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33화 (33/114)

33. 소청조의 속삭임 (5)

2017.11.24.

아침 해가 밝으면 조반을 받아놓고 밥을 삼키기가 급했다.

막 눈을 떠서 입안이 깔깔하다거나 잠이 덜 깬 뱃속을 달랠 겨를이 없었다.

소세를 하자마자 앉아서 허겁지겁 밥알을 삼키고 상을 물리면 이제 시작이었다.

“오늘은 요것 어떠셔요?”

고르기도 편하라고 두어 개만 내오는 머리꽂이며, 비녀가 아침 햇살에 반짝거리지만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게 고우니 이내 소희의 입에서는 언제나 같은 소리가 나온다.

“그래그래. 너 보기에 좋은 것으로 해주련?”

촘촘한 참빗으로 흑단 같은 머리를 쓸어내려 정리하고, 꽃기름 살살 둘러 푸른 윤기가 나도록 매만져 마지막으로 비녀며 머리꽂이를 꽂으면 끝이었다.

내궁 아이가 참빗을 막 치우자 바깥에서 손님이 오셨다는 소리가 건너왔다.

“소희님, 직인께서 찾아오셨사옵니다.”

어쩌면 이렇게 딱 맞춰 찾아오신 것인지.

“잘됐구나. 오늘 꽃향기가 그만이니 후원으로 다담상을 내는 게 좋겠구나.”

보스스한 웃음을 매단 목소리가 손님을 후원으로 청했다.

직인은 매일같이 소희를 찾았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오시는 손님을 맞이하는 내궁의 아침도 덩달아 빨라진 건 말할 나위 없었고, 단 것을 즐기지 않는 소희의 입맛에 맞춰졌던 다담상은 언제부턴가 달큰하고 꿀이 찐득하게 묻어나는 것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오셨습니까.”

소희는 전각에 앉아 기쁘게 다담상을 받고 있는 직인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또 와버렸답니다. 아니 이거 이러다 눈치 없는 객이라 미움받겠구나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강을 건너는 것이니, 이것 참 큰일입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너스레를 떠는 직인에게 소희가 질색하는 목소리를 냈다.

“괜스레 하는 소리입지요. 내일도 올 테니 또 반겨달라 능구렁이 같이 침을 바르는 겁니다.”

“아하하하하하. 직인께서는 어쩌면 이렇게 말씀도 잘하시는지.”

“말을 잘하기는요, 매일 베틀만 바라보니, 실이 베틀이 아니라 입에 걸릴 지경입니다.”

“정말 매번 그 재기 넘치는 말씀에 감탄하고 맙니다.”

“전 오늘도 이 미색이 남다른 소희님의 모습에 감탄했어요.”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에 과하다 싶게 흥이 올랐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 웃음은 상대와 주제를 가리지 않고 번졌다.

“세상에! 그런 일이 다 있습니까!”

주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직인이었고 소희는 듣는 쪽이었다.

직인의 이야기는 주로 삼천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으로만 살아온 소희에게는 여간 신기하고 재미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새를 부려 하늘을 날고, 베를 짜듯 각각 다른 사건과 시간을 틀에 걸어 지어내는 운명의 이야기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야기가 그뿐이었겠는가.

직인은 홀로 베를 짜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삼천의 일에 밝았다.

그녀의 말처럼 외따로이 베만 짠다지만, 그녀의 손에 들리는 것은, 사건과 시간.

모든 것이 그녀의 손가락 끝을 타고 지나갔다.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녀의 위치였다.

모든 이야기를 알지만, 오직 혼자일 수밖에 없는 자.

그런 그녀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소희는 좋은 이야기 친구였다.

“삼천에 대해 좀 아십니까?”

별스럽지 않게 물어본 한마디가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예에? 무얼 알았어야 합니까?”

순한 표정으로 되묻는 소희의 얼굴에 직인은 아무 말도 없이 웃는 그녀가 아무것도 몰라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간단하게 끝날 이야기가 자신을 바라보고 반짝이는 눈빛에 힘을 얻었다.

“어머나.”

입을 가리는 손 사이로 흘러나오는 감탄에 자꾸만 해주어야 할 이야기가 떠올랐다.

“또 놀러 오셔요.”

으레 하는 소리일 텐데도, 돌아서는 발걸음에 내일은 무엇을 들려주어야 하나. 궁리하게 된다.

손끝을 타고 흘러간 천년의 시간과, 수천만 개가 넘는 사건이 직인의 입에서 다시 살아났다.

묻혔던 이야기가 떠오르고, 알아야 할 이야기가 늘어 갔다.

오늘도 별스럽지 않게 시작한 이야기가 다시 다채롭게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소희에게서 나오는 감탄과 웃음소리에 직인의 입꼬리가 낭창하게 늘어졌다.

“아하하하하, 그래서 그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말끝에 맺힌 웃음을 따라 직인의 이야기가 노래하듯 흘렀다.

전각을 짜랑하게 울리는 쾌활한 웃음소리는 내궁 담장을 넘어 후원을 진종일 울렸다.

직인을 청하긴 하였으나, 그녀가 정말로 소희를 그렇게 살갑게 대할 줄 몰랐던 이들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수라는 염휘를 찾아 바삐 걸음을 옮기다 다시 한번 귓가를 예쁘게 두드리는 맑은 웃음소리에 걸음을 멈추고는 담장너머를 가만히 응시했다.

아수라전에서 염라 본궁을 가려면 내궁을 지나쳐 가야만 했다.

이야기를 듣고자 한 것이 아니었건만 담을 타고 오르는 소리는 무척 선명해서 절로 귀가 트였다.

소곤거리는 여자들의 가늘가늘한 목소리는 시중 드는 아이들이 모여 깔깔거리는 것과는 달리 ‘여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아수라는 문득 마음이 술렁였다.

귓가를 간질이는 웃음소리와 들릴 듯 들리지 않는 속삭임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마음 한구석을 들뜨게 했다.

생을 부여받은 이래 처음 접하는 이 기묘한 느낌에 아수라는 손을 들어 가슴을 가만히 눌러보았다.

전투를 눈앞에 두고 피가 끓어오르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전신이 달구어지고 사지가 저릿했다.

아수라는 희열과도 조금은 달랐고 호승심과도 그 궤를 달리한 이 감정이 무엇인지 가만히 되짚었다.

바쁘게 길을 재촉하던 발걸음이 잔뜩 느려졌다.

“아니 이걸 직접 만드셨다고요?”

직인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에 기쁨이 진득이 배어 담장을 넘어왔다.

꽤나 놀란 듯, 소곤거리던 목청이 한껏 돋워져 있었다.

하지만 뒤따르는 목소리는 종전과 다를 바 없이 잦아들어있는 채라 영력을 돋우지 않는 한 들리지 않을 성싶었다.

잦아든 소릴 따라 저도 모르게 고개가 돌려지고, 시선이 담장 안으로 날아들었다.

“…….”

하지만 아수라는 귀문의 별의 말을 훔쳐 듣는 무례한 일은 벌이지 않았다.

귀문의 별, 그녀는 하계의 안주인이며 제 주군의 반려이시다.

그 말은 그녀는 곧 자신의 웃전이 되실 고귀한 분이라는 말인데, 자신의 저급한 호기심을 채우고자 그녀의 속내를 훔쳐 듣는 일을 할 순 없었다.

자신은 염라의 불, 예법엔 무지하나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는 아는 장수였다.

아수라는 묵빛 담장 너머로 보내던 시선을 돌렸다.

한낮의 햇볕이 몹시 따가워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감긴 두 눈을 비집고 열감이 후끈 끼쳐왔다.

접선을 펼치기 전 다시 사랑스러운 음색이 담장 안을 가득 채우며 빛 가루 같은 웃음소리를 뿌렸다.

듣고 있는 자신의 마음까지 흐뭇해지는 유쾌한 소리에 아수라는 문득 자신이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이런…….’

사랑스러우신 분이로고.

염휘께서 마구잡이로 휘둘리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아수라는 하얗고 긴 손으로 길게 늘어진 자신의 입매를 더듬으며 고소했다.

그리고 이 술렁이는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저 사랑스러운 분이 주는 감동이 아니런가 그는 생각했다.

내궁의 화원은 염라궁중 가장 내밀하고도 안락한 곳이었다.

염휘께서 머무는 궁 안에서도 가장 엄중한 호위가 쳐지고 귀한 분께서 기거하시는 곳이 바로 내궁이었음에 그곳은 햇살조차 조심스럽게 머문다는 농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곳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곳이었다.

텅 비어 외로운 달빛으로 채우는 곳이 아니라 따스한 햇살아래 귀왕의 비가 아이를 기르고 다정한 소곤거림으로 즐겁게 화원을 채워야 하는 곳임이 마땅했다.

하지만, 아수라가 낯설고 즐거운 감정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는 현생을 부여받은 이래로 단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목도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귀문의 별이 이십 년간 부재했기 때문이었다.

청천의 전에 새로이 생을 부여받은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아수라는 울렁이는 마음을 꾹 눌렀다.

이십 년간 비었던 적막한 곳이 깨어나 드디어 주인을 찾았다.

아수라의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미풍에 하늘거리며 날았다.

물결치듯 바람을 타고 너울거리는 그의 검은 머리채가 술렁이는 제 마음과 같아 아수라는 손을 뻗어 머리채를 잡아 눌렀다.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이었다.

좋은 일에 괜히 자신의 술렁이는 마음까지 함께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이 아리따운 광경이 늘 이곳에 머무를 수 있길 소원할 뿐이니 혹시 티끌만 한 부정이라도 타지 않게 자신은 한걸음 물러나면 되는 것이다.

아수라는 접선을 펼쳐 따가운 햇살을 가렸다.

그의 손에 들린 묵빛 접선이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워 심연처럼 잦아드는 그의 눈빛을 가려주었다.

“에이, 계집애처럼 그게 무어야.”

대전 앞에서 마주친 풍천은 아수라를 보자마자 대뜸 시비였다.

접선을 펴서 얼굴에 그늘을 가린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염휘께서는?”

아수라는 풍천의 인사와도 같은 시빗거리엔 작은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서늘하기까지 한 그의 말투에 익숙한 풍천은 턱 끝을 까닥거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염라의 불이라는 자가 품위하고는.”

아수라가 들으라는 듯 접선을 소리나게 접어쥐고는 코웃음을 남겼다.

등 뒤로 씨근덕거리는 풍천의 말이 몇 마디인가가 따라왔지만, 아수라는 돌아보지 않고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이미 내궁 담장께에서 시간을 지체한 덕에 풍천을 상대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염휘께선 조례를 끝내고 이미 업무를 보는 중이셨다.

그의 앞에는 비단이 잔뜩 돌려진 두루마리가 한가득이었다.

하계에 퍼져있는 염라의 불들과 관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그에게 올린 상소들이었다.

염휘는 은빛머리카락을 동곳으로 여며 단정히 틀어 올린채로 그의 답을 바라는 상소를 바삐 읽어내리고 있었다.

손에 들린 상소는 귀문에 머무는 사신이 보내온 것이었다.

최근 들어 달빛에 취한 어린 요괴들이 귀문으로 몰리고 있으니 염라의 불을 보내 처리해주십사하는 간절함이 구구절절이 묻어있어 그들이 얼마나 고단한지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긴, 사신 넷이 처리하기엔 과하지. 안 그런가 아수라.”

염휘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막 집무실에 들어서는 아수라를 불렀다.

아수라는 고개를 깊게 조아리며 염휘에게 읍소했다.

“부르셨사옵니까.”

“아수라. 귀문에 좀 다녀오시게.”

염휘는 손에 들린 상소에서 뭔가를 작게 튕겨내듯 아수라를 향해 날렸다.

아수라가 염휘의 말에 고개를 들자 그의 눈앞에는 사신(死神)이 써서 올렸을 법한 글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척 급박하게 써 내린듯한 글줄은 형편없이 휘갈겨져 있었고 부여된 영력은 불안정해 문장은 수시로 그 모양을 뒤틀었다.

“언제 도착한 상소이옵니까.”

“첫새벽에 왔다.”

염휘나 아수라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사신들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영을 보호하며 요괴들로부터 그들을 지켰을 것이다.

그리고 양기를 머금은 햇살에 요괴들이 어둠으로 스미자 간신히 남은 영력을 모두 짜내 제 주군께 도움을 청했을 모습이 눈앞에서 그려지는 듯했다.

아수라의 눈빛이 깊어지며 붉은 어둠이 그의 눈동자를 혼탁하게 채웠다.

“얼마나 걸리겠느냐. 내일 아침 아수라 자네와 찻잔을 기울이며 한담을 나누려는 내 바람은 무모한 것인가?”

염휘는 상소를 읽어내린 후 검붉게 기세를 피워내는 아수라를 향해 웃음기 섞인 농을 던졌다.

귀문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였다.

귀문(鬼門)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문(門)이 아니라 저승에 들어서서 딛는 첫 영지를 이름이었다.

저승 강을 건너온 이들이 첫발을 딛는 그곳, 사자를 따라 그들이 갈 곳을 안내받기 전까지 머무르는 대단히 광활한 영토였다.

최근 들어 하계에 어린 요괴들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뜸해서 모두들 요괴를 잊고 있었다.

한번 생겨난 요괴는 정화해주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 것인데, 다들 소희와 염휘의 일에 정신이 팔려 그만 대처가 안일했던 것이다.

귀문의 별이 홀로 달빛을 품어 달래는 것만 기다리다니.

‘저절로.’

귀문의 별이 사납게 끓어오른 달빛을 다뤄주면, 요괴들은 반드시 ‘저절로’ 사멸하게 되어있었다.

굳이 정화라는 작업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다.

귀문의 별이 하계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지만, 귀문의 별이 없는 지난 이십 년간, 요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그것들을 사멸할 수 없었다.

그러니 ‘정화’시켜 억지로 없애주어야 했다.

귀문의 별께서 돌아오셨다고는 하나, 지금은 반쪽짜리였다.

염라의 비가 아닌 그저 운명으로 짝지어진 ‘별’일 뿐 ‘달 마마’가 된 것은 아니었다.

하계의 어미가 된 ‘별’의 힘은 강대했다.

달빛은 그녀의 소관, 당장에라도 요괴들의 힘을 빼앗고 나락의 절벽으로 보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달 마마가 아닌 그저 별은 그 기운이 ‘달 마마’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심지어 소희는 ‘상계의 휘’까지 타고나 별의 기운이 상당히 눌러져 있었다.

그녀의 힘만으로 월력을 조절해 요괴들을 나락의 절벽으로 향하게 하려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흘러야 가능했다.

그것은 ‘불가능’이었다.

새로운 생을 받아야 하는 영들을 데려와 새로운 좌에 안배하는 일은 지엄한 책무였다.

마냥 소희를 기다려 줄 수 없는 일이었다.

환의 짤막한 이야기에는 이런 수많은 속내가 감춰져 있었다.

아수라는 매끄러운 묵빛 접선을 단단히 그러쥐고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자신의 주인에게 말을 올렸다.

“소장에게 닷새를 주시옵소서. 귀문에서 영도에 이르기까지 한 녀석도 빠뜨리지 않고 정화할 것입니다.”

“풍천이 없어도 가능하겠는가?”

“소장, 한 몸이되 두 몫을 하는 자이옵니다. 밤의 아수라와 이미 함께하고 있음이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아수라는 표정을 단단하게 굳히며 말을 맺었다.

“그렇다면, 닷새 뒤 아침에 천도나 함께 맛보지.”

염휘는 고생하고 돌아올 아수라에게 은근한 말을 내비쳤다.

천도는 삼천외의 천의 땅에서 서왕모가 키워내는 귀한 것이었다.

마고 대할망께서도 즐기시나 자주 맛보기 어렵다며 투덜거리는 귀하고 귀한 것이었다.

천도는 보통 2천 년마다 4천 년마다 8천 년마다 한 번씩 그 열매를 주었다.

그리고 복숭아나무들이 봄이면 오랜 시간 끝에 귀한 열매를 매달기 시작했는데, 이름 없는 강 건너의 삼천외(三天外)의 천(天)에서는 봄이 찾아오면 가장 좋은 천도를 추려서 상하천의 지존들께 보내오곤 했었다.

천도, 그것은 일반 사람이 먹게 되면 장수를 누리고 신선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성한 영력이 담긴 과실이었다.

아수라는 염휘가 무얼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귀문의 요괴들을 모조리 치워내려면 아마 자신은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삼생의 구슬을 소희에게 줘버린 아수라는 현생의 목숨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다지도 염려를 하는 것이리라.

살아 돌아오너라.

무뚝뚝한 주군의 염려가 담장을 타고 흐르던 작고 귀여운 목소리와 겹쳐 아수라는 문득 웃고 말았다.

그러나 울렁이는 가슴을 누르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무척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귀한 것이 생기면 원래 비께 먼저 권하는 법입니다. 무릎 꿇고 달래보련다 하시던 분께서 벌써 잊으셨습니까.”

보란 듯이 고개를 흔들며 작은 한숨까지 덧붙였지만, 염휘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빙긋 웃으며 매력적인 보석안에서 빛을 뿌리기까지 했다.

“저런, 아수라. 그대는 과인을 너무 몰라주는군.”

염휘의 능글맞은 미소에 아수라가 아차 싶었지만 염휘가 한 발 더 빨랐다.

가볍게 손을 흔들자 그가 아공간에 넣어둔 황금진에 쌓인 천도가 두 꾸러미 나타났던 것이다.

황금진에 싸여 있음에도 집무실을 가득 채우는 향기롭고 달콤한 향에 아수라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올해는 2천 년 만에 열리는 천도를 맛볼 수도 있지만, 마침 8천 년 만에 열리는 천도도 함께 과실을 맺는 해였다네.”

“흐음…….”

과연 으쓱할만한 향이었다.

복숭아 향 속에 담긴 향긋하고 상쾌한 영력이 그새 아수라의 심신을 돋워주기 시작했다.

“허니, 무탈히 돌아오너라. 닷새 후 모두 함께 다과를 즐겨보자꾸나.”

아수라는 설핏 붉어진 염휘의 안색에 두 눈을 내리떴다.

“풍천이 제일 기꺼워 할 것입니다.”

무뚝뚝한 염라의 불들의 인사는 그것으로 끝이 났고, 아수라는 그길로 귀문으로 향했다.

#dark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