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얼어버린 열풍 (3)
2017.12.11.
염휘의 손가락 끝에서 터져 나온 황금빛 영력은 부드럽게 소희를 감쌌다.
머리끝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흩날리는 옷자락 하나 놓치지 않고 눈부시게 일렁이며 차곡차곡 전신을 금빛으로 물들여 놨다.
“아…… 저도?”
온통 금빛으로 물든 소희는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 두려움에 젖은 목소리로 염휘에게 물었다.
조금 전 풍천을 어떻게 치유했는지 똑똑히 봐두었다.
희게 질린 풍천의 뒤로 마치 공간을 가르고 나오듯 나타난 염휘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곧게 뻗은 손가락을 타고 금빛 실이 일렁이나 싶더니 순식간에 빛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해일같이 끝없이 몰아쳐 쏟아지는 황금 물결.
그 안에서 풍천이 얼마나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는지 똑똑히 보았더랬다.
“흐…….”
저도 모르게 긴장감에 두 주먹이 꽉 쥐어져 하얗게 뼈마디가 도드라져 올라왔다.
소희는 두 눈을 꾹 감았다.
눈에서 하루 종일 피를 흘리면서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던 풍천이었다.
그랬던 그가 얼마나 절절하게 비명을 토해냈던가.
곧 자신에게도 닥칠 고통을 예상했건만, 아무리 기다려도 생각했던 아픔이 닥치질 않았다.
전신을 타고 온화하게 매만지는 황금 물결이 그저 차게 식은 몸을 따사롭게 보듬었을 뿐이었다.
시야가 온통 화려하게 물들어 있는 것은 근사한 경험이었다.
오늘 내도록 은근한 한기에 떨었던 몸이 삽시간에 노곤해졌다.
마음이 풀어지며, 잊고 있던 안도감이 찾아왔다.
차게 식은땀을 흘리던 몸이 피곤에 젖어 까무룩 잠이 들려고 했다.
‘안돼!’
소희는 저도 모르게 꾸벅거리며 떨어지는 고갯짓에 놀라 화들짝 눈을 뜨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는 흐리멍덩하게 잠겨 드는 의식을 깨워냈다.
눈을 굴려 이곳저곳을 바라보던 소희에게 염휘가 보인 건, 어쩌면 당연했겠지만.
황금빛으로 일렁거리는 시야 끝에 저를 내려다보는 염휘의 다정한 눈빛이 참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설레였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울컥하며 따끈한 것이 솟아올랐다.
“…….”
소희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벌릴 때.
목덜미가 잠시 따끔하더니 기분 좋던 염휘의 영력이 모조리 거둬졌다.
그리고 소희는 자신이 말하려던 것을 죄 잊어버렸다.
가물가물 떠오르려던 것이 깨끗하게 지워졌다.
갸웃.
고개를 기울이며 애를 썼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찰나에 지나간 감정과, 잊혀진 기억이 그녀의 입을 다물렸다.
황금색으로 잘 여며진 소희의 목덜미는 이내 유백색으로 희게 빛을 머금었고, 온통 푸른 망사에 싸인듯하던 전신 역시 말끔해졌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를 되찾은 후에도 소희의 눈에 어린 공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염휘는 다시 매의 형상을 갖춘 자신의 새를 데리고 기꺼운 표정으로 자리를 뜬 풍천을 배웅하고 나서 소희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나 번번이 자신이 한발 다가설 때마다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뭔가를 참아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니 입맛이 썼다.
풍천이 우려하던 그녀에게 어린 사특한 기운은 없었지만, 염휘가 느끼기에도 소희는 어딘가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유순하기 그지없는 커다란 눈도 그대로이고, 말간 표정도 다를 바가 없었는데 어째서 자신을 꺼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염휘는 제게서 두어 발자국 떨어진 채 어색하게 미소를 짓는 소희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 보라지.’
그의 작은 숨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며 희게 굳는 소희를 보며 염휘는 도대체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지 골몰했지만 알아낼 방도가 있을 리 없었다.
시선을 깔아 내린 풍성하고 까만 속눈썹이 하얀 얼굴에 푸른 그림자를 드리워 소희는 드물게도 거리감 느껴지는 냉한 분위기를 풍겼다.
염휘의 시선이 순식간에 깊어졌다.
그의 머릿속에 스친 오래전의 기억이 이런 모습의 그녀를 본 적 있다 알려왔다.
“!”
아름답고 단정한 홍안이 크게 뜨이며 애처롭게 흔들렸다.
염휘는 이런 소희를 알고 있었다.
유순하고, 상냥하지만 엄격하게 자신과의 거리를 벌려놓던 그녀를.
그건 바로 오월 초하룻날 달이 밝은 산속에서의 그녀였다.
표가 공자와 혼인을 약조하였노라, 그녀를 붙잡아 주겠다며 손을 내민 염휘에게 무례하다 다부지게 꾸짖던 바로 그녀였다.
불꽃이 일렁이던 그의 홍안에서 불길이 사그라들고 생기가 꺼져 들었다.
“소희, 그대.”
‘마음을 정한 것인가.’
머뭇거리는 염휘에게서 더 이상의 말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대신 작은 손을 움켜쥐고 겁먹은 표정으로 제게서 떨어져 있는 소희에게 가만히 그 시선을 맞출 뿐이었다.
‘그렇군.’
이제야, 이해가 된다.
매일 차곡히 쌓여가던 인연의 고리가 쌓이지 않았다.
염휘는 요 근래 고리를 다지던 술법이 더 이상 발동하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 연유가 궁금하던 차였는데, 오늘 소희를 보고 나자 알 것 같았다.
소희는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다.
아마 그러기 시작한건 최근이었겠지만, 부정당한 인연은 더 이상 연을 쌓을 수가 없다.
그러니 그의 가슴에 새겨진 인연의 고리가 멈추어 있는 것일 테다.
염휘는 흐릿하게 올라온 그녀의 이름자를 떠올리며 가슴 한가운데께를 가만히 눌렀다.
“크흣-.”
못 견디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겁먹은 그녀를 앞에 두고도,
더 이상 연을 쌓아 올리지 않는 인연의 고리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도,
미련을 부리는 자신이 딱하기 그지없어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것이 업보란 말인가.’
이름 없는 강에서 발을 내딛자마자 염휘가 한 것은 안력을 최고치로 돋워 지평선 너머 아물거리는 염라궁, 그 아득하고 내밀한 곳에 계실 소희를 찾는 것이었다.
붉게 물든 그의 이름자를 품고 있는 그리운 이의 안위를 살피고 말았다.
선연한 붉은 색으로 빛나는 그의 이름자는 그녀의 무사함을 이름이라, 다급히 회궁하는 가운데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궁 후원에 날다시피 도착해 발을 딛자마자 쓰러져가는 제 수하에게 다급히 영력을 쏘아 보내면서도 시선은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뜯어져 나간 자신의 황금진과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비틀린 속박의 인에 잠식당한 그녀를 보면서도 풍천을 먼저 추스르게 했던 건,
비틀렸다고는 하나 속박의 인이 전신을 삼킨 상태서도 자신의 영력을 담은 머리꽂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검은 머리타래에서 홀로 빛을 내던 그의 마음.
붉게 물든 그의 마음이 달빛에 달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나.
'마음이라 건넨 것은 그저 하찮은 머리꽂이일 뿐이었나.'
염휘의 긴 눈매가 처연하게 내려앉았다.
비단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반보 뒤로 물러섰다.
“무안하이. 생각을 정하신 건가 그대?”
마치 일상을 이야기하듯 물 흐르듯 담담한 어조는 여상했으나 염휘의 눈빛은 차게 죽어있었다.
매달려보련다 호기롭게 웃던 하계의 지존은 공포에 물든 귀문의 별에 눌려 그 마음을 거둬들이려 했다.
그러지 않으려 했지만 시선이 자꾸 희고 가느다란 목덜미로 향하고 마는 것이다.
끔찍했던 과거에 고통받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용서받지 못하는 그 역시 매일 견디기 힘든 형벌을 받고 있었다.
그날은 과거였으나 여전히 살아 현재를 함께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바라는 가난한 마음이 마지막 기회를 바라였으나, 아쉽게도 허락되지 못할 모양이었다.
염휘는 안절부절못하는 소희를 보며 가만히 미소 지었다.
달빛 아래 빛을 뿌리는 은발에 다정한 빛을 머금은 홍안은 아스라했다.
달싹이던 입은 끝내 말문을 열지 못했다.
대신 몹시 느리고, 세심한 동작으로 소맷부리에서 뭔가를 찾아 꺼내 들었다.
여유 있다 못해 느릿한 염휘의 손놀림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움칫거리며 경계하는 소희를 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소매에서 나온 것은 아직도 그 꽃이 싱그럽기 그지없는 복숭아 가지였다.
“!”
뜻밖의 꽃에 소희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개한 것과 막 피어나는 것,
그리고 봉우리인 채인 꽃송이들이 마구 뒤섞여 곱고 보드라운 꽃잎을 한껏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염휘는 길고 섬세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보드레한 꽃잎 한 장 스치는 법 없이 풍성한 가지를 고쳐 쥐었다.
단지 꽃송이를 다독이며 가지를 돌려 쥐었을 뿐인데도 사방은 짙은 도화향에 물들었다.
“이거.”
염휘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남의 것인 양 어색했지만,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마구잡이로 날뛰는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마음이 변해 그녀에게 죄를 더 짓기 전에 말을 해야 했다.
“받아 두어. 사신의 문을 건널 때 도움이 될 것이니. 복숭아 가지는 삿된 것을 쫓는 힘이 있다고 해.”
마치 재잘거리는 어린 것을 앉혀두고 타이르는 아비처럼 염휘는 자애로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서왕모께서 기르시는 천도의 동쪽 끝 가지이니, 그 상서로움이야 따를 것이 없을 테지. 그대.”
염휘는 말을 하다 말고 파르르 떨리는 숨을 골랐다.
“그대…… 짐의 곁에 있지 않더라도 드리고 싶은 것이니 받아두어. 이런 험한 곳에서 사신의 문을 건너자면 무척, 고단할 것이다 하여 부러 청해 얻어 온 것이니 싫다 말고.”
흔들림 없는 어조로 말을 잇던 염휘의 긴 눈썹이 끝내 가늘게 떨렸던 것도 같았다.
“어딜 가시든. 지니고 계시라 청하는 것이니.”
염휘는 복숭아꽃이 탐스럽게 핀 가지를 소희에게 조금 더 가깝게 내밀었다.
그는 복숭아 가지를 든 채로 미동도 없이 소희를 기다렸다.
머뭇거리는 하얀 손이 오랜 시간을 깨고는 내밀어졌다.
손이라도 닿을까 봐 조심하며 복숭아 가지를 얌전히 받아갔다.
“고맙습니다.”
주저하는 그녀의 손이 가지를 제대로 움켜쥐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염휘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꺼내도록,
그는 한 걸음도 다가오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들의 사이는 단 세 걸음이었다.
하지만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복숭아 가지가 목숨 줄이라도 되는 듯 쥐고 있는 소희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염휘의 손이 아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움직였다.
또 무엇을 건네려 함인가 기대하는 소희에게 닿아온 것은 염휘의 따뜻한 손이었다.
스치듯, 가볍게 뺨을 살짝 건드리고 떨어진 손이 주는 온기에 소희는 그제야 자신이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새, 차가워졌어.”
추운 게야?
덤덤한 듯, 애잔한 목소리로 염휘가 물었다.
그녀를 걱정하는 목소리에는 숨기지 못한 애정이 담뿍 물려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달구었다.
잠깐이었으나 그가 주었던 작은 온기는 소희가 잊고 있던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낯설고 외로운 이곳에서 자신을 품어주던 단 하나의 온기.
능글맞은 사내의 얼굴로 자신을 품어주던 그의 너른 가슴.
은애하여 주겠노라, 자신의 곁에 귀문의 별로 서달라 당부하던 아름다운 보석 같던 그의 홍안.
그의 홍안엔 시들지 않은 불꽃이 있었다.
찬란한 그의 불꽃에 단순간도 매료되지 않았던 적 없었다.
소희는 쓰라린 목덜미를 가만가만 누르며 다른 손으론 그가 쥐여준 복숭아 가지를 꼭 쥐었다.
상서로운 기운이 담긴 짙은 향에 심신이 청량해지고 지친 마음이 부드럽게 풀어진다.
‘이것이 바로 선인이 먹는다는 천도의 향인가.’
소희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가슴 구석구석 향기로운 내음을 차곡차곡 채웠다.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염휘와, 그의 다정한 홍안이 떠올리게 하는 온기.
그리고 짙은 도화향으로 가득 찬 가슴이 주는 벅찬 감정 때문인지 소희는 목덜미가 더 이상 쓰라리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잠시였지만 어쩐지 슬프게 웃는 염휘가 무섭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여 그의 마음을 바라던 수줍은 그녀의 연정이 작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에게 말하라고.
“이……렇게 신경 써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나절 내내 눈물이 차오르게 아프던 목이 내는 소리는 썩 곱지 못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거칠지 않아 다소간 안심이었다.
이대로 통증이 잦아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희는 저도 모르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염휘의 온기를 쫓아 뺨을 어루만지던 손을 그대로 목으로 가져가 감싸 쥐었다.
염휘의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을 따라 터져 나오던 그의 황금빛 영력이, 또한 제 목을 감싸 안는 것을 느꼈다.
눈앞이 부시고 황홀할 정도로 따스한 느낌에 참았던 숨을 터트리던 자신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어째서일까.’
‘왜 이렇게 미운 마음을 해서는 앙심을 품듯 구는 것일까.’
소희는 이미, 용서하고 지나간 일에 왜 다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납득할 수 없었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의 곁에 서고 싶다.’
소망했었다.
‘그의 반려로 살겠다.’
다짐했었다.
소희는 목덜미를 포근하게 감싸던 염휘의 영력을 떠올리자 마음이 다시 한 번 노곤하게 녹아드는 기분을 느꼈다.
‘자신에게 염휘는 항시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상했다.
자신의 마음이 참 이상했다.
그리고 녹진하게 풀어진 마음 끝에 야차 같고 사납기 그지없는 괴물을 마주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잦아들었다.
염휘는 저를 찢어 죽이던 괴물 같은 이가 아니었다.
저를 위해 서왕모의 천도 가지를 꺾어오는 다정한 이였다.
저 고아하고 찬란한 이의 옆에 서기 위해 마음 앓이를 했던 것이 바로 어제였다.
‘……아아…… 환.’
그가 건네준 고운 머리꽂이에 의미를 부여하며 조금이나마 그와 함께할 명분을 따지던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고약한 마음이 들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소희는 마음이 진정되자 제 곁에 서서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봐주는 염휘,
아니 환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환’이었다.
염라대왕이 아니었고, 하계의 지존이 아니었다.
소희는 그저 ‘환’을 바랐었다.
이렇게 떨어져 말끔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뺨을 쓸고 지나간 손가락이 주는 작은 온기에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그 언젠가처럼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환은 자신이 기댈 하나의 마음붙이였다.
몹시 고약하게 군 자신을 밀어낼지도 모르지만, 소희는 자신에게 닿던 주저하던 환의 손길을 떠올리며 용기를 냈다.
“언제나, 이렇게 다정히 아껴주시어.”
사르락-
치맛단이 바닥을 쓰는 소리가 천둥같이 귓가를 크게 울렸다.
“그저 행복하답니다.”
머뭇거리는 소희의 작은 손이 가만히 염휘의 가슴께에 닿았다.
“무척…….”
하지만 조심스러운 뒷말이 채 이어지기 전.
소희는 무척이나 강한 힘으로 자신의 팔을 감아쥐고 당기는 그의 손에 그대로 딸려가 풀썩 안기고 말았다.
기다렸다는 듯 차게 식은 어깨를 감싸 안는 그의 단단한 두 팔과, 정수리에 내려앉는 그의 얼굴이 느껴졌다.
눈앞을 가리듯 흩날려 내린 그의 은발이 눈부셔 소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주 댄 그의 가슴에서 들리는 심박이 무척이나 커다랗게 울렸다.
소희는 뺨이 짓눌리도록 더더욱 바짝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고,
염휘는 그런 소희를 밉다 밀지 않고 더욱 세게 안아주었다.
마침내 희박한 숨이 터져 나와 다급하게 공기를 마실 때까지.
마지막인 듯,
온 힘을 다해.
“소희야.”
다정히,
끝없이.
그녀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눈물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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