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얼어버린 열풍 (5)
2017.12.18.
환이 돌아가고 다시 혼자가 된 밤이 되었지만, 소희는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을 맛본 참이라 마음이 들떠 쉽게 잠들지 못했다.
황금으로 빛나는 환의 홍안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웠다.
검고, 짙은 갈색의 눈동자에 익숙해진 그녀에게 환의 붉은 눈은 낯설 법도 했건만. 불꽃처럼 일렁거리며 시시때때로 빛을 발하는 보석과도 같은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무서워했던 것이 언제라고.
“흣.”
스스로 생각해도 멋쩍어 소희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이 마음이 참 요사스럽기도 하지.’
손끝에 걸리는 머리카락을 빙빙 꼬며, 소희는 매일 밤 달을 보는 그 자리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았다.
갈대 같은 마음이 그저 사람을 휘두르는 데는 일등이었다.
원수 같다 여기던 마음이, 어느샌가 그를 품었고.
그의 곁을 바라 안달복달하던 것이 새삼스레 그를 밀어내었다.
그래. 새삼스러웠다.
새삼스레 그가 무섭고.
새삼스레 그가 미웠다.
그의 입장을 돌이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여겼던 것은 그저 오만이었던가.
그를 바라던 마음이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거세게 들끓던 마음은 ‘거부’였다.
공포로 얼룩진 과거가 생생하게 떠오르고, 생에 가장 따스했던 날들이 현실같이 다가와 환이 무서웠다.
도망치고 싶었고, 그만큼 원망하는 마음이 들불처럼 번져 그 덩치를 키웠다.
왜 그랬을까.
소희는 탁자에 팔을 괴고 달을 올려다보던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진하게 물린 복숭아꽃 향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소동 끝에 떨어뜨린 것을 그가 다시 쥐여 준 것이다.
“흐음.”
귀한 것이라 그런지 그 향마저 일품이었다.
은근하면서도 진득한 것이 마치 갈급하게 숨을 바라는 사람처럼 늘 향을 쫓게 만들었다.
들이쉬는 숨을 따라 상쾌함이 전신을 녹진하게 파고들었다.
잊지 않고 구석구석.
손끝까지 차오르는 기분 좋은 느낌에 소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얇은 눈꺼풀 위로 비쳐드는 달빛이 그대로 느껴졌다.
하계에 발을 디딘 첫날처럼 얼음장 같진 않지만, 아직도 차가운 달빛이 이제는 시원하다 느껴진다.
‘좋구나…….’
감은 눈두덩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을 기쁘게 받으며 중얼거렸다.
‘이 차가운 것을 좋아하게 되다니.’
소희는 슬핏 미소를 짓고 말았다.
이 와중에도 자신이 한 발짝 더 하계에 가까워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기뻐하는 자신을 발견했던 것이다.
섬뜩하다 느꼈던 것이 언제였던가 싶게 이것을 즐기고 있었다.
얼굴로 한가득 쏟아지는 달빛을 맞고 있으면 전신이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그건 평상시에도 즐기는 기분이긴 했지만, 오늘은 복숭아 향 덕인지 한층 더 상쾌했다.
무언가 탁 터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이 손끝에서 강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아닌 이들 사이에 있었더니, 내가 정말 제정신이 아니게 되었구나.
소희는 감았던 눈을 뜨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턱을 괴고 있던 손끝이 간지러웠다.
손끝에서 터져 나올 것 같다니.
우습기도 하지.
소희는 자꾸만 간질거리는 손끝을 야무지게 쥐며 한숨을 쉬었다.
몽글거리는 손끝에 정말 뭐라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짙어져 이제는 그만 잠을 청해야했다.
“그만 자야지.”
아침이 밝기도 전 소세 물이 올라올 테고. 정신이 깨기도 전에 직인께서 귀한 찻잎을 들고 놀러 오실 테니.
소희는 매일 아침 햇살이 터지자마자 내궁으로 놀러 오는 직인을 떠올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구겨진 치마를 보고 생각 없이 툭툭 털어내는 끝에 뭔가 잘그락거리며 떨어졌다.
마치 눈 결정같이 반짝이는 것들이 두어 개.
“응?”
뭐지?
새끼손톱만 한 것이 은근히 노란빛을 품고선 희게 반짝였다.
작고 동그란 모양새가 꼭 구슬 같기도 하고, 씨앗 같기도 했다.
“어디에서 떨어졌담?”
요즘 들어 궁녀 아이들이 직인께서는 이렇게 고우신데요. 라고 한껏 투정하며 온갖 장신구를 내어주는 터였다.
그래서 성화에 못 이겨 한두 개쯤 작은 구슬이 달린 것으로 몸에 걸치곤 했는데.
생각키에 아마 이것도 어딘가에서 떨어진 게 아닌가 했다.
이것 찾아서 매달려면 아이들이 고생하겠구나.
미안한 마음에 다 찾아 주워놓으려고 막 손을 뻗어 대는 순간.
그 밝고 영롱이던 것들이 눈 녹듯 손끝에서 사라졌다.
“!”
정말 사라졌다.
손끝에 남은 시원한 느낌이 아니라면 꿈이라 여겼을 것이다.
아니, 꿈인가.
소희는 조금 전까지 눈앞에서 보드라운 빛을 발하던 구슬이 녹아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눈을 비벼보았지만 정말 깨끗이 사라져있었다.
“정말 꿈인가?”
멍해진 목소리로 소희는 구슬을 집으려 뻗었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텅 빈 손에 남이 있는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 잠시 정말 졸기라도 했던 건가.
얼떨떨한 마음을 추스르던 소희의 눈에 유난히 반짝거리는 손끝이 들어왔다.
구슬에 닿았던 검지였다.
시원하고 기분 좋은 보드라움이 아직까지 진하게 물려있었다.
그러나 그건 기분 탓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정말…… 녹았어?”
손끝에 은은한 노란빛 가루가 남아있었다.
구슬의 색과 똑같은, 마치 꼭 저 은근한 달빛을 닮은 색으로 잔잔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저도 모르게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소희는 검지 끝을 엄지로 슬슬 쓸었다.
손끝에서 느껴질 리 없는 존재감이 차갑게 흘러들었다.
이게 무엇이길래 녹아버린단 말이지?
기묘함과 궁금함, 그리고 이상한 애틋함에 정신이 아득할 정도였다.
어째서 목소리가 떨리는지.
어째서 가슴이 아픈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달빛을 닮은 구슬이,
녹아버린 모습이 애잔해 슬펐다.
소희는 순식간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울지 않으려 몹시 애를 썼다.
왜 이래.
정말 나 왜 이래.
또 달빛에 취한 건가.
그 언젠가처럼 달빛에 취해 몽롱하게 한밤을 달리던 그때와 같은 것인가.
겨우 구슬 한 조각에.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정상인가.
소희는 믿기지 않는 현실과, 믿을 수 없는 감정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은근한 황금빛으로 빛을 발하는 손끝만을 바라보며 마냥 떨고 있을 때였다.
환한 달빛을 가리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똑똑-.
뭉툭한 것이 창틀을 두드리더니, 이내 고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희님?”
“아……수라!”
소희는 창문 바깥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는 아수라를 보며 낮게 부르짖었다.
새빨간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틀어 올린 아수라는 드물게도 잔뜩 흥분한 기색이었다.
“차를…….”
“소장은 본디 차를 즐기지는 않습니다.”
“그럼…… 다과?”
“아닙니다. 그건 풍천이 즐기는 것이지요.”
“그건 그렇지요.”
소희는 황망히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눈썹을 미미하게 찌푸린 아수라를 보며 웃었다.
절레절레 내젓는 고개가 말하지 않아도 질색하는 것이 선명했다.
“아…… 그러면…….”
소희는 말을 흐리며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면, 이제 이리 오십시오.”
아수라는 말을 흐리는 소희를 대번에 불러들였다.
가늘고 낭창한 손을 뻗어 소희를 청하는 품새는 단호했다.
“…….”
더 이상 머뭇거릴 명분이 없어졌다.
소희는 차를 대접한다, 자리를 치운다며 아수라에게서 떨어져 빙빙 돌던 발걸음을 그녀에게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앉으십시오.”
아수라는 쭉 뻗은 손을 의자로 늘어뜨렸다.
“아수라께서도 앉으세요.”
“앉을 것입니다.”
가벼운 눈짓으로 소희를 재촉하는 그는 일견 무례해 보였으나 그만큼 초조해 보여 소희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아수라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소희가 자리에 앉자 아수라는 그대로 몸을 돌려 소희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
“소장에게 손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조금 전까지 덤덤하고, 고아했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소희의 손을 청하는 아수라는 정중했고, 조심스러웠다.
간원하듯 무릎 위에 올려진 손이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소희는 맑게 빛을 내는 아수라의 붉은 눈동자를 보다 홀린 듯이 손을 내밀었다.
알고 있었다.
아수라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은근한 황금빛 가루가 묻어있는 바로 그 손이었다.
아직 흔적이 남아 있을지 없을지도 확인도 해보지 않고 소희는 얌전히 손을 내맡겼다.
소희의 손을 조심스럽게 받아든 아수라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손에 닿은 아수라의 손은 몹시 보드랍고 따스했다.
잔뜩 긴장한 듯 어쩔 줄 모르고 그녀의 손을 받아든 아수라는 두 눈을 소희의 손끝에 두고서 미동이 없었다.
“하아…….”
내민 손이 부끄러울 정도로 오랜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수라에게서 드디어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날숨 끝에 가느다란 떨림이 묻어 있었던 것도 같았다.
“달 마마…….”
쉰 것 같이 한껏 낮아진 목소리는 잔뜩 억눌려있었고, 형편없이 떨리기까지 했다.
“네?”
“참이십니까?”
“네?”
아수라는 소희의 질문에 질문을 되돌렸다.
“무엇을요?”
답을 바라듯 새빨간 눈동자를 소희의 얼굴에 적나라하게 맞대온 아수라에게 또다시 질문했다.
이번에도 뜻 모를 소리를 할 거란 생각에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수라는 소희의 말에 딱 부러지는 말투로 대답했다.
“귀문의 별로 남아주시렵니까?”
풍천이 묻고 또 물었던 그 이야기였다.
이 염라의 불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사람 말을 도무지 믿지 못하는 병에 걸린 모양이었다.
염휘가 영혼의 맹약을 받으라 할 때 역시 받아두어야 했던 것일까.
소희는 은은하게 퍼지는 복숭아꽃 향기를 담뿍 들이마시며 반쯤은 장난스러운 마음으로 투덜거렸다.
“그 답을 백번쯤 되돌려 드려야 할 모양입니다, 아수라.”
“소장 귀가 멀도록 들려주십시오.”
소희의 말에 아수라는 한술 더 떠서 매달렸다.
“귀문의 별로 남아주시렵니까?”
아수라는 웃지 않았다.
바짝 마른 입을 할짝, 붉은 입술로 축였을 따름이었다.
“귀문의 별로 살 것입니다.”
“귀문의 별로 살아주실 겁니까.”
아수라는 소희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또다시 물었다.
“그렇게 살 것입니다.”
“소장, 달 마마를 뫼실 수 있겠습니까.”
“달 마마가 될 것입니다.”
환이 밀어내지만 않는다면.
소희는 뒷말을 태연히 삼키고 온통 붉어진 눈꼬리를 한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수라를 보았다.
그가 어째서 이러는가를 묻기보다 그저, 처음 보는 안쓰러운 표정을 한 아수라를 달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아수라에게 잡힌 손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맞닿은 손이 주는 온기가 오히려 다정했다.
“안심하세요.”
이 말을 꼭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두 눈에 빛을 잔뜩 머금은 아수라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믿으라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믿어달라 부탁하는 거예요. 도와달라 사정하는 거구요.”
“소장이 마마의 힘이 되어 드릴 것입니다.”
“그러니 알려주세요. 아수라께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 이유가 있으실 테죠.”
소희는 맞잡은 아수라의 손에 힘을 줘 그녀를 끌어당겼다.
아니, 일으켜 세웠다.
비어있는 의자에 앉으시라 손에 힘을 줘 당겼다.
손끝을 타고 지잉- 뭔가 울렸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아수라가 소희의 손을 잡은 그대로 힘을 줬다.
아수라를 끌어당겨 앉히려던 소희가 간단히 끌려 일어났다.
애초에 비교가 되지 않는 힘이었다.
화려한 미녀라고는 하나, 아수라는 전장의 사신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무예가 출중했다.
그녀가 검을 뽑아 들면 검격 안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었다.
단칼에 대여섯씩을 쳐내는 무위를 가진 장수였다.
소희 같이 가늘가늘하고 힘없는 여자쯤이야 한 손으로 휘두르는 것이 문제 될 리 없었다.
아수라가 잡아당기는 대로 소희는 힘없이 딸려갔다.
허둥지둥 끌려가는 대로 다급하게 내딛어진 발끝이 멈춘 것은 바로 소희가 매일같이 달빛을 쬐는 바로 그 탁자 앞이었다.
차가운 달빛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바로 그 자리.
아수라는 정확히 그곳에 소희를 세웠다.
“이 정도면, 직접 보셔야 합니다.”
“무슨?”
아수라는 이번에도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찡하게 울리고 간질거리는 소희의 손을 잡아 그대로 달빛 아래에 들었다.
“아수라.”
“보십시오.”
아수라는 자신이 거머쥐고 있는 소희의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녀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소희의 손은 어느새 빛을 머금고 있었다.
손끝이 온통 은근한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잘 보십시오.”
놀란 표정인 소희가 보이지 않는지 아수라는 다시 말했다.
살짝 들뜬 그녀의 목소리에 놀랄 겨를도 없었다.
간질거린다 생각하던 손끝에서 빛무리가 뭉치며 작은 구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어?”
“…….”
“이건?”
소희가 놀란 듯 계속 말을 더듬었지만, 아수라는 소희의 손을 들고 계속 달빛을 쬐게 할 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잡은 손을 놓아주는 일은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놓으면 안 됐다.
손끝에서 맺혀나는 작은 씨앗 같은 구슬이 점점 또렷하게 맺히는 걸 지켜보는 소희가 놀라서 어쩔 줄 모르고 몸을 떨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
“보이십니까?”
“이거…… 아까. 그…… 구슬…… 어…….”
말이 되지 못한 소리가 부스러기처럼 마구 튀어나왔지만, 아수라는 소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아는 눈치였다.
“구슬을 보셨습니까?”
“이거 아까 옷에서 떨어진…….”
“정확히는 씨앗입니다.”
아수라는 그즈음에서는 웃었던 것 같았다. 붉은 입술을 매끄럽게 늘어뜨려 상냥하게.
상냥이라니.
소희는 낯선 아수라의 표정에 깜짝 놀라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옷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소희님 손끝에 맺혀 있었던 것이었을 겁니다.”
“제 손끝?”
“네.”
“이곳 달빛은 참 신기하네요. 차로 마시더니 씨앗으로도 자라고.”
“크흣.”
소희의 천진한 말에 아수라가 쥐고 있던 소희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손끝에 매달린 ‘씨앗’이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어서 소희는 아수라가 손을 놔주어도 그대로 손을 허공에 든 채 가만히 있었다.
아수라는 붉은 머리채를 흐트러뜨리도록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
굉장히 웃긴 것을 마주한 듯, 요염한 눈꼬리에 눈물이 매달리도록.
“마마, 이곳의 달이 신기한 것이 아니옵니다. 언제쯤 진정한 달 마마가 되시렵니까. 이미 달 씨앗도 잉태하시는 분께서.”
“달 씨앗.”
“씨앗입니다. 달에게서 받은 월력을 마마께서 씨앗으로 품어주신 겁니다.”
“제가요?”
“네, 귀문의 별이라면 응당 본능적으로 하시는 일이지요.”
아수라는 친절하게 말을 하며 엉거주춤하게 팔을 들어 올리고 있는 소희의 손을 가만히 잡아 내려주었다.
“어…… 이거 조, 조심!”
손끝에서 영롱한 진줏빛을 내는 씨앗을 보고 소희가 기겁하며 비명을 지르듯 낮게 외치자 아수라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빈 것입니다.”
길쭉한 손가락으로 톡- 보석 같은 씨앗을 건드리며 은근해진 목소리로 아수라가 귓가에 속삭여왔다.
“염휘께서 품어주셔야 진짜 씨앗이 되는 것이지요.”
“예?”
정확한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후끈, 두 뺨이 불붙은 듯 달아올랐다.
“달 아이의 웃음소리가 끊긴 지 벌써 이십 년이랍니다 마마.”
“그…… 그게…….”
“어서 달 아이를 내려주셔야지요. 아롱이다롱이 가리지 말고 많이 주십시오.”
“아, 아, 아수라!”
“하하하하하하하”
어디까지가 농인지 알 수 없었지만, 소희는 아수라가 거의 침전 문을 뜯듯이 열고 달려들어 자신을 살핀 것이 자신이 정말로 ‘귀문의 별’에 한 걸음 다가섰기 때문인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짓궂은 소릴 듣고서도, 두 뺨이 한껏 달아올라서도, 같이 웃었던 것이다.
기뻐서.
좋아서.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