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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왕의 신부-37화 (37/114)

37. 얼어버린 열풍 (2)

2017.12.08.

골수까지 뻗치는 고통이었다.

눈을 칼로 도려내듯 견디기 힘든 아픔엔 익숙해질 재간이 없었다.

그저 참을 뿐.

벌써 몇 번째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면건을 갈았건만, 그때마다 면건은 채 일각도 못 채우고 흠뻑 젖어 나왔다.

“흐으음.”

풍천은 급속도로 영력이 고갈됨을 느꼈다.

눈을 헤집는 이 살 떨리는 고통은 아까의 그 푸른 실타래 같은 것이 단순히 상처를 낸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핏물에 함께 쓸려나가는 영력은 부질없이 흩어져 내렸다.

이미 사방은 어둑하게 땅거미가 지고 있었고, 소희의 전신은 새파랗게 물들다시피 해있었다.

촘촘하고 밀도 있게 짜인 거미줄 같은 그것은 마치 푸른 망사로 그녀를 감싸놓은 것 같았다.

그녀에게 영력을 쏟아부어도 봤지만, 그때마다 오히려 몸으로 번지는 푸른 실의 기세만 더욱 빨라졌을 뿐이었다.

풍천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두려워하는 그녀 곁을 지켜주는 것뿐.

이제 풍천의 오른쪽 눈은 수시로 영력이 풀렸다.

바닥을 드러내는 그의 영력이 한쪽 눈에만 힘을 두르는 것조차 버거워하기 시작했다.

풍천은 자꾸만 흐려지는 오른쪽 눈에 다시 한 번 힘을 실어 무겁게 깜빡였다.

“안으로 들어가셔서…….”

소희의 떨리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두드렸다.

곧, 달이 뜰 것이다.

예전보다 포근해졌다고는 하나 아직 월력이 차고 사납기 그지없었다.

영력이 고갈된 채로 월력에 쏘이면 어찌 될지 사실 풍천으로서도 어림하기 어려워 소희의 말을 따라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천이 쉽사리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은 아직도 그녀의 침전 어디선가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나쁜 기척 때문이었다.

이미 소희는 여러 차례 그를 내궁 안으로 청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풍천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침전 안에 무서운 것이 또아리를 틀고 있사온데 해드릴 게 없사옵니다.’

“아닙니다. 내궁을 더럽힐까 걱정이니 예에 머물게 해주십시오.”

‘그래도 그저, 곁이나마 지켜드릴 것입니다.’

풍천 번번이 삼켰던 절망적인 말을 소희가 알 리 없었다.

‘지금 저보다 더 다급한 건 소희님이십니다.’

“피가 멈추지 않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또다시 눈물을 후드득 떨어뜨리며 소희가 낮게 속삭였다.

피로 흠뻑 젖은 면건이 산같이 쌓여있었다.

“소장은 괜찮습니다. 눈물을 그치십시오.”

풍천은 덤덤한 말투로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더 지독한 것이 지금도 소희의 목덜미에서 끊임없이 샘솟고 있지만, 이 가여운 여자는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그를 걱정하고 있어 자신을 실소하게 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는 답답하고 막막했다.

잠식당하는 것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울화가 끓었다.

잡아 뜯어내지는 것이라면 이 손이 잘려버려도, 두 눈이 머는 한이 있어도 풍천이 기꺼이 나섰을 테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저것은 익숙하면서도 몹시 꺼려지는 것이었다.

풍천은 말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푸른 실타래 같은 저것을 엿본 대가로 내어주어야 했던 것은 너무 컸으며 그것은 지금도 차근히 풍천을 무너뜨리고 있는 중이었다.

풍천은 침음성을 삼켰다.

소희 등 뒤로 늘어져 있던 손톱만 한 해가 드디어 꼴깍 잠겨버렸다.

절망처럼 어둠이 다가왔다.

염휘에게 날려 보낸 흑조가 지금이면 서왕모가 계시는 이름 없는 강 건너를 다녀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흑조도 염휘도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사이 해는 착실히 제 위세를 누그러뜨려 마지막 남은 빛무리마저 사그라들고, 온 사방에 완연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두쿵-.

배려 없이 닥쳐든 사실에 풍천의 가슴이 불안함을 못 이기고 사납게 뛰었다.

전신의 피가 차게 식어 내리며 그의 불안함을 더욱 부추겼다.

두쿵-.

바짝 마른 북을 두드리듯 그의 심박이 거세게 울었다.

“풍천,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소희의 작은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그를 채근했다.

그녀도 매섭게 굳은 풍천의 얼굴에서 낌새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풍천의 고민은 이제 결론을 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대로 달빛을 버티든지, 아니면 수상한 기운이 침노한 그녀의 내궁으로 들어가던지.

후원에서 다과를 나누던 시간은 끝이 나버렸다.

“그럼…….”

풍천이 망설임 끝에 뭐라고 입을 떼려고 할 때였다.

등 뒤에서 시작된 무지막지하고도 뜨거운 기운이 단번에 그를 덮쳤다.

반항은 용서치 않겠다는 듯 패도적이고, 무자비한 기운이었다.

등에서 파고든 기운은 심장에서부터 시작해서 곧 전신으로 내달렸다.

몸속의 혈관과 뼈마디를 모조리 녹여버릴 만큼 뜨거운 그것은, 풍천의 눈에 이르러선 절정에 다다른 것 같이 날뛰었다.

“크아아아악-.”

오후 내도록 눈을 헤집는 고통에도 신음 한번 흘리지 않던 풍천의 입에서 무방비하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눈알에 지옥 불을 집어넣고 안에서부터 차분하게 지져내는 그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풍천은 타들어가는 것 같은 왼쪽 눈을 부여잡고 덜덜 떨었다.

벌어진 입에서 검푸른 것이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투툭

“크으으…… 으으윽…….”

투툭

“으아아아아악.”

눈물과 비릿한 것이 한데 뒤엉켜 풍천의 얼굴에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동안 주변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비명만이 어두워지는 후원을 쩌렁하게 메워나갔다.

“흐읍.”

드디어 억겁과 같은 고통이 끝나고 풍천이 갈급하게 들이켠 숨이 달큰하게 전신을 식힐 때.

그의 귀에 그리운 음성이 들렸다.

“괜찮으냐.”

풍천의 두 눈을 가득히 채운 것을 닦아내지도 못한 채 고개를 들어 목소리를 쫒았다.

온몸이 땀으로 푹 절어 무겁고, 당장에라도 쓰려질 것 같았지만, 그 목소리를 찾아 고개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제 꼴이 얼마나 볼썽사나울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눈물과 부정한 것을 토해낸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꽤 험할 테지만, 풍천의 눈은 가늘게 떨리며 제가 들은 것을 확인하려 했다.

“염휘……시여.”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가 갈라지다 못해 바스러져 나왔다.

쿨럭-.

다시 한 번 부정한 것이 그의 입을 타고 터져 나와 바닥을 검게 물들였다.

검푸른 그것은 마치 탁한 해저의 어둠을 보는 것 같았다.

일렁이며, 흔들리는 푸르른 그것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풍천이 토해낸 것들은 살아있는 듯 의지를 가지고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시냇물이 강물로 모여들 듯 큰 웅덩이를 향해 움직이는 모습은 무척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풍천은 드물게 몸을 떨었다.

저것이 자신의 몸 안에 똬리를 틀고 있으면서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츳-.”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땅찮다는 듯 낮게 혀를 차던 염휘의 시선이 한 순간 일렁이는가 싶더니 곧 검푸른 웅덩이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키에에에엑-.”

그리고 그것은 마치 산 것처럼 단말마를 질렀다.

풍천의 목덜미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살아있다니?’

‘소리를 지르다니?’

풍천이 기괴한 풍경에 닭살이 오른 뒷목을 문지르며 바라보는 동안에도 그것은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그것에 일어난 것은 부정한 것을 모조리 태워버리는 염라의 불이었다.

염휘가 꺼트리지 않는 한 ‘무’로 돌아갈 때까지 꺼지지 않는 염라의 불. 염화.

소름 돋는 소리를 내지르던 그것은 이내 먼지도 남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염라의 불이란 그런 것이었다.

부정한 것에는 끝까지 따라붙어 마지막까지 불사르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불이 붙지도, 아무런 위해를 끼치지 못했다.

부정한 것이 불타오르고 난 풍천의 발아래 잔디는 아직도 파릇했다.

그가 흘린 눈물이 그대로 맺힌 것도 보였다.

언제 보아도 신기한 것이었다.

“늦지 않아 다행이다.”

잠시, 멍하게 염라의 불의 자취를 좇던 풍천의 뒤통수로 염휘의 근엄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

염휘는 아직도 염라의 불이 일렁이는 보석 안을 한 채로 풍천을 내려다보았다.

서왕모께 다녀오는 일은 오래된 봄의 관습이었다.

귀한 것을 가꾸고 보내주시는 정성에 상하천의 지존들은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그 고마움을 대신하곤 하였다.

이번 봄서도 서왕모께서 천도를 두 바구니 보내주신 고로 염휘가 아수라를 보내고서 부랴부랴 인사를 다녀오는 참이었다.

본래 서왕모를 찾아뵙는 날이면 이르면 달이 중천에 뜰 무렵, 늦으면 사나흘씩 서왕모께서 계시는 서녘 땅에 머물다 오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오늘 염휘는 무척 무리해서 다녀온 참이었다.

“이 작은 것이 무척 고단하겠더구나.”

염휘의 품에서 나온 것은 풍천이 제 영력을 실어 쏘아올린 흑조였다.

꼭 죽은 듯이 목을 늘어뜨린 모습에 풍천은 대경실색하여 새를 받아 들었다.

흑조는 풍천의 의지를 담은 전령이었다.

제 몸에서 떼어낸 작은 것에 영력을 실어 한 몸이되 한 몸이 아니며, 풍천이면서도 그가 아닌 새였다.

풍천은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힘없이 늘어진 새를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었다.

“어…… 어찌 이렇습니까.”

“작은 것이 무리해서 날아왔느니라. 이름 없는 강을 단숨에 날아, 쉬지 않고 서녘의 땅으로 들어섰지. 영력이 고갈되어 바스라지기 직전이었으나 훌륭하게 제 임무를 수행하였다.”

“아아……. 이 작은 것이.”

풍천은 손에 들린 작은 새 마냥 고개를 늘어뜨린 채 염휘의 말을 듣고 있었다.

커다란 그의 손위에 들린 흑조는 당장에라도 사라질 것 같이 작고 위태로워 보여 풍천은 한껏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해서, 지금 잠시 봉인해두었다. 내가 영력을 나눠줄 수도 있으나 평소라면 모를까 지금 그랬다간 새를 담은 그릇이 깨질지도 모를 일이지. 풀어줄 테니 네가 깨우거라.”

풍천은 염휘의 설명에도 미동이 없었다.

“어째서 그러느냐.”

염휘의 다정한 말에 풍천이 고개를 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생을 버틸 영력이 하나도 남아 있질 않사옵니다. 아마, 오늘 제 사정이 딱했던 고로 이 작은 것이 더 힘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풍천의 말은 타당했다.

영력을 나눠주는 그조차 오늘 본신을 지키기 벅찼는데 그의 기를 받아쓰는 작은 새가 무사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염휘는 딱하기 그지없는 풍천의 말에 빙긋 웃을 뿐이었다.

“저런, 까닥하다간 울겠구나. 염라의 불이 오늘 우는 꼴을 여러 번 보게 생겼느니.”

농이 가득한 염휘의 말에 풍천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자신은 목숨을 다해 귀문의 별을 지키려 했고, 제 생을 나눠 받은 작은 것은 이제 숨이 끊어질 판인데 무정하게 웃는 주인에게 섭섭했다.

하지만 풍천은 우직한 본디 성품처럼 염휘의 짓궂은 농을 참을 뿐 말이 없었고, 결국 지루함에 지고 만 것은 염휘 쪽이었다.

“에잉, 답답한 작자 같으니라고. 매일같이 아수라가 투덜거리는 이유를 알만하구나.”

염휘는 들으란 듯이 투덜거리며 소맷부리에서 작은 무엇을 꺼냈다.

작은 비단 주머니였다.

이제 막 떠오른 달빛 아래 은은한 복사빛이 고운 비단 주머니를 풍천의 손에 무심하게 던져주었다.

“이것이…….”

“열어보아야지.”

염휘는 두 손을 소맷부리 안으로 넣어 숨기고선 턱짓으로 열어보라 말을 했다.

풍천은 작은 새를 제 무릎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두고 염휘가 건넨 비단 주머니를 풀었다.

작은 주머니 안에는 환이 세 알 들어있었다.

주머니 부리를 열자마자 사방을 진동하는 진한 도화향에 머리가 어질했지만 풍천은 그 향긋한 것이 무엇인지 대번에 눈치챘다.

“설마 이것은!”

“서왕모께서 직접 주신 것이다. 이 작은 것이 얼마나 딱하고 장하냐 일러 내리신 상급이다.”

“이것을 서왕모께서.”

“어서 깨워서 먹이거라. 오늘 아침보다 펄펄 날뛰는 녀석을 보게 될 것이다.”

염휘는 정말로 울 것 같은 표정이 된 풍천의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9척이나 되는 장수가 울기라도 하면…….

‘정말 싫군요.’

접선을 팔랑이는 아수라가 단박에 떠올랐다.

덩치가 산만 한 장수가 작은 새에 휘둘려 울고 웃는 모습은 딱히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고,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 풍천의 뒤에 서 있는 소희에게 가고 싶었다.

우는 염라의 불을 달래는 건 사양이었다.

흑조가 물어온 소식은 좋지 못했다.

손바닥에 올려놓은 흑조는 날아오는 동안 영력이 모두 흐트러져 작고 작아진 새는 겨우 손가락 두 개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됐다.

하지만 또랑한 눈은 결연하였으며 그의 손바닥 위를 타고 흐르는 풍천의 의지는 급박했다.

소희를 잠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작은 새가 보고 들었던 것은 풍천의 위기임에랴.

넝마가 되어버린 제 수하를 먼저 구제하긴 하였으나 염휘의 신경은 온통 풍천 곁에 서 있는 소희에게 향했다.

“괜찮으십니까.”

염휘는 작은 새를 보다듬고 환을 먹이는 풍천을 지나 소희에게 한걸음 크게 다가갔다.

한껏 미소 지으며 안심하는 기색이던 소희는 순간 무척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

염휘는 워낙 순식간이라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인 소희를 보며 자신이 착각한 것인가 했다.

하지만 자신이 내민 손에 얼굴이 희게 질리며 목을 감싸 쥐는 소희를 보자 그제야 염휘는 소희 역시 큰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력이 돋아 올라 불꽃처럼 너울거리는 그의 보석안에 비친 소희는 싯푸르게 잠식당해있었다.

겨우 사지의 말단이 온전한 제 색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잠시 궁을 비운 사이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염휘는 낮게 혀를 차며 지금도 끊임없이 푸른 실타래를 토해내는 그녀의 목덜미를 살폈다.

속박의 인이 비틀리며 자신이 쳐놓은 진이 찢겨있었다.

자신의 생이 다할 때까지 흔들림 없을 진이 어째서 이 모양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손보는 것이 먼저였다.

“그대, 이리 와주겠어?”

염휘는 씁쓸한 표정으로 잔뜩 겁에 질린 소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마 내처 거절당할 것이라 짐작한 그의 심사가 표정을 일그러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소희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서도 작은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유순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그녀의 모습에 염휘는 가슴이 아릿하게 울렸다.

그건 은애하는 사내의 마음이기도 했고, 잔악하고 치졸한 질투에 대한 너무나도 늦은 후회였지만.

염휘는 예전처럼 고개 돌리지 않겠다 다짐했다.

무릎이라도 꿇으련다 하던 것은 진심이었다.

이 정도에 마음 아파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후회가 아니라 잘못을 바로잡을 때였다.

그녀에게 올바르게 다시 시작해볼 기회를 얻어야 할 때였다.

“뭘 이리 묻히고 다니는 거야, 이래서야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으니.”

늘 곁에 두어야 하잖겠어.

민망함에 맺지 못한 그의 말이 입안에서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곧 그의 마음을 담은 영력이 염휘의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에서 터져 나왔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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