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갈라진 틈 사이 (6)
2018.02.19.
“세상에. 태자. 내가 기가 막혀 말이 아니 나옵니다.”
“그럼 지금 이것은 누구의 옥음이란 말입니까.”
쨍하게 울리는 고음을 따라 냉한 목소리가 빈정거렸다.
“태자. 말을 삼가라.”
환궁한지 수일이 지났지만 문후를 여쭙지 않는 태자를 모후이신 ‘휘’가 불러들였다.
어미 된 자로 섭섭한 마음에 조금 말을 했기로서니, 그것을 저렇게 사납게 받아치는 태자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니, 말없이 상천을 비운 것도 모자라 환궁하고서도……!”
너무도 차갑게 구는 태자를 보던 휘가 서운함에 감정이 격해져 말을 잇지 못했다.
“다 알고 계시지 않았사옵니까?”
태자는 찻잔을 들어 가만히 향을 즐겼다.
“무어라 하셨습니까?”
“아기 새들이 바삐 다니던데, 설마 소식을 물어 나르다 떨어뜨리기라도 하였답니까?”
태자는 뭐가 우스운지 어깨를 떨며 키들거리고 웃었다.
노골적인 비웃음.
“태자!”
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생각했는지 태자에게 뾰족한 음성을 내질렀다.
“두고 보아 기꺼운 사이가 아님을 모르지 않으실 테니 이만 보내주십시오. 허하시겠는지요?”
하지만, 태자는 새된 소리를 내는 휘에게는 시선 한번 주는 법이 없었다.
대신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무심한 목소리로 상제에게 ‘축객령’을 요구하는 태자는 목소리만큼이나 무감한 표정이었다.
가면이라도 뒤집어쓴 듯 감정 한 줌 묻어나지 않을 미끈한 얼굴.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상제는 쓴물을 삼키듯 구겨진 미간을 펴지 못했다.
“가 보거라 태자. 다른 날 좋은 얼굴로 문후 올리거라.”
뻔히 하는 말이었고.
“그러겠사옵니다. 물러가옵니다.”
으레 하는 소리였다.
태자는 푸들거리는 휘를 두고 찬바람이 일 만큼 몸을 거세게 돌려 나가버렸다.
시비가 문을 열어주는 것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급했다.
“아…… 전하…….”
“비켜라.”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을 물리치고 손수 문을 밀어 열고는 긴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내실을 빠져나가는 태자의 등 뒤로 씨근거리는 휘의 숨소리가 선명하게 울렸지만, 태자는 끝까지 뒤돌아 봐주지 않았다.
성큼성큼 망설임 없이 쭉쭉 뻗어 나가는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태자는 숨이 막히고 욕지기가 났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아서 울렁이는 속을 누른 채 걷고 또 걸었다.
들고 있던 접선을 부쳐내며 뒤집어진 속을 달래었지만, 부질없다는 것 또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상제께서 머무는 본궁에만 오는 시작되는 울렁증이라 벗어나는 것밖엔 도리가 없었다.
길고 긴 회랑 끝에 도착하자, 상쾌한 바람과 함께 참았던 묵은 숨이 터져 나왔다.
“하아-.”
부족했던 호흡에 머릿속이 핑 돌아, 태자는 회랑 끝 기둥에 이마를 가져다 대고는 눈을 감았다.
폐부를 잔뜩 메운 비릿한 냄새가 날숨을 따라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가.
태자는 본궁에만 오면 비린내에 구역질이 나곤 했었다.
진맥을 해도 이상이 없었고, 정화를 해도 소용없었다.
자꾸만 헛구역질을 하고 토하는 태자를 두고 더러 말이 돌았던 것도 알고 있었다.
본궁에 가지 않으면 멀쩡한 것이니.
태자는 어느 순간부터 본궁을 가기를 꺼려했다.
그런 태자를 휘가 못마땅히 여기며 매일 같이 불러들였지만, 거부감만 심해졌을 뿐이었다.
심지어 태자는 휘에게서도 비린내가 난다고 느꼈다.
아직은 어린 소년이었던 저를 잡아채던 휘의 손아귀.
길게 다듬어진 손톱이 밧줄처럼 그의 가는 손목을 옭아매 잡아당겼었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야!’
‘우욱.’
향긋한 분 내음과 함께 딸려오는 비릿한 쇠 내음.
그것은 어린 태자의 속을 단번에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휘는 본래도 자상한 성정은 아니었다.
찬란한 자리에 어울리는 귀한 분일 뿐, 자신이 낳은 어린 것에게도 따스함을 보여주기엔 한없이 냉정한 이였다.
‘어째서 이런 모자란 짓을 하는 것인지.’
마음에 차지 않는 태자를 향해 거침없이 혀를 차고 작은 손목을 거머쥐었던 손을 풀어 탁탁 털었다.
‘이렇듯 허약해서야, 보위에 올라 청천의 전은 어찌 감당하려 하시는지.’
‘……흑.’
‘이 향기로운 상천에서 비린내가 난다 함은 전장에서는 어찌 버티실 것인가. 아니, 바로 아래 인계만 가더라도 온갖 악취로 가득한 것을.’
해를 품어 낸 잘난 태자였다.
번듯하게 잘생긴 얼굴이며, 타고난 영력만해도 훗날 보위에 오르실 때가 기대된다는 이야기를 듣던 태자였다.
삼천외에 계시는 분들까지 잘난 태자를 추켜 올려주었건만.
갑자기 이 아이 왜 이러는 것인지 휘로서도 알도리가 없으니 답답해서 한 소리였다.
‘상천의 태자씩이나 되어선.’
‘흠’이 생긴 태자를 향해 휘의 날 선 말이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저를 잡았던 손을 더러운 것이 묻기라도 하는 듯 탁탁 털고, 아름다운 두 눈 가득 경멸을 담아 그를 노려보던 휘는 몸을 돌려 가버렸다.
눈물로 젖은 얼굴을 한 태자를 덩그러니 두고는.
그것은 태자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보위에 올라 청천의 전은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이 아래 인계만 해도 온갖 악취가 그득한 것을.’
“……그날이었구나.”
태자는 문득 떠오른 기억에 감았던 눈을 떴다.
구역질은 이미 가셨고, 거칠던 호흡도 어느샌가 고요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지관아.”
상제께 문후를 여쭙지 않았다고 아침나절 휘에게 호되게 질책 들었다는 소리는 반나절도 안 되어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
그 이유야 뻔한 것이라 모두 태자만 보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태자는 자신의 침전에 스스로를 가뒀다.
문을 열고 나가면 따라붙는 시선들이 징그럽고, 숨이 막혔다.
태자는 자신에게 내려진 삼관대제들을 침전으로 불러들였다.
이대로는 살 수 없었다.
즉위 때까지, 아니 즉위해서도 저런 시선을 받아야 한다니.
이렇게 살아서는 산 것이 아니었다.
감히.
태자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는 것을 잡아다 치도곤을 내는 것도 한두 명이다.
상천의 모두를 잡아다 가둘 수도 없는 노릇.
태자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루 내내 침전에 앉아 내린 결론이었다.
“지관아.”
태자는 허공을 향해 다시 한번 앳된 목소리를 냈다.
“삼관대제, 모두 들라.”
세 번쯤 목청을 돋은 뒤에야 문밖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르셨사옵니까.”
“어서 들라.”
태자는 삼관대제를 불러들인 후 문을 단단히 닫아걸라 했다.
그러고도 부족해 제 방에 그려둔 진을 발동시키기도 했다.
황금빛이 흐르는 진이 방 전체를 빈틈없이 감싸고 난 후에야 태자는 입을 열었다.
“인계에 다녀와야겠다.”
“네?”
뜬금없는 소리에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천관이 제가 들은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옆에 선 지관과 수관 역시 다를 바 없는 표정이었다.
“소문을 들어 알지 않느냐.”
“…….”
“모후께서 염려하시는 것도 당연하다. 이래서야 청천의 전을 이끌기는커녕 즉위해서 본궁에 들어서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인계에 가시는 것이……!”
“하기사 인계는 전쟁도 잦은 편이라. 미리 적응하시는 셈 치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태자의 말에 천관이 의문을 던진 것도 잠시.
삼관대제중 맨 아래인 수관이 냉큼 대답을 하며 맨질맨질한 턱을 쓸었다.
“고슴도치 같은 배가 하루에도 수척 가라앉습니다. 잔뜩 짓이겨진 인간을 가득 싣고 말입니다.”
태자는 아직 전쟁을 몰랐다.
수관은 어쩌다 보니 자신이 전쟁을 설명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심을 다했다.
“처음엔 괴로우실 것이나, 이겨내신다면 지금 이 토기쯤이야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한가.”
수관의 말에 태자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자신을 경멸하듯 내려다보던 휘의 싸늘한 눈초리가 아직도 따라붙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상천의 태자씩이나 되어선.’
미련 없이 등을 돌려 가버리던 휘의 모습이 기습적으로 떠올랐다.
“흣.”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가운데가 쩌억 갈라지는 기분과 함께 뭐라 말할 수 없는 통증이 그를 덮쳤다.
태자는 가볍게 머리를 털었다.
이겨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려고 삼관대제를 불러들인 것이 아니었던가.
“문을 열어라.”
“바로 가시렵니까?”
어린 소년에게 젊은 사내 셋이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가자꾸나.”
“저, 태자 전하.”
천관이 인계로 가는 문을 여는 대신 태자를 불렀다.
의아해하는 태자에게 조심스러운 물음이 건너왔다.
“상제궁에 기별을 넣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아니.”
상제와 휘께 말씀을 올리고 움직이면 다시 상천의 모두가 알게 될 것이었다.
인계로 내려가 얼마나 버티다 올 수 있을지는 태자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문을 열자마자 다시 상천으로 올라와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망신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태자는 생각만으로도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어났다.
“잠시…… 잠시 다녀올 것이니라.”
“……그러시겠사옵니까?”
“내가 다녀온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태자는 자신의 떨림을 그렇게 은근히 내비쳤고, 영리한 천관은 대번에 알아들었다.
“현명하신 선택이옵니다. 인계를 자주 드나드는 지관도 첫날은 겨우 반나절을 넘겼나이다.”
“그러하냐?”
반색하는 태자의 음성을 못 알아들었으랴.
“그렇사옵니다. 인계는 상하천과는 달리 모든 것이 한데 뒤섞여 있사옵니다. 그러니 계도를 하러 신을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잠시만 계시다 오십시오.”
지관과 천관이 차례로 고충을 이야기하며 태자를 만류하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어미에게 새된 질책을 받고 움츠러든 태자의 마음을 삼관대제가 위로 해주었다.
“문을 열 것입니다.”
천관이 그 말을 끝으로 소매 속에서 감춰둔 두 손을 꺼내 들었다.
벌꿀과 같은 황금빛을 띤 두 손이 태자의 침전에 비쳐든 햇살을 움켜쥔 것은 바로 그때였다.
“!”
처음 보는 신묘한 광경에 태자의 눈이 홉 뜨였다.
마치 옷감을 맞잡아 쥔 듯 비쳐든 햇살의 가장자리를 두 손으로 잡고 그대로 벌렸다.
벌어지는 햇살 사이로 은근한 빛을 머금은 길이 난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것……이…….”
검푸른 눈동자에 호기심이 가득 들어차 예쁘게 빛을 냈다.
“천마를 타고 달려야 하지만, 잠시 다녀오기에 길을 넘어 바로 들어갈까 합니다.”
“그래.”
태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천관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관이 그에게 대뜸 팔을 내밀었을 때서야, 그가 바로 들어간다는 그 말을 이해했다.
천관은 무엄하게도 태자를 안아 들고 햇살 속에 난 길로 뛰어들었던 것이었다.
발밑이 꺼져 드는 기분과 귓가를 스치는 사나운 바람 소리에 절로 눈이 감겼다.
저를 안아 든 천관의 어깨에 이마를 붙이고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앞머리를 스치고 가는 꽃향기를 문 바람에 살그머니 눈을 떠보니 풍경이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어지럽진 않으십니까?”
그 긴 시간 저를 안고 내려온 천관은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였다.
“괜찮다.”
태자는 무섭다며 천관에게 붙어 있던 자신의 모양새가 우습다 여겼다.
어질거리는 머리와 울렁거리는 속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지만, 그래서였다.
오기 부리듯 툭 내뱉으며 내려달라고 한 것은.
“아직 아우들이 도착하지 못했사옵니다.”
발이 땅에 닿기 무섭게 천관이 재빨리 그에게 앉을 만한 곳을 찾아 권했다.
이끼가 돋은 바위.
감히. 태자인 나를.
평소라면 당연하게 나왔을 타박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천마를 타고 길을 달려 반 시진인 곳을 천관이 그를 안고 ‘뛰어내린’ 덕에 1각이 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오장육보가 뒤집히고, 정신이 산란한 것이 당연했다.
태자에게 인계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험했다.
‘고얀. 고얀.’
태자는 천관이 권한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며 어지럼증이 가시길 기다렸다.
휘께서 소리 지르실 법했다.
인계는 정말이지 쉽지가 않았다.
오가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진이 빠지다니.
인계에서 조금만 머문다면 비린내를 견디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닐 성싶었다.
태자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근처에 약수가 솟아나는 곳이 있습니다. 물을 떠다 드릴까 합니다.”
천관은 앉아서 숨을 몰아쉬는 태자를 향해 공손히 허락을 구했다.
“다녀오시게.”
“이곳에 계십시오. 아우들이 금세 올 것입니다.”
“다녀오시래두.”
태자는 그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영 못 미더운 듯 재차 당부하는 천관을 파리 쫓듯 손을 휘저어 보내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자신을 얼마나 못 미덥게 보았길래 이 잠시간 혼자 있는 것을 그다지도 걱정한단 말인가.
“흥.”
고얀 것들.
내 반드시 이 토악질을 고쳐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야무진 다짐을 하는 태자에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가 혼자 남겨진 지 수 분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엄마야.”
마른 나뭇가지가 부서지는 소음과 함께 앳된 목소리가 뒤를 따랐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어린 계집의 목소리.
태자는 지척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세웠다.
“아이고 아가씨. 넘어지신 것입니까?”
아가씨?
“아야야.”
“그러게 어째서 따라오신다 한 것입니까. 저 혼자 다녀와도 금방인 것을.”
“같이 같이!”
“아이고 네네. 함께 가셔야지요.”
“유모!”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랫것을 부리는 어린 계집이 산길에서 다친 모양이었다.
“같이 같이!”
“예예, 아이그 이것 보십시오? 손바닥이 죄 까졌지 않습니까. 에이.”
어린 ‘아가씨’ 목소리에 실실 웃으며 대꾸하는 품새가 버르장머리 없어 태자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웃전을 놀리는 것인가.”
“어? 거기 누구 있습니까?”
태자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조금 전까지 제 아가씨를 놀리던 목소리가 대번에 그를 불러 찾았다.
낭패로군.
태자는 성가시게 되었다 생각했지만, 아직 가볍게 현기증이 남아있는 터라 몸을 움직이기가 여의치 않았다.
“잠시 계셔요.”
“유모!”
“금세 올 것이니 계셔요.”
아예 그를 찾아 나서기라도 한 듯 ‘아가씨’에게 단단히 이르는 목소리에 이어 야무진 발소리가 뒤따랐다.
성가시게 되었어.
태자는 곧장 제게로 다가오는 소리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웬 도련님이 계셨네요.”
그리고 버르장머리 없는 목소리의 주인이 단박에 그를 찾아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미간을 구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뻔히 보았을 텐데도, 넉살 좋게 인사를 하는 폼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이 번듯하신 풍채 하며, 반듯한 몸가짐으로 보아 분명 귀한 댁 도령이시겠습니다.”
희롱하는 듯, 칭찬하는 듯 알 수 없는 말을 주절거리는 ‘유모’를 보는 태자의 눈매는 도통 풀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언짢은 목소리에도
“다름이 아니오라.”
제 할 말을 끝까지 하고 만다.
“저희 아가씨께서 산길에서 발을 헛디뎌 다치셨사온데…….”
“날더러 부축이라도 하란 말이냐. 고얀!”
“언감생심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히려 그에게 큰소리를 치기까지 한다.
“허?”
이 목청 좋고 막돼먹은 것에 태자가 기가 막혀 헛웃음을 흘릴 때였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가씨’가 그들 앞에 나섰다.
“유모, 같이. 같이.”
낭랑하니 어여쁜 목소리가.
“아야 아냐 유모.”
저 고운 얼굴을 닮은 것이었나.
갑자기 환한 빛이 비쳐드는 듯해 태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여지껏 처음인 아릿함이 명치끝을 뜨끈하게 달구었다.
그것은 욱신거림도, 울렁거림도 아니었지만 마치 물 위에 뜬 듯 마음이 울렁거렸고, 가슴 어딘가가 못 견디게 욱신거렸다.
“이게…… 뭐지?”
당황한 태자의 말에 ‘유모’가 야물게 대꾸했다.
“이게 아니고, 아랫동네 사시는 소희 아씨요. 애먼 아가씨께 그게 무슨 말이오!”
“소희?”
“유모. 유모.”
이제 사람 꼴이나 되었을까 한 어린 것이었다.
그런데 저것을 보자 이런 기분이 들다니.
“이게 무슨.”
어이 없어하는 태자의 말에 천관의 목소리가 보태졌다.
“휘?”
잔뜩 경악한 천관의 목소리에 태자의 눈이 크게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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