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갈라진 틈 사이 (3)
2018.02.09.
아수라의 귀환은 그가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은밀하게 전해졌다.
간밤 장난 끝에 농밀해진 시간에 흠뻑 젖어 첫새벽이 되어서야 소희는 겨우 잠들었건만, 이상하게 문밖의 소곤거림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흐음…….”
몸을 뒤척거려 머리를 폭신한 이불에 비벼 모르는 체하려 했지만 부질없는 노력이었다.
“아수라님께서 오셨다고?”
“쉿! 조용히 해. 소희님 깨셔.”
아수라가 왔다는 두 마디에 눈이 그만 번쩍 뜨였다.
풍천과 그녀를 걱정해 사지에서도 식신을 부릴 만큼 신경을 쓰던 이였다.
그 덕에 말은 못 했으나 자신이 또 짐덩이같이 군것은 아닌지 내내 마음이 좋지 못했다.
“가봐도 되려나.”
환에게 같이 가자고 하면, 아수라께서 부담을 느끼시려나.
잠이 덜 깨 멍한 머리로 생각하기를 잠시.
그사이 문밖에서 아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조양아, 그러지 말고 더 이야기해줘.”
“뭘?”
“아니 아수라께서 귀문을 정화하러 가신 걸 모른 이가 어디 있니. 괜찮으신지 어쩐지…….”
제일 궁금하던 이야기를 이렇게 거저 듣게 될 줄이야.
소희는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고, 마른 침을 삼켰다.
절로 입안이 바짝 말라 조양이라는 아이의 말을 기다리다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반요. 요 계집애. 엉큼하기는. 괜찮다 않다를 네가 왜 신경을 써. 네가 아수라님의 빛도 아닌데.”
“아니 누가 곁자리 노린다니? 그저 괜찮으신가…….”
“안 좋으시댄다.”
좀 더 뜸들이며 괴롭힐 줄 알았건만, 조양이라는 아이는 곧장 답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절로 몸이 흠칫 떨릴 만큼 놀랄 소식이라 소희는 입술을 질겅이며 물어야했다.
‘역시, 식신을 부리시느라 무리를 하셔서…….’
드느니 죄책감이었다.
제가 단단히 한 몫을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이곳저곳에서 말썽이 일어난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아이그. 이걸 어째. 다치셨어? 아님 영력이 고갈되었어?”
반요라고 불린 아이는 소희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궁금해하는 것을 쏙쏙 잘도 물어주었다.
소희는 참담한 마음과는 별개로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미 코끝이 시큰해진 지 오래였다.
“비린내가 진동한다지?”
‘저건 또 무슨 소리람?’
하지만 궁금한 것은 소희뿐인 듯 반요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아아 하고 작게 앓는 소리를 냈을 뿐이었다.
“만월의 가루만 있다면.”
한껏 죽인 목소리가 바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애달픈 목소리.
참지 못하게 된 건 소희였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필요하다면 자신이 나서서 환에게 부탁해볼 것이었다.
“밖에 누구니. 좀 들어오련.”
깔깔한 목을 긁듯이 쉰 목소리가 발작처럼 터졌다.
* * *
우물쭈물하는 아이들을 다그쳐 들은 것은 달 아이만큼이나 신기한 이야기였다.
“달을 뜰채로 떠서 은쟁반에 담아 비비면 가루가 난다고?”
“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되물음에도 아이들은 공손히 대답했다.
“삼칠일도 못 지난 아이들도 만든다고?”
“아니, 그것은 그냥 달 가루입니다.”
차로도 마시고, 음식에도 올리고, 피부에 윤이 돌도록 화장할 때 덧바르기도 하고요.
반요와 조양이라고 불린 아이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듯 둘이서 쉬지 않고 설명했다.
“만월의 가루는 오직 달 마마, 귀문의 별께서 비벼주신 것을 부르는 말입니다.”
“사신들께 달 마마께서 주시는 온정입지요.”
“그것이 그 어떤 상처도 낫게 해준다고?”
“요괴에게 당한 상처에 즉효입니다. 그 어떤 것과도 비견할 수 없지요.”
만월의 가루는 요괴를 다스리는 만월의 힘을 그대로 빚어낸 것이니 요괴에게 받은 그 어떤 상처도 단번에 아물게 하는 귀한 것이었다.
소희는 아이들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수라께서 요괴에게 당하신 것 같다고?”
“네, 고약한 비린내가 나셨답니다.”
“요괴는 손톱과 이에 독이 있어서 상해를 입으면 반드시 살이 썩고 전신을 타고 독이 퍼져 비릿한 냄새를 풍깁니다.”
아수라께선 요괴에게 당하셨어요.
아이들은 단언했다.
사자가 되지는 못했으나 하계에서 나고 자란 달 아이들.
오히려 하계의 일은 소희보다 낫다 할 것이었다.
소희는 의구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만월의 가루는 어디 가면 구할 수 있니?”
하지만 그 어떤 질문에도 납죽납죽 답을 하던 아이들의 입이 꾹 다물린 건 바로 그때였다.
몇 번이고 물어도, 머뭇거리기만 할 뿐.
급기야는 고개를 떨궈 시선을 피하기까지 했다.
“어째서 그러는 것이니.”
아수라께 빚갚음 할 기회가 왔건만, 좀 도와다오.
절절한 소희의 말에 나온 답은 소희의 입도 다물리게 했다.
“달 마마께서 이십 년간 부재하셔서…… 남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뭐어?”
폐부로 깊게 스미는 절망감에 절로 터지느니 바보 같은 물음이었다.
“그럼. 그럼……. 사자들이 어떻게 버틴 것이냐.”
“……그래서 사신이 많이 부족해졌습니다.”
질문에 맞는 답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삼킨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입술이 바짝 말라버렸다.
세상에.
‘달 아이를 지켜준다던 다짐은 마냥 헛것이었구나.’
사자가 된 달 아이들이 그 목숨을 방패삼아 요괴에게 맞서는 것도 모르고 입으로만 떠들었구나.
그만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중 가장 급한 것은 아수라.
소희는 이 일을 누구와 상의하면 좋을지 잘 알고 있었다.
“단장해다오. 동이 트도록 직인께서 안 오신 것을 보니 돌아가시라는 매정한 말은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본궁으로 갈 것이다.”
아이들은 소희의 호령 같은 단호한 말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소셋물을 나르고, 붉은 머리꽂이를 찔러주고, 고운 옷가지를 단단히 허리띠로 여며 향낭까지 채워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화장만은 물린 터라, 소희는 말간 얼굴에 그저 환이 건네준 붉은 머리꽂이 하나만을 찌른 수수한 모습이었다.
“아니, 어째 분첩은 이리 마다 하세요.”
몇 번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고 반요라고 불리던 아이가 볼멘 소리내기를 서슴지 않았다.
“글쎄 화장은 하지 않아도 된대두.”
“이리 고우신데 아깝잖습니까. 조금만 바르세요. 네?”
달보다 더 아름다워지실 것인데.
그칠 줄 모르고 투덜거리는 반요를 옆에 섰던 조양이 옆구리를 호되게 뜯었다.
“그만해 이것아. 어디에 대고 입질이니.”
“아쉬워서 그러지. 화장 살짝만 해드려도 얼마나 더 고와지실까 해서 그런다, 왜.”
“안 하셔도 두 분 그린 듯이 어울리시니 염려 말거라.”
뻔하게 들리는 소리에도 소희는 못 들은 척 새침하게 침전을 나섰다.
그러지 않으면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을 것이었다.
화장이라니.
간밤서도 소세까지 마치고 침의만 걸친 수수한 모습으로 염휘와 날 새는 줄 모르고 사랑 놀음 한 터였다.
화장하고 패물로 화려하게 꾸며본들, 그에게 매달려 입맞춤을 하던 자신의 모습이 가려질 리 없다.
“귀여워서.”
쪽.
“사랑스럽고.”
쪽.
“사랑스러우니.”
쪽.
“이만 용서해다오.”
불꽃을 닮은 남자의 눈이 한껏 욕심을 담고 뜨겁게 불을 피웠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데가 녹아내리는 듯, 기묘한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도 벅찼던 밤이었다.
“…….”
소희는 가만히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꾹 눌렀다.
그럴 리 없건만 지금도 그의 시선이 닿아있는 듯 입술 끝이 아릿하다.
이래서야 화장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붉은 연지를 바르면, 그를 바라는 제 엉큼함이 티가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절대 안 될 소리였다.
“남세스럽기도 하지.”
이 와중에도 그저 설레다니, 참으로 고약하기도 하지.
소희는 빨개진 두 뺨을 들키지 않으려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염휘는 아침서 아수라의 귀환을 보고 받고, 올라온 상소를 보던 중이었다.
이름 없는 강을 따라 내려오는 반나절 내내 뱃전에 앉아 썼을 상소를 벌써 네 번째 읽고 있었다.
아수라가 올린 글은 근심거리로 가득했다.
변이를 마친 다 자란 요괴와, 감재사자의 사실상의 몰살.
이러다가는 하계로 영을 넘겨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아…….”
염휘는 절로 골치가 아팠다.
소희가 귀문의 별이 되어준들, 앞으로도 버텨야 할 날이 남아있었다.
당장에 시급한 문제들이 앞을 다퉈 그를 기다렸으나 해결할 방도가 없어서 막막했다.
그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긴 손가락이 찌푸려진 미간을 덮고 근심에 찬 시선을 가렸다.
‘급한 대로 달 씨앗 몇을 급하게 깨워서 일단…….’
생각을 정리하던 염휘를 깨운 건 작은 발자국 소리.
비단신이 돌바닥을 스치는 아주 작은 소리가 대전 밖 회랑에서 울렸다.
그것은 이곳에서 울릴 리 없는 소리였다.
그의 짐작이 맞는다면, 저 발걸음의 주인은.
“염휘시여, 소희님께서 오셨사옵니다.”
“……아하.”
뜻밖이라 더욱 반가웠다.
염휘는 조금 전까지 근심하던 것도 잊고 만면 가득 미소를 물고는 소희를 맞으려 몸을 일으켰다.
“모시거라.”
성큼성큼 내밀어지는 남자의 긴 걸음이 급한 마음만큼이나 거침없었다.
대전이 문이 열림과 동시에 염휘가 손을 뻗을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다.
“어서 와요.”
무슨 일이시냐, 어쩐 일이냐 질문이 떠오를 리 없었다.
간밤같이 고운 분이 항상 그의 마음을 녹이는 미소를 빼물고선 그를 찾아온 것이 중요했을 뿐이었다.
“본궁 숙수 솜씨가 대단하다기에 아침 한 끼 청해보려 왔습니다.”
밤을 새다시피 하고 나온 터라 입맛이 있을 리가 없어 아침 생각이 들지 않았건만.
없던 것은 입맛이 아니라 정인이었나.
소희의 한마디에 갑자기 무척이나 시장해졌다.
“내치지 않으시겠지요?”
저런 미소에 거절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염휘는 ‘환’의 표정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달큼했던 분위기를 기대했던 남자의 얼굴이 진중해진 것은 아침상을 물렀을 때였다.
식후에 올라온 차를 받고는 머뭇거리던 소희에게서 ‘만월의 가루’에 대한 말을 들을 줄 몰랐기에, 염휘의 얼굴은 설핏 굳은 쪽에 가까웠다.
어떻게 알고 오신 것인가.
염휘는 긴장한 표정을 해서는 곁눈으로 찻물을 마시는 소희를 보며 생각했다.
무얼 들으신 것인가.
“만월의 가루라고 했습니까?”
길어진 상념에 빳빳해진 목소리가 조심성 없이 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염휘로썬 소희의 이런 급박한 변화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소희는 영.
사람도 선인도, 더더군다나 귀문의 별도 아닌 그저 영이었다.
생의 좌를 받지도 못했으니 제 몫의 운명도 없고, 불안정하기만 한 영체.
사신의 문을 건너다 바스러지는 영도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 소희는 그 관문이 열리는 것마저 궤를 따르지 않고 있었다.
하계에 매인 영이라 그렇다지만 정도를 벗어난 것은 언제나 위태로운 것.
그를 위시한 염라의 불들이 그녀의 일이라면 벌벌 떨듯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모두 그래서였는데.
달 아이의 여파가 컸던 것일까.
만월의 가루라니.
하지만 소희는 그런 염휘의 걱정도 모르고 그저 생글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네. 도와주실 것이지요?”
당연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애교 있게 말을 늘이는 것은 사랑스러웠으나,
“그렇군, 아수라의 이야기를 들은 겁니까?”
염휘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그렇긴 하지만.”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애매했다.
소희는 방실거리며 웃는 입술로 그를 놀리듯 말을 흐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꼭 그렇지만도 않고……. 글쎄.”
“글쎄라니?”
소희를 이 아침에 대전으로 달려오게 한 것은 아수라가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가 아수라에게 유독 마음을 쓰는 것은 아마도 풍천보다 세심한 녀석이라 마음을 나누기 쉬웠을 것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전 달 마마가 될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제 아이를 지키련다 다짐했고, 방법을 알았으니 미적거릴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염휘는 소희에게서 더 많은 것을 듣길 원했다.
“아수라께서는 염라의 불이시지만, 한편으론 제 벗이기도 합니다.”
“벗이라?”
“이 묘한 동질감을 뭐라고 설명 드리면 좋을까요? 자꾸만 마음이 쓰입니다. 하지만 불측한 것은 절대 아니고…….”
“알아. 압니다.”
꼬치꼬치 캐묻던 것과는 달리 염휘는 담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희가 설명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아수라는 소희의 벗이었다.
비록 첫 만남이 엉망이었다 하더라도, 요괴로부터 그녀의 목숨을 구하고, 말벗을 자처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직인이 생긴 지금도 어쩌면 소희가 지척에서 가장 편하게 기댈 곳은 아수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삼생을 공유한 자가 가지는 일체감이었으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염휘가 굳이 소희를 캐묻다시피 한 것은, 이들의 일체감을 떠보려던 것이었다.
소희는 장차 귀문의 별이 될 이였다.
그런 그녀가 아수라들에게 너무 깊이 물드는 것은 곤란했다.
조금 위험하더라도 아수라의 세 번째 목숨을 다시 거둬드려야 하는 것인가 고민을 했던 것을 소희만 몰랐다.
그 감정을 가늠해 너무 치우쳤다면, 염휘는 서슴없이 소희에게 스민 아수라의 생명을 거둘 참이었다.
그러나 소희는 자신이 달 마마라고 분명히 밝혔고, 아수라를 벗이라 말했으니.
염휘의 염려는 오늘 이대로 묻힐 참이었다.
“도와주세요.”
그러니 저 귀여운 분이 바라는 것을 들려드려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럽시다.”
마침 필요해진 참이었어요.
염휘 역시 아수라를 떠올리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상소를 올리려 들른 그에게서 흘러나오던 역한 비린내.
당장에 아수라의 상처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염라의 세 번째 불을 저렇게 할 수 있는 요괴가 존재한다는 것.
청천의 전을 치룬지 겨우 스무 해.
요괴들이 이렇게나 세를 키운 것은 귀문의 별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
입안이 무척 썼다.
‘이 아이 나자마자 어미를 여의었습니다.’
지금도 귓가를 생생히 울리는 남자의 애원.
청천의 전을 다시 일으켜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닥쳤건만, 이 와중에도 그 날의 결정이 후회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염휘는 불꽃이 이는 홍안을 속눈썹 아래로 감췄다.
“만월의 가루를 만들려면 뜰채랑 은쟁반이 많이 필요하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길로 그것들 모아 죄다 내궁 후원에 가져다 두려고요.”
“무거울 것입니다.”
“어휴. 제가 겨우 은쟁반을 못들만큼 부실해 보이시는 겁니까.”
“열 근짜리 은쟁반이니 어지간한 이도 들기 벅차합니다.”
가늘거리는 팔을 과시하듯 들어 보이던 소희의 팔이 금세 쑥 내려가 버렸다.
“……그것도 도와주세요.”
못 들 것 같습니다.
벌게진 얼굴로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소희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염휘는 후회되지 않았다.
저렇게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이를, 딸로 둔 자의 간청은 마땅한 것이었다.
애끓고 다정해져 두고 눈 못 감을 것이었다.
그에게 내준 십 년도 짧다 할 참이었겠지만, 염휘는 최선을 다했고.
그이 역시 그 십 년을 충실히 썼을 것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라면, 그이가 영혼의 맹약을 깨고 배신한 것 뿐.
그에게 내어준 십 년은. 그녀에게 보장한 근 이십 년의 세월은.
그의 기다림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럼, 본궁 선인을 데리고 가셔서 준비하시겠습니까? 달 뜰 무렵 찾아갈 것입니다.”
“네.”
소희와 함께한 이 며칠이 이토록이나 소중하니, 십 년의 세월이야 일러 무엇하랴.
염휘는 본궁 아이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소희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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