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46화 (46/114)

46. 붉은 하늘에 뜨는 별 (1)

2018.01.08.

남자의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허리를 감고 타고 올라왔다.

못 견디겠는 간지러움이 뱃속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작게 키득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갔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농염하게 익은 붉은 시선이 용기를 주었다.

“유혹하는 것이야?”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는 잔뜩 쉬어 안개처럼 깔려 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목소리까지 붉게 달아올라 숨소리마저 야살스러웠다.

“흐응.”

비단자락이 쓸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귓가를 울리고, 얇은 옷자락을 통해 오르는 온기가 주는 짜릿함에 머리가 띵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방을 메우는 요란한 빗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환의 손가락이 스치는 어깨를 따라 피어나는 열감에 마음이 달떠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대답해.”

그를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커다란 환의 손이 단단하게 받치고 있는 지금이 몹시 만족스러웠다.

평생을 따라다니던 부유감이 사라지고, 이제야 어딘가에 안착된 기분이었다.

본능적인 만족감이 습한 한숨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그녀의 두 손이 환의 옷깃을 붙들며 매달렸다.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의 손이 떨어진대도 자신이 붙잡고 버틸 심산이었다.

소희는 하르르 떨리는 숨을 내쉬며 환을 올려다보았다.

“짐을 바라는 것이야?”

환이 은근한 빛을 뿌리는 홍안을 소희에게 맞대오며 으르렁거리듯 낮게 읊조렸다.

단단하고 커다란 손이 단번에 소희를 끌어당겨 콧날이 스칠 정도로 가까이에 세웠다.

허리를 따라 오르던 다른 손은 이미 소희의 뒷목을 거머쥐고 있었다.

소희는 꼼짝달싹도 못 하고 붙들린 나비가 된 기분이었다.

“말한다면, 믿을 것입니까.”

불꽃이 터져 나오는 것 같은 그의 홍안을 보며 소희가 작게 속삭였다.

그녀를 붙든 아름다운 거미가 움찔한 것 같았다.

“…….”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보던 환이 몰아쉰 날숨이 그녀의 입술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마치 입술에 불이라도 붙은 듯 단숨에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할짝.

소희는 혀를 살짝 빼물어 입술을 핥았다.

긴장감에 입술이 바짝 말라버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환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던 것도 같았다.

“말해주지 않으면.”

목덜미에 닿아있던 환의 손이 어느샌가 풀리고는 소희의 뺨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

점잖은 말투와는 달리 한껏 욕심 오른 그의 시선에 절로 가슴이 울렁였다.

“알 수가 없는 법이지.”

그의 엄지가 꾹 힘을 줘 소희의 입술을 눌렀다.

말랑한 살덩이가 그대로 뭉개지며 입이 살짝 벌어졌다.

“아…….”

“그대.”

소희를 부르는 환의 시선이 무척 혼탁했다.

짙은 빛을 뿌리는 환의 홍안이 갈증에 허덕이고 있었다.

“보여드리면.”

붉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속삭이듯 새나온 말이었다.

반쯤은 충동이고 반쯤은 오기였다.

자신이 하는 말을 늘 가벼이 흘려들은 남자를 한 번쯤 애끓어 동동거리게 하고 싶었다.

열에 달떠 자신만을 찾게 하고 싶었다.

“믿으실 겁니까.”

유혹하듯 속삭이는 말끝이 한숨처럼 잦아들었다.

수줍게 감겨든 두 눈 끝 속눈썹이 나비 날개처럼 바르르 떨렸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이었다.

“…….”

이러다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감긴 두 눈 위에 부드러운 소음이 내려앉았다.

마치 다치기라도 할 듯 염려하는 듯한 상냥한 입맞춤이었다.

눈꺼풀 위에서 시작된 입맞춤은 이내 동그란 앞이마와, 오똑한 콧날, 잔뜩 달아오른 두 뺨 위에서 서늘하게 찾아들었다.

꽃비가 떨어지듯 쉴 새 없이 찾아드는 입맞춤에 발끝이 꺼져 드는 것 같이 아찔했다.

소희를 향해 환이 뭐라고 작게 중얼거린 것 같았지만, 제대로 듣질 못했다.

큰 손으로 양 뺨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내려주는 입맞춤에 어쩐지 뭉클해진 소희는 감은 눈을 뜨고 저도 모르게 환을 찾았다.

하지만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환이 입술을 맞물리는 통에 놀란 눈이 더욱 크게 뜨이고 말았다.

“!”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벌어진 입술을 그가 베어 물듯 겹쳐왔다.

조그만 틈도 참을 수 없다는 듯 강하게 밀착시키고 그녀를 한껏 머금었다.

그의 옷깃을 쥔 소희의 손에 힘이 잔뜩 몰려 하얗게 마디가 돋아 올랐다.

“흐읍!”

처음 맛보는 생소한 느낌에 놀라 파드득 떨며 항의했지만 환은 소희를 단단히 틀어쥐고는 놔주지 않았다.

오히려 반항하듯 몸을 비트는 그녀를 따라 고개를 꺾어 한층 더 깊이 그녀에게 입을 맞춰왔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그에게 밀려 뒷걸음치다 발에 걸려든 침상에 쓰러진 건 너무 자연스러웠다.

“아흣.”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새어나간 신음이 미처 제대로 된 울림을 갖기도 전 다시 환이 그녀를 찾아들었다.

잠시 떨어지나 했던 입술이 다시 급하게 겹쳐졌다.

부드럽게 닿았던 입술을 혀끝으로 쓸고 갈라진 입술사이로 거침없이 타고 들어와 타액을 나누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찔했다.

순식간에 정신을 빼앗기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미약하게 이어지던 반항마저 잦아든 지 오래였다.

입안의 예민한 살을 쓸고, 보드라운 살을 나누는 것은 한숨이 날 만큼 달콤했다.

입술을 이로 잘근 깨물며 환이 떨어지려 할 때.

소희가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희박한 숨이 터져 나와 허덕이면서도 그가 떨어지는 것은 싫었다.

환은 황금으로 물든 눈을 감추지 않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소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가슴이 바쁘게 들썩였다.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며 환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는 쌕쌕거리며, 자신의 옷깃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는 소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두 팔로 바닥을 짚은 그대로 다시 머리를 내려 불안정한 호흡을 하는 소희에게 가볍게 다시 입을 맞췄다.

벌어진 입술을 타고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것이 소희에게 넘어갔다.

“미안해.”

순식간에 온전한 호흡을 되찾은 소희에게 환이 눈썹을 찡그리듯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옅게 미소지었다.

“손대선 안 됐는데.”

“……무슨…….”

소희는 조금 전까지 제게 달려들어 놓고는 다시 발을 빼는 듯한 환의 말에 쥐고 있던 옷깃을 힘줘 잡아당겼다.

조금 멀어진 것 같던 환이 다시 숨이 닿을 만한 거리로 끌려왔다.

“무슨 의미예요?”

화가 난 듯, 상처 입은 듯.

잔뜩 날이 선 소희의 목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 없었다.

환은 잠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기어코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야, 그대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이제, 물러날 곳도 없어.

물러서지 않아.

환은 눈을 휘어뜨리며 웃으며 전하지 못하는 진심을 대신했다.

“그대는 사신의 문을 건너지 못한 불안정한 영이야. 정을 나누어선 안 돼.”

“정을…….”

환이 하는 말을 따라 하던 소희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다.

“사실 입맞춤도 해서는 안 됐는데. 미안해.”

참을 수가 없었어.

“난 염라의 첫 번째 불. 염라대왕이야. 아시겠지만, 그대. 난 하계의 지배자라고. 이런 내 영기가 얼마나 무시무시할지는 잘 아실 테고.”

환은 조금 전까지 농염하게 익은 눈빛을 건네던 남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말끔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가볍게 장난치듯 하는 말은 오히려 개구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소희는 이제 환을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는 상냥한 남자였다.

자신이 겁먹을까 봐 최대한 가볍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이런 그를 몰라, 능글맞은 남자라고 타박했던 과거가 새삼 미안해졌다.

“영기……? 아아……!”

소희는 그가 화를 낼 때 전신을 송곳처럼 아프게 찌르는 것 같던 느낌을 기억해냈다.

“그대는 불안정한 영이야. 내가 함부로 맞닿아서 그대의 영력을 흐트러뜨리기라도 하면 곤란해진다고.”

“하지만…….”

소희는 잔뜩 아쉬워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제, 마음이 이어진 것 같았는데.

또다시 떨어뜨리려는 듯한 말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눠드렸어. 내 영력을 조금. 흘려 넣어드렸어.”

“영기를요?”

“방금 넘겨드렸지.”

“제게요?”

“드셨지.”

환은 짓궂게도 소희의 입술을 톡 건드리며 찡긋거렸다.

“아앗!”

전신이 빨개졌을 것이다.

방금 전, 마지막 입맞춤 때 입안을 채우던 따뜻하고 기분 좋은 무언가를 받아 삼켰는데 그것이 그의 영기일 줄이야.

소희는 두 손으로 황급히 얼굴을 가리고 앓는 소리를 내며 정말이지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천천히, 녹여서 지니고 계시라는 뜻이지.”

“…….”

“내 영기를 받아 계시면, 앞으로 입맞춤 정도는 무리 없을 테니까.”

“!”

능글맞은 목소리에 분명히 한마디 할 줄 알았건만, 소희는 손가락 사이로 쌕쌕거리는 숨소리만 바쁘게 낼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짢으신 건가?”

사르락

그의 어깨를 타고 은발이 흘러내리며 장막처럼 드리워졌다.

“허락 없이 나눠드렸다고 화가 나신 거야?”

조금 전까지 빙글거리던 남자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응?”

채근하듯 다시 물어도 소희에게선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만 물러가리까?”

결국, 환이 팔을 무르며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에야 손가락사이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부끄러워서요…….”

“……뭐?”

“……그러니까 가지 마세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이 허공을 더듬으며 그를 찾아 올라왔다.

가느다란 손끝에 환의 도포자락이 잡히자 목숨줄이라도 되는 듯 가만히 움켜쥐었다.

커다란 두 눈은 질끈 감겨져 있는 채였다.

“…….”

환은 자신의 밑에 깔린 소희를 보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의 턱은 이미 잔뜩 힘이 몰려 단단히 당겨져 있었다.

황금빛이 넘쳐 흐를 것 같은 홍안이 느리게 집요하게 깜빡거리는 눈꺼풀을 따라 고요히 빛을 발했다.

“흐으음…….”

빗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리는 밤.

침상 위에 환의 한숨이 같이 떨어져 내렸다.

“그대는 내게 이십 년을 기다리게 했지.”

조용한 목소리에 감긴 소희의 눈이 뜨였다.

“너무나 길었어.”

그의 황금빛 홍안이 다시 소희의 얼굴을 각막에 새겼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긴 마흔 아홉 날을 기다리라 하는군.”

애끓는 사내의 수줍은 고백이었다.

환은 더할 나위 없이 환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러나, 소희는 그런 환의 모습에 못 견디게 가슴이 아려왔다.

자신은 모르고 살아온 그 이십 년을 누군가는 하루 같이 기다렸을 것이라는 사실에.

뒤늦게 미안함과, 감사함과 복받치는 감정에 가슴이 뻐근했다.

“그래도.”

간신히 혀를 굴려 소리를 내보았지만, 목이 메 잔뜩 쉰 것 같은 목소리였다.

“기다리세요.”

그즈음 소희는 생애에 모든 용기를 다 끌어다 쓰는 중이었다.

돌리고 싶은 시선을 떨구지 않고 환의 시선을 받아내며, 그가 건네는 농익은 말을 듣고 있었다.

수줍음에 파드득거리는 가슴을 모르는체하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귀문의 별로 살 것입니다.

한마디를 더 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 그 말은 전하지 못했다.

기다리라는 그녀의 말을 끝으로 환이 고개를 꺾어 내리며 다시 긴긴 입맞춤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기는 잘 자고 있을까요?”

소희는 환의 팔을 베고 누워 소곤거렸다.

“저런, 아직도 아기라고 부르고 싶은 거야?”

환이 소희의 말에 놀리듯 짓궂은 목소릴 냈다.

“아직도라니요, 아기인걸요.”

소희는 환의 말에 대번에 정색하며 목청을 돋우었지만 사실 그 말이 억지라는 것을 소희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환의 말은 늘 그랬듯이 모두 사실이었다.

금방 자란다던 아이는 그들 셋이 점심을 먹고 비 내리는 바깥을 구경하기 시작한 지 채 일각이 되지 않아 갑자기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안고 있던 아기가 몸을 비틀며 끙. 소리를 냄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치 기지개를 피듯 두 팔다리가 쭈욱 펴지더니 그대로 쑥 길어졌다.

아마 환이 아니라 소희가 안고 있었더라면 그대로 떨어뜨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훌쩍.

환은 예상이라도 한 듯 아이를 등 뒤에서 팔을 감아 엉덩이를 단단히 받치고 있었다.

아이가 훌쩍 커지더라도 떨어뜨릴 수 없는 자세였다.

“아.”

아기는 단번에 몸을 키우고는 이제 말을 배우려고 하는지 외마디를 내기 시작했다.

“세상에.”

너덧 살은 돼 보이는 아이를 한 팔로 안고도 환은 무거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당황한 소희의 등을 가만히 토닥였을 뿐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금방 자라네요.”

소희는 한참 만에야 더듬거리며 감상을 말할 수 있었는데, 이미 묘한 상실감과 허탈함 그리고 경이로움과 감탄에 이르기까지 온갖 감정에 벅차 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환은 그런 소희를 눈치채고 시비들을 불러 아이를 넘겼다.

아이는 낯선 손에 넘어가서도 울거나 보채지 않았다.

안긴 채로 그녀들의 긴 머리타래를 만지고 코를 부비며 천진하게 굴었다.

“이제, 뭘 좀 먹을 테지?”

“네, 데려가 먹이고 재우겠습니다.”

환의 말에 공손하게 대답하며 머리를 조아린 것과는 달리 그녀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환이 짤막하게 ‘아수라전’이라고 덧붙이기 전까지.

방긋거리는 아이의 석류 같은 눈이 떠오르자 소희는 환에게 아이에 대해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수라전이라고 했으니, 우선 아이의 거처를 그쪽으로 정한 것인가.

다른 씨앗들은 깨어나지 않았는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환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살짝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누르고 소희가 몸을 돌렸다.

두 팔로 턱을 괴고는 누워서 자신을 보는 환에게 최대로 상냥한 목소리를 냈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에 아이를 찾아 아수라전으로 가고 싶었다.

어쩌면 이미 마음은 아수라전에 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희는 둥실거리는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는 실소했다.

“아기가 우릴 찾지 않을까요?”

“글쎄.”

“벌써 떨어진 지가 오래이니 보고 싶다 울지 않을까요?”

“글쎄.”

“아까 아수라전이라고 덧붙이신 건 아이의 침방을 정해주신 건가요?”

“글쎄.”

노골적으로 대화를 피하는 것을 알아줄 법도 하건만, 소희는 또다시 아이 생각에 골몰한 듯 무성의한 환의 태도에 큰 관심이 없었다.

환은 아이 이야기가 나오자 온통 아이 생각에 정신을 빼앗긴 소희를 못마땅한 듯 바라보다 말랑한 귓불을 대뜸 깨물어버렸다.

“아앗!”

“저런, 아프셨어?”

“이익! 정말! 이 능청은!”

아기 생각에 싱숭생숭하던 차에 귀를 물린 소희가 대번에 골이 나 씩씩거렸다.

소희는 매사에 능글맞게 구는 이 남자를 이번에야말로 혼쭐을 내주고 싶었다.

도대체 이게 물리면 얼마나 이상한데.

환에게 물린 귀를 손으로 감싸고 빨개진 얼굴로 씩씩거리다가 대뜸 그의 귀를 깨문 것은 오로지 혼내주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결단코 그를 도발하려거나. 이런 상황에 처해지고 싶은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소희는 삽시간에 달아오른 표정이 되어 자신을 위에서 누르고 있는 환을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입술을 앞니로 질끈 깨물며, 시선을 데구르 굴린 것도 정말 곤란해서였건만.

“그대는 정말이지 잔인해.”

짐을 이런 식으로 괴롭히는 것이야?

낮게 혀 차는 소리와 단숨에 겹쳐지는 입술에는 얌전히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창밖을 울리는 세찬 빗줄기 사이로 오랫동안 습한 소음이 조용히 침전 안을 울렸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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