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78화 (78/114)

78. 바람을 머금은 향내 (11)

2018.04.30.

소희는 물에 흠뻑 젖어 나타난 풍천을 내궁 안으로 청했다.

“이 비에 어디를 계셨습니까? 비가 오면 얼른 피하시지 않고선.”

다정한 염려를 감추지 않고선 면건으로 부지런히 풍천을 닦아내 주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답니다.”

“이렇게 젖어서야 닦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새 옷을 내달라 할 것이니.”

소희의 작은 손은 쉴 새 없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런 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풍천에게서 나지막한 말이 떨어졌다.

“소장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을 떨구는 갑주만큼이나 젖은 풍천의 목소리.

그 말에, 소희의 손이 멈췄다.

“이제, 소희님을 잃고서야 견딜 자신이 없다는.”

묵직한 만큼 큰 울림이 있는 말을 풍천은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그의 말에 대번에 얼굴이 붉어진 건 소희 쪽이었다.

늘상 무뚝뚝하고 말 없는 이였다.

풍천의 말이라고 해봐야 아수라와 가볍게 투덕거리는 수준, 그나마도 주로 아수라에게 타박을 듣기 일쑤였건만.

지금 그의 말은 덤덤한 듯 다정하기 그지없어 단번에 가슴이 꽉 들어차고 마는 것이다.

“그……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이 든 자리는 티가 나지 않아도 난 자리는 티가 나는 법이니까요.”

“제 마음을 그런 식으로 희석시키지 마십시오.”

다부진 말에 소희의 볼이 한 번 더 붉어졌다.

“그런 의미도 아닐뿐더러, 소희님이 그런 분도 아닌 거 아시잖습니까.”

정색하는 풍천 덕에 소희가 면구해져 쩔쩔매며 축축한 면건만 잡아 비틀 때였다.

“이 미련한 인사의 고백은 이런 식이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츳.

가볍게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반가운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짝 하고 울리는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익숙한 마찰음과 함께 울리는 풍천의 옅은 신음소리까지.

아수라였다.

“아수라님!”

소희는 저를 구해주는 아수라가 그저 반갑고 좋아 방실거리며 그를 불렀다.

“짐은 보이지도 않는군.”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똑같이 미소한 염휘가 성큼. 내실로 발을 들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뜻밖의 목소리에 놀랄 법도 하건만, 소희는 연이어 울리는 반가운 목소리에 살짝 들뜬 표정이었다.

비가 오는 이른 오후.

정무가 한창 바쁠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에 염라의 불들이 모두 내궁에 모이다니.

무슨 일이라도 난 것인가.

반갑던 것도 잠시, 소희는 저도 모르게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을 읽었음인지 염휘는 단번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와 가만히 손을 잡아 주었다.

“차나 한 잔 주어. 내궁 꿀타래가 그렇게 맛이 좋다지요?”

“예에?”

“제가 나눠 드렸답니다.”

“아니, 저…… 우선 급하신 분이 아수라이신지라.”

소희는 저번에 환이 한참을 서운타 타령한 것을 잊고 또다시 아수라에게만 살짝 나눠준 것이 미안해 다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비도 오고 하니 곤하여 일이 안 되지 뭡니까. 핑계 삼아 잠시 들렀답니다.”

염휘는 탁자로 가서 자리를 잡으며 가벼운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면건을 쥐고 머뭇거리는 소희에게 손을 벌려 옆자리를 청했다.

“이리 와요.”

“……네.”

“차 한 잔 다오.”

각기 자리를 잡고, 흠뻑 젖은 풍천만 옷을 갈아입으러 자리를 뜨는 것으로 내궁의 떠들썩한 손님맞이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빗소리가 차곡히 쌓이고, 말이 없어도 괜찮던 시간을 따뜻한 차가 들어오며 훈훈하게 채웠다.

맑은소리와 함께 흰 자기잔이 가득 차고, 찰랑이는 물결을 따라 진한 향이 피어올랐다.

보라색의 찻물은 이제 소희도 익히 하는 것이었다.

“아. 서녘의 달빛.”

“이제 아시는군요?”

“색도 색이지만 향이 좋아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귀한 것을 기억에 남도록 내주다니, 유능한 가신 아닌가.”

염휘가 싱긋 웃으며 아수라를 추켜세워주었다.

찰랑이는 찻물이 모두를 즐겁게 적셨다.

“유능한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을 흔쾌히 내주시는 분을 어쩌다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래?”

염휘의 한쪽 눈썹이 슬쩍 솟았다.

“인연이군.”

웃음어린 그의 목소리에 아수라가 담백하게 대꾸했다.

“인연이었습니다.”

“흐응.”

“그러니 즐기십시오.”

알쏭달쏭한 아수라의 말이었지만, 은근한 미소를 머금은 그의 표정이 나빠 보이지 않아 소희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언제고 좋은 것이 생기면 내어 드려야겠군? 덕분에 입이 호강하였지.”

그래도 답례하여야지.

“이미 충분합니다.”

그러나 염휘의 이어지는 말에도 아수라는 작게 고개를 내저으며 단호하게 답을 했다.

“달을 낚아 귀한 차를 내어 줄 수 있는 것이. 그저 행복하다는 이입니다.”

“달을 낚는다고?”

“네, 이름 없는 강 북쪽 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래? 생의 좌를 안 받고?”

“네, 금번 대 내도록 달을 낚아 드릴 것이니 종종 차를 즐기시기만 하면 됩니다.”

“흐응.”

신기한 이였다.

대가도 없이 그저 나누는 기쁨을 누리는 자라니.

염휘는 그 욕심 없는 이가 궁금했지만, 몽글거리는 이 분위기를 깨뜨리기 싫어 그저 그러마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소희에게 이 귀한 것을 내주셨으니, 언제고 그이에게, 만월의 가루를 보내어 드려야지.

그저 그랬던 것이다.

*

역시 염라의 불들은 아무 이유 없이 내궁까지 발걸음 한 것이 아니었다.

찻잔을 비우기 무섭게 염휘가 본론을 꺼냈다.

“불편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고…….”

흐리는 말끝에 무거운 것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꽤 묵직했다.

“돌아가며 번을 서신다고요?”

잘게 떨리는 목소리에 묻은 당혹스러움을 눈치챘음인가.

환은 소희의 손을 잡아 가볍게 손등을 두드리며 주의를 환기시켜주었다.

“그저 조심하자는 것이니 염려할 것 없습니다.”

그럴 리 없어.

소희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또 다른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길 바라신다니, 모르는 채로 있을 것이다.

“정무를 보는 동안은 아수라와 풍천이 번갈아 가며 올 것입니다만, 아수라가 아마 계속 있게 되지 싶습니다.”

“아수라께서…….”

“풍천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분명 꿀타래나 우직하게 씹을 테니.”

마치 오늘 일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아수라는 산뜻하게 답을 돌려주었다.

소희로서도 아수라 쪽이 조금 더 마음이 편하긴 했다.

“하지만 바쁘신 분께서, 그리고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이제 직…… 그분께서도 안 오시고요.”

무심결에 직인이라고 소리 낼뻔한 것을 가까스레 얼버무리며 소희가 말을 돌렸으나 돌아오는 답은 강경했다.

“아닙니다. 그저 제가 마음 편하고자 하는 것이니 허락하십시오.”

반쯤은 강요에 가까운 부탁이었으나 아수라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니 소희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럼, 잠시 폐를 끼치겠습니다.”

“폐라니요. 그저 즐거운 한때를 함께 보내주시렵니까.”

아수라는 그 언젠가 산책을 권하던 그대로, 차분한 시선을 해서는 말갛게 웃었다.

“네.”

담백하리만큼 깔끔한 그의 말에 소희의 불안감이 어느 정도 씻기고, 그들의 환담이 무르익을 무렵이 되어서야 풍천이 돌아왔다.

“풍천께도 따뜻한 차를 내어주렴.”

소희가 서둘러 아이들에게 새로이 차를 부탁한다, 다과를 청한다 하며 부산을 떨었다.

“도무지 변한 게 없으이.”

아수라가 곁눈으로 여전히 검은 빛 일색인 풍천이 들어오자 타박을 했지만 풍천은 멀끔한 표정을 해서는 얌전히 내주는 차를 마시기만 했다.

“변해서야 쓰나.”

찻잔을 깨끗하게 비운 풍천은 자못 비장한 목소리를 냈다.

염휘의 한쪽 눈썹이 솟고, 아수라의 시선이 짙어짐을 모르지 않을 텐데, 풍천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어째 그러느냐?”

염휘의 말에 그러게 말입니다, 하고 남 일처럼 싱거운 대답을 하는 풍천은 다른 이인 양 낯설었다.

그 좋아하는 당과며 꿀타래에 시선 한번 주지 않던 풍천이 영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단단히 굳어진 턱을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겨우 입을 뗐다.

“염휘시여. 소장 지난날 무례한 언사를 이제 와 용서를 구합니다.”

“어째서냐?”

희미한 웃음소리가 물린 목소리가 풍천에게 돌아왔다.

“소장에겐 소중한 것이 없었습니다. 있어 봐야 어떤 얄미운 녀석 정도일 것입니다.”

“하-?”

“문득, 오늘 내궁을 돌다 어린것들의 웃음소리가 흠뿍 밴 따사로운 공기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흐응?”

“하여, 그 온기를 맛본 소장. 다시는 놓지 못하리라 생각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염휘는 여전히 옅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놓아야 하는 그분의 마음이 어떨지……. 이제야 이해가 되고, 그 무례를 눈감으시는 염휘의 심정 이제야 알 듯도 해. 감히 용서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억눌린 신음이 울리고, 이어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뒤따랐다.

누군지 모를 수 없었다.

“…….”

희고 작은 두 손이 황급히 얼굴을 가려 덮었다.

그러나 채 가리지 못한 소희의 드러난 귀 끝이 새빨갰다.

가늘게 떨리는 마른 어깨가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그녀를 고스란히 드러내, 풍천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저 작은 이에게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 다그치던 제 지난날이 참 못났다 싶었고, 잔인하다 싶었다.

누군가로부터 온기를 거둬드리는 일이 쉬울 리가 없을 텐데, 매몰차지 못하다고 윽박지르듯 답을 강요했던 그 날이 부끄러웠다.

“……소희님께도 용서를 구합니다. 허나 별이 되어달라는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풍천은 담아두었던 말을 다 해버린 듯 입을 꾹 다물고 소리를 삼켰다.

빗소리가 무겁게 깔리는 내실엔 숨죽인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운명이라고만 말하기에 닥친 현실은 이렇게나 잔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도록 원하던 소망을 들어달라 조를 것이니 풍천은 사과해야 했다.

“……이러니, 저랑 계십시오.”

한숨 같은 아수라의 말이 서러운 소음을 밀어냈다.

“그저 예나 지금이나 미련한 작자이옵니다. 저런 말일랑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고.”

“기, 깊이 새길 것입니다.”

그러나 소희는 아수라의 위로를 거절했다.

잔뜩 붉어진 눈을 하고선, 아직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지켜봐 주셨으니,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고집스럽게 풍천에게 답을 돌려주었다.

“백번이고 천 번이고 답할 것입니다, 저는 별로 살 것입니다.”

머뭇거리고, 망설이며, 빙빙 돌던 자신을 탓하지 않고.

그 고된 마음 알아주며 다독이는 풍천에게 소희도 진심으로 다가섰다.

“그러니.”

말하던 끝에 작게 코를 훌쩍이던 소희가 풍천에게 따뜻한 차를 한잔 따라 밀어주었다.

“이제 그만 드세요. 비 끝에 감기 걸리십니다.”

“그러하시단다.”

이 상황에서도 풍천을 염려하는 소희의 모습에 아수라가 질린 표정을 감추지 않고 풍천을 툭 쳤다.

“미련은 대물림 되는 것인가.”

쥘부채를 꺼내 팔락거리는 아수라에게서 혼잣말인 듯 바람 같은 소리가 새나왔다.

융통성 없이 미련한 염휘에게 미련할 정도로 순한 별이 찾아들고, 미련할 정도로 우직한 풍천까지.

아수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에게만 들리게 중얼거리는 풍천의 말에는 가볍게 흔들리던 그의 부채가 딱 멎고 말았다.

“미련할 정도로 상냥한 누구도 있지. 사자를 감싸다 명을 달리 할 뻔 하셨다던가, 그 몸을 해서도 별이 걱정되어 들여다보았다던가.”

들으라고 하는 나지막한 소리에는 아수라의 입도 다물릴 수밖에 없었다.

미련한 이들의 차를 나누는 시간이 빗소리에 고즈넉이 물들었다.

세차게 쏟아 내리는 비는 상천에도 마찬가지로 내렸다.

지관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비가 마치 태자의 눈물 같다고 생각했다.

휘의 아기새들은 일전의 그의 경고에 놀란 탓인지 그 뒤로는 태자전으로 함부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 덕에 썰렁한 태자전은 더없이 적막해졌다.

태자께선, 모든 것을 물리고 계셨다.

식사도 하지 않으시고, 하루 내내 그 기척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저러다 옥체가 상하실 것인데.’

걱정과는 달리 지관은 태자에게 갈 수 없었다.

태자께서 주변을 물려주길 바랐으니, 바라는 대로 해드릴 것이었다.

하늘 아래 다시없이 고귀한 분께서 언제나 바라시는 작은 것 하나 원껏 누려본 적 없으셨다.

그러니 자신만이라도 바라는 대로 하여드릴 참이었다.

그까짓 식사며, 잠쯤.

태자께서 가지신 지고한 힘에 대면 별 것 아닐 것이다.

‘아니, 지금 물이 넘어가기나 할 것이냐.’

지관은 엉망일 태자의 심사를 가늠하며 빗소리에 한숨을 실어 보냈다.

한숨에 무겁게 담긴 것은 격렬한 후회였다.

태자를 말리고, 충언이랍시고 그를 붙들어 매놓기에 바빴던 지난날의 자신을 저주했다.

선과를 들고 머뭇거리던, 선량한 태자의 얼굴이 빗물에 담겨 지관의 뺨을 세차게 내려쳤다.

사방이 온통 흙탕물이었다.

지관은 그 모습마저 지금 태자의 상황같이 느껴졌다.

먹구름에 가려져 햇살 하나 드는 곳 없이 어두운 하늘이며, 진창이 된 바닥까지.

그 어느 곳 하나 좋다 말할 수 없는 상황.

태자는 또다시 휘를 놓쳤고, 이제 휘도 대놓고 개입을 하는바.

그들의 앞날이 이렇듯 엉망일 것인가.

축축하고 무거운 공기를 따라 가만가만 후회와 함께 끝 간 데 없는 불안이 스몄다.

‘어째서 땅이 이렇게 흔들리는 것이냐?’

눅눅한 공기를 타고 천관의 전음이 지관에게 닿았다.

아주 잠시였으나, 땅이 우르르 떨리며 사방을 울렸다.

천관이 지관을 힐난하듯 목소리에 날을 바짝 세워 탓하듯 물었으나 지관이 대답하기도 전, 수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 그저 이럴 땐 괜찮다 해주십시오. 지관 형님께서 오죽 속이 상하면 그러셨겠습니까.’

‘건방지긴. 짧은 생각에 함부로 입을 여는구나.’

감상에 잠긴 비 오는 날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벼려졌다.

‘감히, 너희의 감정을 담을 수가 있는 일이더냐?’

천관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목청을 돋웠다.

‘지금 태자께서 어떤 마음이실지, 헤아렸더라면 이렇게 힘든 티를 내는 것이 가당키냐 하느냔 말이다.’

우르릉-

노한 천관의 말을 타고 뇌우가 터지는 소리가 은은하게 하늘 끝을 울렸다.

‘그저 후회함입니다, 형님. 감히 저희가 보태려는 것은 아닙니다.’

풀죽은 지관의 답에 천관이 콧방귀를 끼듯 대꾸했다.

‘이미 보태었느니라. 함부로 말이다. 후회된다 하였느냐?’

‘네.’

‘네. 형님’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아우들의 절절한 대답에 천관이 다시 입을 뗐다.

‘후회가 되면, 그저 삭이거라. 티도 없이 말끔하게, 그리고 소명처럼 받들어 명령을 이행하거라.’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니라.

‘나는 이제, 천도를 내드리는 것이 아니라 원하시면 보쌈이라도 해올 참이다.’

‘!’

‘형님.’

농담인 듯 스치는 말이라 생각했건만 천관은 아우들보다 훨씬 더 그 책임을 절감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서슴없이 납치라도 하겠다는 천벌 받을 소리를 하면서도 목소리에는 한 점 흔들림 없었다.

지관은 서슬 퍼런 천관의 다짐에 푸념처럼 터트리던 한숨까지 말끔하게 들이켰다.

언제 해도 늦어서 후회였다.

그러니 천관의 말은 타당했다.

무엇이든. 원하시기만 한다면 들어드려야지.

우르릉-

그런 삼관대제의 다짐 뒤로 하늘이 노한 듯 계속해서 울음을 토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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