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소청조의 속삭임 (1)
2017.11.10.
‘상계의 휘’로서도 충분히 고민해 보길 바라.’
‘그대의 거취는 오직 그대의 뜻에 맡길 것이야.’
거취를 정하라는 환의 말은 무척이나 서운했지만, 돌아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의 입장이 이해가 되려고도 했다.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소희는 머리에 얌전히 꽂힌 머리꽂이를 매만지며 마음을 다독였다.
짤랑거리는 붉은 구슬이 그인 양하니 격하게 일렁이던 마음이 한결 잦아들었다.
“곱구나.”
맑은 면경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곱고 귀한 것들로 치장한 면경 속 여인은 척 보기에도 무척이나 고아하기 그지없었다.
‘이것이 나라니.’
소희는 새삼스럽게 광택 나는 비단옷을 가만히 쓸어 보았다.
생전에 한 번도 못 입던 옷이었다.
비단옷 한 벌이면 식솔들의 일 년 치 옷을 만들 수 있었으니, 차마 포목점에서 눈길 한번 주지 못했던 옷감이었다.
색이 고운 것일수록 그 값이 대단해 덕실이가 좋아하는 진달래색 비단은 평생 가야 한 필 떠볼 수도 없을 대단한 것이었다.
무명옷으로 장옷 한 벌 마련해 주지 못한 처지에, 바랄 수도 없던.
그 고운 것을.
이렇게나 야리야리하게 지어낸 것을.
고마운 줄도 모르고 걸치고 있었다.
무명옷을 마름질해 솔기를 돋워 꾸밈하던 자신이 매끄럽고 광택이 나는 비단옷으로 성장하고 온갖 귀한 패물 가지를 갖추고 있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이렇게 ‘존귀한’ 이가 될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사람 참 간사하지.’
소희는 퍽 나아진 제 형편을 떠올리며 고운 소매를 가만히 매만졌다.
그렇게 살기 막막할 적엔, 그저 가솔들 편히 몸 뉘고 배부르게 먹기만 하면 좋을 것 같더니.
번듯한 표가 공자께 혼처 잡히고는 살던 집, 허름하나마 물려줄 생각에 그렇게 마음이 좋더니.
지금은 이렇게 곱고 귀한 것을 두르고서도 고마운 줄도 모르고,
그것을 내준 이에게 마음까지 다 달라 앙앙대고 있으니.
이것이 염치없는 욕심인 것인가.
“…….”
어디 비단옷만 내주셨는가.
무려, 염라대왕께서 정성으로 만든 머리꽂이를 하사하시기까지 했다.
바로 자신에게 말이다.
‘사람 일 한 치 앞도 모른다더니, 바로 나를 두고 하는 소리구나.’
그뿐인가, 이제 원하기만 한다면 옥황상제의 비가 될 수도 있는 처지였다.
원하면 보내준다니 이 아니 감사할쏘냐.
감사라…….
비틀린 심사 끝에 조소가 따라 붙었다.
원한 것은 단 하나였는데.
이까짓 건 필요 없는데.
없이도 평생을 잘 살아왔는데.
서러운 투정이 가만가만 흘렀다.
평생을 간절히 바란 것은 마음 기댈 곳이었건만.
어미도, 아비도.
그리고 지아비도.
모두가 그것 하나를 내어주지 않았다.
소희는 바람 따라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내는 머리꽂이를 손가락으로 덧그리며 새삼 어루만졌다.
그래, 이해해보련다.
죗값을 치르련다고 소리 없이 말하는 남자를 이해해보고,
네 운명이라 지아비가 둘이구나.
고민해보라는 좋은 말로 자신을 밀어내는 그를 헤아려보고,
이렇게 어그러진 제 운명을 받아들이고,
밀어내는 그를 향한, 접어지지 않는 제 연심을 견뎌보련다.
소희는 손에 힘을 줘 헐겁게 꽂힌 머리꽂이를 단단하게 머리카락 사이로 밀어 넣었다.
붉은 머리꽂이가 그의 마음인 양, 단단히 제게 붙들어 매 놓았다.
차랑-.
맑은소리를 내며 붉은 구슬이 머리꽂이 끝에서 흔들렸다.
면경에 비친 여자는 아름다웠지만, 잔뜩 풀죽고 지쳐 보였다.
“분수에 맞지 않아 그런 것이야 유모?”
소희는 면경을 가만히 쓸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귀문의 별이자 상천의 휘.
거취를 고려해보라던 환의 말은 분명 타당했다.
자신의 운명은 환에게만 흐르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몹시 사리에 맞고 타당했지만.
어째서 그 말이 자꾸 곱씹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보답 받을 길 없는 애정을 품은자의 불안함일 것이고,
버림받을 자의 처량함일 것이다.
소희는 변해버린 환의 태도가 이미 자신을 떠나보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미안하였어. 그대.’
침통한 기색으로 낮게 이르던 그의 말은 분명 사납게 제 목숨을 취했던 그날의 일을 뜻하는 것일 테다.
이미 모든 사실을 알기 전, 사납게 굴며 목숨을 꺾은 것을 용서하고 그를 마음에 품었건만.
그는 이제 와서 사과를 하며 ‘위한다는 말’로 자신을 보내려고 하니 제 운명도 참, 얄궂다.
지아비를 자청하던 이는 둘이었으나, 둘 다 제 곁을 떠나고 말았다.
이렇게 밀어낼 거라면, 데려오지나 말지.
그렇게 쉬이 접힐 마음,
내보이지 말 것이지.
늘 기댈 곳을 찾는 이 불쌍한 마음을 정말 모르셨던가.
“흐으음.”
한숨 같은 깊은 숨 끝에, 목덜미가 아려오고 머리가 울렸다.
그건 서러운 눈물을 아프게 삼켜서인지도 모르겠고,
울컥이며 치받는 오욕을 눌러 내려서 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목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식어버린 비릿한 찻물을 한 모금 삼키는 것이 몹시 고되다 느껴졌다.
똑똑-.
“소희님, 계십니까.”
찻잔을 비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방안을 울리는 소리에 소희가 화들짝 놀라 대꾸했다.
단정하고도 다정한 음색의 주인, 아수라의 방문은 뜻밖이었다.
“아, 네.”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당황해 새된 목소리로 냉큼 대답을 하며 면경으로 차림을 들여다보았다.
침울하고 부루퉁한 얼굴이 못난 제 심사 같아 멋쩍었다.
‘세상에.’
이런 울상을 하고 있을 줄이야.
소희는 황급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볍게 매만져 다독이고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수라를 안으로 청했다.
“들어오세요.”
“……이런…….”
문을 열자마자 아수라의 눈길이 소희의 눈두덩이와 짓이겨진 입술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지막한 그의 탄식에 그만 못난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드러난 귀 끝이 화끈했다.
“…….”
소희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열린 문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어쩐 일이십니까.”
오전에 만난 그들이 그새 다시 만날 일이란 게 있을 리 없으니 소희의 물음은 당연했다.
그러나 답은 엉뚱한 방향에서 들려왔다.
낭랑하고, 가늘거리는 고운 목소리.
“인사 올립니다. 이름 없는 강 건너에서 마고대할망을 뫼시고 있는 직인이라 합니다.”
“직인?”
분명 며칠 걸릴 거라, 확실치 않다 하던 손님께서 이 잠깐 사이 찾아오시니 소희는 얼떨떨했다.
문 뒤에 숨어 있던 까만 눈동자가 낭랑하게 울리는 낯선 목소리에 다급하게 아수라를 찾았다.
놀란 듯, 도움을 바라듯.
낯가림하는 아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은 소희가 아수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스스로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를 테지.’
아수라는 무방비한 표정에 나지막한 웃음을 삼키며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풀어 소희에게 내밀어 주었다.
소희는 내외하는 법도 잊고 내밀어진 손을 따라 흘러내린 소맷자락을 냉큼 쥐었다.
그리고는 서늘한 소맷자락이 주는 위안에 용기를 낸 모양인지 문 뒤에서 한 발짝 내밀었다.
내밀어진 작은 얼굴을 직인이 반겨주며 기꺼운 목소릴 냈다.
“네, 소희님. 아니 귀문의 별께 직인 인사 올립니다. 하계의 안주인이 되실 분을 이렇게 뵙게 되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옵니다.”
직인은 가슴이 풍만하고 색기가 흐르는 몹시 요염한 미녀였다.
그녀는 작고 고운 손을 살짝 들어 맞잡은 뒤 소희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짜라랑.
얄팍한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밀밭을 닮은 옅은 색의 머리와 그보다 밝은 갈색의 눈동자가 소희를 맞았다.
긴 머리타래를 촘촘히 닿아 매끄럽게 틀어 올린 머리에는 무척이나 화려한 장식들이 빼곡하게 올려져 있었다.
너무도 화려한 모습에 소희는 살짝 질리는 느낌이 들었다.
크고 예쁜 눈매는 다부져 보였고 하례를 올리는 도톰한 입술은 더할 나위 없이 예뻤다.
그러나 직인의 화려하지만 온기 없는 시선에 소희는 자꾸만 아수라를 붙들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낯선 이를 경계하는 소희의 마음을 아는 양 아수라는 도포가 구겨지도록 쥐고 매달리는 그녀를 내색 없이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후원에서 다과를 하시렵니까? 소장, 귀한 분을 이리 세워두기엔 담이 작습니다, 소희님.”
“아…….”
아수라의 다정한 일깨움에 소희는 그제야 여태 자신이 손님을 문 앞에 세워둔 채 멀뚱히 있었다는 걸 깨달은 눈치였다.
당황함에 절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환의 곁에 서보겠다, 노력하겠다 외던 마음이 이렇게 쉽사리 흩어지다니.
소희는 스스로의 바보 같음에 어이가 없었다.
그에게 떨려나갈 걱정을 할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그녀에게 뭐라 말 할 수 없게 자리를 잡게 노력을 했어야 했다.
낯설다 꺼려진다 하며 물러서서 아수라의 뒤에 숨어 있어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직인께선 어떠신지요. 내궁 아이들이 다식을 꽤 어여쁘게 빚어낸답니다. 소청조만큼은 아니어도 색도 제법 곱지요.”
“이런, 놀리시는 겝니까? 내궁 솜씨를 식견할 기회를 주신다니 기쁠 따름입니다.”
아수라의 청에 나긋하게 응하는 직인을 보며 소희도 작게 말을 보탰다.
“후원에 작은 정자가 있는데 경치가 일품입니다. 먼 걸음 하셨으니, 작은 것이라도 정성껏 올릴 것입니다. 게서 다담상 받으시지요.”
굳은 다짐 끝에 소희는 작기는 해도 제법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아수라 역시 그런 그녀의 변화가 기꺼운 듯 소희가 문밖으로 ‘스스로’ 나오도록 기다려주었다.
객이 나서 상을 받을 수는 없는 법.
안주인인 그녀가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티 나지 않게 빠르게 심호흡을 한번 하는 것으로 소희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쪽이랍니다.”
소희는 문지방을 건너서며 움켜쥐고 있던 아수라의 소맷자락을 살짝 놓았다.
문 뒤에 숨어 있던 게 언제냐 싶게 소희는 야무지게 제 몫을 해냈다.
내궁 후원으로 안내하는 소희를 따라 직인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던 아수라가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귀문의 별.
자각은 없으나 저도 모르게 안주인의 태를 품는 것이 자연스럽다.
접선을 소매 안으로 갈무리하며 구겨진 소맷자락을 내려다보던 아수라의 눈매가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소매를 쥐고 있던 하얗고 작은 손이 구김 위로 보이는 듯 아물거렸다.
“어서 오세요.”
소희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직인이 문득 생각난 듯 뒤돌아 아수라를 불렀다.
그녀의 어깨 위에 앉아있던 작은 새가 직인의 큰 목소리에 놀란 듯 날갯짓을 파득대다 다시 자릴 잡으며 까만 눈을 깜빡였다.
구르륵.
작게 목울음 소릴 내는 새의 깃털이 몹시 청명해 아수라는 문득 눈이 시리다 생각했다.
“직접 옷을 지으셨다고요?”
어머나-.
마치 놀라운 일을 들은 양 머리를 흔들어가며 다리를 구르는 직인은 무척이나 천진난만해 보였다.
그 모습에 소희는 경계하던 것도 잊고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그녀의 머리장식을 잠시 넋 놓고 바라보았다.
오색창연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이르는 것이리라.
산호, 자개에 금박을 두르고 진주를 귀엽게 얹은 머리꽂이며 금강석을 솜씨 좋게 깎아내 촘촘하게 박아 넣은 비녀는 일러 무엇 하겠는가.
햇살 아래 귀한 것들이 더욱 그 자태를 찬연히 뽐내 직인이 머리를 흔들 때마다 온 사방에서 빛무리가 일었다.
비녀귀를 따라 짤랑이는 금편들이 화사했다.
“어머나.”
직인이 크게 웃자 머리가 흔들리며 다시 맑은소리가 금편에서 울렸다.
잠시만 본다는 것이 그만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한참을 보고 말았던 모양이다.
무언가를 열심히 이야기하던 직인이 쾌활한 목소리로 제 머리를 언급했다.
“꽤나 화려하지 않습니까?”
마치 남의 것을 이야기 하듯 거리감을 둔 그녀의 말투는 생경했으며,
어딘지 모르게 냉하기 그지없어 소희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아…… 아니. 무척 고와서 저도 모르게 실례하였습니다.”
볼을 붉히며 변명하듯 직인에게 말을 하는 소희를 두고 직인은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직인의 고갯짓에 다시 맑고 경쾌한 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실례는요. 본디 화려하고 어여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여인들의 본능. 소희님께서 하고 계신 머리꽂이도 무척 예뻐 저도 아까부터 눈이 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이건…….”
“이건?”
말꼬리를 들어 올리며 대답을 재촉하는 직인의 말에 소희는 어쩐지 환이 내주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졌다.
그것은 그냥, 작은 변덕이었다.
“이건, 직인께서 하고 계신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요.”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척 부끄럽다는 듯 입을 가리는 가늘고 보드라운 손은 뼈마디도 보이지 않을 만큼 고왔다.
“떨잠이며, 비녀며, 머리꽂이들이 하나같이 몹시 빼어나고 귀해 보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아니에요, 그 귀한 금강석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정말로 고우십니다.”
“과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직인은 제게 쏟아지는 소희의 관심과 찬사가 과히 싫지 않은 듯 소희의 머리꽂이로 향하던 시선을 돌린 채 작게 웃었다.
그녀의 하얀 손이 제 머리위에 꽂힌 화사한 것들을 작게 쓸고는 다시 무릎 위로 내려왔다.
“실은 제가 황금색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터입니다.”
머리를 곱게 물들인 장식들 중 금편이 달린 비녀를 무척 아낀다며 직인은 살짝 덧붙였다.
그 뒤로도 이어진 이야기들은 여태와 같이 무척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소희가 원하던 것이라 소희는 조금 전까지 제 방에서 눈물짓던 것도 모조리 잊어버렸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게 훌쩍이었다.
햇살이 어느샌가 고개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외하며 주절거리던 이야기에 흥이 올라 그만 너무 오래 직인을 붙든 것이 아닌가 소희는 민망해졌다.
“이렇게 해가 기울도록. 제가 그만 너무 주책을 부렸습니다.”
돌아간다는 직인의 말에 뺨을 붉히며 어쩔 줄 모르는 소희에게 직인이 다정한 말을 남겼다.
“이렇듯 귀여우신 분이라니, 앞으로도 종종 불러주세요.”
“아닙니다. 저야 내궁에 매인 몸. 언제든 놀러와 주세요. 오늘 무척이나 즐거웠답니다.”
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직인에게 다음을 청했다.
“앞으로 자주 들를 것이에요.”
“다정한 벗이 되어 자주 차를 나눌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소희는 가난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따스한 정을 바라는 허기를 그대로 들어내며 무척 아쉬워했다.
“매일을 하루같이 찾을 테니 귀찮다 내치지 마셔요.”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상냥히 말을 남기던 직인이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그녀만큼이나 화려한 색의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는 향낭이었다.
“마음의 증표입니다.”
직인은 주머니를 소희의 손바닥 위에 올려놔 주었다.
황금을 녹여 만든 듯한 실을 꼬아 주머니에 꿰어놓은 작은 주머니였다.
보기 좋게 부풀 정도로 향풀을 넣어 만든 향낭은 척 보기에도 무척 공을 들인 것이라 소희는 연신 허리에 매달린 향낭을 쓰다듬었다.
가득 담긴 향풀이 직인의 따사로운 마음인 양하여, 서운하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셨다.
“다음번엔, 향 좋은 차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오늘처럼 맛난 다과 부탁드립니다, 소희님.”
“언제고 소청조를 날려주세요. 기다릴 것입니다.”
두 사람의 다정하고도 애틋한 인사를 끝으로 아수라는 직인을 모시고 금세 사라졌다.
그 둘은 후원에 소희만을 남겨둔 채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마치 허리에 매달린 향낭이 아니면 꿈을 꾸었구나 할 만큼 재빠르고도 완벽한 부재에 소희는 자꾸만 허리춤에 달린 향낭을 어루만졌다.
그녀가 청한 벗은 생각보다 무척 다정해서, 헤어지자마자 그리워졌다.
따스한 품을 맛본 텅 빈 가슴에 벌어진 틈을 단번에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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