어 빛을 발하려는 모양이었다.
태자는 제게 마지막 힘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이전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느리고, 황홀하게 온몸을 적시는 그것을 느끼며 태자는 저를 말리는 지관을 향해 웃어주었다.
진심을 담아.
“네 진심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구나.”
태자는 황금으로 물든 손을 그대로 펼쳐 보이며 싱긋 웃었다.
앞으로 일곱 날.
그의 즉위가 결정 되는 순간이었다.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이 뜨거운 것이 발밑에서부터 차곡하게 전신을 채우고 올라와 두 눈이 마지막으로 잠겨들면 상제가 될 것이었다.
일곱 날.
그의 족쇄가 드디어 파쇄될 모양이었다.
태자는 기꺼운 표정으로 지관을 불렀다.
저를 위해 무서운 업을 지은 제 충직한 가신에게 권능을 실어.
“감히 웃전의 끝을 바라는 참람한 모습을 보였으나, 네 진심을 가납할 것이라, 너의 죄는 새 태양이 떠오르는 날 멸할 것이다.”
그의 죄를 사할 것임을 선언했다.
지관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늘 자신을 붙들던 바보스럽던 이였지만, 그저 그 마음이 흡족했으니 족하다 생각했다.
태자는 뜨끈해지는 발끝을 느끼며 천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미 시야는 황금으로 물들어 모든 것이 지독하게 현실감각이 없이 멀어진 지 오래였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그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천관, 명부가 얼마나 넘어갔다 하였느냐?”
“칠 분지 사가 넘어갔습니다.”
“절반이 넘게 갔는가.”
“이미 하계의 색을 내림 받으셨다 하셨고.”
“달 아이도 보셨다 하셨지.”
태자는 천관의 말을 가볍게 자르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희망에 눈앞에 보이자, 차분하게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혼례를 올리지 못하는 영이니, 형님께서 영기를 나누어 주셨을 것이다. 그리고 영기로 키워낸 아이일 테지.”
태자는 비교적 정확히 추론을 마쳤다.
“일주일이니 설마 그 안에 모든 관문을 넘지는 못하실 터.”
“그렇습니다. 세 번의 관문이 남았습니다.”
“지관아.”
“네.”
“네 미련이 나를 살리는구나.”
그리고는 드물게도 입 밖으로 그의 가신을 칭찬하기를 아끼지 않았다.
“일주일 후, 좌를 물려받고 바로 휘를 청할 수 있도록 미리 사절단을 꾸려놓거라.”
“네, 그럼 상제께…….”
“아니. 상제께 아뢰지 말고 따로 꾸리거라.”
태자의 말에 지관은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었다.
태자의 만류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알 듯도 해, 더 이상의 질문은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휘’
이제 일주일 뒷면 상제와 함께 천신의 길을 걸으실, 그분의 훼방을 방해하려 함이었다.
태자가 부릴 수 있는 천마는 상제의 그것과는 달라 귀왕께서 격이 떨어진다 트집을 잡으실지도 모르지만, 시기를 놓치는 것보다는 나았다.
지관은 깊게 머리를 조아리며, 묵례를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일주일 뒤.
이 모든 일의 끝이 정해질 것이다.
비통하던 분위기가 한층 더 깊게 침전했다.
*
“비가 그쳤습니다.”
소희의 말에 아수라가 창밖을 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한참을 내렸으니 이제 거두어 가실 때도 되었지요.”
아수라의 말에 소희가 궁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비를 부른다고 하셨지요?”
“서왕모께서 부르십니다.”
“비를 부르시는 걸로 보아, 날씨를 관장하시는가 봅니다.”
“음…… 그런가요?”
아수라가 미소를 지으며 부채를 집어 들었다.
“비도 그쳤으니 잠시 산책을 가시렵니까? 소장 잠시 허리를 펴고 싶습니다.”
아침부터 내도록 의자에 앉아 서책만 본 터였다.
아수라도 몸이 뻐근할 성싶어 소희는 바늘이며 가위를 모조리 챙겨 바구니에 넣고는 아수라를 따라나섰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도 오전 내리 바늘만 잡고 씨름한지라 눈이 침침하기도 했다.
“어디로 가세요?”
“아수라전은 보셨으니 오늘은 풍천전에 가볼까 했는데……. 저 작자가…….”
말끝에 심통 맞게 붙은 호칭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소희가 시선을 들자 내궁 화원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풍천이 보였다.
“……오시는걸요.”
“그러니 말입니다.”
“그럼 후원이나 한 바퀴 돌까봐요.”
작은 웃음소리를 물은 소희의 말에 아수라가 마땅찮은 듯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다가오는 풍천의 모습은 아무것도 몰라 무척이나 경쾌할 따름이었다.
“소희니임-.”
말끝을 쭉 늘여 부르는 품새며 아수라를 향해 치켜든 손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빠트릴 것 없이 모두 기분이 무척 좋아 보여, 오히려 얼떨떨했다.
“하하하핫. 날이 정말 좋습니다.”
“오늘에서야 저 작자가 기어이 미쳤나 봅니다.”
원래도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부채를 꺼내 들어 입매를 가리며 아수라가 재빨리 속삭였다.
거의 동시에, 풍천 역시 맞은편에 다다라 가벼운 묵례를 남겼다.
“풍천, 오늘 기분이 정말 좋아 보이십니다.”
“바보는 늘 즐거운 법이지요.”
“하하핫, 기분이 좋아 보입니까?”
“네.”
풍천은 소희의 말에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슬쩍 쓸어 올리다가 괜히 헛기침을 하기도 하며 부산하게 굴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크흠.”
벌게진 얼굴을 한 채 풍천이 머뭇거리는 것을 지켜보던 아수라의 고개가 팩 돌아간 건 그때였다.
“어쩐지 징그러워서 도저히 눈 뜨고 못 보겠군.”
“뭐?”
“이 꼴사나운 모습을 보아하니, 달 씨앗이 커진 게군?”
부채 뒤의 날 선 목소리는 그대로였지만, 핵심을 찌르는 말임은 틀림없었던 모양인지 풍천은 아수라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그걸.”
“왜 몰라.”
“풍천전에서도 달 씨앗을 받아가셨습니까?”
항시 모든 일에 소식이 늦는 건 소희라, 풍천이 싱글거리는 얼굴로 소희에게 씨앗 셋을 받았노라 감추지 않고 술술 털어놓았다.
“아, 달 씨앗을 받으셨군요.”
반가워하는 소희의 목소리에 풍천이 한결 은근해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셋입니다. 모두 얼마나 어여쁜지 모릅니다.”
“처음도 아닌데, 어쩌면 이렇게 경망스러운지.”
“처음이지. 소희님께 처음 받은 달 씨앗인데. 당연히 기쁘지.”
안 그렇습니까.
풍천의 말에는 소희도 뭐라 대꾸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저 웃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아수라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고, 아니라고 하기엔 그녀도 기뻤던 탓이었다.
아수라와 풍천의 사이야 늘 투덕거림의 연속이라지만 오늘따라 아수라는 유난히 날을 세웠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시냐 묻기도 애매한 것이 조금 전까지 그녀와 단둘이 있을 적에 더없이 다정한 분이 아니셨던가.
풍천과 두 분 다투기라도 하신 건가.
열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희는 그저 어색하게 웃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하나 싶었다.
“쪼잔하기는.”
풍천이 들으라고 중얼거리지만 않았다면.
“무어라!”
“그렇지 않나. 자네는 교아 하나를 받고 난 셋을 받았으니 지금 이러는 게 아닌가 하는 말일세.”
어머나.
소희는 절대로 소리 내지 않았다.
아수라의 날 선 눈꼬리가 풍천의 말을 긍정하고 있었기에 여기서 그의 심사를 더 긁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언짢아 보이는 아수라의 소매 끝을 조용히 두어 번 잡아당겼을 뿐이었다.
“흥.”
“시왕 쪽도 불만이 만만찮단 말이지.”
“아무렴 귀문 쪽만큼 급박하려고.”
“대신 감재사자급인 교아를 내주셨잖은가. 염휘께서 직접 기른 아이를 말일세.”
도대체 저 욕심의 끝은 어디란 말입니까.
“아니면 바꾸시려나?”
“무어?”
“교아랑, 달 아이 셋.”
놀랍게도 풍천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풍천의 도발에 아수라는 진심으로 화가 난 듯 부채를 사납게 접어 손에 그러쥐었다.
“감히.”
“소희님 이것 보십시오. 왕께서 친히 기른 아이와 달 씨앗 셋을 바꾸자 해도 화를 내니 전 어쩌란 말입니까?”
저도 감재사자급의 아이가 탐이 난단 말입니다.
왕께서 직접 기른 아이라니. 아수라전을 너무 편애하시는 것 아닙니까?
“흥.”
소희를 향해 떨어지는 풍천의 말에는 역시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두 장수의 말은 모두 일리 있었으니, 모두에게 넉넉히 사자를 내주지 못한 그녀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서운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두 장수를 향해 ‘차’를 권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렇게 된 거 다과라도 좀 드세요.”
달 씨앗은 조금 더 부지런히 만들게요.
쑥스럽게 차를 권하는 소희의 은빛을 품은 머리칼이 바람에 살랑이며 가볍게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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