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57화 (57/114)

57. 갈라진 틈 사이 (5)

2018.02.16.

은쟁반 가득가득 모인 것들은 염라의 불들을 시작으로 차분히 나누어졌다.

하룻밤 사이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만월의 가루는 담을 주머니가 부족할 정도였다.

심지어, 이번 것은 염휘께서 직접 영력을 담아 주시고, 아수라께서 천도를 갈아 넣으셨다는 말에 그 주머니를 하나 얻기 바라는 이가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만월의 가루는 가장 험준한 곳에 계시는 분들게 먼저 보내질 예정이었다.

그중 가장 시급한 곳은 ‘귀문’.

대부분 요괴를 아수라가 정리했다지만 원래 감재사자 넷이서 자리를 지키던 곳이었다.

하나 남은 감재사자로 귀문을 관리하기에는 무리였고, 사자가 가지고 있던 만월의 가루는 바닥 나버렸다.

아직 첫 햇살도 터지지 못한 어스름한 새벽.

안개가 가득 낀 수라전 앞마당은 이른 새벽부터 소란스러웠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가 앳되었다.

“급하게 보내느라 제대로 검을 봐주지 못한 것이 염려스럽구나.”

“흐윽.”

아수라의 담담한 말에 뒤이어 작은 흐느낌이 터졌다.

미처 고일 새도 없이 뚝뚝 흘러내리는 굵은 눈물방울을 닦지도 못한 채 숨죽여 우는 것은 소희였다.

“마마. 울지 마세요.”

아수라에게 씩씩하게 대답을 하던 달 아이 ‘교아’가 소희를 달랬다.

이름을 환이 직접 내리고, 심지어 귀문으로 보내는 첫 사신이다 하여 소희와 배웅까지 나온 참이었다.

그에게도 소희에게도 ‘교아’가 가지는 의미는 무척 대단했다.

그들의 첫 아이였고.

하계의 이십 년 만의 첫 사신이었다.

우는 소희만큼이나 환의 마음도 심란했지만 그는 우는 소희를 달래주는 대신 교아 앞으로 살짝 등 떠밀어주었다.

“울지 말고, 길 떠나는 아이에게 다정한 말을 남기세요.”

귓가를 스치는 그의 나지막한 말이 의미하는 바를 소희도 깨달았다.

이 아이.

다시 보기가 얼마나 힘들 것인가.

소희가 귀문에 가지 않는 이상.

살아 다시 보겠는가.

소희는 아예 펑펑 울기 시작했다.

달 어미로서의 위엄이며, 체면 같은 것을 떠올릴 새도 없었다.

무섭고 험한 곳으로 아이를 보내야만 한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엉엉 울고 말았다.

그저 울기만 하는 소희의 손을 잡아 준 건 교아였다.

“마마.”

다정한 음색으로 불러준 것도 교아였다.

“제가 남아를 선택한 이유를 모르시옵니까.”

“흑.”

“하루 내내 저를 안아주시던 다정한 분을 지켜드리고 싶었습니다.”

“!”

교아의 수줍은 고백이었다.

갓난아이의 모습으로 하루 내내 소희 품에 안겨있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는 교아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사랑 넘치고 자애로우신 마마님께 삿된 것이 감히 그림자도 드리우지 못하게.”

“교아야.”

“제가 모두 치워내려, 사신이 되었습니다.”

“교아야.”

흑흑거리는 울음소리를 다정한 음성이 감싸 안았다.

“그러니 울지 마세요.”

“교아야.”

소희는 그저 교아의 이름만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랑스럽고 어여쁜 마음에 목이 메이고,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마음이 아파서.

“마마의 온정을 제일 처음으로 받은 감재사자가 바로 저이옵니다.”

“귀문에서 가장 행복한 사자가 될 것이옵니다.”

안녕을 고하는 새로운 감재사자의 인사에 소희는 펑펑 울며, 웃어주었다.

“이름 없는 강을 건너려면 지금 나서야 한다.”

아수라가 미안한 음색으로 교아를 재촉했기 때문이었다.

“조심히 다녀오너라.”

두 뺨을 눈물로 푹 적신 얼굴로 웃으며 소희가 교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 언젠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심부름 가던 자신에게 해주던 그 말 그대로.

“예, 다녀오겠습니다.”

어린 시절 소희의 대답을 그대로 돌려주는 교아를 보며.

소희는 웃었다.

감재사자 관복을 입고 등을 돌려 멀어지는 교아의 머리위로 첫 햇살이 터졌다.

“곤하실 테지.”

교아를 보내고 내궁으로 돌아온 소희는 그대로 침상에 올라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워버렸다.

바래다주련다 나섰던 환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간밤, 달이 질 때까지 소희는 만월의 가루를 만들었다.

그 덕에 내궁의 아이들과 염휘까지 모두 밤을 새야 했지만, 후원에 놓인 은쟁반마다 가득 메운 만월의 가루는 간밤의 고단함을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염휘도, 내궁의 아이들도 모두 하계의 선인.

아직 ‘영’인 소희와는 그 위치가 달랐다.

영력이 안정되어있고, 건강한 육신을 가진 그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명부를 옮겨오는 중인, 아직은 영일 뿐인 소희와는 그 무게감이 다를 터였다.

거기에 교아의 이적이 겹쳐 새벽 내내 펑펑 울기까지 한 참이었다.

서러운 숨소리가 아직까지 간간히 이어졌다.

“바쁘십니까?”

잦아드는 숨소리에 이내 잠이 드셨거니 했던 환은 뜻밖의 소희의 말에 놀라고 말았다.

“아니, 아니지.”

“그럼.”

“…….”

그럼.

뒷말이 분명히 존재할 말끝에 환이 기다리는 것도 잠시.

숨소리보다 더 작은 목소리가 그를 불러들였다.

“그럼, 잠시 같이 계셔주세요.”

침상에 등 돌려 누운 그대로 손만 뻗은 모습이, 불경했다. 오만불손하였다.

그러나 빨개진 귀 끝에, 선명하게 그의 귀를 울리는 빠른 심박소리에 환은 덩달아 눈가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침상으로 파고든 그가 점잖게 소희를 품에 넣어주기만 한 것은 아직도 축축하게 젖은 속눈썹 때문이었다.

흥건하게 젖은 베갯잇 탓이었다.

그래서 작은 머리를 그의 턱밑에 담궈 놓고선 지그시 눌러 못 본 체 해주었다.

그만우시라 달래지 않은 것은.

그 역시 첫아이인 교아를 보내는 것이 생각보다 많이 섭섭하고, 헛헛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몫까지라.

마음을 다해 우는 소희의 모습이 고마워서였다.

이렇듯 다정한 분을 품은 자신이 대견해서였다.

가늘게 떨리는 마른 어깨를 가만히 다독이며 환은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시만 눈을 붙입시다.”

“…….”

“곤하실 것이야.”

“그치만.”

잔뜩 잠겨 쉰 듯한 목소리가 머뭇거리며 대꾸했다.

“만월의 가루를 오늘도 만드신다 하였지.”

“네.”

“달빛을 영력으로 말리는 일은, 사실 꽤 고된 일입니다.”

“그렇습니까?”

“교아에게 달포에 한번 보내준다 약조하셨다면서요?”

환의 물음에 턱밑의 머리가 작게 끄덕거렸다.

어미 된 마음이었다.

아프지 말아라, 다치지 말아라.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만월의 가루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으니,

이것은 그녀 식의 당부였다.

하계의 사자로 났으니, 무를 수는 없는 바.

요괴와 맞서고, 하계에 첫발을 디딘 영을 인솔하는 것이 바로 그녀의 아이 ‘교아’가 평생토록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니 어미 된 자로, 아이를 응원하는 당부였다.

‘상처 입으면 쓰거라. 아끼지 말고 쓰거라. 매일같이 만들 것이니. 달포에 한 번씩 보내줄 것이니.’

다치지 말고, 다치더라도 많이 아프지 말고. 아낌없이 달 가루 쓰거라.

환은 그런 소희의 애틋한 마음을 일깨웠다.

“달 아이는 앞으로도 많이 태어날 것인데.”

“…….”

그의 말에 가슴에 닿는 숨이 따끈해졌다.

“하루 이틀 밤을 새워 달포에 한 번씩 주머니를 내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아…….”

“달 마마는 해야 하셔야 하는 일이 무척 많습니다.”

“…….”

귀를 쫑긋 세운 채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소희의 등을 가만히 토닥이며 환은 말을 이었다.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보내주시려면. 지쳐서는 안 되겠지요.”

“자겠습니다.”

결국은 피곤할 테니 좀 자두라는 말을 이렇게나 빙빙 돌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둘러둘러 말하지 않았다면 버티고 자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소희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마음 같아서야, 이렇게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궁 아이들을 데리고 주머니를 수북히 만들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교아를 그 무섭고 먼 곳으로 보내놓고 자신만 잘 지내는 것 같아, 죄책감에 못살 것이었다.

환은 그런 소희의 마음을 알고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 않았지만 소희는 환의 가슴에 이마를 가져다 대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여태 펑펑 운 눈은 뜨끈하게 달아올라 무척 쓰라렸다.

울고 싶지 않은데 따가움에 절로 눈물이 흘렀다. 이미 환의 앞섶은 축축해진지 오래였다.

“조금만 쉬십시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멀었으니.”

환은 젖어드는 옷은 못 본 체하며 계속 소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잠시만 주무시고 일어나서 조반 드십시다.”

“입이 깔깔한데.”

“그래도.”

“영…….”

토닥거리는 손을 따라 둘의 말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졸리진 않았지만 온몸이 무겁고 나른해 점점 입을 떼기가 힘들어졌다.

등을 두드리는 손길이 점차로 멀어졌다.

‘아씨. 날 밝았습니다.’

‘아씨. 일어나셔요.’

“조금만 더.”

소희는 자꾸만 딱따구리처럼 귓가를 쪼아대는 소리에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어서 일어나셔요.’

“조금만.”

자꾸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무척이나 성가셨다.

소희는 따뜻한 온기를 따라 얼굴을 파묻고는 웅얼거렸다.

“곤하단 말이야.”

그저 조금만 더 자고 싶단 말이야.

“더?”

봄바람이 꽃잎을 스치듯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조금만.”

눈에 풀이라도 바른 것 같이 영 떠지질 않았다.

늪에 빠진 것처럼 한 음절을 채 맺기도 전에 의식이 깊게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다음에 오셔야겠다고 전하거라.”

멀어지는 의식 끝에, 들리는 낮게 울리는 남자의 미성이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절로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는 근사한 저음에 미소가 지어진다.

“좋은 꿈을 꾸시는 모양이지.”

뺨을 간질이는 느낌과 함께 남자의 목소리가 한번 더 울리고는 소희의 기억은 어두워졌다.

포근하고 따스한 느낌에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소희가 눈을 뜬 건 점심이 되어서였다.

“이제 그만 일어나셔야지.”

“으응…….”

“안 주무시겠다더니?”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소희는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세상에.”

뻑뻑한 눈에 담긴 것은 살짝 흐트러진 차림새의 환이었다.

“거봐, 곤하셨지.”

싱긋 웃는 그의 미소가 얼마나 근사한지, 멍한 가운데서도 절로 가슴이 술렁였다.

“더 주무셔도 되지만, 점심은 드셔야해.”

짐은 이제 가봐야 하거든.

“가셔야 합니까?”

아쉬움에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아차 싶은 것도 잠시.

흘러내리는 은사 같은 머리를 쓸어 넘기는 환의 아찔한 자태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더 있고 싶지만, 아수라에게 가봐야 하니 미룰 수가 없습니다.”

환은 요즘 수시로 말투가 바뀌었다.

‘비’에게 하대하는 이가 어디 있느냐며, 이것은 본인의 실책이라 하던 말은 진심이었다.

습관처럼 굳어진 말투를 그는 틈만 나면 바로 잡으려 무척 애를 썼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소희는 좋았기에 상관없었지만, 환이 얼굴을 굳히고 엄하게 안 된다고 딱 자르는 통에 이 어정쩡한 말투를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 아수라께.”

소희는 환의 용무를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몽롱한 잠기운을 떨쳐냈다.

간밤, 잔뜩 속이 상해 어쩔 줄 몰라 하던 ‘밤의 아수라’에게 ‘염휘’가 약조했던 것이 기억났다.

“만월의 가루를 드리러 가시는 거라면 저도 데려가주세요.”

밤의 아수라께서 자신에게도 간곡히 부탁한 바 있었으니 소희는 자신이 도움이 되든 아니든 따라 가고 싶었다.

안된다고 거절하면 어쩌나 마음 졸이는 그녀에게 환은 의외로 선선히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가도 되는 것입니까?”

“안될 것은 무업니까.”

만월의 가루를 아끼려고 하면, 뒤에서 뿌려버리세요.

미리 옷은 벗겨놓을 테니.

민망한 소리를 잘도 태연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환은 소희처럼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된 듯싶었다.

일렁이는 홍안이 맑지 못했다.

아닌 게 아니라 환 역시 무척 피곤할 것이었다.

소희야 밤새 달빛을 손으로 비비기만 했지만, 그는 그 내내 영력을 흘려주었으니 모르긴 몰라도 꽤 피곤할 것이다.

소희는 손을 들어 올려 피곤해 보이는 환의 얼굴을 살짝 쓸었다.

원래도 깎아지른 듯 날렵한 턱선이 간밤 고생을 한 터라 날카로워진 느낌이었다.

몹시 부끄러웠다.

그러나 함께 달 아이를 내고, 만월의 가루를 만들며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나눈 시간이 그녀를 용기 내게 했다.

그녀의 손길을 지그시 지켜보는 환의 시선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홍안에 불이 지펴지고, 아름답게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곤란하게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환이 대뜸 그대로 고개를 꺾어 내렸다.

그의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장막처럼 드리워지고, 보석 같은 홍안이 가까워짐과 동시에 입술에 보드라운 것이 닿았다.

말랑하고 예민한 살을 스치듯 맞댄 그의 입맞춤은 인사와 같이 정중했다.

느릿하게 깜빡이는 두 눈 속에 타오르는 불을 가두고선, 상냥히 웃는 모습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곤란해 하시는군?”

서로의 숨이 섞여들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코웃음을 치는 그는 점잖았지만 그만큼 무척 위험해 보였다.

“짐도, 무척 곤란하다고.”

한자 한자 공들여 발음하는 그의 표정 어디에도 곤란한 기색은 없었지만 소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상냥한 맹수에게 지금 당장 한입에 삼켜질 것 같았다.

“그러니.”

그러니, 라고 말을 짧게 끊은 환은 아마도 웃었던 것 같았다.

소희는 눈뜨자마자 벼락처럼 몰아치는 환 덕분에 얼이 빠져있었다.

“일어나십시다. 곧, 아이들이 몰려올 테니까.”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엔 그대는 부끄럽겠지?

조금 전까지 위에 올라타 위험한 미소를 짓던 남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매끄러운 동작으로 누워있는 소희를 단번에 일으켜준 환이 그대로 침상에서 내려섰다.

“옷이라도 갈아입어야 덜 부끄러울 테니, 조금 있다 보십시다.”

환은 흐트러진 옷을 가볍게 잡아당겨 정리하고는 무척 반듯한 모습으로 소희의 침전을 빠져나갔다.

엉망인 건 잔뜩 흐트러진 이불과, 그리고 그만큼 헝클어진 소희의 마음뿐이었다.

환이 휘저어 놓은 대로 착실하게 엉클어져 울렁이는 마음을 다독이던 소희는 뒤늦게 환의 말을 곱씹다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환은 부끄럽지 않다 이 말씀이신건가?”

아이들에게 침상에서 함께 있는 것을 보여줘도 정말 괜찮으시다 이건가.

이러다 얼굴에 불이 붙겠다 싶을 만큼 열이 쏠리고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을 때. 내궁 시비들이 그녀를 찾아 들어왔다.

“소셋물 올리리까.”

“옷부터 갈아입으실 것입니까.”

여느 때와 똑같은 물음에 소희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대답을 하려던 찰나.

정말로 소희의 정신을 쏙 빼놓는 말이 반요에게서 흘러나왔다.

“아참. 소희님 이날 아침서 직인께서 찾아 오셨사온데.”

“직인께서?”

“네.”

“어째서 알려주지 않았느냐. 먼 길 발걸음 해주셨으니 날 깨웠어야지.”

큰 실례를 저질렀구나 발을 동동거리는 소희에게 조양이 작게 뭔가를 투덜거렸다.

“기별도 없이 첫새벽 전에 방문하는 객도 있답니까.”

너무 작고, 너무 빨라 알아듣지 못해 소희가 다시 물으려던 찰나, 반요가 천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고하였습니다.”

“세상에, 아무 소리도 못 듣고 내처 잤구나.”

“아니오. 염휘께서 두 분 침수 중이니 다른 날 들러 달라 전하라 하셨기로…….”

“무어!”

생글거리는 반요의 말에 소희는 머리가 어질해졌다.

“염휘께서…….”

제가 들은 것이 설마 사실인가 하여 다시 말을 되짚자 친절한 목소리가 또박또박 알려주었다.

“염휘께오서 두 분 침수 중이니 다른 날 오시라 전하라 하여.”

“설마 그대로 말씀드렸느냐.”

“예, 한자도 빼먹지 않았사옵니다.”

심지어 의기양양하게 소희에게 대답을 올렸더랬다.

혼례도 올리기 전 밤을 같이 보냈다는 것이 상하천뿐만 아니라 삼천외의 땅까지 파다하게 소문이 날 참이라 소희는 울기 직전이었다.

“세상에!”

“잘하였다.”

그리고 옆방에서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돌아온 환이 몹시 즐거운 목소리로 반요를 치하하는 것까지 소희는 맨정신으로 들어야 했다.

“그것이 어떻게 잘한 것입니까! 저는 이제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라고.”

부끄러움에 전신이 붉어진 소희가 볼멘 목소리로 그에게 따졌지만,

“그러니 짐에게 시집오란 말입니다.”

작정한 남자의 능글맞음에는 이길 방도가 없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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