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바람을 머금은 향내 (4)
2018.04.06.
쫘아악.
“…….”
부채를 펴는 손에 자못 짜증이 묻어있었던 것은 오로지 착각이었나.
소희는 어째서인지 신경질적인 아수라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찻상 올릴까요?”
문밖에서 내궁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여쭙는 소리가 건너왔다.
“다오.”
부채 너머 실쭉한 목소리가 소희의 짐작이 착각이 아님을 알렸다.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리고, 단정한 발걸음이 다가와 차와 당과를 내려놓고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물러났다.
“서녘의 달빛이나 적월은 아니더라도 정성으로 만든 것입니다.”
소희는 토라진 것 같은 아수라를 향해 차를 따르며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만월의 가루로군요.”
부채너머 까만 눈이 슬쩍 잔을 훑고는 정확하게 짚어냈다.
“네. 마셔도 된다고 해서 준비해 보았답니다.”
“그렇습니까?”
아수라는 시큰둥한 말과는 달리 가늘어진 눈은 기쁜 듯 둥글게 호를 그리고 있었다.
“등은 좀 어떠세요?”
소희가 굳이 만월의 가루를 차로 내온 것은 그래서였다.
만월의 가루를 상처에 부어준 것은 알고 있었고, 상처가 나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수라는 상처를 입기 전보다 확연히 티가 날 정도로 안색이 좋지 않았다.
“……좋아졌습니다.”
얼굴을 가린 부채를 내리며 아수라가 잠깐 머뭇거리는 답을 주었다.
“상처에 발라도, 마셔도 좋다고 하니…….”
“고맙습니다.”
아수라는 소희의 정성을 내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황금빛을 머금은 이 찻잔 안에 담긴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하계의 모든 이는 알 것이었다.
굳이 그런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아수라는 기쁘게 받았을 것이었다.
그의 투정 같은 시위는 끝났다.
이렇게 순하고 착하기만 해서야 도무지 이길 방법이 없었다.
첫새벽 햇살이 터지기 전, 아수라들의 대화는 한참이나 이어졌었다.
간밤 염휘께 톡톡히 털리고 온 밤의 아수라가 그녀답지 않게 멋쩍은 목소리로 그를 달래는 것부터가 놀랠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내용만큼 놀랍지는 않았다.
아니, 너무 놀랍지 않아서 놀라웠다고 해야 할까.
아수라는 염휘나 소희가 상태자를 벌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건 아수라뿐만이 아니라 귀왕을 지척에서 모셨던 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을 일이었다.
하계의 지존을 잃는 순간에도, 아수라가 새로이 좌를 물려받는 순간에도 ‘귀왕’들은 그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심지어, 찬탈당한 별이 돌아오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귀왕께서 대대로 이렇게 아우에게 무르시건만, 별까지 상냥하기 그지없다니.
아수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별’을 향해 할 만한 태도는 아니었다. 무례하고 건방졌다.
그러나 별은 그런 아수라를 탓하기보다 상처 입은 그의 안위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평생 가야 이길 수 없겠습니다.”
검고 촘촘한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아수라가 여상한 목소리를 냈다.
“네?”
내리깔린 시선 덕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어 소희는 아수라의 말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차 맛이 그만이다는 말입니다.”
“많이많이 드세요.”
소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티내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신은 돌아왔고, 더 이상의 불미스러운 일은 원하지 않았다.
간밤 밤의 아수라와 해묵은 감정을 털고 나니, 이처럼 가뿐하고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저런 알쏭달쏭한 말쯤이야 몇 몰라도 괜찮았다.
모르라고 하는 말일 테니, 눈감아야 마땅했다.
“교아가 잘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소희는 아수라의 잔에 다시 첨잔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어서 마시라는 그녀 식의 귀여운 재촉이었다.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은 잔을 보며 아수라의 까만 눈이 기쁘게 빛을 발했다.
“잘하고 있을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아수라께서도 이렇게…….”
“공들여 정리하느라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안전합니다.”
뭐, 몇 마리쯤은 남았을지도 모르지만.
아수라는 구태여 정직하게 굴지 않았다.
감정의 찌꺼기에서 태어난 요괴도 못 버티고 대번에 쓰러져버린 여자였다.
다정한 만큼 심약하고, 상냥한 만큼 유약했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좋았고, 사서 하는 걱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교아는 소희의 생각보다 좋은 내림을 받은 아이였다.
과연 첫아이랄까.
근골도, 재능도 좋은 점만 물려받아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났지만, 심지어 단단한 심성마저도 소희님을 닮아 일견 세심했고, 염휘께 내림 받아 때론 엄혹했다.
영도를 건너는 이들을 잘 보살피고, 달려드는 요괴를 잘 정리할 더없이 좋은 성격이었다.
아수라는 교아가 잘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몸이 성치 못해 검을 끝까지 봐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정교한 검술을 써야 할 일이 없을 테니 지금은 이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덤덤한 아수라의 말에 소희는 더 이상 캐묻는 일을 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아수라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가 괜찮다고 하면, 교아는 괜찮은 것이다.
“어서 드세요.”
소희는 ‘안 괜찮은’ 아수라를 향해 차를 권하며 들고 있던 주전자를 가볍게 흔들어 주었다.
“네네.”
아수라는 잔을 들어 보란 듯이 끝까지 비웠고, 소희는 착실하게 채워주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쪼르륵 소리와 함께 마지막 잔이 채워졌다.
기어코 한 주전자를 다 마시게 한 소희는 기쁜 듯 미소 지었다.
그 순간이었다.
웃는 소희의 눈동자를 따라 옅은 붉은 기운이 맴돌았던 것은.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으나, 공교롭게 찻잔을 받아들던 아수라의 시선에 잡히고 말았다.
“!”
“왜 그러세요?”
생글거리는 얼굴로 소희가 아수라에게 물었다.
아수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지긋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깜빡이는 커다란 검은 눈망울.
그 깊은 어딘가를 들여다보기라도 할 듯 그의 시선은 집요했다.
그리고 미처 숨기지 못한 붉은 가닥의 기운.
아수라는 저도 모르게 신음하고 말았다.
감탄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두 번째 사신의 문을 건넌 소희에게 ‘별’의 징표가 찾아 들기 시작했다.
“사신의 문을 건너셨군요?”
소희는 모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도 찰나의 그 붉은 빛을 보지 못했더라면 굳이 찾아보지 않았을 테니까.
“네?”
“염휘께서도 모르고 계시겠군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언제……?”
“글쎄요, 사신의 문은 곧 뒤이어 열릴 테죠. 미리 알고 계십시오.”
“네.”
소희는 아수라의 말에 야무지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 관문은 그렇게 힘들더니, 두 번째는 아무도 모르게 지나갔다니.
그간 일이 많았다지만 도대체 언제?
그러나 소희의 상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만 가보아야겠습니다.”
아수라가 바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요?”
“소장, 한 주전자나 마셨더니 든든하여,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소희의 시선이 찻주전자에 닿았음을 본 것인지 아수라가 질색하는 목소리로 거절했다.
소희에게 배가 부르다며 자리를 빠져나온 아수라가 향한 곳은 염라본궁.
마지막 잔을 비울 때쯤, 내궁까지 잔잔한 파동이 들이치는 것을 느꼈다.
이미 그의 피부에는 소름이 잔뜩 솟아 있었다.
염휘께서 영력을 올려 무엇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아침에 풍천을 불러들이셨다는 소식은 들은 바 있어 마음이 불안했다.
자신은 새벽 내도록 ‘밤의 아수라’와 설전을 벌이며 마음을 다잡은 터였지만, 풍천은 또 사정이 달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염라의 불이 궁 안에서 영력을 돋우다니.
설마 염휘께서 풍천에게 대노하셔서 패대기라도 친다면 가서 받아주어야 할 것이니 자연히 아수라의 걸음은 빨라졌다.
“저 성가신 인사.”
도통 쓸모가 없단 말이야.
투덜거리는 말과는 달리 아수라는 점점 더 걸음에 속도를 냈다.
그리고 본궁에 발을 디뎠을 때, 그가 우려했던 일이 터졌음을 깨달았다.
콰앙-
귀를 찢는 사나운 소리와 함께 본궁의 첫 문이 가루가 되어 터져 나오는 것을 봤던 것이다.
한 뼘이 넘는 두꺼운 나무를 가루가 나도록 터트릴 정도면, 염휘이시련가.
아수라는 풍천이 숨은 붙어 있길 바라며, 전신에 영력을 두르고 본궁 안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대전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그의 발끝에 채이는 파편들은 바람만 불어도 먼지가 되어 스러졌다.
그리고 자욱하던 먼지 끝에 풍천과 마주 선 염휘가 보였다.
“만족하느냐?”
“……이쯤에서 접어야 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만하려무나.”
염휘의 덤덤한 듯 흐르는 목소리는 서늘했다.
그리고 하문에 답을 올리는 공손한 듯 열을 돋운 목소리는 풍천의 것이었다.
아수라는 골치가 아팠다.
“그럼, 상천의 것은 넘긴다지만 직인은 어쩌시렵니까?”
“……그이는 합당한 처분을 받을 것이다.”
이미 태자의 안하무인격의 태도에 대한 ‘징벌’을 논하던 자리가 격해진 모양이지만, 결론은 어차피 정해져 있었다.
염휘께서 움직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태자의 죄를 청할 수 없었다.
이번 일의 모든 것이 그대로 묻힐 거라 생각했건만.
그러나 염휘의 말은 놀래서 뛰어든 아수라에게조차 의외였다.
당연히 직인도 이대로 덮고 넘길 줄 알았건만, 직인은 처분받을 것이라니.
“직인의 일이 알려지면, 태자께서도 처벌을 면키 어렵습니다.”
아수라는 염휘의 말에 문제점을 짚어주었다.
“어서 오너라.”
염휘는 두 손을 늘어뜨린 채 아수라를 반겼다.
가볍게 흩날리는 그의 소맷자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염휘의 두 손은 찬란한 황금빛이었다.
“염휘시여. 이대로 일을 덮으실 요량이 아니셨습니까?”
아수라는 공손히 말을 올렸다.
여태 가해자인 태자를 싸고돌았던 그였다.
직인을 끌어내면 자연히 태자가 나올 것임을 모르는바 아닐 텐데.
염휘의 말은 모순되었다.
하지만 아수라를 향해 돌아서서 빙긋 웃는 염휘는 무척이나 상쾌한 목소리를 냈다.
“직인은 삼천외의 자. 태자와 엮일 것이 무어 있겠느냐.”
“하지만, 직인이 심연의 물을 별게 먹이고, 별이 사술에 놀아나 상천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상황이 이러한데 직인을 벌하시면 자연히 태자께서도…….”
“설마.”
아수라의 설명에 염휘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태자가 얼마나 영리한지 아수라 네가 아직 잘 모르는구나.”
“그래도…….”
“직인의 자존심을 몰랐음이다.”
염휘는 이해하지 못하는 아수라를 향해 작게 혀를 찼다.
삼천외의 선인이 가지는 자부심. 그리고 운명을 잣는 자로서의 자존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상제도 아닌 태자를 위해 일을 했다는 것을 직인 그녀가 실토할 리 없다.
그리고 그녀가 설령 말하고 싶다 한들, 그것을 말하게 두지 않을 것이 바로 태자였다.
“그러면, 직인은 가운데서 놀아난 것입니까.”
염휘의 말에 아수라가 질린 목소리를 냈다.
그 안에 담긴 옅은 혐오와, 숨기지 못한 경멸까지 담뿍 물고서.
그러나 염휘는 아수라의 말에 고개를 젓고는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직인이 그럴 리 없다. 그녀 스스로 자청하였을 것이다. 운명을 잣는 자가 이런 편파적이고도 악의적인 일을 저지르다니 믿기지 않지만, 죄를 달게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을 꾸민 것은 둘이지, 절대 하나가 아닙니다.”
풍천이 볼멘 목소리로 태자의 단죄를 요청했다.
그런 풍천의 말에도 염휘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태자는 즉위해야 한다. 죽일 수 없어. 상제가 죽이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천의 지배자를 뭐라 생각하느냐. 겨우 비의 이십 년 부재에 하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느냐?”
염휘는 또다시 시작된 논쟁에 지겨운 듯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달 마마의 이십 년의 부재에 하계가 어떻게 무너져가고 있었는지 생각해보아라. 하물며 지존인 상제가 그 자리를 비운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의 시선은 풍천과 아수라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떨어졌다.
“운명이라 엮인 것을 분하다 하여 하나의 천을 망가뜨릴 순 없는 법.”
절대, 태자는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 곁자리가 비는 것만으로도 태자에게는 충분한 벌이 될 것이다.
염휘는 그리고는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손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태자의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
“…….”
염휘는 염라대제의 권능을 실어 선언했다.
염라의 불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풍천은 여전히 못마땅한 시선이었으나, 더 이상 입을 떼지는 않았다.
“그러나 염휘시여. 그렇게 따지면, 운명을 짓는 직인 역시 그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녀의 죄과는 마고께서 다루실 것이다.”
“마고께서.”
갑자기 천신 마고의 이야기까지 나올 줄 몰랐던 듯 풍천이 놀란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그렇다, 삼천외의 선인을 뉘라서 함부로 단죄한단 말이냐. 그것은 오로지 마고께서 결정할 것이다.”
“태자를 넘기시려면, 직인도 그냥 눈감으십시오. 이것은 너무 편파적입니다.”
“그래서야 되겠느냐.”
염휘는 풍천의 말에 입꼬리를 끌어올려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느릿하게 끔뻑이는 눈 가득 담긴 잔인한 빛을 가만히 누르며 염휘는 말을 이었다.
“편파적으로 구는 이가 어찌 운명을 짓는단 말인가? 그녀는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림 없어야 했다. 운명이란 고약한 것.”
“그런…….”
“돌아보면 말이 나오지 않게 기구한 이도, 더할 나위 없이 복에 겨웠던 이들도 있다. 이들의 운명을 딱하게 여겨 함부로 섞어서야 되겠느냐 말이다.”
염휘가 하는 말엔 가시가 숨어있었다.
“운명은 정해진 것이다. 그러니 직인은 흔들려서는 안 됐다. 그런 그녀가 얼마나 많은 이의 운명을 흔들어 놨을지 생각만 해도 어찔하구나.”
염휘는 느긋한 걸음걸이로 부서진 문을 지나 회랑으로 나섰다.
그의 뒤로 풍천과 아수라가 따랐다.
“그럼, 염휘께서는 직인의 처분을 그저 그녀의 흐트러진 마음 때문에 청하신단 말입니까?”
“그렇다. 직인은 정리에 휘둘려선 안 돼.”
그것이 상태자라도.
설령 그녀가 짐의 편에 서서 소희를 휘저어 놨다 해도 이 결정은 바뀌지 않아.
염휘는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운명의 실에는 그 누구도 관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직인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너무도 엄혹한 염휘의 말에 풍천이 나서서 그녀를 구명하려 했다.
그러나 염휘에게서 그 뒤로 다시는 직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마음을 정했고, 번복하지 않을 것이었다.
바짝 얼어붙은 세 군신의 말문이 트인 것은 아수라 덕이었다.
흔쾌하지 못한 침묵에 아수라가 소희의 사신의 문에 대해 입을 뗐던 것이다.
“그나저나, 직인보다 소희님께 조금 더 신경 쓰셔야겠습니다.”
조금 전까지 냉랭한 목소리를 내던 염휘와 부루퉁한 표정이었던 풍천까지 모두가 아수라를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더냐.”
“소희님께서 두 번째 관문을 넘으셔서 조금 더 별에 가까워지셨습니다.”
“관문을 넘어?”
“네, 그렇습니다.”
“아수라. 너와 함께 있는 동안 넘었느냐?”
소희의 관문 소식에 놀란 것은 아수라뿐만이 아니었다.
두 염라의 불이 경악하는 표정을 짓는 것은 꽤나 볼만 했다.
“아닙니다. 이미 혼자 계실 때 넘어가신 것으로 보였습니다.”
“보였다?”
“눈동자에 그 힘이 깃든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기억을 통해 본 것이 아니고?”
“기억에 없으신 걸로 보아, 자신도 모르게 넘기신 것 같습니다.”
소희가 첫 명부를 하계로 옮기고, 달 씨앗을 만들게 되었고. 두 번째 명부를 옮기고는 흐릿한 홍안을 받았다.
명부를 옮길 때마다, 그녀는 하계의 모습을 받는 것 같았다.
그녀의 사신 문을 기다리지 않는 자 아무도 없었지만, 이제 집요한 관심을 받게 됐음은 자명했다.
“힘이 깃들었다라…….”
아직 그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 염휘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 직인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옅은 홍조를 띄고 계십니다. 아마도 하계로 명부를 모두 받아오게 되면, 하계의 색을 내림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은발에 홍안이라……. 좋구나.”
염휘는 아수라의 말에 기쁜 듯 대꾸했다.
그가 내려주지 않아도 하계의 색을 받는다는 소리가 그녀가 더할 나위 없이 이곳에 어울린다는 소리 같아 절로 흥겨웠다.
그리고 그건 염휘뿐만이 아니라 소식을 전하는 아수라도 마찬가지.
아수라도 이미 옅은 미소를 빼문 채였다.
“달 마마가 되어 가시는구나.”
풍천이 낮게 읊조렸다.
그리고 그들의 놀람을 기다렸다는 듯, 그날 밤 세 번째 사신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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