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비가 오던 날에 (3)
2017.12.29.
비가 내리는 날 푸른 물을 뚝뚝 흘리며 날아든 청조를 받아든 태자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새가 날아온 궤적 그대로 길을 내듯 이어진 푸른 물이 누가 보더라도 관심을 가질만했던 것이다.
“도대체가 조심성이라곤 없는 작자인가.”
마뜩찮은 목소리에 냉기가 잔뜩 물려 사나웠다.
태자가 빗속으로 손을 내밀어 움켜쥐자 푸른 물이 한 움큼 그의 손에 쥐어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푸른 물의 궤적 따윈 깨끗이 지워졌다.
“올라오너라. 빗속에 오느라 고생했다.”
태자는 창틀에 앉아 녹아내리는 깃털을 부리로 다듬으려 애쓰는 청조를 손 위에 올려주었다.
새는 빗물에 녹고 있었다.
청조는 본디 삼천 너머의 것.
삼천에 속하지 못한 실체가 영력이 아닌 물리력에 견뎌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비 오는 날엔 서왕모께서도 사정을 살펴 청조를 날리지 않으시건만 직인은 이 작은 것을 빗속에 날렸단 말인가.
“네 주인이 너더러 죽으라 날렸더냐.”
구르륵.
새가 작게 울었다.
“이 비에 너를 보낼 만큼 급박한 것이 무엇이 있다더냐.”
미련한 것.
장기말을 이토록 헛되게 쓰다니.
지금은 발에 밟히는 들풀도 귀하게 여겨 써야 할 판국이거늘.
태자는 녹아가는 새를 다시 바로 세워 잡고 다른 손에 움켜쥐고 있던 푸른 물을 새에게 쏟아주었다.
태자의 손에서 터져 나온 황금빛 영력이 새를 감싸자 떨어져내리던 푸른 물이 깃털로 고이며 원래의 형태를 찾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 그 몸이 녹아 평상시의 절반밖에 되지 않던 새가 금세 제 모습을 되찾았다.
보송하게 마른 날개를 푸덕이며 새가 울었다.
구르륵.
기쁜 듯 고개를 퍼덕거리던 새가 태자의 싸늘한 눈빛에 얌전히 날개를 접었다.
“네 주인은 또 무얼 달라 앙앙거리는 것이냐.”
하여간 성가신 것이다.
발에 매달린 가죽주머니를 끄르며 태자가 낮게 읊조렸다.
제법 기민하게 군다 귀여워했더니 한도 끝도 없이 앙앙거리며 앙탈을 부리는 통에 태자는 요즘 신경이 예민하게 서 있었다.
이것을 내어달라, 저것을 구해달라.
해다 주는 것에 비해서 물고 오는 것은 늘 하찮았다.
안색이 좋았다던가, 차를 즐긴다던가, 옷차림이 수수했다던가, 붉은 머리 장식을 찔렀다던가.
제길.
쓸모없는 것.
당장이라도 싸안아 오려는 것을 말리는 통에 가만 기다려주었더니, 지관이고 직인이고 하는 꼴들이 그 어느 것 하나 마음에 차는 것들이 없다.
태자는 한층 밝아진 푸른 눈동자를 지그시 감으며 치미는 화를 삭혀냈다.
지관이 어떤 마음으로 그를 섬기는지 알기 때문에 삭히는 화였다.
한참을 길고 깊게 숨을 다스리던 태자가 손에 쥐어진 젖은 가죽주머니를 풀어보았다.
짙게 물든 주머니 안을 밝히는 것은 글자가 분명했다.
“하.”
가득 채워달라는 욕심을 담은 글자를 보며 콧방귀를 뀐 것도 잠시.
태자는 성가셔하는 음색을 숨기지 않고 수관을 불러냈다.
“수관아. 할 일이 있구나.”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자 순식간에 두툼한 손이 나와 공손히 가죽주머니를 받았다.
“또…… 말씀이시옵니까.”
“그래. 가득 채워오려무나.”
“……이미 가득 채운 것을 두 번이나…….”
“네가 지금 누구에게 말을 하는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이냐.”
“송구하옵니다. 하지만 태자 전하. 이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 소신 염려되어 당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만하거라. 내 인내심은 네가 나고 자란 바다만큼 넓고 깊지가 못하느니.”
태자는 이어지는 수관의 말에 짜증스럽게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짓을 따라 허공 사이로 상체를 내밀고 머리를 조아리던 수관의 모습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하지 마라, 이러시지 말라.”
대관절 태자라 말만 이름이지 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하잘것없는 것들에 기대기나 해야 하다니.’
태자는 잔뜩 성이 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렸다.
손 위에 올려진 작은 새가 잔뜩 겁을 집어먹고 움츠러든 게 보였지만, 지금은 만사가 짜증스러워 작은 것에게까지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일 각도 되지 않아 수관이 주머니를 가득 채워 태자에게 올렸지만, 그때까지도 진정이 되지 않아 태자는 냉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겁먹은 새에게 묵직한 주머니를 매달아 주었다.
“…….”
파르르 거리는 날갯짓에도 새는 날지 못했다.
저 작은 것이 매달고 가려는 것은 바로 그의 음심이며 직인의 욕심이었고,
그런 모든 것을 눈감는 수하들의 비틀린 충심이었다.
고결하고 때 타지 않은 삼천외의 새가 저런 것을 매달고 날아갈 수 있을 리 없지.
태자는 손끝을 튕겨 퍼덕거리는 새에게 자신의 힘을 실어주었다.
금빛 무리가 푸른 깃털 사이로 파고들자 조금 전까지 푸드덕거리기만 하던 새가 단번에 날아올랐다.
쏴아아아아아
창밖에서 장대비가 무서운 소리를 내며 땅을 때리고 있었다.
한껏 어두워진 하늘에 새가 주저하며 창틀로 올라섰다.
“두려운 게냐.”
태자는 쉽게 바깥으로 날아가지 못하는 새를 보며 쓰게 웃었다.
마치 소청조가 자신인 양 보여 태자는 머뭇거리는 새를 집어 들었다.
몸이 축 늘어질 정도로 무거운 주머니가, 소희를 향한 자신의 무서운 집착 같았고.
빗속을 날지 못하는 새가 빗속을 날아야 하는 현실이 즉위하지도 못한 채 비를 탐하는 제 상황인 것 같았다.
태자는 새에게 마음을 담아 그의 영력을 두텁게 입혀주었다.
아무에게도 비호받지 못하는 제 신세처럼 처량해지지 말라고.
오래 버티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강은 건널 희망을 가지라고.
“가거라.”
한참을 새에게 영력을 쏟아부은 태자가 새의 꽁지깃을 밀어주었다.
정오가 되자 비는 잠시 잦아들었다.
무섭게 쏟아붓던 비가 가시고 해가 나오자 공기가 한층 싱그러워졌다.
비를 피해 숨었던 새도 다시 나오고 작게 지저귀는 소리가 상큼한 공기 속에 녹아들었다.
“아…….”
귓가를 울리는 소리가 귀엽게도 파고들어 소희는 졸음이 담뿍 물린 눈을 하고서도 작게 미소 지었다.
“일어났어?”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정수리께에서 들려오는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에는 저도 모르게 터지는 비명을 삼켜야 했다.
“!”
깜짝 놀란 듯 커다랗게 떠진 눈에 환이 가득 담겼다.
“더 주무시지 않고?”
“어…….”
소희는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지 잠이 덜 깬 머리로 열심히 생각했다.
간밤 달빛으로 한가득 씨앗을 만드느라…….
“씨앗!”
내 씨앗!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일어나려는 소희를 환이 대번에 감싸 안아버렸다.
“읍!”
환의 가슴에 얼굴이 짓눌릴 정도로 강하게 안긴 소희의 외침은 소리가 되지 못했다.
“잘 잤느냐 인사도 없이 내빼실 궁리부터 하시는 건가?”
소희의 귓가에 얼굴을 끌어내려 빙글거리며 말하는 환의 목소리가 한껏 짓궂었다.
“읏!”
깨끗하고 반듯한 앞니가 도망가려던 소희를 벌주듯 귀를 살짝 깨물었다.
귓바퀴를 타고 오르는 알싸한 통증과 등줄기를 훑어 오르는 이상한 열감에 소희는 환의 앞섶을 쥔 채 끙끙거렸다.
목덜미까지 대번에 붉게 물들어 숨을 고르는 모습이 귀여워 조금 더 놀려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가슴에 닿는 잔뜩 달뜬 숨소리에 곤란해지는 건 이내 환의 몫이었다.
“흐음.”
작게 헛기침을 하며 환이 품에 파고드는 소희를 살짝 떠밀었다.
잔뜩 발그레해진 두 뺨이 이렇게 마음을 울릴 줄이야.
커다란 두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야살스럽게 느껴질 거란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하핫.”
환은 두 눈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즐겁게 웃었다.
“좋은…… 꿈 꾸셨습니까?”
머뭇거리던 입술이 달싹이며, 순진하게도 그가 말한 대로의 인사가 건너왔다.
큰 눈동자가 데구륵 구르며 뻔하게도 창가의 탁자를 찾았다.
“아아. 이렇게 무정한 분이실 줄이야?”
웃음이 절반인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를 타박하듯 희롱했다.
“제……가 무엇을.”
“나보다 씨앗이 걱정되어 냉큼 시킨 대로 인사 하시지 않았냐 이 말이지.”
“그건…….”
아니라고 말 못 하는 순진함에 서운하기는커녕 더할 나위 없이 그녀다워 환은 짓궂게 팔 안에 가둬두던 것을 풀어주었다.
소희의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달빛으로 하계의 어린 것들을 키워내는 달 마마. 더러는 달 어미라고 불렀다.
귀문의 별의 본능이었다.
품어 낳은 것이 아니었지만, 품어 낳은 것과 다름없었다.
달빛이되 씨앗이었고, 씨앗이었으나 아이였다.
아이를 찾는 어미의 본능이니 환은 기꺼워해야 마땅했다.
그는 소희를 놀리던 것을 그만두고는 손수 일으켜주었다.
바짝 마른 무게 없는 몸이 잡아끄는 대로 딸려왔다.
“씨앗들이야 잘 계시지만, 궁금해하시니 보셔야지.”
환은 이불을 걷어내고는 소희를 그대로 창가로 데려갔다.
아침 햇살을 받은 씨앗들은 작은 황금 바다를 머금은 것 같이 잔잔히 빛을 뿌리고 있었다.
각도를 달리해 은근히 빛을 내는 모습이 가히 감탄을 불러 일으킬만했다.
“세상에.”
소희는 떡 벌어지는 입을 황급히 손으로 가리고는 웃는 것도 아니고 감탄하는 것도 아닌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첫 아이들이 되실 예정이야.”
“아이요?”
“아수라도 잘 몰랐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대답에 소희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환은 의자를 끌어 소희를 앉히고 옆으로 자신도 자리를 잡았다.
밤사이 소희가 만들어 둔 씨앗을 깨끗한 수반에 올려둔 터라 환이 슬쩍 밀자 얇은 막에 감싸인 듯한 빛 덩어리들이 출렁거리며 밀려왔다.
“지금은 사실 씨앗이라고 부르기도 어렵지.”
환은 느긋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씨앗이 아니라니요? 아수라께서…….”
“가만.”
환은 놀라서 파득이는 소희를 만류했다.
모정이라는 것인가.
아이로 자라날 수 없다는 그의 이야기에 파르르 떨며 항변하는 소희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환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씨앗’을 하나 집어 들었다.
손끝을 따라 모양이 이지러지는 말랑한 모양새가 그것이 얼마나 한없이 연약한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환은 잔뜩 긴장한 표정인 소희에게 손에 들린 씨앗을 가까이 가져다 대주었다.
코앞까지 바짝.
얇은 막 너머 잔잔한 빛가루가 넘실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보일 정도로.
“이제, 이것을 아이로 만들 참이야. 진짜 씨앗이 되는 셈이지.”
“그걸 어떻게…….”
머뭇거리는 말 속에 담긴 것은 기대였다.
소희가 까만 눈을 반짝이는 것을 환은 놓치지 않았다.
“그러니, 잘 보시라고 그대. 보여드릴 것이니.”
그 말을 끝으로 환은 가볍게 턱을 까딱했다.
손에 들린 씨앗을 보라는 뜻이었다.
소희는 얼른 시선을 돌려 눈앞에 들이밀어진 씨앗을 집중해서 보았다.
환의 손이 닿은 부분에서부터 금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미세하게 피어오르던 금빛 줄기는 이내 보란 듯이 내부를 가득 메울 정도로 진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씨앗 속을 떠다니던 빛가루와 만나 합쳐지고 뭉그러졌다.
황금과 빛의 소용돌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소희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작은 막 안의 진귀한 광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눈이 핑글핑글 돌 정도로 세찬 회오리가 멎자 환의 손에 들린 것은 더 이상 씨앗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 되어있었다.
은근한 황금빛을 머금은.
“달?”
소희는 순식간에 수박만큼 커진 ‘씨앗’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달이었다.
은은한 따사로움과 화려하진 않아도 빛을 머금은 구체.
“아니, 이것이 진짜 씨앗이지.”
“이것이요?”
“그대는 귀문의 별, 지금은 달 마마가 아니니 아이를 키워낼 순 없지. 혼례를 올리고 비가 되면 그대가 키워내는 씨앗은 이런 것이 될 것이다.”
환은 담담하게 설명을 하며 손에 들린 달덩이를 소희에게 넘겨주었다.
“아앗.”
아이가 될 거라는 말에 소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두 손으로 엉거주춤 들어 품에 안았다.
따끈한 온기가 느껴지는 구체는 맥박이 느껴졌다.
두근.
두근.
기분 좋은 두드림이 소희의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진짜 아이입니다!”
깜짝 놀란 목소리가 방안을 짜랑하게 울렸다.
“달님이, 아니…… 아이…….”
“응 맞아. 곧 깨어나실 것이야.”
“씨앗……이라고 하셨잖습니까?”
소희는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졌다.
구슬만한 씨앗은 진짜가 아니고 달덩이가 아이가 되는.
하지만 이번에는 이질감을 느껴 외롭다기보다는 곧 태어날 것 같은 ‘아이’를 보살펴야 해서 마음이 다급했다.
어서 배우고,
어서 익혀서.
이 작은 것을 자신이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소희의 다급한 말투에도 환은 여유로웠다.
“곧. 깨어나실 거야. 음……. 차 한 잔 마시며 기다려 볼까? 방금 일어나셨으니 낮것 상 받기는 이를 테고?”
“차는 됐습니다. 달님이 깨어나시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희는 아예 대놓고 조르기 시작했다.
“어서 알려주세요.”
알을 품듯 온몸으로 둥그런 것을 감싸 안고선 환을 졸라댔다.
“차 한 잔 주어.”
하지만 환은 그런 소희를 본체만체하며 소맷자락을 가만히 정리하며 옷매무새만 다듬었다.
“그러시지 말고.”
“목이 타서 말이 안 나오는 걸.”
두 눈을 가늘게 늘여서 시치미를 떼는 모습이 얼마나 얄미운지.
저도 모르게 눈꼬리가 솟으려고 했지만 소희는 그런 환을 살짝 흘기고는 얼른 침전밖에 있는 궁녀를 불렀다.
“차랑 다담상 좀 내오련.”
“네, 소희님.”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이 들리고 찻상이 들어오기 전 궁녀들이 들어와 얼른 소희에게 소세 물을 건네고 염휘께서 모른 체 기다려주시는 동안 옷도 갈아입혀주었다.
“아이고, 달 아이를 품으셨습니까?”
“잠시 내려놓으셔요.”
“괜찮습니다. 돌덩이보다 단단해서 깨지지 않아요.”
옷을 입어야 하니 내려놓으라.
안 된다.
조심하여라.
괜찮다.
실랑이가 한참이었다.
“분첩이라도.”
“아니 됐대두.”
“연지만이라도 바르셔요!”
“무얼 하러! 달 아이나 이리 다오.”
마지막엔 아예 목청이 돋아져 염휘가 모른 척 하려야 할 수가 없을 만큼 떠들썩해졌다.
이것도 저것도 다 싫다며 오직 달 아이만 내달라는 소희의 말에 뭉클해진 마음을 염휘는 때마침 앞에 놓인 찻물을 한 모금 삼키는 것으로 다독였다.
소희는 옷을 입으러 갈 때와 마찬가지로 단정하고 수수한 차림이었다.
도무지 옷에 욕심을 내지 않는 터라 성장한대도 화려하지 않았다.
입술연지도 찍지 않고 둥실한 것을 안고는 끙끙거리며 걸어오는 모습에 웃음이 터지려 해서 염휘는 재빨리 찻잔을 기울였다.
깨어나기 직전의 달 아이는 무거우니 받아주어야지 하던 것은 잊어버렸다.
울컥 치미는 감정을 다스리기도 벅찼다.
쪼르륵-
맑은소리와 함께 맞은편의 찻잔이 가득 채워졌다.
“곧, 아이가 된다 하셔서 그런지 점점 묵직해지는 기분이에요.”
소희는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손으로 차를 홀짝거리며 말을 꺼냈다.
“묵직할 테지.”
“이렇게 무거워서야. 하루에 하나 만들기도 어렵겠어요.”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게 안긴 것을 사랑스럽게 쓸었다.
“앞으로 그렇게 묵직한 씨앗은 못 보실 테니. 지금 실컷 보아두시는…….”
“네?”
“태어나기 직전이라 갓난아이처럼 무겁다는 것이지.”
“그럼 원래는요?”
“원래는 그대가 처음 만들어둔 씨앗처럼 작고 가볍지.”
“…….”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그것뿐이겠는가.
환은 소희를 보며 실쭉 웃었다.
하루아침 만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니, 오늘은 이 정도까지가 적당했다.
“본래, 삼칠일을 지나야 깨어나는 것을, 내가 완벽한 씨앗으로 만들고 키워두었지.”
“아…… 그래서 이렇게 커지고 무거운 것입니까?”
“어서 차를 마셔두어. 곧, 차 마실 시간도 없이 정신없어질 테니.”
찻잔을 기울이며 말하는 환의 목소린 장난스러웠지만, 그것은 진담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찻잔을 다 비운 순간 안고 있던 둥그런 것이 소리도 없이 갈라지고는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이십 년 만의 첫 아이였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낮의 내궁을 아이의 울음소리가 햇살처럼 따뜻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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