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붉은 하늘에 뜨는 별 (3)
2018.01.15.
앙앙거리던 아이를 달래고, 늦은 조반을 받고. 찻잔을 나누도록 비는 멈추지 않았다.
“이곳에도 장마가 있습니까?”
소희는 문득 창밖을 보다 생각난 듯 물었다.
환은 그녀의 말에 새삼스레 비 내리는 창밖을 보다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그렇겠지요?”
이곳에서의 비는 계절이 가지는 의미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필요에 불려온 것뿐이었다.
“음. 마고께서 부르시지 않았다면 삼천외 누군가가 불렀을 것이다.”
“아…… 역시.”
“그렇지?”
낮게 울리는 목소리를 따라 쪼르륵- 찻물이 떨어지는 맑은소리가 뒤를 이었다.
소희는 빈 자기잔이 붉게 물들어 차오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감탄했다.
“이곳은, 찻물 색이 참 예쁩니다.”
“이곳은…… 그대가 살 곳이니. 잘되지 않았나?”
‘이곳’이라고 선을 그어 거릴 두는 소희의 말에 환이 가볍게 응수했다.
“……실언했습니다.”
“아니야. 며칠 만에 익숙해지라 강요하는 내가 너무 성급한 것이지. 하지만 사과하지는 않을 셈이야.”
“…….”
환은 붉은 찻물을 머금어 향을 즐기며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는 말이 없었다.
그는 변했다.
이 짧은 사이 얼마나 많은 모습을 봐왔는지 종 잡히지 않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환은 뭔가 결심을 한 것 같았다.
분노하고, 몰아세우고.
뒤로 물러서던 그 모든 모습을 거친 후.
서왕모께 다녀오던 날.
꽃가지를 건네주던 그날 밤 이후 그는 변했다.
아이 때문인 걸까.
“향이 그만이군?”
환이 머금었던 붉은 찻물을 삼키며 가볍게 콧소리를 냈다.
찻잔을 기울이는 그의 모습은 붓으로 그려낸 것 같은 모습이었다.
등 뒤로 늘어진 은사 같은 그의 머리칼이 빗속에 녹아들 듯 아름다웠다.
향을 칭찬하는 그의 말에 문득 이제는 항시 이 내궁을 가득 메우고 있는 도화향이 떠올랐다. 매일 매 순간을 함께 하는 그 향이 이제 너무 익숙해져 느껴지지도 않았다.
신경을 집중해서 그 향을 찾자 이내 청량하고 달큰한 것이 코끝을 맴돌았다.
“시들지도 않고, 향이 늘 같이 퍼져나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소희는 손으로 턱을 괴고는 환의 뒤로 보이는 복숭아 꽃가지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아아…….”
소희의 시선을 따라 몸을 돌린 환이 눈 끝에 걸려든 복숭아 가지를 보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신다니 잘됐지.”
그 말을 하며 환은 흘끔 소희를 바라보았다.
소희는 모를 정도로 아주 잠시 스치는 시선이었다.
“걸어 놓으니 어떠셨나?”
여상한 말투로 지나가듯 복숭아 가지에 대해 물었다.
“영험한지 어쩐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이곳이야 조용한 곳이라.”
소희의 대답은 두루뭉술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수라를 닮은 요괴가 그가 만든 진을 찢고 들어서려 발버둥을 치고, 불길한 푸른 실타래에 묶인 그녀 자신과, 한쪽 눈을 내어준 풍천의 일이 바로 얼마 전이었다.
조용하다는 그녀의 말에 그녀가 대범한 것인지, 자신이 과민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를 걱정시키지 않으려 한 말이었겠지만, 입가에 번지는 고소까지야 막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도 그러면 좋겠어. 잔잔히. 늘 조용히.”
“아니, 그러진 못할 겁니다.”
환이 저도 모르게 간절함을 담아 소원처럼 읊조렸다.
하지만 소희는 그런 환의 간절함도 모르고 냉큼 그의 말을 자르며 부인했다.
“어째서?”
환의 한쪽 눈썹이 하늘로 솟으며, 미간에 실금이 그였다.
설마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진 것인가.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희의 말에는 헛바람이 빠지듯 솟은 눈썹이 늘어지고 말았다.
“얼마 전 만든 씨앗이 대체 몇입니까, 그 아이들이 자라 매일 같이 이곳을 찾을 텐데. 조용할 리가 없죠.”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소희는 진심이었다.
“아예, 후원에 전각을 크게 늘려 짓는 건 안 될 소리입니까?”
하나둘도 아니고 그 많은 아이들이 찾아오면 어쩐답니까.
소희는 환에게 묻듯이 혼잣말을 이었다.
당과를 한참 만들어 두어야 하려나.
지극히 달 마마다운 고민이었다.
“언제까지 아이인 채로 있습니까?”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어린이가 되었고, 아마 오늘 저녁 즈음엔 거의 어른 꼴이 날지도 몰랐다.
겪어본 적 없는 과정이니 소희의 질문은 타당했다.
“만 하루다. 그리고 이후엔 성별이 생기지.”
식은 찻잔을 한입에 삼키며 환이 소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여자아이가 아니었습니까?”
씨앗이 갈라지고 웅크린 아이를 기겁해서 옷으로 감싸 안으니 시비 아이들이 받아가 옷을 입히고 강보에 돌돌 싸서 다시 데려다준 참이었다.
붉은색 고운 눈동자며, 칠흑같이 검은 머리채가 탐스럽고 윤이 흘렀다.
게다가 그 얼굴은 어떠한가.
작고 뾰족한 턱과, 동그란 하얀 이마에 볼우물이 움푹 패이는 복숭아빛 뺨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는데, 여자아이가 아니었다니.
아니, 그보다 성별이 아직 없다니?
순식간에 멍해지며 뜨악해졌다.
환은 그런 소희를 보며 낮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저런, 혼자 보기 딱하군. 세상에 귀문의 별께서 이런 표정을 짓는 줄 알면 모두 놀랄 것이지.”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웃던 환은 다시 비어버린 두 찻잔에 붉은 차를 가득 따랐다.
“그대, 이곳은 하계야.”
“네.”
“나면서 성별을 받는 건 인계와 상천뿐이지.”
“왜 이곳만 그렇습니까?”
“요괴 때문이지.”
“네?”
뜻밖의 소리였다.
환은 자신의 말이 너무 무겁게 들리지 않길 바라며 소희에게 ‘달 아이’의 이야기를 마저 들려주었다.
심성 여리고 순한 그녀가 부디 조금이라도 덜 놀라고, 조금만 가슴 아파하길 바라며.
말을 최대한 골랐다.
“요괴 때문이다.”
입안에서 굴리던 말들 중 많은 것이 소리가 되지 못하고 결국 짧은 한마디만이 말이 되었다.
“요괴는 이 하계의 모든 곳에 있어.”
“……아!”
소희는 언젠가 자신의 침전으로 들어오려던 무시무시한 것을 떠올리며 가늘게 떨었다.
쭉 찢어진 입귀와 그 안을 빼곡히 메운 칼날 같던 이가 떠오르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후에 아수라에게 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맺힌 찌꺼기가 자라난 것이라 했지만, 모두 아수라가 정리 했다고 했다.
안심하고 있었건만.
환의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었다.
요괴, 깨져버린 영이 사념이 되어 떠다니다 형체화 된 것.
요괴 찌꺼기라고도 불리는 사념은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공기 중에 떠다니던 먼지 같은 그것이,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공명하게 되는 기운을 받게 되면 그것을 먹고 자라 형태를 가지는 요괴가 된다고 했다.
‘아…… 그래서 아수라가 내게서 태어났다고 했던 건가.’
아수라의 말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사념은 지금도 주변에 있었다. 다만 실재할 수 없어 그저 떠돌 뿐이었다.
평상시에는 아무런 해도 못 끼치는 것이지만, 이것에 형태가 생기면 골치 아팠다.
증오를 먹고 자라거나,
탐욕을 먹고 자라거나.
그 어떤 부정적인 기운이든 받아들여 형체를 일궈 ‘요괴’가 되는 순간
첫 희생양은 그것에게 기운을 나눠준 이가 되었다.
다 자란 선인은 그나마 괜찮았다.
그들은 요괴를 피하는 법을 늘 익혀서 안전하게 몸을 숨길 수 있다. 더러는 물리칠 수도 있다.
문제는 어린것들이었다.
이제 막 깨어난 어린것들은 모든 것이 불안정했다.
완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성별에 묶여 어느 쪽으로든 약점이 될만한 게 생겨서는 안 됐다.
“약점이라뇨?”
“여자아이들은 근력이 다소 떨어지고, 남자아이들은 그 섬세함이 부족하지.”
“그게 무슨…… 장점 아닙니까? 남자아이들은 힘이 세서 듬직하고.”
“요괴에게 그건 약점이다. 근력이 떨어지는 여아는 잡아서 찢어 먹기에 좋지.”
무서운 소리를 태연한 신색으로 하며 염휘는 핏물같이 진한 차를 홀짝 마셨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니야. 어린 것들이 요괴를 만났을 땐, 늘 최악을 가정해야 한다.”
엄정한 목소리를 내며 단호한 눈빛을 띈 환은 그때만큼은 염휘였다.
염라의 첫 번째 불이며, 달 아이들의 어버이인 하계의 지배자의 모습이었다.
“요괴들에게 자비란 없다. 그것들은 갱생될 수 없는 존재. 유예를 두어서도 안 되고 희망을 낙관해서도 안 되지.”
이어지는 말은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것들에게 여아들은 섬세하니 잘됐고, 남아들은 씩씩하니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대?”
“아니 그것이 아니오라.”
아이들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려던 소희의 낯빛이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상냥한 의도가 아이들에게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요괴들은 갱생될 수 없어. 그러나 그걸 모르는 건 요괴뿐이야. 그들은 늘 제대로 된 영을 갈구하지. 깨져버린 영을 붙여 다시 생의 좌를 받고 싶은 갈망밖에 남지 않은 것들이란 말이야.”
환은 두 눈을 냉하게 빛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 것들에게 말랑한 아이들이 눈에 띄면 어쩌란 거지?”
“아이들에게서 부정한 기운이 나올 리가 없잖습니까?”
“그런 위험한 생각을 하다니. 놀랍군.”
환은 정말로 놀란 듯 눈을 크게 치떴다.
“밤새, 달 마마를 부르며 우는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의 긴 손이 소희의 뺨에 차게 와닿았다.
“그것이 과연 좋은 마음이었을까? 엉엉 우는 목청에 원망을 담았을 것이지.”
“!”
“그리움과 어리광이 도를 넘어 원망이 된 것이야. 그런데, 그 아이 곁에 마침 요괴 찌꺼기가 고여 있었다면 어땠을까?”
환의 목소리는 차게 떨어지는 그 온도만큼이나 낮게 깔렸다.
그는 가차 없이 소희를 몰아세웠다.
“근력이 떨어져 한발 차이로 그 보드라운 목덜미가 잡힌다면? 둔한 손가락이 재빨리 문고릴 잠그지 못했다면?”
얼음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소희를 다그치다시피 몰아세웠다.
“제발.”
소희는 경악으로 점철된 외마디를 간신히 삼켰다.
“그대.”
환은 소희의 뺨에 가져다 댄 손을 그대로 미끄러뜨려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 가까이 끌어왔다.
“부디, 마음을 단단히 다져두길 바라.”
“…….”
“하계는 상천만큼 녹록한 곳이 아니야. 인계처럼 온순한 것들이 모인 곳도 아니고 인과를 따르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은 곳이야.”
“아, 알고 있습니다.”
“달 아이를 잃는 날이 오더라도 그 마음을 무너뜨리지 말란 말이야.”
그즈음 환은 지독히 냉막한 표정이었다.
“잃다니요?”
석류알 같은 눈알을 순하게 휘며 웃던 아이를 잃다니.
소희는 상실을 실체화하자 견딜 수 없는 구역감이 치밀었다.
다정하던 대화가 어느새 이렇게 살벌해 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소희만 몰랐다.
이것은 환이 언제부터 벼르던 것이었다.
그녀가 귀문의 별이 되어 씨앗을 기르면 언제고, 반드시 알려주리라 다짐했던 것.
다정한 목소리로 얼버무릴 수 없는 가혹한 진실이었다.
달 마마는 반드시 달 아이를 잃게 되어 있었다.
달 마마의 숙명이었다.
그녀가 상천의 휘를 택해 상계로 가버리면 모르겠지만, 태양의 아이와 달리 달 아이는 종종 달 마마의 가슴을 찢고 떠나기도 했다.
그것은 환의 말처럼 요괴 때문이었다.
죽은 자를 다루고 생의 좌를 분배하는 이곳, 하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요괴 자체를 멸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영은 불안정했고, 사소한 이유로 깨졌다.
깨지거나, 혹은 요괴에게 해를 입거나.
그 어떤 이유로 영이 쪼개지면 그것은 반드시 요괴가 되었다.
간혹 운이 좋아 먼지가 되는 것도 있었지만, 매우 드문 경우였다.
그러니 이 하계에서 요괴는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돋아나는 것이라, 사자로 자라날 달 아이들의 소명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명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요괴를 제거하고, 영을 보호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달 아이의 존재 이유였다.
그리고 그렇게 수시로 제거를 해도 요괴들은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것들의 일부는 몹시 거대해졌다.
기형적으로 덩치를 키운 그것들은 더 이상 하계에만 머물지 않았다.
자란 요괴는 부정한 것을 품어버리는 달빛을 피해 귀문으로 몰려들었다가 결국 나락의 절벽에서 그 생을 마감해야 옳았는데, 궤를 벗어난 그것들은 나락의 절벽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천의 틈을 파고들어 아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 세를 더욱 키웠다.
그런 요괴는 사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의 틈은 상천과 중천, 중천과 하천, 그리고 하천과 상천이 맞닿은 모든 천의 사이를 일컬었고, 당연히 그 넓이가 천의 너비와 맞먹었다.
그러니 천의 주인들은 그들의 치세에 한번 군대를 일으켜 대대적으로 토벌했는데, 그것을 일컬어 청천의 전이라고 불렀다.
수십만의 사자들이 일시에 천의 틈을 쓸어버리고, 뒤에서 상천의 선인들이 태양의 활을 들어 보좌하는.
그것은 말 그대로 전쟁.
수많은 사자들이 목숨으로 붉은 꽃을 피워냈다.
그리고 그 생명의 무게를 눈물로 견디는 것이 바로 귀문의 별.
무거운 업을 받은 아이들의 끝을 지켜봐 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별의 책무’.
그것을 지금 환이 소희에게 이르는 것이다.
‘별’이 되어 감당해야 할 미래를 한없이 상냥한 그녀에게 버텨달라.
알고서도 남아달라 간원하는 것이었다.
“청천의 전에. 아이들을 잃을 거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환의 기나긴 설명에 소희가 희게 질린 표정으로 대꾸했다.
목이 메인 듯 잔뜩 쉰 목소리를 내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언제고 닥칠 진실.
환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희는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알고서도 하계에 남아 귀문의 별로 살 것인지를 그녀가 결정해야 했다.
상천으로 날아가 버리지 못하게 붙드는 것은 환의 몫이었지만,
이곳에 남게 되는 것은 결국 그녀의 의지.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감내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청천의 전뿐만 아니라, 사자가 된 아이들은 제가 받은 수명을 채 다 쓰지도 못한다.”
“아아아…….”
견딜 수 없는 먹먹함에 기어코 소희의 눈에서 맑고 습한 것이 찰랑이며 솟아났다.
“아수라가 귀문으로 떠난 것을 알고 있으시겠지?”
굵은 눈물 줄기를 흘리며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늘 요괴들이 들끓는 곳이지. 달 마마의 부재로 마구 자라난 요괴가 잔뜩 몸집을 키워 몰려들었어.”
경악할 소리였다.
“감재사자라 함은, 사자들 중 그 무위가 손에 꼽히는 자들이지. 그곳에 감재사자가 넷이나 보내졌어. 일당백이라는 감재사자를 말이야.”
“그런데요.”
초조함이 담뿍 물린 목소리가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급한 서신이 와서 아수라를 보내주었더니 말하기를 다 죽고 하나가 남았다더군.”
“세상에.”
줄줄 흘리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소희에게서 비통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달 마마 치세에는 확실히 요괴가 설 자리를 잃고 그 위력이 꺾이기는 하나 아주 없어지진 않아. 모래알처럼 많은 요괴가 매일 매 순간 생겨나.”
환은 다시 한번 새겨 달라는 듯 또다시 ‘요괴’와 ‘사자’의 숙명을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많은 요괴들을 상대하는 것은 사자야. 수많은 부딪힘 끝에, 언제 어느 순간 어떻게 당할지 알 수가 없어. 모든 것은 찰나에 결정이 된다.”
“아아…… 내 아이들이.”
숫제 흐느끼는 소희의 뺨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일그러진 얼굴이 짙은 슬픔에 물들어 처연했다.
“맞아, 그대의 아이들이 겪을 미래는 그러해.”
“아닙니다.”
소희는 단언하듯 대답하는 환에게 당차게 대꾸하며 도리질 쳤다.
“최선을 다해 지킬 것입니다.”
“……!”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작은 주먹을 꼭 쥐고는 결연해진 표정으로 소희는 말을 이었다.
“달 마마가 되어 최선을 다해 지킬 것입니다. 하나라도 덜 잃을 것입니다.”
“……그래, 그래.”
엉엉 울며 말하는 소희는 눈물에 흠뻑 젖어서도 아름다웠다.
“그러니, 잘 생각하셔야 해.”
환은 소희를 어르며 차분히 뒷말을 이었다.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지만 반드시 해야 했다.
“휘로 남을 것인지, 별이 되어 줄 것인지. 잘 생각하셔야 해. 만월의 가루로 모두가 구원받을 순 없어.”
더 이상은 소희에게 모르는 채로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환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달싹여 모두 쏟아냈다.
“이 모든 것을 알고서도 별이 되실 건지. 잘 생각하시란 말이야.”
난 최선을 다해 잡을 것이니.
그 마음을 단단히 다지란 말이지.
난 몰랐다 소리로 나중에 도망가지 말라고.
환은 소맷자락으로 흠뻑 젖은 소희의 뺨을 꾹 눌러주었다.
어느새 바깥을 울리던 무겁던 비도 그친 후였다.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