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갈라진 틈 사이 (7)
2018.02.23.
눈감으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한 기억이었다.
“소희야.”
저를 올려다보던 까만 눈동자가 그립고 그리워, 태자는 저도 모르게 작게 소리 내 불렀다.
눈감으면 보고 싶고, 보면 만지고 싶어 그는 안력을 개방하지 않았다.
그것은 귀한 깨달음이었다.
얼마나 아찔한 경험을 하였던가.
자신의 바로 아랫좌를 자처하는 삼관대제도 버거워할 만큼 영력이 날뛰도록, 정신을 놓았었다.
품에 안고 싶고, 이 손으로 말랑한 두 뺨을 만지고 싶어 정말이지 정신을 놔버렸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한 생생함이.
손을 뻗으면 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주는 달콤함에.
그는 미쳐버렸었다.
이렇게 떠올리는 것만으로 숨이 뜨겁게 달구어진다.
“흐음.”
뜨끈하게 달구어진 숨 끝에 불이 붙을 것 같다.
“킥-.”
태자는 사나운 웃음을 흘리며 서늘하게 식은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안력이 돋워져 상제 본궁의 바닥이 비쳐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돌바닥 아래를 지나다니는 먼지같이 작은 인간들의 모습이 들이쳐 보이고.
작고도 작은 그들의 모습이 커다랗게 보이다 이내 인계의 바닥마저 투명하게 비쳐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눈 한번 깜빡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을 가려야만 했다.
이제 저 투명해진 바닥 밑을 지나면 꿈에서도 그리운 고운 님이 비쳐 보일 것이었다.
꿈에도 한 번 들러주지 않는 저 야속한 분이.
보고지고.
눈물이 난다.
태자는 손바닥 아래 두 눈이 뜨끈하게 달궈지는 것을 느꼈다.
“소희야.”
이렇게 불러보지도 못한다면 이 마음은 재가 되고 말 것이다.
“소희야.”
울음을 참느라 메이는 목에 헐떡이는 숨이 자신의 처지처럼 안타깝다.
그러나 울지 않을 것이다.
태자는 어금니를 힘줘 사려 물고는 눈을 덮었던 손을 떼어냈다.
우는 것만은 하지 않을 참이었다.
소희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다 생각했지만, 눈물은 아니었다.
울어버린다면 어쩐지 이 서글픈 처지를 인정하는 것 같아서.
절대 울지 않을 것이었다.
어금니를 꾹 깨문 태자의 표정은 한 호흡 만에 매끈하게 다듬어졌다.
회랑 끝에서 마지막 걸음을 내딛는 그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가 태자궁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 파란 새가 날아들었다.
여느 때와 같이.
-나들이 준비는 잘 되어 가십니까.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지만 소청조의 다리에 묶인 직인의 서신에 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옅은 미소를 물고 있는 붉은 입술.
조금 전까지 간신히 울음을 참아내던 남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럼, 준비랄 게 무어 있겠느냐? 함께 가실 이만 오시면 되는 것을.”
태자는 얌전히 저를 기다리는 소청조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슬슬 쓸어주었다.
“너는 괜찮으냐?”
흠뻑 비를 맞고 녹아 가던 것이 엊그제였다.
지금 보기로는 오히려 예전보다 살집이 오르고, 새가 조금 더 커진 듯싶었지만, 태자는 작은 새가 걱정되었다.
“네 주인이 다소 다정한 분은 아니지만,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은 안 하시는 분이시다.”
직인 아니더냐.
치우침 없이, 공평한 이로 태어났느니.
그의 손끝이 주는 온기가 좋았던 모양인지 새는 큰 눈을 게으르게 끔뻑거렸다.
구르륵-.
“다소간 급하여, 빗속으로 내몰았을지 몰라도. 서운케 생각 말거라.”
구르륵-.
태자는 새를 두고 퍽 다정한 말을 해주었다.
“오늘은 따로 보낼 것 없으니 이만 돌아가거라.”
매일을 무겁게 편지를 물어 나르던 녀석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을 테였다.
새는 정말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구르륵- 작게 울었다.
태자는 햇살 좋은 하늘 아래 당당히 소청조를 날려 보냈다.
거칠 것이 없었다.
이제 그 누구라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태자는 여름 하늘을 닮은 푸른 눈을 깜빡였다.
단단하고 곧게 뻗은 두 다리, 힘이 들어찬 손끝. 햇살을 박아 넣은 것 같은 백금발의 머리까지.
그는 ‘상제’였다.
즉위가 머지않았다.
휘의 기분이 날카롭게 돋워진 그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늘 스물 몇 살 정도의 어린 용모를 유지하던 상제가 하루 사이에 십 년은 더 나이 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하.”
초조할 것이다.
아무렴.
태자는 저를 향해 뾰족한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던 휘를 떠올리며 웃었다.
곧, 이 상천을 떠나야 할 테니 초조할 것이지.
어떤 신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지 그 누가 알 것인가.
상천의 어미로, 지존의 비로 온갖 호사와 존귀함을 맛본 터다.
이름 모를 신의 자리를 배분받는다면, 그 굴욕을 어찌 견딜 것인가.
이 찬란한 자리를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천신이라.”
먹구름의 신이 될지.
겨울바람의 신이 될지.
“하하하하하핫.”
저를 멸시하고, 늘 못마땅해하던 휘께서 그런 보잘것없는 자리로 가서 ‘천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우스울 것인가.
태자는 눈꼬리에 눈물이 맺히도록 웃었다.
새파란 눈동자가 즐거움을 가득 물고는 눈부시게 빛을 발했다.
소청조가 태자궁을 드나드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아무 말도 못 하고 겨우 찻잔이나 기울이던 상제라니.
우습고 딱했다.
“지관아.”
한참을 웃던 태자가 상쾌한 목소리로 지관을 불렀다.
“부르셨사옵니까?”
무엇을 쓰다 불려나온 듯 지관은 붓을 쥐고 있었지만, 놀란 시늉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축축하게 젖은 붓끝을 가만히 붓두껍 속에 밀어 넣어 단정하게 정리할 뿐이었다.
“오, 저런. 바쁜 중이었더냐?”
“아니옵니다.”
지관은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태자에게 공손하게 말을 올렸다.
“일전에 말해둔 것이 어찌 되어가나 궁금하여 불렀다.”
“깨끗하게 정리하고,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준비해두었습니다.”
“얌전하고 입 무거운 아이들도 추려 놓았던가.”
“세 명이면 족하리라 하셔서. 따로 셋을 추렸습니다.”
“잘했다.”
“그 외에 궁금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음. 되었다. 가보거라. 애썼느니.”
“예, 태자 전하.”
지관이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 막 몸을 물리려던 찰나, 태자가 지관을 다시 불렀다.
“참. 수관은…….”
“네?”
“그 아이는 요새 어떠하냐?”
“무슨 말씀이시온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지관이 답답해 보일만도 했지만, 태자는 대신 빙그레 웃으며 다정한 말을 보태주었다.
“일전에 안색이 너무 좋지 못해 염려가 되어 하는 소리이다.”
“아. 이런 다정한 말씀을 하시다니. 수관이 들었더라면 얼마나 기꺼워할 것입니까.”
지관은 태자의 말에 감격한 듯했다.
“며칠 정양하라 일렀사옵니다. 본디 타고나길 튼튼하고 씩씩하니 곧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한가?”
“네, 무리해서 요 근래 아버님 계신 곳을 들렀다 하니 피곤이 쌓여 그런 듯하옵니다. 덩치는 크나 삼형제 중 막내인지라.”
“하하하.”
지관의 쑥스러운 목소리에 태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매사에 집을 그리워함이 남다르옵니다. 그런 철부지를 태자 전하께서 귀하게 거두어주심을 알고 있사오니 곧, 제몫을 할 것입니다.”
“이미 충분히 했다. 아우를 폄하하지는 말거라.”
“이렇게 사정 헤아려 주시니 그저 수관의 복입니다.”
점잖은 몇 마디가 더 오가고 지관이 돌아가자, 느긋하게 앉아 있던 태자가 미간을 형편없이 구기며 웃기 시작했다.
“철부지라니. 하하하하핫.”
청량한 목소리에 숨기지 못하는 빈정거림이 잔뜩 배어 있었다.
“철부지라니. 지관아. 하하하하하.”
태자는 쥘부채를 꺼내 가볍게 부쳐내면서도 연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 철부지가 제 명줄을 갈아가며, 심해를 뒤지고 다닌 것을 너만 모른다.”
팔락 팔락.
태자의 여유로운 손짓을 따라 쥘부채가 느긋하게 바람을 몰았다.
“그 아이가 심해에서 무엇을 건져왔는지 너만 모른다, 지관아.”
하하하하하.
태자는 청명한 푸른 눈을 심술 맞게 빛내며 웃고 또 웃었다.
* * *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작은 한숨이 뒤를 따랐다.
“아이고, 또 새로 쓰십니까?”
반요가 바닥에 수북한 구겨진 종이를 보며 놀리는 목소리를 냈다.
웃전에게 할 태도는 아니었지만 소희는 반요의 말에 이렇다 할 답이 없었다.
작은 손에 쥐어진 세필이 앞에 놓은 종이에 부드럽게 스쳤다.
“아아. 어쩌면 좋니. 정말 도무지 모르겠다.”
기다리실 터인데.
몇 자인가를 적던 소희가 세필을 내려놓으며 크게 푸념했다.
“도대체 뭘 쓰시길래 그러셔요? 안 그래도 염휘께서 오실 때가 다 되어갑니다.”
“직인께 내일 와주십사. 청하려고 그러지.”
“그럼 내일서 들러주십시오. 하고 쓰시면 되잖습니까?”
“아니, 아니지. 그렇게만 쓰면 너무 경우 없잖니.”
그리고.
소희가 작게 어물거리는 것을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줍던 조양이 들었다.
“그리고요?”
그 와중에도 손은 옆구리에 들린 바구니에 부지런히 종이를 담고 있었다.
“오늘은 오…… 오해이시다. 쓰려고 하는데,”
“세상에!”
“어머나!”
소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단박에 알아들은 아이들이 대놓고 소란이었다.
“아니지요. 마…… 아니 소희님.”
“그것이 어찌 오해이십니까?”
반요와 조양은 마치 따지기라도 하듯 목소리에 잔뜩 힘을 줘가며 소희에게 말했다.
야물게 빛을 내는 눈매는 심지어 결연해 보였다.
“뭐가 아니란 거야.”
기세등등한 아이들의 세에 눌려 되묻는 소희에게 두 아이의 열성적인 대답이 뒤따랐다.
“하루 이틀이었사옵니까?”
“염휘께서 아예 침전을 옮기신 줄 알았사온데.”
하나가 입을 열면 나머지 하나가 척하니 추임새를 넣는다.
“무어?”
기가 막혀 하는 소희의 말소리쯤이야 가볍게 묻혔다.
“그것이 어찌 오해입니까? 아. 매일같이 함께 침수 드신다 제가 말을 잘못 올렸사옵니다.”
“너…… 너!”
“반요 네가 잘못하였다. 어서 사죄 올리고. 죄를 청하여야겠다.”
능청맞게 쐐기를 박는 조양까지.
소희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하지만 소희는 몰랐던 것이 있었다.
풍천과 아수라가 내궁에 드나들며.
염휘가 종종 발걸음을 하며.
이 염라의 불들의 처소에 있는 아이들까지 서로 들락거렸다는 것을 말이다.
은밀한 웃전들의 이야기가 시비 아이들을 통해 마구 새나갔다.
‘염휘께서 비를 양보하려 하신대.’
‘명부가 다 넘어오기 전에 결정하라 하시었대.’
‘귀문의 별이자 상천의 휘라고? 그것이 무슨 상관이야.’
‘상천엔 상제와 휘께서 계시잖아?’
‘소희님은 별이지.’
‘암만.’
이야기는 ‘사실’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대화는 ‘감정’을 품기 시작했다.
‘어떻게 태자와 염라대제를 비교한다니?’
‘즉위도 못 하신 분을!’
‘즉위하셔도 대대로 귀왕께서 더 잘나셨지.’
‘에이. 상하천 지존들은 다 같은 분들이시지.’
‘얘 좀 봐라? 얘 너 청천의 전은 기억도 못 하니? 요괴를 쓸어내는 건 하계의 사신들이라고.’
‘아수라께서 홍월을 휘두르는 모습을 못 본 게야.’
‘그 아수라조차 귀왕의 무위에 대면 어린애인 것을. 쯧쯧.’
‘소희님께선 왜 말씀이 없으신 거야. 당연히 별이 되셔야지.’
염라궁을 지키는 달 아이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의 왕을 추앙했다.
그 연유야 모르지만 선택하라고 굳이 기회를 준 염휘의 배려심에 안타까워했고, 어쩌면 이렇게 잘난 제 주인을 몰라주냐며 소희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들끓어 있었다.
엄정한 하계의 주인인 염휘의 성정을 떠올리며 이 상황을 이해하려 했고. 곱고 상냥한 별을 보며 그 누구보다 탐을 냈다.
하지만 이것은 웃전들의 일.
아이들에게까지 그 의견을 물을 차례란 건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은 건 바로 비 오던 날.
바로 그날이었다.
모두 한마음이 되게 만들어 버린 그 날.
바로, 첫 달 아이를 내어준 날이었다.
이십 년간 적막했던 내궁을 깨운 소리에 궁을 지키던 아이들은 눈멀고 귀 막았다.
서로 애틋하고 정다운 사이인 것이 뻔히 보이는데 그런 명분이니 체면이니 하는 것은 저희가 알 바 아니었다.
그러니 등 떠미는 것이다.
만월의 가루를 내어주는 저 고운 분 보내지 마십시오.
달 아이를 주시는 소희님, 꼭 붙들어 둘 것입니다.
반요는 이날 아침 반쯤 직인께 충동적으로 굴었다.
그래서였다.
저를 보는 아름다운 삼천외의 선인을 보며 저도 모르게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털어놓은 것은.
애당초 염휘께서 전하라고 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겠지만 반요는 굳이 두 분 ‘함께’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두 분 함께 침수 드시어 오늘은 아무래도 만나기 어려울 성싶습니다.”
“……뭐라?”
“네?”
“너 지금 무어라 한 것이냐.”
금편이 울리는 소리가 목소리만큼이나 서늘해 반요는 절로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끝까지 태연하게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간밤 누구보다 아름답게 웃던 제 주인, 바로 귀왕이신 염휘를 떠올린 덕이었다.
눈앞의 소희를 그 아름다운 홍안 가득 채우고 즐겁게 터트리던 웃음소리가 용기를 주었다.
“두 분 함께 침수 중이라 말씀 올렸습니다.”
고압적이고 냉한 목소리에 절로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까진 막지 못했지만, 반요는 저 자신이 충분히 자랑스러웠다.
“사실이냐.”
“직인께 제가 어찌 거짓을 고하리까.”
푸들거리는 사나운 인상에 절로 손끝이 떨렸다.
삼천외의 선인 아니었나.
절로 의심이 들 만큼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직인 앞에서 반요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다 말씀 올리거라.”
까드득거리는 소리가 정말로 직인이 낸 것인가.
반요는 잔뜩 움츠러들어 직인을 배웅했다.
손바닥만 한 소청조의 몸집을 금세 크게 불려 타고 날아가는 직인은 몹시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손에 들려있던 작은 차주머니가 선물인 듯해서 뒤늦게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반요에게 더욱 소중한 것은 이 하계의 지배자.
염휘였다.
곧, 그의 반려가 되어줄 소희가 직인보다 더없이 소중했다.
두 분께서 달 아이를 내어주시고 만월의 가루를 만드는 것을 못 보았더라면 모를까.
‘교아’를 보내며 울고 또 울던 소희의 마음을 못 보았다면 모를까.
저 고운 분 상천으로 못 보낸다 싶었다.
한낱 달 아이인 자신조차 마음이 이럴진대.
하물며 염휘께선 어떠할지 차마 짐작도 되지 않았다.
염휘께서 못 잡으신다면 저희가 잡을 것이다.
“안녕히 가십시오.”
소리 높여 멀어지는 직인을 배웅했다.
직인께서 화가 나 삼천외의 땅에 도착하셔서 오늘 일을 마구마구 말씀해 주십사.
반요는 소리 없이 빌고, 또 빌었다.
귀문의 별은 이미 염휘의 것이라고 널리널리 소문 내주십사.
손을 흔들어 진심으로 직인을 배웅했었다.
그러니, 소희의 오해였다는 말에 절로 목청이 돋워지는 것이다.
“어디가 오해랍니까, 소희님.”
정색했지만 능글맞은 목소리가 제 옆의 조양에게까지 전해져,
“이것이 오해면, 저희는 거짓말쟁이입니다.”
거들게 만들었다.
“아이참!”
소희가 어쩔 줄 몰라서 온 얼굴이 붉어지게 몰아세우면서도 당당한 것이다.
“직인은 삼천외의 선인이십니다. 거짓을 싫어하셔요.”
“난 어쩌면 좋으니. 혼례도 올리지 않았는데 소문이 파다하게 날 참이잖니.”
희고도 작은 두 손이 올라와 발그레해진 얼굴을 푹 감쌌다.
“어쩌긴요, 염휘께서도 그러셨잖습니까.”
“‘그러니 짐에게 시집오란 말입니다.’ 하고요.”
척하니 착이었다.
“세상에, 난 어쩌면 좋으니.”
울음 반, 그리고 어쩐지 웃음 반인 소희의 목소리 끝에 염휘께서 ‘아수라전’으로 가자 청하러 오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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