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비가 오던 날에 (4)
2018.01.01.
말랑한 뺨과, 살이 토실하게 오른 팔다리가 사랑스러웠다.
꾹 감은 두 눈 아래 눈동자가 궁금했지만 아이는 첫울음을 터트린 이후로 새근거리며 곤하게 잠을 잤다.
계속 들여다봐도 도무지 질리지 않았다.
그런 아이를 뺏기다니.
소희는 강보에 싸인 아이를 미련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어서 드세요. 다 드셔야 아이를 내드릴 겁니다.”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선인 하나가 소희의 앞에 서서 시선을 가로막았다.
아무것도 안 먹고 내도록 아이만 보고 있으니, 다들 달려들어 아이를 빼앗고 소희 앞에 푸짐한 점심상을 차려준 참이었다.
“흐음…….”
불만스러운 한숨이 새나가도 다들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결국 지고 마는 건 소희였다.
“먹고 기운이 나셔야 아이도 안아주시죠.”
눈꼬리를 처량하게 늘어뜨린 소희의 표정이 마음에 걸린 듯 선인 하나가 다독거렸다.
맞는 말이었다.
아이는 말랑하고, 포동했다.
묵직하니 안고 있으면 좋긴 했지만 영 기운이 달렸다.
먹어야지.
기운내서 안아주어야지.
작은 손에 쥐어진 숟가락질이 금세 바빠졌다.
“요것도 드시고.”
그런 소희 앞으로 찬그릇이 놓였다.
“어?”
갑작스런 목소리에 소희가 고개를 들자 환이 옅은 미소를 빼문 채 다시 찬그릇 하나를 밀어주었다.
스윽-.
“이것도.”
달큰한 목소리가 온기를 머금고 그대로 내려앉았다.
급한 것만 처리하고 오마. 하며 다정한 당부를 남기고 내궁을 떠났던 염휘가 그사이 돌아왔다.
“딱 맞춰 왔군.”
찬그릇을 밀어주고는 맞은편에 앉는 그에게 기다렸다는 듯 한사람분이 더 차려졌다.
“일은 다 처리하신 거예요?”
“그럼. 난 꽤 유능하다구.”
염휘는 젓가락으로 밥알을 집어 들며 능청맞게 대꾸했다.
“그사이?”
“모두”
맛깔나게 차려진 찬을 집어 입에 쓱 넣고는 소리도 없이 씹어 삼키는 모습이 참 단정했다.
국을 마시고, 밥을 뜨고 이 모든 것이 그림으로 그린 듯 우아하기 짝이 없어 소희는 두 볼을 부풀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괜스레 볼록한 뺨을 매만지자니 염휘가 눈치챈 듯 작은 소리로 웃었다.
“어서 드시는 게 좋을 거야. 달 아이는 금세 커버리니까. 빨리 봐두지 않으면 아쉬울걸.”
청천벽력같은 소리였지만, 그의 말은 언제나 옳았다.
이곳은 인계가 아니었으니, 모든 것은 소희 그녀가 살았던 곳과는 전부 달랐다.
달빛으로 아이를 만들어 내는 곳인데.
심지어 눈 깜짝할 사이 아이가 자라 태어나는 곳이기도 한데.
환이 금세 커버린다 할 정도면 얼마나 빨리 자란다는 거지?
소희는 멍하니 있다가 야무지게 입을 놀렸다.
볼록해진 두 뺨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크흣.”
환의 웃음소리에 부끄러워할 겨를이 없었다.
입이 빌 새도 없이 밥을 넣고 반찬을 집었다, 국을 마시고 씹어 삼키고.
허겁지겁 한 공기를 다 비우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소희를 막아섰던 선인들이 어느새 데려온 아이를 그녀 품에 안겨주었다.
“물도 드셔야지요.”
체하십니다.
웃음기 어린 염려가 들릴 리 없었다.
소희는 숨 쉬는 것도 까먹을 만큼 아이를 그저 넋 놓고 보고 또 보았다.
석류알같이 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는 귀여운 것을,
마치, 제가 낳은 듯.
마치, 환의 아이인 듯.
가슴이 벅차 뒤늦게 터지는 급한 숨마저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환에게 보여주었다.
“이것…… 좀 보세요.”
“흐음.”
그도 분명 첫아이일 텐데.
코끝을 울리는 가벼운 대꾸에 살짝 섭섭한 것도 잠시.
환의 가늘게 떨리는 홍안에 서운함이 일시에 사라졌다.
가만히 물잔을 쥐고서 소희가 보여주는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는 환의 홍안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황금을 품은 홍안이 주는 떨림은 이내 소희에게 스며들었다.
“예쁘지 않습니까?”
옅게 떨리는 목소리에는 기쁨이 실려있었다.
“어여쁘구나.”
“꼭…….”
“꼭, 그대를 닮았어.”
그가 달큰한 목소리로 은근하게 속삭였다.
물잔을 쥐고 있던 손이 느릿하게 건너와 소희의 품에 안긴 아이의 통통한 뺨을 살짝 스치고는 떨어졌다.
“보드랍구나.”
“아기니까요.”
“그런가.”
환은 애매하게 대꾸하며 웃었다.
붉은 입술을 늘여 옅게 웃는 그는, 촘촘한 속눈썹 아래로 홍안을 감췄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소희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나를 닮다니. 척 봐도 이 아이는 환을 닮지 않았나.’
유백색의 고운 피부와 오똑한 콧날이 장차 자라날 모습을 기대케 했건만.
아이가 자신을 닮았다니.
소희는 투명하게 빛을 머금은 아이의 홍안을 보며 다시 입을 달싹였다.
“이 아이는.”
“그대를 닮았어.”
환은 다짐하듯 힘을 줘 말했다.
의도적으로 소희의 말을 잘라내고 있었다.
“그대를 닮은 밤하늘 같은 머리카락과, 유순한 성격이. 그리고 이것 보아라.”
환은 아이의 꼭 쥔 손을 가만히 들어 소희에게 보여주었다.
“그대를 꼭 닮아 검지가 길지 않느냐.”
“네?”
“짐은 약지가 더 길거든.”
하다못해 손가락마저 닮았다고 못 박는 그의 태도가 이상했으나, 소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싫지 않았다.
오히려 저를 닮았다니 더더욱 애틋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마음 붙이라 신경 써 주는 것인가.’
아이의 작은 손가락을 가만히 만지며 소희는 말 뒤에 숨은 진심을 알아내려고 했다.
“눈이 참 예쁩니다.”
“애석하구나.”
“…….”
“그대를 닮아 흑요석같이 빛을 내면 더 좋았을 것을.”
“저는, 환을 닮아 더.”
“…….”
“……더 좋습니다.”
이게 무슨.
무슨 별거라고.
소희는 순식간에 목덜미까지 벌겋게 붉힌 자신을 책하며 고개를 떨궜다.
차마, 환을 보기 부끄러웠다.
눈에 한가득 들어차는 아기를 보며 소희는 금세라도 멎을 것 같이 두근거리는 심박을 달래보려 애썼다.
사르락.
비단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맞은편이 비었고, 이내 드러난 목덜미에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떨어졌다.
“난, 그대를 닮아 더 좋았단다.”
소리도 없이 목에 입술을 묻고는 은근히 속삭이는 환이 싫지 않았다.
이런 능글맞은 짓에 가슴이 떨릴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엉큼하게.’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한 번 더 해주길 바란 것을 깨닫는 것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상에.’
화끈.
달아오르는 두 뺨이 이러다 불이 붙을 것 같았지만.
좋았다.
그가 다정하게 희롱하며, 능글맞게 그녀를 탐하는 것도.
그를 닮은 아기를 안고 있는 것도.
소희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이 들게 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지? 이젠, 그만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어깨를 감싼 큰 손이 말투만큼이나 다정하게 소희를 일으켰다.
“잠시만…….”
푹 숙인 고개 끝에서 사정하듯 작은 목소리가 유예를 청했다.
이미 방안엔 환과 그녀 둘뿐이었다.
어느샌가 달큰하게 무르익은 분위기에 시중을 들던 선인들은 모조리 방을 빠져나간 지 오래였다.
“아이는 이리 주고.”
“아니에요.”
“고집부리지 말아. 지금이야 괜찮아도 곧 팔이 후들거리고 힘이 빠질 테지.”
환은 소희에게서 손쉽게 아이를 빼앗아 안았다.
오랫동안 아이를 돌본 이처럼 무척 노련한 손길이어서 소희는 아이를 돌려받을 생각도 못 하고 입을 떡하니 벌리고 환을 바라볼 뿐이었다.
“첫아이 아니셨습니까?”
“맞아. 첫아이야.”
“그런데 아이를 안는 품새가 굉장히 자연스러우십니다.”
“그런가?”
이번에도 환은 애매한 대꾸를 하며 그저 빙긋 웃어주었다.
“첫아이지만, 아이를 안아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소매를 가볍게 털어 주름진 곳 없이 편편하게 매만지고는 아이를 다시 보듬으며 환이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아, 아이를 안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럼. 나도 처음에야 애를 먹었지.”
아이는 환의 품에서 눈을 깜빡이며 순하게 안겨있었다.
환을 쏙 빼닮은 아이가 그의 품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이 안고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네 아버지란다.’
차마 소리 내지 못할 말을 가만히 건네며 자꾸만 수줍어진다.
환과의 첫아이.
자신의 아이.
그 어떤 이름을 붙여도 다 좋았다.
“떨어뜨릴까 봐 얼마나 긴장했던지.”
또다시 아이에게 넋을 놓고 있는 소희를 보며 환이 말을 이었다.
“긴장하실 때도 있으십니까? 매사에 능글맞으시니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소희는 긴장했다는 환에 말에 깜짝 놀랐다.
“저런. 그대 눈에 나는 능글맞은 남자였군?”
빙글거리는 환의 홍안을 보고서야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소희는 뻔뻔하게 굴기로 했다.
“능글맞기만 하겠습니까.”
“저런 저런. 아가, 짐이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었느냐.”
환 역시 가볍게 대꾸하며 아이를 한번 추슬러 목을 단단히 받쳐 세워 소희가 볼 수 있게 안았다.
“‘아바마마를 구박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주련?”
아이를 앞세워 면피해보려는 환의 장난이었다.
그러나 소희는 아바마마라는 소리에 가슴이 온통 울렁거려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
희고 고운 손을 들어 파들대는 가슴에 살며시 올려두었다.
이대로 심장이 멎진 않을까 싶게 파득거려 무서웠다.
“이런, 답이 없으시구나.”
대답 없는 소희를 향하는 환의 말에도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이 메여,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저더러 ‘휘’를 생각해 거처를 고려해보라던 그날의 환의 말을 잊을 수 없었다.
눈물 바람으로 밤을 지새우게 했던 말이었다.
그녀를 밀어내는 말이었다.
그가 야속했고, 서운했다.
이곳에 남으련다 결심했지만, 혹시라도 그가 떠밀어 보내버릴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조금 전 환의 말에 가슴이 뻐근하도록 기쁘게 울렸다.
자신을 일러 아바마마라고 하는 것을 보면, 있어 달라는 거겠지?
극구 그녀를 닮았다고 말하던 아이에게 아바마마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
“흐음.”
방정맞게 눈물이라도 흘리면 이것이야말로 다시 없을 망신이라.
소희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귀문의 별로 살 것입니다.
매일을 하루같이 달 씨앗을 키울 것이에요.
환을 닮은 달 아이를 많이 받아올 것이에요.
제멋대로 날뛰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전하지 못할 다짐을 굳게 다졌다.
후드득-.
그리고 때맞춰 멈췄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고 어르던 환도, 울컥거리는 마음을 추스르던 소희도. 모두 세찬 빗소리에 창가로 시선을 모았다.
환의 한 팔이 벌어지며 소희를 불러들였다.
“비 구경합시다.”
“네.”
소희는 환이 벌려준 품 안에 쑥 안겨들었다.
그의 탄탄한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그가 둘러주는 팔에 안겨 비를 보고 있자니 괜히 웃음이 났다.
“음?”
작게 죽은 웃음소리에 환이 의아한 듯한 소리를 냈지만 소희는 알려주지 않을 참이었다.
환과 그를 닮은 아기. 그리고 그녀 자신이 이렇게 함께 있는 것이 정말로 가족이 된 것 같다는 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환이 주책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고.
그러니, 가슴을 간질이는 이 말은 그녀가 삼켜야 할 몫이었다.
꿀꺽.
삼킨 말이 또다시 마음을 간지럽힌다.
“흐흥.”
“뭐가 그리 재미난 것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소희는 여태 환이 그러했던 것처럼 애매하게 대답하며 눈꼬리를 활처럼 휘었다.
행복했다.
쏴아아아아-.
짙은 먹구름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섭게 비를 쏟아냈다.
아수라는 사방을 가득 메운 비의 장막에 갇혀 가늘게 떨었다.
뜨겁게 달궈진 바람도 자취를 감추고, 붉은 땅도 물기를 한껏 머금고 그 열기를 꺼뜨리고 있었다.
잦아들지 못한 것은 요괴뿐이었다.
“하아아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돋아나는 요괴를 보며 아수라는 참았던 한숨을 터트렸다.
남겨진 영 모두를 명도를 건너게 하려던 계획이 어긋났다.
“정말 성가시군.”
손에 들린 오죽접선이 그의 한숨에 마치 나부끼기라도 하듯 가볍게 흔들렸다.
눈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빗물을 훔쳐내고는 아수라는 손목을 툭 털어냈다.
손끝에 맺힌 빗물과 함께 접선이 털리며 대번에 길어졌다.
마치 흐르는 빗물을 타고 늘어난 듯 길어진 접선은 이미 그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다.
아수라의 손에 들린 것은 넉자의 장검.
어둠에서 따온 듯한 검에선 냉기가 흘러넘쳤다.
투둑.
아수라의 턱을 타고 흐른 빗물이 가슴으로 떨어지며 작은 소음을 만들어냈다.
“크아아아아아-.”
그리고 그의 앞에서 드디어 땅을 가르고 솟아오르는 요괴가 섬찟한 곡성을 질렀다.
음울한 귀기가 잔뜩 물려 듣고 있기만 해도 절로 기가 질리는 끔찍한 소리였다.
“비를 타고 온 것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냉하게 읊조린 아수라가 검을 가볍게 털었다.
“제…… 제가.”
요괴의 곡성에 잔뜩 질린 표정으로 아수라의 등 뒤에 선 감재사자가 더듬거렸다.
“그러려무나, 둘이나 나설 필요 있겠느냐.”
“그럼…….”
아수라의 의중을 살피는 듯 감재사자가 손에 쥔 검을 다잡으며 표정을 굳혔다.
“크아아아아아아아-.”
회색빛 팔이 온통 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날카로운 손톱을 땅에 박아 넣고는 땅에 박힌 몸을 꺼내며 요괴가 소리를 질러댔다.
뻥 뚫린 동공엔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한때는 의지를 가진 것의 마지막치고는 참 끔찍한 모습이었다.
“지…… 지금 가서 목을 치면.”
감재사자는 아수라에게 허락을 구하듯 중얼거리며 한 발 내디뎠다.
하지만, 감재사자의 움직임보다 아수라 쪽이 더 빨랐다.
철컥-.
앞으로 나서는 감재사자의 가슴 앞을 차가운 검집이 막아섰다.
“두어라. 땅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녀석이라. 지금 목을 친들 땅에 박힌 몸에서 새 목을 만들어 올릴 것이다.”
“그러면 그냥 두어야 합니까.”
“다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수라는 시종일관 덤덤한 말투였다.
무관심한 듯, 혹은 냉정한 듯.
열의 없는 목소리였지만 감재사자는 그가 어떤지 이제는 잘 알았다.
아수라는 예민하고 섬세하게 영력을 다루며, 특히 자비가 없는 사내였다.
타는 듯한 시선을 촘촘하게 늘어진 속눈썹 사이에 숨겨놓기를 잘했다.
그래서, 저 무심한듯한 말투에 모두 속는 것이다.
그의 내리뜬 눈꺼풀 아래 끓어오르는 투지를.
아무도 몰랐다.
“둥지를 타고 옮겨왔겠구나. 잘됐어.”
아수라는 여덟 개의 팔을 모조리 꺼내 올리며 괴이한 소리를 지르는 요괴를 느긋하게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것입니까?”
낮의 아수라는 섬세한 만큼 다정했다.
그는 지금 감재사자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아수라는 염라의 세 번째 불.
귀문을 지키는 이런 시답잖은 일에 올 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귀문만큼 요괴로 골머리 썩는 곳이 없었다.
감재사자들이 요괴에 맞서 싸우는 것이 일상이라고는 하나 모든 요괴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눈앞의 아수라 정도.
아수라는 지금 땅의 요괴를 처음 보는 감재사자를 위해 친절히 가르치는 중이었다.
“팔을 다 꺼내면 이제 몸통과 그 밑에 달린 뱀의 하반신이 단번에 뽑혀 올라올 것이다.”
“그럼…….”
“그때 배꼽 아래, 단전을 노려 단번에 잘라야 한다.”
그걸 어떻게.
감재사자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되든 안 되든 우선 아수라가 알려주는 대로 움직여 볼 뿐이었다.
즉사하지만 않으면 언제든 아수라는 그를 살려놓았다.
일찍이 경험한 대로.
“크아아아아아-.”
요괴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소리를 지르며 뻥 뚫린 구멍으로 마치 바라보기라도 하듯 머리를 감재사자 쪽으로 고정시켰다.
요괴는 자신의 상대가 감재사자임을 아는 것 같았다.
감재사자는 이미 숱하게 죽음의 위기를 넘기며 아수라에게서 배우고 배웠다.
그는 아수라가 도착했을 당시보다 곱절로 강해지고 똑똑해졌다.
“가라.”
아수라는 여덟 개의 팔이 날카로운 손톱을 땅에 박아 넣으며 팔꿈치를 굽히는 것을 보고 짧게 말했다.
이번에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언제든 그를 구해줄 이가 있다는 것은 감재사자를 용맹하게 만들었다.
“타핫-!”
땅을 지치며 감재사자가 검을 빼 들고 요괴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땅 여기저기가 갈라지며 번들거리는 회색 손이 올라왔다.
둥지를 옮겨왔다는 아수라의 말처럼, 요괴는 하나가 아니었다.
감재사자는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희미하게 중얼거리던 아수라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온 힘을 다 쏟아부어야 할 때였다.
“으아아앗!”
힘에 부친 감재사자가 내지르는 기합 소리에 맞춰 아수라가 검을 빼 드는 맑은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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