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붉은 하늘에 뜨는 별 (6)
2018.01.26.
비가 그치고 다시 뜨겁게 달궈진 열풍이 귀문을 데우기 시작했다.
감재사자는 해가 잘 드는 곳에 뉘어진 아수라 곁에 앉아 느긋하게 해를 쬐고 있었다.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는 아수라는 지금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정확히는 몸을 비워두고 염라궁에 가 계실 터였다.
해를 받고 희게 빛을 뿜는 아수라는 얌전한 생김새와는 달리 흉포한 검위를 가지고 있었다.
밤의 아수라와는 확연히 다른 존재감은 그의 선량한 미소에 가려져 있었을 뿐,
그의 본질은.
피에 새겨져 흐르는 것은.
아수라.
전장의 사신이었다.
희고 곧게 뻗은 마른 손가락이 묵빛 접선을 가볍게 털어내는 모습을 감재사자는 잊을 수 없었다.
성의 없이 터는 손목을 따라 낭창하게 뻗어나는 검.
암흑에서 떠온 듯한 온기 없는 어둠이 자신도 모르게 망막에 새겨졌다.
‘뒤로 물러나 있거라.’
요괴가 보이면, 숨 쉬듯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었다.
상냥한 생김만큼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은 밤과 낮의 두 아수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감재사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서러운 울음소리에 귀 기울여주던 밤의 아수라보다 이상하게 낮의 아수라에게 마음이 쓰였다.
아수라께서 안다면 놀랄 이 불경한 마음을 자신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압도적인 무위의 차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낮의 아수라는 어딘가 모르게 위태로웠다.
눈앞에 있으나, 곧 햇살아래 바스러질 것 같은 아련함을 매순간 느끼게 했다.
“……거참.”
자신을 길러낸 것은 낮의 아수라.
그러나 눈앞의 이 사내는 아니었다.
감재사자 알던 낮의 아수라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훨씬 다부지고 사내다운, 그야말로 호쾌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이였다.
그에게 검술을 사사 받고, 건네주는 감재사자복에 호승심으로 한껏 들떴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저를 키워준 아수라는 이미 그 대를 물려주었고, 돌아온 자신의 웃전은, 아니 사신의 왕은 한없이 위태로워 보였다.
핏기도 없이 푸른 정맥이 그대로 비쳐 보일 것 같은 투명한 피부가 주는 느낌만은 아니었다.
감재사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수라의 이 아스라함과 아슬아슬한 위태로움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한없이 강하고 우러러 따라야 할 사신의 왕 아닌가.
감재사자는 감히 아수라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평하는 제 머리를 뻑. 소리가 나도록 매섭게 후려졌다.
자고로 분수를 모르는 것들은 한 번씩 맞아야 제정신이 나는 법이었다.
“아이코…….”
눈물이 핑 돌도록 사정없이 내려졌건만, 눈물로 얼룩진 시선 끝에 잡혀든 아수라는 여전히 그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이 미친놈이. 정말.”
감재사자는 자꾸만 스멀스멀 차오르는 기분 나쁜 느낌을 떨치려 소리 내 욕을 했다.
아수라께서 아스라하다니.
아수라께서 위태롭다니.
이 경을 칠 놈.
보드라운 어둠조차 살갗을 발라낼 것 같이 사납게 느끼던 그 밤.
위태로운 건 자신이었건만.
그 위험 속에서 요괴 무리를 한데 모아 밤새 칼을 휘두르던 아수라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
밤 내내 그리고 해가 걸린 낮 동안을 쉬지 않고 요괴를 쳐내던 그를 보고 감히.
감재사자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는 어처구니없어하고 있었지만 가슴 한구석은 못 견디게 쑤석거렸다.
“그러니까요, 만월의 가루를 좀 바르시자고요.”
아수라의 등줄기에 깊은 상흔을 남긴 요괴의 손톱자국.
크게 티는 나지 않지만 지금도 착실히 나아가는 중일 것이다.
아수라께서 어째서 만월의 가루를 거절하시는지 그 속내야 뻔했다.
상냥한 사신의 왕.
그는 자신이 귀문에서 몸을 빼는 순간 이 척박한 곳에서 홀로 버텨야 할 감재사자, 그를 위해 만월의 가루를 뺏지 않으려 함이다.
불룩해지도록 꽉 채운 가죽주머니는 어느새 거의 비어있었다.
저를 생각하면 만월의 가루는 목숨처럼 다뤄야 할 소중한 것이었다.
아수라의 결정은 타당했다.
하지만, 감재사자는 이상하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몰래 뿌려버릴까.’
이렇게 자릴 비우셨을 때.
감재사자의 눈이 반짝였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지.’
감재사자는 아수라의 검에 재가 되어버린 동료였던 이를 떠올렸다.
요괴에게 잡아먹혀 요괴의 일부가 된.
결국은 자신들의 왕에게 그 끝을 허락해야 했던 그들에게도 만월의 가루는 있었다.
알뜰하고 계획적이던 ‘함’은 가죽주머니가 제법 불룩했었다.
어지간해선 쓰지 않고 참았던 탓이었다.
요괴에게 잡아먹힐 줄도 모르고 만월의 가루가 목숨인 양 아꼈다.
감재사자 넷 중 만월의 가루를 제일 많이 쓴 건 바로 자신이었다.
그러나 결국 살아남은 건 자신.
죽겠거니 하던 순간에 자신을 살린 건 만월의 가루가 아니라 아수라였다.
그러니 이번에도 한번, 하늘의 뜻에 이 목숨을 맡겨볼까.
감재사자는 소매춤에 넣어놓은 주머니를 꺼냈다.
아수라께서 가신 지 오래지 않았으니 아마 한참을 더 있어야 할 것이다.
꿀꺽-.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건만 괜히 목이 탄다.
죄짓는 것도 아니건만 어째서 손이 떨리는 것이냐.
감재사자는 아수라 쪽으로 뻗는 자신의 손이 형편없이 떨리는 것을 지켜보며 입안으로 욕을 삼켰다.
해가 잘 드는 명도, 그 가운데에 반듯하게 누운 아수라를 감재사자가 양손으로 붙들었다.
어깨춤을 잡고 나서야 단단히 여며진 도포에 찔끔하고 말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것.
감재사자는 겹겹이 껴입혀진 아수라의 상의를 차분하고 빠르게 풀었다.
꿀꺽.
수시로 굵은 침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드디어 걸치고 있는 모든 상의를 느슨하게 젖히는 데 성공하고 나자 잔 근육으로 섬세히 짜인 남자의 모습이 햇살 아래 드러났다.
이미 감재사자의 손은 땀으로 흥건히 젖은 상태였다.
벌벌 떨리는 손이 가죽 주머니의 끈을 풀려고 애썼다.
하지만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만월의 가루를 담은 주머니가 쉽게 열릴 리도 만무하고 긴장감에 떠는 손이 거짓말처럼 멎을 리도 없었다.
뚝뚝
뚝
아예 턱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보란 듯이 흘러내렸다.
“제길.”
못된 짓을 저지르는 놈들은 간이 얼마나 큰 것이냐.
도대체 만월의 가루 하나 뿌리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떨리는 것을.
악인은 정녕 지옥불이 딱이로구나.
감재사자는 떨리는 제 손을 스스로 딱하게 여기며 격려했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드디어 가죽주머니를 야무지게 묶은 끈이 풀리자, 감재사자는 지체 없이 힘없이 늘어진 아수라의 몸을 옆으로 돌렸다.
“!”
햇살 아래 상처는 생각보다 더 지독했다.
몸이 두 동강 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패인 상처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요괴의 독이란 건 스스로의 영력으로 태우는 것이니 이것은 아물 상처였다.
그러나 아수라의 몸에 이 정도로 상흔을 낼 정도라면 그 요괴의 독도 만만찮을 것이다.
감재사자는 자신의 기분 나쁜 감각이 무엇인지 이제야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게 주머니를 상처에 가져다 댔다.
자신의 왕은 움직일 수 없는 몸을 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최소한 저 정도의 부상이라면, 만월의 가루를 밀어내서는 안 됐다.
매일같이 검을 들고 요괴를 쓸어내는 사자라면.
사자의 왕이 이래서는 안 됐다.
벌벌 떨리는 손에 담긴 것이 어떤 감정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했다.
만월을 가루는 지금.
바로.
여기서 다 쓰여야 했다.
볼썽사나울 정도로 떨리는 그의 손이 아수라의 등에 가루를 쏟아붓기 직전이었다.
얼음보다 차가운 목소리가 그를 얼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감겨있던 눈이 어느샌가 뜨여 검붉은 열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히익!”
가뜩이나 긴장에 손을 떨던 감재사자가 주머니를 놓친 건 너무도 당연했다.
그의 손에서 떨어진 주머니는 아수라의 어깨를 치고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만월의 가루가 아수라의 어깨에서 등으로 쏟아지자 가루가 들이친 상처부위가 순식간에 메꾸어지고 매끈한 새살이 돋아났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부.
한자가 넘게 그어진 상처에 아문 것은 반 뼘도 되지 않았다.
아수라는 순식간에 몸을 일으키며 흐트러진 옷을 제대로 갖춰 입었다.
허리띠를 두 손으로 잡고 쭉 당기자 주름이 하나도 없는 그의 차림새가 완성되었다.
아수라는 아직도 명도 위에 엎드리다시피 한 채로 벌벌 떠는 감재사자를 향해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감히.”
“죄, 죄송합니다.”
“너를 믿고, 비웠건만.”
아수라는 검붉은 눈빛을 터트리며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감재사자를 한참을 내려다 보다 길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들끓는 영력을 갈무리했다.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소희를 아수라전 결계 안으로 보내주기 전엔 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한번 요괴를 만났던 그녀였고, 수시로 요동치는 소희의 감정을 뻔히 아는 그였다.
언제 다시 요괴가 태어나도 이상치 않았다.
감재사자가 해를 끼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옷이 벗겨지는 것은 괴이했다.
그래서 풍천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돌아온 것인데.
요 앙큼한 녀석이 이런 짓을 저지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발치에 텅 빈 채로 나뒹구는 주머니를 보자 다시 한번 헛숨이 터졌다.
귀문은 거의 정리가 되었다.
늦어도 내일쯤엔 염라궁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돌아가는 건 아수라, 자신뿐.
감재사자 저 녀석은 홀로 남아 귀문을 지켜야 했다.
그런데 감정에 들떠 만월의 가루를 모두 퍼부어 버리다니.
“이런 멍청한 녀석을 어쩌면 좋겠느냐.”
“용서……해주십시오.”
“내가 너를 용서하면, 만월의 가루가 다시 나온다더냐?”
아수라의 음성은 일말의 온기도 없이 무정하게 울렸다.
그러나 저를 위함임을 마냥 모른 척 할 수도 없었다.
결국, 가볍게 혀를 차며 화를 풀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내가 널 어쩌면 좋겠느냐.”
아수라는 욱신거리는 등허리의 통증을 견디며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 남겨진 감재사자가 가만히 엎드린 그대로 불규칙한 숨을 잇는 것을 느꼈다.
미련한 것.
눈치껏 쫓아와야 한단 말이지.
하기사, 저렇게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니 요괴에게 마음을 뺏기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겠지만.
“어서 안 오고 뭐 하느냐.”
이번에도 또 손을 내밀 수밖에.
아수라는 등 뒤에서 울리는 다급한 발걸음에 웃음도 한숨도 아닌 작은 소릴 내뱉었다.
거의 정리가 되었다지만, 이제 무방비하게 혼자 남겨질 수라전의 아이를, ‘사신’을 오래 두고 보려면 자신이 한 번이라도 더 움직이는 것이 이로웠다.
요괴에게 내주기엔 미안할 정도로 우직한 인사니 자신이 거둘 수밖에.
그러니 오늘까지.
밤이 지새고 첫새벽을 맞이하기 전까지 한 마리라도 더 줄여 놓아야 했다.
“빨리 오너라.”
바쁘단다.
비가 오지 않는 날임에도 직인은 놀러오지 않았다.
그 덕에 소희는 아수라전을 찾아가 달 아이를 만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돌아올 수 있었다.
첫새벽부터 서둘러 일어나지 않고 푹 잘 자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몹시 상쾌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으셨어?”
점심상을 받아 놓고 저도 모르게 웃었던 모양인지 맞은편의 환이 자못 궁금해했다.
“달 아이에게 다녀왔는데……. 참, 얼마나 늠름하게 자랐는지 아십니까?”
소희는 환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목청을 돋웠다.
“그러셨군?”
“조반 물리자마자 아수라께서 찾아오셔서.”
“아수라가?”
아수라의 이야기는 환도 금시초문인 눈치였다.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뱉은 말이었고, 딱히 숨겨야 할 이유도 없어서 소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아이가 아수라전에 있다는 말과 함께, 다 자란 아이를 보러 가자셨어요.”
“그 아이는 사신이 될 테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환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아이의 미래를 예견했다.
놀라는 소희에게 그는 느긋하게 뜨끈한 국을 한 모금 삼키며 여유로운 목소리를 냈다.
“그대, 그 아이는 짐의 기운을 받았어.”
“그렇지요. 직접 키워내신 것을 보았어요.”
환의 손가락을 타고 피어오르던 황금빛 아지랑이를 잊은 것이 아니었다.
그 신묘한 광경이 잊혀질리 없었다.
하지만, 그거랑 사자가 무슨 상관이람.
소희는 젓가락을 물고선 곰곰이 생각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런 소희의 마음이야 뻔하다는 듯 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대, 짐이 직접 키웠다는 것을 모르시는군.”
“아니에요. 직접 보기도 했는데 제가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아니, 그대는 몰라.”
왕이 직접 키웠다는 의미를.
환은 그 말을 마치고선 빙그레 웃었다.
“본래 달 아이는 혼례를 올린 귀문의 별이 만든 씨앗에서 태어나. 삼칠일을 달빛을 쬐기만 하면.”
“달빛을요?”
“그럼. 그 수많은 달 아이를 어떻게 직접 키우겠어? 늘 말하지만 짐은 굉장히 바쁘다고.”
이어지는 환의 말은 소희를 놀라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삼칠일 간 씨앗에 쏟아질 월력에 준하는 영력을 염라대왕인 그가 직접 나누어 준 것이 바로 그들의 첫아이였다.
“그리고 그대는 모르셨겠지만, 하계의 모든 선인은 전투가 가능한 전사이지.”
“전사라구요?”
“그렇지. 태자는 상제가 될 터이니 논외로 하고, 상천의 모든 이는 검을 쓰지 않아. 아니 못해.”
“그럼 어째서…… 아! 요괴?”
어째서 하계의 선인들만 모두 전투가 가능한 것인지를 묻던 소희는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이유를 떠올렸다.
“맞아. 일전에 설명 드린 것을 잘 기억하셨어.”
환은 이제 대충은 이해하는 소희를 대견하다는 듯 바라봐주었다.
“하계의 선인들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검을 잡게 되어있어, 그중 짐은 염라의 첫 번째 불. 무력으로 치면 으뜸입니다.”
“정말이십니까?”
조각 같은 얼굴을 해서는 빙글빙글 웃기만 하는 남자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소희는 고민했다.
그러나 요괴를 단번에 쳐내던 아수라와. 먹구름 같은 기세를 피워내는 풍천.
이들이 모두 염휘의 아랫좌의 장수임을 떠올리고는 가까스로 이해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러려니 하고 억지로.
환의 호리호리한 몸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런 내 기운을 받고 자란 아이니, 사신은 당연하지. 감재사자가 될 것이야.”
환은 너무도 당연한 목소리로 아이의 미래를 점지했다.
아이가 들떠서 말하던 모든 것과 환이 예견하던 것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소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의 전투를 슬쩍 상상하다 머리를 털었다.
아무래도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소희에게 환은 언제나 능글맞거나, 혹은 다정한 남자였지 검을 휘두르는 쪽은 아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납득과는 별개로 그들의 첫 아이가 그의 기운을 내려받아 앞으로 고강한 무위를 지니게 되었다니 그건 축하할만한 일이었다.
왕의 기운을 타고 났다니, 혹시 그럼.
“그 아이, 염라의 불은…….”
“못돼.”
혹시나 하고 물어본 말은 가차 없이 잘렸다.
여지를 남기지도 않는 단호한 말에 살짝 서운해지려던 차, 환의 이야기가 변명같이 따라붙었다.
“염라의 불은 세습되는 것이라 어쩔 수 없어.”
“다른 방법은…….”
“없어. 모두 전대의 죽음과 탄생이 맞물리거든.”
덤덤한 그의 말에, 잊고 있던 아수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엉클어진 것은 운명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체감할 뿐이다.
소희는 이번에도 환의 말에 잊혀진 기억의 한 조각을 찾았다.
‘선대의 핏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수라의 말이 유난히 귀를 울렸다.
“이러다 국이 다 식겠습니다. 우선 드세요. 제가 공연한 소릴 했어요.”
소희는 문득 울적해져서 얼른 말을 돌렸다.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