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소청조의 속삭임 (6)
2017.11.27.
호들갑스러운 표현에 익숙해지니 어린아이 같은 직인의 성정도 한결 이해하기가 쉬워졌다.
소희는 볼을 물들이며 머리를 흔드는 직인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직인은 감정이 격해지면 머리를 흔드는 버릇이 있었다.
기분이 좋아도 흔들고 나빠져도 흔들었다.
그것은 흡사 어린 것이 넘치는 감정을 어쩔 줄 몰라 도리질 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참 귀여운 분이시구나.’
소희는 저도 모르게 어린 여동생을 보는 느낌으로 직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짤랑거리는 비녀의 금편이 화려한 자태로 흔들리며 햇살을 반사하자 소희는 무척이나 눈이 부셨다.
손을 들어 가늘어진 눈 위로 그늘을 드리우자 한결 편했다.
“어머나, 햇살이 괴로우신 겝니까?”
그런 소희의 모습에 직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을 하자 다시 비녀에 달린 자잘한 금편들이 서로 부딪히며 맑은소릴 냈다.
짤랑거리는 그 소리는 무척 맑고 청량해 소희는 가늘게 뜬눈을 부드럽게 접으며 미소 지었다.
직인이 내는 소리가 무심결에 옛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그날도 이랬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양 뺨을 간지럽히며 불어와 뒤집어쓴 장옷이 자꾸만 벗겨졌었더랬다.
그리고 그런 자신보다 한보 앞에 서서 길고 섬세한 손엔 쥘부채를 쥐고선, 눈부신 햇살만큼이나 화사하게 웃으며 기다려주던 다정한 이가 있었다.
그래, 저와 혼약을 했던 그였다.
표가 공자.
아니, 상태자.
그가 웃으며 손을 뻗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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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군요, 햇살이 괴로우신 겁니까?”
“아니, 아닙니다.”
“옆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제 뒤로 오시렵니까? 품어드리지 못하니 가려 드리겠습니다.”
선량한 눈매가 살짝 처져 더욱 순해 보이는 모습의 그가 재촉했다.
소희는 그가 한 말에 금세 얼굴로 열이 오르는 게 느껴져, 장옷을 추키며 가만히 얼굴을 감췄다.
자신을 아껴주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니 살짝 눈을 내리떠 따끈하게 차오르는 것을 감춰야만 했다.
“…….”
가물거릴 정도로 오래전, 부친께서 투박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주던 그 느낌.
그것 외에는 다정했던 기억이 없어, 소희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이리로 오세요.”
애정이 담뿍 물린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아니…… 아니…….”
민망하고, 부끄럽고 기쁘고 설레일 때 어쩌면 좋은지를 일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손을 뻗어 이리 오라 사랑스럽게 불러주는 이에게 수줍게 두 눈을 내리깔고선 도리질 칠 수밖에 없었다.
.
.
.
‘그러지 말 것을.’
소희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은 과거의 자신에게 향한 것이었으나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직인.
소희가 제 질문에 대답한 것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다시 명랑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햇살이 참 좋지 않습니까? 전 이런 날 청조를 데리고 밖으로 종종 나가곤 합니다.”
“그러십니까?”
“아무리 영물이라고는 하나, 타고나길 자유로운 아이랍니다. 하늘을 닮았으니 원 없이 하늘 아래서 날게 도와주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옳은 말씀이십니다. 청조도 직인께서 이리 마냥 아껴주시는 것을 알 것입니다.”
“아이, 과찬이십니다. 이렇듯 얼굴에 금칠을 하여주시니 민망하여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또다시 직인이 소희의 말에 부끄러운 듯 머리를 잘게 흔들자 예의 청량한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흩어져 내렸다.
“소리가 참 좋습니다.”
소희는 직인의 비녀에서 금편이 우는 소릴 들으며 기분 좋은 표정으로 살며시 눈을 감았다.
직인에게선 참 좋은 향이 났다.
아련하기도 하고 풋풋한 향은 금편이 우는 것과 같이 부지불식간에 소희를 과거로 이끌곤 했다.
“그렇지요? 저도 좋아하는 소리이옵니다.”
“네, 무척 좋습니다.”
소희는 눈을 감은 채로 가볍게 대꾸했다.
감은 눈앞에서 복작이며 정신없이 빼곡한 운종가의 거리가 손에 잡힐 듯이 펼쳐졌다.
공자의 도포 자락이 그의 걸음을 따라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흩날리며 소희를 또다시 그날로 이끌었다.
그날은 며칠에 한 번씩 크게 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가지 않으렵니다.”
“법도에 어긋납니다. 남녀가 유별한 것을요.”
평상시와 똑같은 소릴 하며 뒤로 빼는 그녀를 그날따라 공자는, 아니 상태자는 고집스럽게도 청했다.
“곧 혼인할 텐데요. 자꾸 이러시니 실로 섭섭합니다.”
눈을 늘어뜨리며 그답지 않게 가감 없는 마음을 꺼내 보이면서까지 굳이 그녀를 운종가로 끌었더랬다.
“…….”
이걸 어쩐다.
이렇게 환한 대낮에 남우세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아비 되실 분이 부러 간곡히 청하는 것을 물리는 것도 한두 번.
번번이 이러지는 못할 것이다, 하며 따라 나선 참이었다.
아마도 상태자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같이 장이 크게 서는 날이 아니면 꽃 비녀에 비취를 깎아 만든 머리꽂이며 솜씨 좋은 장인이 한껏 기교 부려 만든 참빗같이 고운 것들은 구경을 못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디로 가십니까?”
수줍은 발걸음 끝에 살그머니 물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가긴 어딜 가겠습니까. 그저 구경이나 하시자 나온 것이지요.”
말을 그랬지만 너무도 명확한 발걸음에 목적지가 있음은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설마 장신구를 파는 곳일 줄이야.
차마 생각지도 못했었다.
꽃보다 곱고 햇살보다 눈부신 것들이 놓여 있는 그곳에 남자는 상태자 외에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몸종을 딸린 고운 아기씨들이었고, 그나마도 고르는 것은 격이 떨어진다 하여 대보는 법 없이 부리는 아이를 시켜 얼른 사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랬건만.
상태자는 그날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서서 그녀를 불러들였다.
“이리 와 보세요. 한번 대봅시다.”
“네에?”
놀란 표정의 그녀는 안 보이는 듯, 그는 홍옥을 깎아 박아넣은 비녀를 들어보기도 했고.
“곱습니다.”
귀한 진주가 방울방울 달린 머리꽂이를 대주며 흡족해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아이구, 새색시가 고우니 뭘 해도 다 어울리지.”
기어코 주인이 나와 우스개를 하도록 상태자는 요것도 해보시오, 저것도 어울립니다 하며 사겠다는 것을 한가득 쌓았다.
곱다 싶은 것은 죄다 쌓아 두니 그 양이 대단했다.
“머리는 하나밖에 없사온데 이 많은 것을…….”
“누가 한 번에 쓰시라 하였습니까?”
“잔칫날에나 쓸법한 화려한 것입니다.”
“매일을 그만큼 기쁘게 살게 될 것이니 잘 되었습니다.”
태자의 말은 막힘이 없었다.
그를 만류하려 했건만 태연한 듯 낯부끄러운 소리에 오히려 소희의 입이 다물렸다.
“하오나…….”
“뭐 어떻습니까?”
“하오나…….”
“익숙해지세요. 이보다 더한 것도 해드릴 것입니다.”
태자는 굉장히 단호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아아…… 그랬구나.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그날의 자신은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고, 결국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만류를 해가며 타협을 한 것이 비녀 하나였다.
“평생에 이런 사치는 못 부려봤습니다. 익숙해질 터이니 시간을 주세요.”
“그러니, 오늘은 이만큼 받으십시오.”
실컷 구경은 다해놓고 죄다 무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덧붙여지는 그의 말에 소희도 입이 다물렸다.
화사하다 싶은 것은 태자가 죄다 끌어다 놓은 통에 저것 정리만도 한나절일 터.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이번에는 소희가 한발 무를 때였다.
소희는 고민하는 듯 태자가 골라놓은 것들을 살살 헤치며 그중 가장 단정하게 생긴 비녀를 하나 집어 들었다.
“하나면 족합니다. 요것.”
“그럼 비녀만 전부…….”
“아닙니다. 빈한 살림에 귀한 것을 잔뜩 쟁이면 손을 탈까 저어됩니다.”
“…….”
“다음번에 또 사주시어요.”
그래, 흑단목에 솜씨 좋게 홍옥을 물려 넣은 것이 얼마나 고왔는지 말로는 싫습니다, 안됩니다 하며 안 산다 도리질했어도 은근히 눈에 담겼던 것이었다.
가산을 모두 기민을 돌보는데 써버리고 남은 것은 작은 집 한 칸과 밥술이나 뜨고 살라며 끝까지 남겨놓은 논 조금뿐.
소희의 사정이 얼마나 딱한지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처지에 홍옥이며, 흑단목이며 하는 귀한 것들로 만든 비녀라니.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것이었는데 그래도 요것 하나만, 하고 욕심이 들었더랬다.
그래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는 아니 간다며 상태자가 버티고 서 있을 때, 집어 든 것이 바로 그 비녀였다.
“그럼 이것 하겠습니다.”
혼례 치르고 새아씨가 되면 요것 머리에 찌르고 다니겠습니다.
소희는 제 부끄러운 마음을 그렇게 내비쳤다.
사주신 비녀 찌르고 고운 새아씨가 되어 지아비께 귀애 받고 밤톨같이 예쁘고 씩씩한 사내아이 낳고 사과처럼 어여쁜 계집아이 낳아 알콩달콩 살아보련다.
그런 마음을 그날 살짜기 보여드렸던 것이다.
그럼 이것 하겠습니다. 하는 그 말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거기에 담긴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상태자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밤처럼 새카만 흑단목에 깊고 진한 붉은 색을 머금은 홍옥이 얼마나 어여뻤는지.
‘받기만 하기는 이 손이 부끄럽습니다.’
골라든 비녀 옆에 얌전히 놓인 동곳을 집어 든 것은 그날의 기쁨을 내비치는 소희만의 방식이었다.
‘받고자 드린 것이 아니……!’
‘이 기쁜 마음 공자님께도 드리고 싶어, 드리는 것이니.’
작게 중얼거리며 동곳을 내려놓으려는 태자의 손을 만류했었더랬다.
손끝을 타고 오르던 뜨거운 열기가 지금도 생생했다.
아련한 추억에 잠겨있던 소희는 순간 파드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순간이었지만 뭔가 이질적이고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뱀이 전신을 감싸고 옭아매는 듯한 소름 끼치는 뭔가가 그녀를 상념에서 깨어나게 했다.
화들짝 놀란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맞은 편에서 소청조에게 당과 부스러기를 먹이느라 여념 없던 직인뿐이었다.
뱀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고 이 환한 대낮에 사특한 것이 자신을 노릴 리도 없는데 어째서인지 소희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가라앉고 말았다.
이것은 마치 요괴를 처음 보았던 그 날 같았다.
전혀 그럴 리가 없는 상황에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자신이 부정한 생각을 해서였으리라.
소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차게 식은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과거는 아무리 그리워한들 과거일 뿐이었다.
자신은 이제 귀문의 별이며 염휘의 곁에서 그의 ‘비’가 되겠노라 염라의 불들에게 일러 말하였고, 스스로도 그렇게 마음을 굳혔었다.
그런 자신이 인세에서의 연을 잊지 못하고 정혼자였던 ‘상태자’를 떠올린 것은 분명 올바른 처신은 아니었다.
그랬다.
이것은 부정한 행동이었다.
‘염휘가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한다면.’
소희는 가정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콰드득-
잔인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배덕에는 배려가 없는 법이지.”
음산하고 경멸을 담은 목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신의를 저버렸구나.”
광포한 분노가 핏빛 시선을 따라 무겁게 목을 졸라댔다.
“크으…….”
갑자기 목이 졸린 듯 숨이 쉬어지질 않아 소희는 양손으로 목을 잡고선 괴로운 소리를 뱉어냈다.
순식간에 부족해진 숨은 그녀를 무자비하게 몰아세우며 괴로움에 발버둥 치게 했다.
하지만 벌린 입으론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전신을 훑어내리던 산들바람마저 모조리 말라버린 듯 그녀의 폐부를 쥐어짜내는 고통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눈물과 고통에 흐려진 시야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소희는 바닥에 쓰러져 나뒹군 채로 그저 견디지 못할 고통을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
“소희님!”
쨍하게 높고 날카로운 부름에 소희의 정신이 돌아왔다.
눈앞에는 직인이 소청조를 데리고 서서 돌아갈 채비를 마친 참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당과부스러기를 먹으며 직인의 손바닥 위에서 한참 재롱을 부리던 녀석은 어느새 직인의 어깨 위에서 까만 눈을 끔벅이며 소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소희 앞에 앉아 머리를 흔들며 금편을 울리던 직인 역시 매무새를 야무지게 정리하고선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채였다.
‘도대체 이게.’
어리둥절한 소희가 직인에게 입을 떼기 전.
한발 빠르게 직인의 도톰한 입술이 심술 맞게 삐죽거리며 날 선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이참, 그새 잠이 드신 겝니까?”
“!”
“아무리 햇살에 노곤하다 하시어도 너무 곤히 주무시는 게 아니옵니까? 아니면 제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가 없었사옵니까?”
“자……다니요?”
이해가 가지 않는 직인의 말에 소희가 맹한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직인의 샐쭉한 표정은 풀어질 줄 몰랐다.
오히려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흔들어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투털거렸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렵니다. 곤하신 분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두었지 뭡니까.”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당황한 소희가 두 손을 내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직인이 조금 전까지 새치름하니 뚱해 있던 표정을 풀고선 한층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농이옵니다. 저도 직무가 있는 자이옵니다. 소희님께서도 곤하신 것 같으니 이만 물러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소희는 자꾸만 저더러 졸았다, 곤해 보인다 하는 직인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직까지 전신에 남은 둔중한 통증에 자신은 말을 하는 것조차 벅찼고, 어떻게 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자신이 직인을 앞에 두고 졸았던 것이라면 그야말로 큰 실례를 범한 셈.
소희는 제가 낼 수 있는 가장 공손한 목소리로 사죄를 했다.
“날이 너무 좋고 햇볕이 따스하여 제가 이렇듯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부디 너그러이 넘겨주세요. 밉다 타박 말고 또 발걸음 하여 주실 것이지요?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을 것입니다.”
소희는 자신의 진심을 직인이 알아주길 바라며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벗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저를 잊지 않고 곧 들러주시겠지요?”
직인은 재차 자신에게 미안한 기색으로 말을 건네는 소희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풍만한 가슴이 들썩이도록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참,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제가 더는 못 버티겠사옵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돌아가 보아야 합니다. 일이 있다는 것은 핑계가 아니랍니다.”
“…….”
직인은 잔뜩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소희에게 산뜻한 음성으로 말했다.
“소희님 얼굴만 뵙고 가려던 것이 길어졌던 것이니 오해 마시어요. 내일도 모레도 뵈러 올 것입니다.”
“참이지요?”
직인의 말에 반색하며 다짐하듯 되묻는 소희의 말에 직인이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직인이나 소희의 위치를 두고 보았을 때 무척 격의 없고 일견 무례하기까지 했지만 소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말로 직인다워 그녀와 가까워졌다 생각이 들었다.
“다정한 이가 되자는 약조를 잊을 리 있겠사옵니까. 제가 오지 못하면 소희님께 이 아이라도 보내드릴 것입니다. 만나지 못하는 날은 부디 이 아이를 귀여워 해주시어요.”
직인은 어깨 위의 소청조를 손끝으로 가볍게 쓸며 웃었다.
활짝 웃는 직인을 보며 소희도 마주 웃어주었지만, 여전히 온몸은 아팠고 오싹한 기분에 목덜미에 솜털이 바짝 일어있었다.
햇살이 찬란한 어느 오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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