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70화 (70/114)

70. 바람을 머금은 향내 (3)

2018.04.02.

“해서, 어쩌실 작정이십니까?”

탁자 위, 훈김을 올리는 찻잔을 앞두고 능글거리던 목소리는 담백해진 지 오래였다.

오히려 고저 없는 목소리는 화난 듯 보이기도 했다.

사실, 아수라는 이 밤 염휘의 침전을 찾아들 만큼 잔뜩 흥분해있었다.

몸을 운신할 정도가 되자마자 들이닥친 참이었다.

문밖에서도 느껴지는 달큰한 공기에 멈칫하던 것도 잠시.

저렇게 정다운 이를 굳이 찢어내는 상천 것들에 더 이상 관대해질 수 없다 결정 내린 그녀에게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염휘는 생각이 다른 듯, 여간 느긋한 것이 아니었다.

“무얼 말이냐.”

“소장, 한가로이 굴만큼 여유롭지 못합니다.”

“그럼. 바꿔 말하마. 누굴 말이냐?”

아수라는 저를 놀리는 듯 빙글거리고 웃는 염휘를 보며 불만스럽게 눈을 치떴지만,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목소리만은 공손했다.

“감히 귀왕의 비를 탐한 태자를 벌하여 달라 청을 넣어야지요.”

“불허한다.”

“어째섭니까!”

순간 불꽃이 터지듯 아수라의 동공이 길게 서며 붉게 일렁였다.

알아들었다 믿었건만 다독여 덮기에 아수라의 감정의 골은 생각보다 깊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염휘는 절대로 상태자를 벌하여 달라 말할 생각이 없었다.

입장을 바꾼다 해도.

자신의 처지에서 생각한다 해도.

상태자는 벌을 받을 수 없었다.

어째서 그가 벌을 받아야 하는가?

어린 시절을 정답게 보냈던, 아우에 대한 마음이 아니었다.

태자를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은 한 사내의 판단이었다.

명을 남자로 바라보아 그의 억울함을 알았고. 수많은 아이를 거두는 천의 어버이의 마음으로 그의 부재를 반대했다.

도대체 뉘라서 이 가혹한 운명에 대가를 내놓으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염휘는 제 앞에서 시큰거리는 숨을 감추려 애쓰는 아수라를 향해 다시 한번 단호히 못 박았다.

“별은 돌아왔고, 이일은 덮을 것이다. 그리 알아라, 염라의 세 번째 불.”

“염휘시여!”

염휘가 염라의 불까지 들먹이며 말을 하는 것은 추상같은 그의 의지를 천명한 것.

아수라는 염휘의 허가 없이 단독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저 속 좋은 자신의 주인은 또 이렇게 어영부영 일을 덮을 셈이란 걸 똑똑히 들은 셈이었다.

으드득.

형언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이 머리를 들쑤셔 검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하나의 천이 가지는 무게를 그라고 해서 모를 리 없었다.

어린것을 둔 어버이의 마음을 그라고 해서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상태자를 용서하기에 그의 죄는 깊었다.

그는 하계의 어미가 될 별을 찬탈하려 했다.

어버이의 마음은 ‘상제’가 될 그에겐 없던 것이었나?

어찌 그 자애로움은 늘 염휘의 몫인가?

아니, 늘 한 수 접는 것은 귀왕이셨다.

대를 물린 습관이 악용되는 것 아니었는가?

손위배분을 받았다 하여 늘 저 작태를……!

말이 되지 못한 분노가 쉴 새 없이 피어나 아수라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이 점점 더 어둡게 물들이기 전, 아수라를 붙드는 작은 손이 그를 상념에서 건져 올렸다.

“아수라.”

염휘 곁에 얌전히 앉아있던 소희였다.

아직까지 눈물자국을 채 지우지 못한 작고 여린 분.

볼품없고, 그저 볼만한 건 얼굴뿐이려나 코웃음 쳤던 적이 있었다.

차라리 마고대할망께 새로이 별을 내려주십사 청할 것이지, 뒤에서 혀를 찬 적 없다 말 못할 것이다.

너무도 잘난 제 주인의 곁에 세워두기 부족하다 입질했건만, 두고 볼수록 어여쁘다더니 그것이 바로 별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왜소하고 마른 몸이 이제는 호리호리하다 생각 들었고, 그저 커다란 눈에 늘 울기만 하는 울보라 생각했지만, 어린것들을 대신해 울어주는 저 고운 심성이 좋아졌다.

아수라는 소희의 부름에 검게 물들던 머릿속이 조금이나마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부르셨습니까?”

소희는 자신을 향해 묵례를 올리는 아수라에게 일어나 다가섰다.

그리고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놀란 그녀에게 웃어주었다.

“마마!”

놀란 아수라의 새된 목소리를 달래듯 이내 손을 감아쥐는 것까지.

몹시 자연스러웠다.

늘상 밤의 아수라를 어려워하던 소희였다.

첫 만남은 그래서 중요했다.

자신의 목숨을 거두었던 염휘, 자신을 노렸던 아수라.

모두 그들의 죄였으나, 그들의 죄가 아니기도 했다.

남은 것은 고약한 운명.

그리고 죗값을 억지로 짊어져야 했던 그들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소희는 오늘에야말로 모든 것을 깨끗하게 털어버릴 때라고 생각했다.

“아수라, 염라의 세 번째 불.”

“소장……!”

아수라는 의자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으려고 했지만, 그보다 맞잡은 손위로 소희의 머리가 기대지는 것이 더 빨랐다.

“무리하셨다지요?, 저를 위해 화를 내주시는 것이지요?”

서늘한 아수라의 무릎을 통해 느껴지는 따스한 느낌.

거의 무릎 위에 엎드리다시피 한 소희를 밀쳐낼 수도 없고 아수라는 난감해했다.

맞은편의 염휘는 소희를 일으켜 세우는 대신 즐거운 듯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차를 마시기까지 했다.

“염휘시여.”

결국 지고 만 것은 아수라.

도움을 청하는 그 목소리가 귀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염휘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비어진 찻잔을 채웠고, 소희에게선 그녀의 체온만큼이나 따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수라 저 역시 상천에 파란이 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마……! 소희님!”

“이것은 누구의 편을 들어서도 아니랍니다.”

소희는 차게 식은 아수라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댔다.

“그저, 이 사나운 운명에 휘둘리는 가여운 처지끼리 더 이상 상처 내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오나 이것은 그리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허면, 두 지존에 하나의 비는 가당키나 한 것입니까? 이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

아수라는 소희의 야무진 말에 말문이 막혔다.

“뻔히 비어버릴 비의 자리를 염려하는 상태자가 나쁜 것입니까? 아수라님께선 그 자리에 서신다면 어쩌실 것입니까. 형님께 기꺼이 가납하시렵니까?”

“……흐음.”

“주어진 운명이 고약하니, 이렇듯 자꾸만 서로에게 상처만 납니다.”

“그럼, 마고대할망께 청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새로 내어 주신다 답 주셨사옵니까?”

소희는 불만스레 답하는 아수라에게 단호히 말했다.

“아무도 답을 해줄 수 없습니다. 태자께서도 그걸 모르셔서 이러셨겠습니까?”

“…….”

“그러니, 이쯤에서 마무리 지어주세요. 저는 그 파란 끝에 아이들이 다치는 것을 두고 볼 자신이 없습니다.”

“소희님.”

“그리고 아수라님도, 풍천께서도 그 누구도 부상 입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서늘한 아수라의 손을 쥐고 있던 소희가 떨어져 나갔다.

“…….”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자꾸만 입을 달싹이는 아수라를 두고 염휘가 여상한 목소리를 냈다.

“하여, 어찌 하신답니까?”

소희에게 하는 말이었다.

“무릎 꿇고 사정하였으니, 제 체면을 봐서라도 그만해주실 성싶습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대꾸하는 소희의 목소리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 언제!”

자신도 모르게 끝난 이야기가 된 것은 차치하더라도, 망극하게도 달 마마를 무릎 꿇린 무뢰배가 된 참이라 아수라는 새된 목소리를 냈다.

“성에 차지 않으시면, 조금 더 꿇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수라에게 소희가 다시 일어서려는 시늉을 했다.

“이 두 무릎으로 무고한 피를 거둘 참이니 기쁘게 꿇겠습니다.”

“됐습니다!”

궁지에 몰린 것은 당연하게도 아수라였으니, 질색하는 목소리 역시 아수라의 것이었다.

“소장을 이렇게! 이렇게!”

붉게 달아오른 홍안이 당혹감에 물들어 예쁘게도 반짝였다.

“아끼는 것입니다.”

“하하하핫.”

상천을 다녀온 이후로 소희는 많이 변해있었다.

늘 머뭇거리며 울거나 혼자 속앓이하던 그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다부져져 있었다.

야밤, 염라본궁을 찾은 아수라는 그 뒤로도 그녀답지 않게 말문이 종종 막혀 홍안만큼이나 두 볼이 빨개져 돌아가야 했다.

“날 밝으면, 내궁으로 놀러오세요. 적적한 고로 아수라님의 방문을 기다릴 것입니다.”

심지어 소희는 돌아가는 그녀의 등 뒤에 대고 손을 팔랑팔랑 흔들기까지 했다.

아침 동이 트고 첫 햇살을 두른 이가 다정히 걸음을 옮겼다.

“조금 더 계시다 가셔도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그득한 염휘의 말에,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요.”

언제나 같은 고운 목소리가 울렸다.

“간밤 혼자 즐거웠던 탓에 아이들의 근심이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소희는 제 감정 추스르기에 바빠 내궁의 아이들을 빨리 찾아가지 못한 것에 마음 아파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간밤, 내궁 아이들의 귀한 시간을 태운 만큼 소희는 많은 일을 했다.

해묵은 은원의 고리를 끊어버렸고, 빙글빙글 돌며 서로 맴돌던 관계를 흐르게 했다.

옆에서 함께 걸음을 옮겨주는 염휘가 이제는 더 이상 애틋하지 않았다.

설레며, 그녀의 마음을 간질일 뿐.

그의 마음을 바라 눈물 적시게 하던 마음은 가시고 없었다.

“흐음.”

“음?”

소희의 깊은숨에 염휘가 의아한 듯 소리를 내자 이내 답이 뒤따랐다.

“기합을 넣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려고?”

“삼 일간 집을 비웠으니 청소도 해야 할 것이고.”

“그리고?”

“울며 달려들 아이들을 다독여야 하니 단단히 마음먹은 참입니다.”

염휘는 그제야 두 눈을 다정히 휘어뜨리며 웃었다.

“하하하하하. 오늘 무척 바쁠 것입니다.”

가늘어진 그의 눈 안의 불꽃을 담은 홍안이 아침 햇살을 받아 찬란히 빛을 뿌렸다.

“그렇겠지요?”

“아무렴. 아무래도 아수라를 다른 날 청하실 것을?”

아예 한술 더 떠 겁주듯 소희를 놀렸지만, 소희는 코끝으로도 웃지 않았다.

“아니, 아니지요. 우는 아이들을 다루는 법을 정말 모르시는군요?”

소희는 걷다 말고는 환을 돌아보며 허리에 손을 얹고 엄한 표정을 지었다.

“뚝!”

“무어라?”

“달래도 안될 때는 요것이 최선입니다.”

의기양양하기까지 한 소희의 호언장담에 염라 본궁의 회랑이 다시 한번 웃음소리로 그득 찼다.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가 어쩌면 그렇게도 끊이지도 않고 나오는 것인지.

소희와 환은 내궁으로 돌아가는 내내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내궁에 다다라서도. 문간에 서서 쉽게 인사를 하지 못했다.

“아이참.”

“이만하시고 이제 들어오세요!”

한껏 다정해진 두 마음을 떼어 놓는 건 내궁 아이들의 불만 어린 목소리였다.

눈살이 찌푸려질 무람없는 짓이었으나 소희는 탓하지 않고 가만 웃었다.

“가보아야겠습니다.”

“그러게. 골이 잔뜩 난 것 같습니다.”

환은 점잖게 소희에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환은 소희가 내궁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저 허물없는 태도를 꾸짖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아이들은 마음으로 소희를 따랐고, 정성으로 모셨다.

그녀가 낳아 기른 달 아이가 아니었으나 소희는 아이들을 제 피붙이마냥 허물없이 마냥 아껴주었다.

그러니 돌아온 그녀가 반갑고 좋아 저러는 것을 탓을 할 수가 있으랴.

환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가까스로 돌렸다.

자신 역시 저렇게 칭얼거리며 투덜거릴 누군가를 맞이해야 했다.

‘풍천.’

저 우직한 자.

쥘부채를 들고선 핀잔주는 아수라까지 단번에 떠올랐지만, 환은 낮의 아수라가 자신을 찾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간밤, 밤의 아수라는 설득되었다.

그녀는 낮의 아수라와 아마 이 새벽 긴 이야기를 마쳤을 것이다.

그들의 불만은 타당한 것이었으니 들어주어야 했고, 달래는 것까지 그의 몫이다.

저 역시 순간순간 억울하다 느끼고, 분하다 여겼으니 그것을 지켜보는 아수라와 풍천의 마음이야 더할 나위 없을 터.

육중한 문이 여닫히는 소리와 함께 자지러지는 여아들의 목소리가 아침공기를 짜랑하게 울렸다.

“소희니임-.”

길게 빼서 부르는 목소리에 이미 울음이 흥건하다.

“저런 저런.”

환은 벌써부터 터지기 시작하는 울음소리에 고개를 내저었다.

울음소리라니.

저 무서운 곳에 소희를 혼자 두고 오다니.

걱정은 되지만 걸음은 절로 빨라진다.

도대체 저 울음소리를 이길 방도가 있기나 한 것인가.

‘미안하이 그대. 힘내셔서 잘 마무리하시길.’

멋쩍게 덧붙여진 응원이 공기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갔다.

*

“세상에!”

“정말 돌아오셨네!”

“내 뭐랬니!”

“너 허풍이 어디 하루 이틀이니! 이번에도 그런 줄 알았지!”

뻐기는 목소리와 민망함에 솟은 목청까지.

소희는 내궁 문간을 넘자마자 모여들어 떠드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어찌나 와글와글 시끄러운지 그만 정신이 홀딱 빠질 것 같았다.

귀가 울리고, 말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한데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소희가 계속 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빨개진 코끝으로 열심히 떠드는 아이들의 표정 때문이었다.

이미 눈물을 주룩주룩 떨구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꾹 참고서 돌아온 그녀를 씩씩하게 반기는 중이었다.

아무 말 못 하고 우는 아이들 중에는 반요도 섞여 있었다.

소희는 저를 반기는 아이들을 헤치고 반요에게 다가갔다.

“어째 우는 것이니.”

다정한 말에 눈을 둥그렇게 뜨는 것도 잠시. 반요는 이번에야말로 소리를 내가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제, 제가 잡지 못하여 그 고초를……!”

헐떡거리는 숨과 눈물이 스민 말은 잔뜩 부스러졌지만 소희는 반요가 깊이 자책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어찌 네 탓이니?”

“제 탓입니다.”

훌쩍거리거나 떠들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죄를 청하였지만, 모두 소희님께서 처분하시리라 하셔서 기다렸습니다.”

반요는 진심이었다.

그리고는 소희를 바라보던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세상에.”

“저를 벌하여 주세요.”

“네가 이러면 내 죄는 어디 가서 청한다니?”

“네?”

“사술에 넘어간 것도 나, 떠난 것도 나, 걱정시킨 것도 나인 것을.”

소희는 제가 그만 정신을 놓고 붙잡지 못해서라고 기어코 덧붙이며 우는 반요를 잡아 일으키며 안아주었다.

“히익-.”

간밤 아수라만큼이나 놀라는 어린 선인들의 반응에 소희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네가 나를 용서해주렴.”

“소희님!”

반요가 아니었다.

우느라 바쁜 반요는 목이 메어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으니, 카랑한 이 목소리는 조양이었다.

“나를 한 번만 봐다오. 앞으로는 잘 할 것이란다.”

경악하는 아이의 부름을 모른 체하며 소희는 반요를 달래기에 골몰했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아니, 정말은 내궁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소희는 반요의 작은 어깨를 감싸 안으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상천도 하천도.

그리고 자신도.

모두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어째서 상처받은 이는 이렇게나 많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제 그만 하고, 들어가자꾸나. 실은 배가 무척 고프단다.”

“예에?”

“에그머니!”

소희는 말로만 해서는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을 잘 알아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제 해가 있을 때부터 여태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지.”

그래서 그런지 기운이 없구나.

들으라고 작게 속삭이기까지 했다.

펑펑 울던 반요가 움찔한 것은 당연했다.

“가서 밥도 못 얻어 드셨답니까!”

이 망할 것들!

불똥이 엄하게 튀긴 했지만, 밥을 제대로 못 먹긴 했으니 굳이 정정해주진 않았다.

“그러니 이제 그만 밥 좀 주련?”

“어…… 어서 들어오세요.”

반요를 비롯한 아이들이 순식간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흩어지며, 종알거리는 아이들은 눈물자국이 흥건한 채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만큼은 기운차 내궁은 오전 내도록 시끌시끌했다.

해까지 따사로운, 좋은 날이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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