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갈라진 틈 사이 (8)
2018.02.26.
“소희님.”
“소희님.”
침전 밖에서 소희를 부르는 목소리에 점점 조급함이 실렸다.
간밤 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깊게 잠든 소희는 동이 트도록 좀체 일어나지 못했다.
“소희님.”
다시 한번 소희를 재촉하는 목소리가 문을 건너고 나서야 졸음이 함빡 물린 대답이 돌아왔다.
“으응. 일어났단다.”
“소세 물부터 올릴 것입니다.”
“그러자꾸나.”
소희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침전 문이 열리고 발을 동동 구르던 내궁 아이들이 들이닥쳤다.
어찌나 성화인지 정신이 쏙 빠질 것 같았지만 소희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 직인께서 오늘 다시 오시겠노라 말을 남겼으니 서둘러야 했다.
늘상 오시는 시간을 본다면 이제 청조가 도착했단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소세를 마치기 무섭게 옷이 입혀지고, 머리가 빗겨졌다.
“속이 안 깨실 테니 차라도 한 모금 드세요.”
조양이 적당히 식은 찻잔을 쥐여주며 머리꽂이를 집어 들었다.
“매일 요것 쓰셨으니 오늘은 이 칠보 물린 나비장식 얹어드릴…….”
“아니야, 오늘도 이것 붉은 구슬이 달린 것 찌를 참이야.”
소희는 환이 준 머리꽂이를 부득불 고집했다.
다정함이 깊어진 차이니, 그가 준 것조차 잠시라도 곁에서 떼어 놓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귀문의 별로, 달 마마로 살 결심이 다진 참이지만, 환에게 아직 말해주지 못했다.
어서 말해야지.
언제고 적당한 때를 본다는 것이 달 아이와 아수라의 일이 겹치며 도통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어제 아수라께서 만월의 가루를 뒤집어쓰다시피 넘치게 바르시고 많이 회복하신 것을 두 눈으로 본 터라 더 이상 소희의 발목을 잡을 일이란 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 오늘 말해드릴까.
수줍고 즐거운 생각에 눈꼬리께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반요야. 오늘 염휘께서는 바쁘시니?”
“새벽까지 보시고서도 그리우신 겝니까?”
키득거리는 아이의 말에 담긴 것은 즐거움이었다.
“늘 분주하신 분이십니다만, 청하면 시간 내어주실 겁니다.”
장난스러운 반요의 대답에 눈을 흘긴 조양이 달랑거리며 맑은 소리를 내는 머리 꽂이를 힘줘 꾹 누르며 대답했다.
머리타래에 야물게 꽂힌 장식이 서로 부딪히며 짤랑거렸다.
“그럼, 이따 점심쯤 찾아 뵈올까 여쭈어보련?”
“네. 본궁으로 찾아가시렵니까?”
“그러자.”
“직인께서 오셨습니다.”
조양의 말에 대답하기 무섭게, 반요가 직인의 도착을 알려왔다.
느긋하던 요 며칠이 꿈인 양 숨 가쁘게 아침이 시작되었다.
소희는 아이들의 재촉에 직인을 맞으러 나서는 길에, 면경에 비친 머리타래를 가만히 쓸었다.
오늘따라 머리에 꽂혀있는 환의 머리장식이 자꾸만 눈길을 잡아당겼다.
햇살을 받은 선명한 홍조가 다정한 이를 닮았다.
결국 수줍은 손길이 기어코 머리타래에 매달린 붉은 것을 살그머니 쓸어 보고 말았다.
“후원으로 모실까요?”
“그, 그래!”
아이의 말에 소희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소맷부리 속으로 감췄다.
어쩐지 손끝에 불이 붙은 듯 뜨끈했다.
“며칠 사이 안색이 화사해졌습니다.”
소희를 보자마자 직인이 그녀를 반기며 인사를 건넸다.
“화사해지기는요.”
간밤도 잠을 설친 것을요.
말이 되지 못한 속내가 수줍게 가슴을 울렸다.
단순한 몇 마디의 말에 금세 환이 떠올라 심박이 기쁘게 뛰고 입꼬리가 솟았다.
직인을 만나면 어제 일은 오해라고 잘 말씀드려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환의 날카로운 콧날이 뺨을 스치던 느낌과 그의 따끈한 날숨이 주던 온기만이 온통 머릿속을 메웠다.
“아수라님께서 좋아지신 것 같아 너무…….”
“안심되십니까?”
“어때 보입니까?”
“늘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방심할 틈도 없이 단번에 가슴을 파고드는 법을 아는 남자였다.
보드라운 시선이 맞닿기 무섭게 그의 고개가 비스듬히 꺾여 내려왔다.
“아.”
소리가 되지 못한 숨이 맞물린 입술을 타고 한데 뒤섞이자 짜릿함이 등골까지 번졌다.
삽시간에 숨결이 합쳐지고 얇은 점막을 통해 그가 생생히 느껴졌다.
예민해진 살을 쓸어 올리고, 빨아들이는 대로 착실히 뜨거워졌다.
얕은 한숨 같던 호흡이 단번에 노골적으로 달아올랐다.
“흐응-.”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붉게 달아오른 습한 소리가 터져 나오고, 그에게 빼앗긴 숨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두 발이 땅을 딛고 있으나 둥실거리고 떠 있는 기분이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찔해서 무서웠다.
소희는 환에게 매달렸다.
황금빛을 머금은 붉은 보석 안이 눈앞에서 거칠게 일렁였다.
“하아-.”
견디지 못한 희박한 숨이 터지고 나서야 소희를 품에서 놔준 환은 조금 전까지 그녀를 몰아세우던 남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담백한 표정을 지었다.
빙긋 웃는 입술 끝에 남아있는 촉촉함이 아니었다면.
꿈이었다 해도 믿었을 것이었다.
환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소희를 침상으로 옮겨주고, 그녀가 눕는 것까지 모두 도와주었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홍조를 지우지 못한 소희의 뺨을 가만히 손가락으로 덧그렸다.
“소희, 그대…….”
“……환!”
“더 있기엔 벅차니.”
“!”
덤덤한 것 같은 환의 표정이 깨진 건 그때였다.
달대로 달아버린 남자의 표정을 하고선, 괴로운 듯. 즐거운 듯.
묘한 표정이 한순간 달빛에 나타났다 사라져버렸다.
더 이상 서로 말은 없었지만 이불깃을 매만지는 환의 손길이 애틋하고, 그를 올려다보는 소희의 눈길이 다정해 그걸로 족했다.
잘 자라는 인사도 없이 환이 몸을 돌려 침전을 나가버렸지만, 혼자 남겨진 소희는 어쩐지 혼자가 아닌 것 같아 밤사이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입술이 잔뜩 달궈져 홧홧하고 뜨끈해 정신이 산란했다.
다정함이 이렇듯 깊어졌으니 환이 자리를 피해 주지 않았다면, 이 밤서 큰일이 났을 테였다.
밤 내내 그를 그리다 만월이 그 위세를 꺼뜨릴 무렵이 되어서야 까무룩 든 잠이었다.
곤하고 덜 깨인 정신이었으나 마음만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런 소희를 다잡은 것은 직인의 매서운 기색이 완연한 부름이었다.
“소희님.”
“네네.”
소희는 자신도 모르게 직인을 앞에 두고 한눈판 것이 미안해 목청을 돋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비 오는 사이 즐거운 일이 많으셨나 봅니다.”
은근하고 가시 같은 말이었지만, 환의 생각에 정신이 팔린 소희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 보입니까?”
그래서 그저 생글거리며 앞에 놓이는 찻잔을 기쁘게 받았던 것이다.
“……네.”
씰룩이는 직인의 입술도, 치켜 올라간 눈썹이 사나워 보이는 것도.
모두 놓치고 웃고 말았다.
소희의 웃음소리 사이로 직인의 비녀에서 나는 금편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간간히 울렸다.
“일전에 말씀드린 차입니다. 드셔보세요.”
직인은 동그랗게 뭉친 찻잎이 든 찻잔을 조금 더 가까이 밀어주었다.
“아. 이것이!”
가물거리는 기억 끝에 직인이 아끼는 차를 맛보여 주겠다 약조한 것이 떠올랐다.
하늘을 담아온 듯 청명한 색이 고운 차였다.
“색이 몹시 곱습니다.”
소희는 온기를 머금은 찻잔을 가만히 손에 쥐며 직인에게 감탄을 보냈다.
“맛은 더더욱 좋지요. 드셔보세요”
직인은 찻잔을 쥐고만 있는 소희에게 다시 한번 차를 권했다.
“아아. 그럴까요?”
소희가 직인의 연이은 권유에 슬쩍 찻물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녀가 오기 직전 차를 한잔 마신 터라 영 내키지 않았지만 권하는 정성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음?”
입술만 살짝 축이려던 것과 달리 찻물은 순식간에 꿀떡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렸다.
마치 물이 절로 입을 타고 들어온 기분이라 소희는 얼떨떨했다.
자신이 마신 것이지만, 의지를 가진 듯 찻물이 움직였다고만 느껴져 기분이 찜찜하고 영 좋지 못했다.
“어째 그러셔요? 별로이십니까?”
탐탁찮아하는 소희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그새 직인이 물어왔다.
하지만 뭐라고 말할 것인가.
물이 절로 넘어가 괴이하고 꺼려집니다.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소희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살짝 뜨거워서 그만.”
“저런. 제가 차 맛을 자랑할 욕심에 너무 강권하였나 봅니다.”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목소리가 사과를 전했다.
“……흐음.”
“차 맛이 어떠신가요?”
웃음기를 머금은 직인의 목소리가 묘하게 울렸다.
“아……. 흠흠…….”
소희는 이상하게 목이 메는 기분이라 작게 헛기침을 하며 가슴을 두드렸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목이 이상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앞자리에 앉은 직인은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이내 소청조를 불러다 다과상에 놓인 과자를 집어 먹이기 시작했다.
“으흠.”
마치 무언가 목 깊숙한 어딘가를 막고 있는 것 같은데.
기침을 해도 좋아지지 않았다.
소희는 가슴을 두드리던 손에 힘을 더했다.
콩콩, 티 나지 않게 움직이던 손에 힘이 실리고 소음이 커졌다.
“흠흠.”
“어머나, 왜 그러십니까?”
너무 요란하게 굴었던 탓인지 소청조를 먹이기 여념 없던 직인이 소희에게 물어올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소희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목 안에 자리 잡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약간 신경을 건드리던 그것은 이제 숨통을 막기 시작했다.
“흐읍.”
소희는 가쁜 숨을 쉬며, 필사적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도와주세요.
말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직인의 입매에 걸린 것은 미소인가.
허덕거리는 숨이 눈앞을 흐릿하게 지웠다.
“흐…….”
와락 겁이 나는 것과는 별개로 이미 찰나의 단위로 감각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가슴을 두드리던 소희의 작은 주먹이 풀리고, 터지지 못한 숨날이 그대로 사그라들었다.
소희의 까만 두 눈은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동공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끄…… 흐…….”
처음에 늘어진 건 양팔.
그다음은 몸이 차례로 무너져 내렸다.
쨍그랑.
후원 탁자 위로 힘없이 쓰러지는 소희에게 빗맞은 찻잔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며 파열음 냈다.
산산조각이 난 찻잔 조각이 어지럽게 흐트러졌지만
더 이상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구르륵-.
작은 새 소리가 적막을 깨고 작게 울렸다.
“일어나요.”
그리고 새소리를 뒤따른 메마른 목소리가 울렸다.
“일어나.”
“일어나.”
“어서.”
주문을 외는 것 같은 말에는 온기라고는 한 점도 없었다.
그리고 서너 번쯤 울린 직인의 말끝에 탁자에 머리를 박고 쓰러진 소희에게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으으…… 응.”
“차 한 잔 드릴까요?”
“……네?”
“차 한 잔 드릴까요?”
“네.”
직인은 태평한 목소리로 차를 권했다.
“일전에 말씀드린 차인데. 그 맛이 대단하답니다.”
“아, 그렇군요.”
푹 잠긴 목소리와 조금 전과는 다른 뻣뻣하게 울리는 소희의 말에도 직인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상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주위를 모두 물린 탓에 이들의 이상한 다과를 눈치챈 이가 아무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몹시 다정하고, 친밀한 시간을 보내는 둘의 모습에 문제가 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상한 건 바닥에 산산 조각난 찻잔 조각 사이로 흐르는 물이었다.
바닥에 흩어진 찻물이 산 것처럼 움직였다.
흐르듯이 뭉치고, 모여드는 작은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고 알뜰하게 웅덩이를 이루었다.
그런 소름 끼치는 모습을 옆에 두고도 직인과 소희는 태연했다.
“그리고 선물은 이것이 다가 아니랍니다.”
직인은 생긋 웃으며 품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 들었다.
그 세공이며 박힌 보석이며 척 보기에도 몹시 귀한 것이라 보통 단도가 아님이 분명했다.
소희는 직인이 꺼내 드는 단도를 보며 가만히 숨을 죽였다.
“하계엔 부정한 것들이 있다지요? 들으셨습니까?”
하계에 있는 부정한 것.
요괴를 말하는 것인가.
소희는 이상하게 안개가 낀 듯 흐리멍덩한 머리로 직인의 말을 따라가려 애썼다.
간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인지 정신이 맑지 못했다.
직인이 왜 자신의 앞에 있는지도 갑자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매일 아침 너무 이르게 오시니 또 그새 자기도 모르게 존 모양이었다.
“위험하시다 들었답니다.”
직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것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저 물으니 대답할 뿐.
“그래서 준비한 것입니다.”
직인은 소희의 손에 단도를 쥐여주며 은근한 목소리를 냈다.
소희에게 기울여지는 상체를 따라 향긋한 냄새가 끼쳐들었다.
향기로웠지만 순간 몹시 비려서 소희는 구역질이 나 가만히 숨을 참아야 했다.
직인을 앞에 두고 헛구역질이라도 했다가는 그 뒷일을 수습할 수 없을 터였다.
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불과 얼마 전에도 이랬던 기억이 있었던 것 같았지만, 머릿속은 한껏 뿌예져서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가지고 계셔요.”
“네.”
소희는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직인의 말에 집중했다.
한 뼘이나 될까?
화려한 생김새와는 달리 그 쓰임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 단검이었다.
그러나 저를 생각해서 가져왔을 직인의 마음이 고마워 소희는 쥐여주는 단검을 가만히 받았다.
요괴를 만나면 이런 짧은 단검으로는 상대하지 못해요.
직언은 넣어두는 편이 좋았다.
그러나 직인은 그런 소희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낮게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이걸로 맞서시라는 게 아니에요. 도망치기 위함입니다.”
“네.”
반쯤은 건성인 대답이었지만 직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위험할 때 쓰세요.”
“네.”
“단검으로 허공을 갈라요. 그럼 안전한 곳으로 가는 공간이 열릴 테니 그대로 뛰어들면 됩니다.”
“예?”
하지만 이어지는 직인의 말은 너무도 뜻밖이라 소희는 깜짝 놀라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공간이 열리다니.
그런 말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아수라!’
들어보지는 못했으나 이미 수차례 본적은 있었다.
환의 손짓을 따라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나던 아수라와 풍천.
“아아…….”
소희는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은 칼이 환의 영력처럼 공간을 찢는단 말인가.
직인은 그런 소희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다시 한번 이야기해주었다.
한 자 한 자.
공을 들여 다짐하듯.
“단검으로 공간을 찢고 도망치세요. 안전한 공간이 열릴 겁니다.”
“정말…….”
“정말입니다.”
선물이에요.
반신반의하는 소희에게 직인이 웃으며 덧붙였다.
도망치세요.
안전한 곳으로.
마치 노래하듯 고운 목소리가 상냥하게 귓가를 울리고, 직인은 그보다 더 다정한 표정으로 소희에게 웃어주었다.
“그럼 이제 차를 마저 드실까요?”
“아, 네. 어서 드세요. 직인. 이런 귀한 걸 다 주시고. 고맙습니다.”
소희는 손에 들린 단검을 품에 넣으며 진심을 담아 인사를 했다.
품에 담긴 건 한 뼘 짜리 단검.
그러나 그 든든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품에 넣어둔 단검을 가만히 쓸어보는 소희에게 직인의 상냥한 목소리가 울렸다.
“차가 다 식겠습니다. 어서 드셔요. 맛보여 드리려 챙겨온 것을.”
“네.”
소희는 직인이 권하는 차를 들어 마셨다.
꿀꺽.
목울대가 움직이며 차가 그대로 목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갑자기 정신이 맑아졌다.
“아?”
“어떠십니까?”
“굉장히 상쾌합니다. 흐음. 이게 무슨 차인가요?”
소희는 갑자기 또렷해진 시선으로 직인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멍하고, 정신이 없던 것이 차 한 모금에 번쩍 깨였다.
사방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모든 것이 확실하게 와 닿았다.
이렇게 좋은 것이라니.
저도 구해서 두고두고 먹을 참이었다.
흐응.
가만히 내쉬는 날숨을 따라 물 냄새가 물큰 풍겼다.
비릴 법도 했지만, 상쾌하기만 할뿐이라 영 신기했다.
“마음에 드십니까?”
직인이 웃는 품새가 더없이 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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