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53화 (53/114)

53. 갈라진 틈 사이 (1)

2018.02.02.

“기도드리고 오시는 길입니까?”

지관은 수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사이에 아우의 얼굴이 죽은 자처럼 퍼렇고 검은 것이 영 좋아 보이지 못했다.

“수관아.”

“네 형님.”

“무슨 일이 있는 게야? 요 며칠 안 보이더니 낯빛이 좋지 못하니 하는 말이다.”

지관은 상냥히 제 동기의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수관은 별것 아닌 지관의 말에 우물쭈물할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제…… 제가 어디가 뭐 어떻다고 그러십니까?”

오히려 목청을 돋우는 것이 수상하기까지 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게냐?”

“일은요. 그저 조금 피곤해서 그렇습니다.”

“아버님께 다녀온다 하지 않았느냐?”

“지금도 막 다녀오는 길입니다.”

이상하게 구는 것이 피곤해서인가.

지관은 오늘따라 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바닷속을 다녀왔다는 수관의 말에 피로에 예민해졌으려니, 하고 넘겼다.

평소 손위 동기라면 끔뻑하고, 언제나 공손하던 녀석이었다.

천관이 예민하고 뾰족하게 굴어도 순하게 예. 형님. 하며 싱글거리던 녀석이다.

그런 막내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대꾸를 할 정도면 얼마나 형편이 안 좋은 것인가.

지관은 검게 죽은 수관의 낯빛을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아니 어찌 몸이 이렇게 상한 것이야? 상천에서 바닷속까지는 그 거리가 말로 이르기 민망할 지경인데.”

“요 근래 좀 자주 다녀와서 그런가 싶습니다.”

수관은 지관이 저를 탓하지 않고 그저 덤덤히 안부를 챙기자 그제야 날 선 태도를 버렸다.

“자주?”

무심한 지관의 말에 수관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하지만, 소매 속에서 뭔가를 찾느라 여념이 없던 지관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아버님께서는 안녕하시더냐?”

“……뭐, 언제나 강건하신 분 아니십니까?”

“하기사, 이리 보아하니 아버님이 아니라 수관, 네 걱정을 해야겠구나.”

“제가 뭐 어떻다고 자꾸 그러십니까.”

“면경에 좀 비춰보련? 다 죽어가는 안색이라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지관은 툴툴거리는 수관을 야물게 꾸짖었다.

“항시 관리 하여야지. 그래야 태자께서 쓰시고저 할 때 보탬이 되는 것이다.”

“이미…….”

“응?”

이미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이미 이 한 몸 바스러질 때까지 쓰였습니다.

수관은 하지 못하는 말을 가만히 누르며, 아무것도 모르는 지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미……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너무 염려 마세요.”

사실 수관은 이미 바다의 제일 밑바닥까지 몇 차례 다녀온 탓에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온몸이 짜부라질 것 같은 수압을 견디며 바다 밑바닥을 헤집고 있자면, 찰나의 단위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그를 잠식했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고통을 견딘 것은 바로 그가 수관대제였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삼관대제인, 자신의 형인 천관과 지관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은밀한 지시라 혼자 삭이고는 있지만, 태자에 대한 충정을 오해받는 것은 사양이었다.

그의 간장은 어마어마한 압력에 눌려 두 동강이 났다.

심근육도 벌써 두엇 찢어졌고, 매 맥박마다 칼로 찌르는 고통이 타고 올랐다.

숨 한번, 말 한마디가 편할 리 없었다.

당장 까무러쳐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었건만, 지관은 그것도 모른 채 자신을 나무라니 수관은 자꾸만 심술 맞은 목청이 터지려고 했다.

그래서, 최대한 애를 쓴 것이 바로 저것이었다.

“저도 태자의 삼관대제입니다. 형님.”

아무것도 모르는 지관대제, 자신의 둘째 형님에게 수관이 하는 최선의 항명이었다.

까맣게 죽은 낯빛으로 죽을힘을 다해 애썼다고 말했다.

“어머나, 너만 놀러 온 것이니?”

소희의 놀란 목소리가 침전을 작게 울렸다.

저녁상 물리고 막 침의로 갈아입은 참이었다.

해가 잦아들고, 아직 달도 안 뜬 이른 시간이었지만 짐작키에 아무래도 내일서부터는 직인이 다시 찾아올 것이었다.

그래서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며 잠자리를 일찍 마련한 것인데.

침상에 눕자마자 들창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에 일어나고 말았다.

들창을 여니 포르르 날아드는 것은 눈에 익은 귀한 새. 소청조.

소청조는 그 사이 살이 잔뜩 올라 통통해져 그 모습이 훨씬 귀여워졌다.

까만 머루 같은 눈알을 연심 끔뻑거리며 작게 구륵거리고 우는 모습이 참 반갑다.

“비 온다고 집안에만 있었겠구나.”

소희는 새의 머리를 살살 쓸어주며 낮게 웃었다.

요것도 비 오는 날 나가놀지 못하고 맛난 것만 먹은 것이 틀림없었다.

직인의 손위에서 요것조것 받아먹었을 모습을 생각하니 그 모습이 퍽 귀여워 저도 모르게 자꾸 미소가 배싯 새고 만다.

“나도 궁에만 있었단다. 그뿐이니? 환이 와준 덕에 저녁상 물리고 그 밤서 맛난 것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단다.”

이러다 살집이 두툼해져 못난이가 될 것이다.

소희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새에게 열심히 푸념을 했다.

“넌 살을 찌우면 귀엽기라도 하지, 난 그저 돼지같이 미련해 보일 테니 이 얼마나 근심이니.”

꾸르륵.

새는 무슨 말이라도 하듯 소희를 향해 작은 울음소릴 멈추지 않았다.

“그래, 이 밤서 무슨 일이라니?”

꾸르륵

“내일 오신다 미리 전갈을 보내신 것이야?”

소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새를 데리고 자상하게 말을 이었다.

비 오는 이틀 내내 뵙지 못한 탓에 직인의 소식이 궁금하던 차였다.

매일 이른 아침 찾아오시는 통에 피곤하더니 한 이틀을 내도록 늦게까지 자고 나니 그새 기운이 났다.

그러니 직인이 마냥 그립고, 궁금해 저도 모르게 새를 두고 조르고 있었다.

“내일 오신다 너를 보내신 것이야?”

“그런 거면 서신을 매달아 보내셨을 텐데?”

등 뒤에서 울리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는 당연하게도 환이었다.

소리 없이 다니는 그에게 익숙해지자 다짐했건만, 이렇게 다른데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가 문득 그의 목소리가 들리면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만다.

싫진 않지만, 놀랍긴 하다.

소희는 등 뒤에서 저를 감싸 안는 환의 단단한 팔을 느끼며 작게 투덜거렸다.

‘들어오실 때 인기척이라도 내주시던가.’

하지만 환이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부질없는 소리였다.

“그런데, 소리 없이 뒤에서 나타나는 건 그만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리고 자다가 눈떴을 때도 너무 당연하게 옆에 계시니 참으로 민망합니다.”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니, 그대가 적응하는 게 좋겠어.”

“놀란다질 않습니까.”

“어쩔 수 없어. 난 귀왕의 첫걸음부터가 그러했는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청천의 전에 즉위했다 하잖았어. 전시에 발걸음 소릴 퉁퉁거리고 내는 건 날 죽여 달라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지.”

“…….”

차마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귀왕의 첫걸음마저 기척을 지워야 했었을 그의 참담함이 가늠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배부른 투정이야 일러 무엇하랴.

소희는 환의 말처럼 그저 참아야 했다.

하지만, 아직 답을 들을 수 있는 게 남아있었다.

“발걸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고 있는 침상에 들어오시는 건……!”

“그것도 어쩔 수가 없지.”

“어째서요. 저희는 아직 혼례……!”

“그대가 이토록 사랑스러우니 불가항력인 것을.”

그런 뻔뻔한 소릴 태연하게도 읊조렸지만 이번에도 소희는 화를 낼 수 없었다.

환이 웃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행복해보여 차마 그러지 말라 다시 말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이어지는 기억 끝에 맞닿은 남자의 온기가 그녀를 다시 현실로 불러들였다.

“어휴.”

나오느니 행복한 한숨이었다.

“그대 토라지지 마시고 이것 좀 받아두어.”

환의 손이 소희의 손을 감싸 쥐고는 새의 부리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직인이 이렇게 섬세한 자였던가.”

등 뒤에서 바짝 끌어안고 소희의 어깨에 당연하게 턱을 괸 환의 목소리가 의아하게 울렸다.

“왜요?”

“글쎄, 복숭아꽃이잖아.”

내밀어진 소희의 손바닥에 소청조가 토해놓은 것은 입안에 머금고 온 삼천외의 복숭아꽃.

이미 환이 가져다준 천도 가지가 있는데도, 그 정성이 고마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소청조의 뱃속에서 잔뜩 물이 들어 시퍼레진 꽃 한 송이가 소희의 손바닥 위에 놓였다.

툭-.

꽃잎 끝에 물린 검푸른 물이 툭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눈을 의심할 만큼 순식간에 손바닥에 스며들어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기분 나쁜 느낌.

소희는 삽시간에 온몸에 소름이 돋고, 불안감이 솟아나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평온했던 마음에 파랑이 일고, 심박이 불규칙적으로 뛰었다.

“뭐지?”

환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가 쥐고 있던 소희의 손을 그대로 뒤로 물렸지만 소청조는 그 자리에서 날개를 퍼덕거릴 뿐이었다.

환은 조금 전을 기점으로 이방의 공기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소……청조가 돌아가려나 봅니다.”

어딘지 모르게 굳은 소희의 목소리도.

평상시보다 몸집이 커진 소청조도.

이 밤 갑자기 흐르는 걸 멈춘 밤바람까지.

무언가 단번에 모든 것을 비틀어 버렸다.

구륵.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 같던 새는 날갯짓을 멈추고 낮게 울었다.

유리알 같은 까만 눈을 깜빡거리며, 제 눈앞에 있는 사람들 보고 있었다.

“어머. 이거?”

놀란 소희의 목소리가 갸웃거리는 새의 작은 머리통을 보던 환의 귀를 두드렸다.

“꽃이 하얘졌어요. 어떻게 된 거지. 제 손에도 묻은 자국이 없는데.”

소희는 환에게 잡혔던 손을 빼 그에게 하얗고 작은 자신의 손바닥을 펴서 보여주었다.

푸릇하게 물든 복숭아꽃이 다시 희어질 정도면, 거기에 묻은 것이 전부 어디로 간 걸까.

환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얀 손바닥에 시선을 가져다 댔다.

머리 뒤끝이 잡아당기는 느낌.

분명 좋지 않은 징조라는 것이 확신처럼 들었다.

푸드덕.

막, 환이 안력을 돋워 소희의 손바닥을 보려는 순간.

소청조가 크게 홰를 치며 그대로 창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달빛을 받으며 나는 새의 날개가 눈이 시리도록 파래,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환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

“어머나, 오늘은 인사도 없이 가버리네.”

“그대, 소청조가 자주 놀러 오나 보지?”

“으음?”

환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소희가 자신을 보고 멈칫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평온한 안색은 그대로였지만, 무언가 아주 미묘하게 틀어져 있었다.

“음, 아뇨. 보통은 직인께서 데리고 계시니 혼자 온 건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소희는 단정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손바닥 위에 놓인 꽃을 집어 들어 코끝에 가져다 댔다.

마치 어색함을 무마하려는 듯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그래?”

“……음 향기 좋다.”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 듯 갑자기 달큰한 복숭아꽃 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향을 따라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고, 어딘지 이상했던 분위기도 단번에 사라졌다.

얇은 막이 덧씌워 진 것 같은 세상이 단번에 명료해졌다.

“…….”

환은 작은 꽃송이 하나를 들고, 기쁜 듯 미소 짓는 소희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 찜찜한 것에 대해 생각하려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떻습니까?”

소희가 향을 맡던 꽃을 그대로 귓가에 꽂으며 고개를 외로 꼬았던 것이다.

꽃이 꽂힌 귀 끝이 새빨갰다.

어리광부리는 소희가 수줍어하는 모습은 생각보다, 아니 그 이상으로 사랑스러웠다.

“……흐음…….”

이런 상황에서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환은 자꾸만 씰룩이는 입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끝내 웃고 말았다.

“곱구나.”

“참입니까?”

“팔천 년에 한번 피우는 꽃인데, 곱지 않을 리 있겠어.”

“예에?”

웃음기 어린 환의 말에, 잔뜩 수줍어진 채 뒷말을 기다리던 소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농이니라.”

“정말 짓궂어!”

토라진 듯 돌리는 고개 끝에 달아오른 뺨까지도 사랑스러우니,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달빛을 타고 흐르는 밤공기에 진득히 배어나는 달콤한 향에.

눈 멀고.

귀 막아.

오로지 마음 가득 그녀만을 빼곡히 담을 뿐이었다.

“농이래도. 짐의 눈에 가장 어여쁜 것이야. 그대밖에 더 있겠는가.”

뒤늦게 토라진 소희를 달래본다 하지만, 환의 마음을 얻어보려 작정하고 입을 뗀 그녀가 이 부끄러움을 쉽게 떨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시원한 달빛이 그새 뜨끈하게 달궈질 때까지 실랑이가 이어지고 말았다.

“계속 이러실 것이야?”

“제가 무얼 어쨌다고……!”

환을 피해 요리조리 침방 안을 돌아다니던 소희가 뒷걸음질에 침상이 닿았나 싶더니 그대로 넘어갔다.

소리도 없이 쓰러지는 몸을 받아낸 이불은 폭신했고. 뒷머리를 감싼 환의 손은 크고 듬직했다.

이제 좀 식었나 했던 뺨이 대번에 달아올랐다.

“괜찮으신……!”

“괜찮습니다.”

시선을 돌린다 한들 따라붙은 시선까진 어쩔 수 없었다.

야릇하게 불붙은 붉은 시선이 집요하게 소희를 쫒았다.

“장난이래두.”

“압니다.”

“그런데 어째서 아직까지 토라진 게야?”

“……워서요.”

“뭐어?”

소희의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밤바람보다 가늘어 들리지 않았다.

환이 고개를 조금 더 숙이자 어깨 위에 있던 그의 은발이 물결치듯 흘러내렸다.

그 모습이 환의 양팔 아래에 있는 소희가 마치 은의 장막에 갇힌 듯 보였다.

“뭐라고?”

장난스러운 목소리였지만 눈빛은 한껏 욕심에 달아올라 있었다.

“부끄러워서요.”

이번에야 제대로 된 소희의 말이 들렸지만, 환은 그대로 몸을 내렸다.

그의 단단한 가슴에 말랑한 살이 뭉개지고, 뒷머리를 받치던 손이 자연스럽게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닥을 짚고 있던 다른 손이 어느샌가 소희의 턱 끝을 잡고.

말캉한 붉은 살에 그의 입술이 스치듯 닿은 것까지.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쪽.

맞닿은 붉은 눈동자가 깜빡거리지도 않고 지그시 소희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흡!”

뒤늦게야 소희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들어 올려 입을 가리려 했지만, 그보다는 환이 빨랐다.

바동거리는 손을 그저 몸으로 지그시 누르는 것으로 소희는 완벽히 제압되었다.

“왜…… 왜…….”

“어여뻐서.”

쪽.

환은 숫제 능글거렸다.

온 얼굴이 발그레해져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소희에게 당당하게 입맞춤을 했다.

“이건 좀.”

“귀여워서.”

쪽.

“사랑스럽고.”

쪽.

“사랑스러우니.”

쪽.

“이만 용서해다오.”

이즈음해서 소희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부끄럽고 얼떠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도 바빴다.

“아무렴 그까짓 꽃이 그대보다 고우려구.”

안 그래?

은근한 남자의 목소리가 열기를 실어 귓가를 진득히 울렸다.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쩐지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가 자신을 너무나도 벅차게 사랑해주고 있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행복하고, 딱 그만큼의 깊이로 서러웠다.

이럴 것을.

긴긴 시간 돌아 돌아 온 것인가.

봄비가 내리듯 쉴 새 없이 온 얼굴에 떨어지는 꽃 같은 입맞춤에 정신없이 쓸려가면서도 행복하고 서러워 저도 모르게 눈가가 시큰해졌다.

꼼질꼼질 움직여 환에게 눌린 손을 기어코 빼낸 소희의 손이 재빠르게 위로 올라왔다.

“!”

그리고는 환이 잡아채기도 전 황금빛 열기를 머금은 그의 눈을 두 손으로 가렸다.

가볍게 포개진 두 손이 얌전하게도 그의 두 눈두덩에 올라앉았다.

“이…….”

쪽.

그리고 이번에도 환이 한발 늦고 말았다.

이게 뭐하는 거냐 물으려던 그의 입술에 나비가 날아들 듯 촉촉하고 보드라운 것이 사뿐 닿았다 떨어졌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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