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45화 (45/114)

45. 비가 오던 날에 (5)

2018.01.05.

단전에 핵이 들어있던 요괴들은 한칼에 하나씩 착실하게 사라졌다.

아수라의 마지막 일격에 하나 남은 요괴마저 두 동강 나며 금세 먼지가 되어버렸다.

팡-.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희뿌연 연기가 터지는 것은 언제 보아도 신기했다.

쏟아지는 비에 이내 희뿌연 물줄기가 되어 흩어지는 것을 가만히 보던 감재사자가 아수라에게 다가왔다.

“이제 끝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 것 같구나.”

아수라는 영력을 풀어 근방을 더듬어 보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닷새를 받은 일이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가 되어갔다.

애초에 밤에 창궐하는 것들이라 밤의 아수라가 첫날 실신 직전까지 영력을 끌어 쓰며 정리한 것이 제일 크게 차지했다.

게다가 오늘은 비가 내리며 귀문에 온통 음습한 기운을 몰고 와주기까지 했다.

덕분에 제법 굵직한 녀석들을 감재사자와 정리해놓은 참이니 이제 남은 것은 잔챙이들이다.

아수라는 쉴 새 없이 쏟아붓는 비를 맞으며 늘어진 머리채를 등 뒤로 넘겼다.

“상처를 제가 좀 봐 드려도 되겠습니까?”

머리를 넘기며 잠시 등이 드러난 틈에 등골을 따라 깊게 패인 상처를 감재사자가 본 모양이었다.

“…….”

아수라는 미간에 옅은 주름을 새길뿐 아무 말이 없었다.

“요괴의 손톱에는 독이 있습니다. 아수라께서 이런 것에 해를 입을 리는 없겠지만 영력을 낭비하실 필요는 없잖습니까.”

감재사자는 아수라가 혹시라도 기분이 상한 것인가 해서 주절거리며 말을 이었다.

“감재사자는 부상이 잦은 편입니다. 그래서 요괴의 독에 바르는 약을 항시 들고 다니게 되어있습니다.”

“……알고 있다.”

“바르십시오. 그냥 두는 것보다 회복도 빠르고 영력소비도 덜합니다.”

감재사자는 손에서 꺼내든 가죽주머니를 열어 보였다.

은근하게 빛을 머금은 온화한 색이 낯익었다.

“이것은.”

“선대 달 마마께서 보내어주신 만월의 가루입니다.”

아수라는 감재사자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내미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귀한 것이구나.”

예의 덤덤한 말투였지만 아수라의 눈빛만은 한껏 다정해져 있었다.

만월의 가루.

달 마마.

모두 그는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전대의 기억에서 물려받은 것들.

‘지니고 다니세요. 항시 앞에 나서시는 분이니 염려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무엇입니까?’

‘간밤 만월이지 않았습니까? 밤새 받아 가루를 내어 넣었습니다. 정순한 기운이니 요괴같이 삿된 것에게 해를 입었을 때 쓰시라 정성으로 만들었지요.’

자애롭던 미소와 푸근한 마음이 머릿속을 차고 넘치며 아수라를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

자신에게 만월을 가루를 건네는 감재사자 위로 선대의 달 마마가 겹쳐 보였다.

‘소장을 못 믿으심입니까?’

호방한 사내의 목소리가 제 것처럼 생생했다.

“괜찮으십니까?”

아수라는 누군가의 외침에 흐트러지던 정신을 다잡았다.

“괜찮다.”

대를 이은 기억은 이게 문제였다.

너무 생생해서 가끔 현실을 잡아먹었다.

아수라는 머리를 흔들어 전대의 기억을 털어냈다.

그리고는 차게 식은 손을 들어 감재사자의 손을 가만히 밀어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비에 젖었으나 감재사자의 만월의 가루만이 빗속에서 보송한 채였다.

“넣어두어라. 나보단 네가 요긴하게 쓸 것이다.”

아수라는 뭔가 더 말을 하려는 감재사자를 보며 엄한 표정을 지었다.

“난, 아수라. 잊었느냐.”

“아닙니다. 하지만…….”

“두면 나을 테지. 그리고 나야 곧, 달 마마께서 새로 해주시지 않겠느냐. 오히려 내가 나눠주러 와야 할 것이다. 아껴서 잘 쓰고 있거라.”

아수라는 안절부절못하는 감재사자를 꾸짖듯 달랬다.

조금 전 전대의 기억이 물렸던 탓인지, 감정이 잘 추슬러지지 않았다.

저를 위하는 감재사자에게 이렇게 냉하게 말하지 않아도 좋았는데, 어쩐지 울컥하고 말았다.

다정하고 자애롭던 달 마마의 음성이 뇌리에 남아 자꾸만 맴돌았다.

“내게도 곧 생길 것이다.”

아수라는 입안에서 작게 말을 굴렸다.

이것이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부러움?

시샘?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전대의 것을 ‘물려’ 쓰는 것은 기억으로 족했다.

제게도 이제 다정한 달 마마가 생길 것이었다.

소희님께서 밤사이 만월을 받아두었다가 곱게 가루 내어 가죽주머니 한가득 담아 주실 테였다.

“그건 넣어두어라. 난 필요 없다.”

빗소리에 묻혀버린 아수라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담뿍 물려있었다.

“궁으로 돌아가시면 받게 되시는 겁니까?”

“궁금하냐?”

감재사자의 말에 아수라가 빙긋 웃었다.

“꼭 바르셔야 해서 그러지요.”

“그래그래. 바르마.”

반쯤은 장난스럽고 반쯤은 건성인 그의 말에 감재사자가 질색하며 펄쩍 뛰었지만, 아수라는 검을 물려 접선으로 돌리고 소매에 갈무리하느라 더 이상 대꾸해주지 않았다.

“꼭 받으셔야 합니다.”

받을 것이다.

난 누구와는 달리 소희님을 순순히 상천으로 넘겨줄 생각 같은 건 없거든.

“거참, 성가시구나.”

아수라는 자꾸만 제 등 쪽을 흘끔거리는 감재사자에게 뚱한 목소리로 통박을 주고는 몸을 돌렸다.

마지막 녀석을 해치울 때였다.

이미 처리한 요괴였건만, 바로 터져버리지 않고 잠시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녀석이 먼지가 되기 직전에 몸을 날려 그의 등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원독을 품어 찔러 넣은 손톱이 등줄기를 타고 깊게 박혔다.

등뼈에 흔적을 남기고는 사라진 상처는 보통이 아니었다. 은근하게 골수를 타고 흐르는 요괴의 독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것이긴 했지만 등을 따라 쑤석거리는 것이 기분이 좋진 않았다.

감재사자가 내미는 만월의 가루를 바르면 대번에 없어질 것이지만 아수라는 굳이 밀어냈다.

그건 그만의 다짐이었다.

소희를 반드시 달 마마로 세워서 그녀에게 받겠다는.

욱씬-.

전신에 소름이 돋도록 사무치는 고통이 등뼈를 타고 세차게 그를 후려쳤다.

“빨리 안 오면 버리고 갈 테다.”

“어디 가십니까?”

“정리도 끝났는데 이 비를 맞고 있으란 말이냐?”

“아아…….”

“저런 모자란 녀석.”

찰박거리는 발자국을 딸리고 아수라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을 할퀴는 사나운 고통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아수라의 표정은 매끈하기 그지없었다.

“여기입니다.”

“여기도 있습니다.”

비 내리는 후원이 소란스럽게 들떴다.

풍천은 갑주를 닦다가 끊이지 않는 소리에 후원으로 나선 참이었다.

어린 선인들이 우산을 쓰고선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바구니……?’

이 비에 뭐 하는 짓이람.

풍천은 회랑에 서서 어린 것들이 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몸을 돌렸다.

어린 것들이 노는 소리에 괜히 정신이 팔려 나온 것이 시간이 아까웠다.

빗속에서 어린 선인들이 장난을 치는 것인 줄 알았던 그때, 그의 귀에 선인들의 이야기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우천화를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요. 아수라님께서 기뻐하실 테지요.”

‘아수라?’

풍천은 귀에 익은 이름에 몸을 돌려 다시 선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우산을 들고 바구니에 연신 무언가를 따서 넣고 있었다.

손에 들린 것은 그들의 말처럼 우천화였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에 피어나는 꽃.

그래서 우천화였다.

빗물처럼 투명한 꽃잎에 붉은 수술이 예쁘긴 했으나 요새 좀처럼 비가 안 와 그도 본지 오래된 꽃이었다.

‘아수라가 꽃을 좋아했던가.’

풍천은 회랑 기둥 뒤에서 선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듬뿍 따야 합니다. 요즘 비가 잘 안 와서 구경하기 힘드니 최대한 따두어야 해요.”

“전 바구니가 다 찼는걸요.”

“그럼 새 바구니에 담으세요. 비가 언제까지 올지 모르니 서두르세요.”

“그런데 우천화를 뭐하시게요?”

“뭐하긴요, 아수라님께서 우천화로 만든 차를 얼마나 즐기시는데요.”

이야기를 듣던 풍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차라…….’

하긴 아수라는 이것저것 귀한 차를 종종 꺼내 들며 제법 그 풍류를 즐겼다.

종전에 함께 즐겼던 서녘의 달빛은 그 맛이 상당해, 차를 전혀 모르는 풍천도 종종 떠오를 정도였다.

그런 아수라가 즐기는 우천화라.

풍천은 수라전의 아이들에게서 빠른 걸음으로 멀어졌다.

그리고는 자신의 전각에 있는 아이들을 불러 은밀히 ‘우천화’로 차를 만들어 달라 주문했다.

“우천화를요?”

“왜? 안 되느냐?”

“그것이 아니오라, 풍천께선 차를 안 즐기시는 터라 수라전 아이들이 달라길래 죄 꺾어다 준 것을요.”

“지금 비가 한창이니 다시 피었을 것이다.”

반쯤은 억지인 풍천의 말에 아이들이 울상이 되어 바구니를 들고 나섰다.

그런 아이들의 표정을 알 리 없는 풍천은 광을 내다 만 갑주를 집어 들고는 흥겹게 닦기 시작했다.

‘우천화를 만들면, 언제고 아수라가 왔을 때 내밀어 봐야지.’

얼마나 귀여운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먼 곳에 있을 이를 떠올렸다.

“지금쯤 요괴한테 잔뜩 시달리고 있겠구만.”

중간중간 감추지 못하는 근심스런 목소리를 잔뜩 낮게 깔고선, 갑주를 닦는 손에 속도를 냈다.

풍천은 간밤 소동 끝에 근신 중이었다.

염휘가 그를 구하고, 눈도 잃지 않았으나 사실 몸은 만신창이였다.

염휘가 넘겨준 영력은 풍천의 것과는 달라 자신의 것으로 녹여 쓰려면 한동안 영력을 돌리고 매만지는데 골몰해야 할 참이었다.

분명히 말끔해진 눈이건만 은근히 치미는 고통은 어제를 기억함이었다.

풍천은 갑주를 닦으며 가만히 영력을 돌렸다.

망가지고 엉망이 되어 엉킨 곳을 풀고, 다듬고, 염휘에게서 받은 새 영력을 녹여 제 것에 풀어 담고.

무구를 정리하는 것 같았으나 실상 그가 하는 진짜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또 언제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르니 그가 받은 이 ‘하루’를 알차게 써야 했다.

내궁에 염휘께서 계시다는 말에 마음이 풀어져,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 푸른 물은 뭐였지.’

살아있는 것 같던 싯푸른 물.

풍천 자신에게서 나온 그 물이 서로를 향해 뭉쳐들고 모이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했다.

소름이 쭉 끼쳤다.

그런 것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요괴였을까.

살아 움직이는 독은 들어보지 못했으니, 요괴라는 쪽에 더 무게가 실렸다.

“……어디서 온 거지.”

풍천은 멍하게 중얼거렸다.

사신의 문이 열린 것도 아닌데 어째서 소희의 목에 그런 괴이한 것이 들러붙었을까.

분명 소희의 목이었다.

목을 둘러싸고 시작된 푸른 실금.

살아있는 것처럼. 마치 핏줄처럼.

전신을 야금야금 잠식해가던 그 모습이 생생했다.

“크으…….”

괜히 눈이 욱신거리고 아려와 풍천은 눈을 질근 감고 침음성을 삼켰다.

눈알을 파내고 골수를 헤집는 고통이 다시 한번 시작되는 느낌에 풍천은 진저리를 쳤다.

몰랐으니 버텼지, 두 번은 못 참을 것이었다.

“제길. 그 목 참.”

풍천은 소희의 가늘고 하얀 목덜미를 떠올리며 낮게 뇌까렸다.

태자가 인을 걸고, 염휘가 진으로 덮고.

하다하다 부족해서 거기에 요괴까지 붙이고 다니나.

“그 목 안 부러지는 게 신기하네.”

가느다란 것에 매달린 게 뭐 그리 많아.

풍천은 반질반질하게 손질이 된 갑주를 다시 몸에 걸쳐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는 불쑥 손을 내밀어 도를 불러냈다.

마치 금방이라도 전장에 출전할 장수의 모습을 해서 그가 한 것은 기껏 불러낸 도를 바닥에 내려놓는 것이었다.

묵직한 그의 도가 바닥에 반듯이 놓이자 풍천은 품에서 주머니를 하나 꺼내 대뜸 도에 쏟아 부었다.

불룩한 주머니에선 하얀 꽃이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내렸다.

바닥에 놓인 도가 온통 뒤덮이도록 꽃을 뿌리던 풍천이 그 손을 멈춘 건 그의 전각이 진득하고 달큰하게 꽃향기로 가득 메워진 후였다.

풍천은 도가 보이지 않게 되자 손을 들어 영력을 일으켰다.

스산한 소리와 함께 검은 구름이 그의 손끝을 타고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영기는 당연하다는 듯 꽃잎 위를 도탑게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창을 타고 들어온 실바람에 모두 흩어지자 그 자리엔 묵빛으로 빛나는 도 한 자루만이 남아있었다.

수북이 쌓였던 꽃도, 그 위를 첩첩히 덮었던 묵직한 영기도. 남은 것이 없었다.

다만 도에선 끊임없이 도화향이 진하게 흘러나와 조금 전까지 이곳에 그 꽃이 가득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투욱

턱을 타고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동공이 지워진 은회색의 눈동자가 쉴새 없이 떨리며 가쁜 호흡에 동조했다.

“후아.”

풍천은 다시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땀을 손으로 거칠게 훔쳐냈다.

순식간에 온몸에 힘이 빠질 정도로 영력을 끌어다 썼더니, 전신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버렸다.

깜빡.

짙은 눈썹이 잔뜩 일그러져서는 땀이 흘러내리는 눈꺼풀을 빠르게 밀어 올렸다.

두세 번 깜빡거리며 눈을 치뜨자 다시 새카만 동공이 나타났다.

“허억.”

투둑.

참았던 희박한 숨을 터트리자 흉갑이 크게 들썩거렸다.

마지막 남은 모든 영력을 다시 한번 끌어모아 진에 쓸어 넣었다.

이것으로 풍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셈이었다.

영력은 푹 자고 나면 다시 거뜬하게 차오를 테였다.

하지만 어제 같은 기괴한 것을 막으려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풍천은 첫 이슬을 맞은 복숭아꽃을 잔뜩 구해온 참이었다.

그의 품에서 잠든 흑조가 새벽 내내 고생을 했다.

상서로운 달빛에 푹 젖은 첫 이슬을 머금은 복숭아꽃이라야 했다.

흑조가 부리로 한 송이 한 송이, 동이 터 오르도록 따온 것이 한 자루였다.

결계를 둘러준 작은 주머니는 보기엔 한 줌도 안 되었지만 사실 커다란 포대자루만한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가득 채워왔으니 흑조가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풍천은 새의 노고를 떠올리며, 복잡하게 짜놓은 진을 귀찮다 여기지 않고 완성해냈다.

차라리 도를 백번쯤 휘두르는 편이 훨씬 쉬웠다.

이렇게 진을 짜고 결계를 치는 것은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마냥 투덜거리고 발을 빼고 있을 수가 없었다.

눈알이 빠지고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은 고통은 둘째 치더라도 눈앞에서 달 마마가 잡아먹히는 것을 생생히 지켜보는 무력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참담함이라는 단어로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때의 참혹한 심정은 청천의 전 이후로 처음이었다.

절대 빼앗길 수 없다.

그것이 요괴든, 그 어떤 삿된 것이든. 상태자이든 간에, 이 풍천이 두 손 놓고 빼앗길까 보냐.

풍천은 상서로운 복숭아꽃의 기운을 담뿍 물린 도를 들어 올리며 눈을 빛냈다.

후웅-.

마치 가볍게 손목을 돌리듯 힘을 들이지 않은 표정으로 도를 한 바퀴 돌렸다.

검은 연기가 도의 자취를 따라 궤적을 그리듯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뒤이어 숨이 멎을 만큼 진한 도화향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이만하면 됐다.”

풍천은 자신의 도에 꽉 들어찬 천도의 기운에 만족한 목소릴 냈다.

삿된 것을 물리치는데 영험하다는 복숭아.

그것도 서왕모께서 기르는 것으로 꽃을 골라냈다.

한 자루나 되는 꽃송이를 영력으로 도에 눌러 담았다.

도가 베지 못하는 것은 이 천도화가 베어줄 것이다.

‘간밤처럼 피눈물을 흘리며 바라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풍천은 어쩐지 욱신거리는 눈을 짚으며 이를 갈았다.

까드득-.

온몸이 텅 비어버려 이대로 내일 아침까지 꼼짝 못 하고 잠을 자야 할 테지만, 그의 투지만큼은 전에 없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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