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27화 (27/114)

27. 이름 없는 강 건너 (5)

2017.11.03.

“아수라님!”

“이러시면…….”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로 궁녀들이 아수라를 불렀다.

“…….”

소희는 가만히 밖에서 나는 소란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 어찌하여주랴.”

“아직 소희님께서는 몸단장도 못 하셨습니다.”

“해가 중천에 떴느니라.”

타박 같은 아수라의 대꾸에 궁녀 아이는 한껏 잦아든 목소리로 대답했고 그만큼 소리 죽인 아수라의 대답에 더 이상 그들의 대화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간밤 ……하시어 ……습니다.”

“그럼…… 해주마.”

“아니 아무리…… 달 마마께서…….”

“그러니 하는 말…….”

“아이고 저는 모릅니다.”

작게 실랑이하는 소리엔 간간히 죽이지 못한 ‘꺄악’ 거리는 귀여운 비명소리가 섞여들었다.

결국, 그 끝에는 항복하는 듯한 궁녀 아이의 대꾸가 슬쩍 뒤따랐다.

드문드문 들리는 말소리에 오히려 호기심이 솟았다.

‘무슨 영문이람?’

소희는 옷을 다 갈아입고는 고개를 침상 휘장 밖으로 빼꼼히 내밀었다.

이야기가 들리다 마니 여간 궁금한 게 아니었다.

‘점잖은 서생 같던 분께서 어쩐 일이실까.’

그러길 수 분.

침전 문이 벌컥 열리며 아수라가 들어섰다.

“!”

에구머니 소리가 절로 나오도록 호쾌한 모습이었다.

아수라 혼자 훌쩍, 침전 문을 넘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니, 간밤 내궁을 지켜주겠다던 풍천은 그새 돌아간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머리단장을 하기도 전에 아수라가 들이닥친 꼴이라 소희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실, 아직도 온몸이 노곤하고 만사가 귀찮아 그냥 다시 자리에 누울까 하던 참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아수라 덕에 몽롱하던 정신이 일시에 번쩍 들었다.

“아……수라님?”

들어온다 만다 실랑이를 하는 줄은 알았으나 정말 들어올 줄 몰랐다.

불쑥 들어선 그에게서 소희를 가리느라 침전 안 시비들이 한바탕 소란을 부렸지만, 아수라는 갑자기 다른 이가 되기라도 한 듯 무례하고 거리낌 없이 굴며 그녀를 기함하게 하였다.

“이런 이런, 늦잠이라니.”

아수라는 가볍게 혀를 차며 넌지시 소희의 신색을 살폈다.

그는 붉어진 소희의 눈매를 잠시간 말없이 지켜보다가 그저 말없이 접선을 꺼내 태평한 기색으로 부쳐내기 시작했다.

너무나 태평한 작태에 시비들이 할 말을 잃고 동동거리자 보다 못한 소희가 작은 목소리를 냈다.

“저, 머리단장이 채 끝나지 않아…….”

“아!”

미처 몰랐다는 듯 과장되게 놀란 시늉을 하며 아수라가 부채를 접어 들고는 싱글거리며 몸을 뒤로 한걸음 물렸다.

“워낙에 고우셔야 말이지요. 단장을 다 하신 줄로만 알았지 뭡니까.”

“네에?”

“이거, 소희님 고운 얼굴 덕에 저만 무도한 녀석이 되었습니다.”

“!”

“어머나!”

“들었니!”

그답지 않게 능글거리는 말투에 침전 안 사방에서 꺅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소희의 얼굴이 말릴 새도 없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버렸다.

그런 그녀를 까만 눈에 가득 담아 웃던 아수라는 접선을 펼치고는 팔랑팔랑 가볍게 부쳤다.

접선을 따라 흐르는 바람이 그의 흑단 같은 머리채를 흩날리고, 이윽고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저…….”

“후원에 아침 준비하라 하겠습니다.”

마치, 그 말만을 전하기 위해 들어선 듯 아수라는 똑 자른 듯 깔끔하게 말을 마치고서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아수라님?”

조금 전까지 침전에 들어와 시비들을 다그쳐가며 정신을 쏙 빼놓은 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허무하도록 깔끔한 퇴장이었다.

“……뭐지?”

소희는 붉은 기가 가시지 않은 눈을 비비며 멍한 목소리를 냈다.

밤사이 어찌 된 영문인지 눈이 잔뜩 부어 쓰라린 것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밤사이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 아수라의 태도에 마음이 더더욱 편치 못했다.

어제부터 아수라는 무척 이상했다.

애초에 그와 자신은 이렇게 거리낌 없이 아침 인사를 나눌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다.

소희는 정신을 추스르며, 자신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낮의 아수라와는 불과 며칠 전 첫인사를 나누었고, 얼결에 찻잔을 기울였던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전날의 곤함에 아직까지 다리 붓기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해 질 녘에 헤어진 아수라가 아침부터 들이닥쳤다.

‘오늘도 좀 바쁘니 서두르세요.’

‘오늘도?’

소희는 궁녀 아이가 재빠르게 빗기는 대로 머리를 맡겨두고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쓱쓱 빗기고 잡아당겨 땋고 모양을 내는 것이 시원시원하니 오히려 생각에 집중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오늘도?’

나가기 직전 깜빡했다는 듯 태연하게 덧붙이는 아수라의 말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언제부터 자신과 아수라가 산책을 하고, 일과를 나누는 사이가 된 건지 오히려 묻고 싶었다.

심지어 인격이 나누어져 있다고는 하나 한때나마 제 목숨의 위협을 했던 자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살가웠던가.

소희는 밥알을 젓가락으로 헤집으며 맞은편에 앉은 아수라를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이런 태도는 곤란합니다. 소희님.”

“네에-.”

훔쳐보는 시선을 냉큼 지적하는 아수라의 말에 소희가 자라목이 되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곧이어 아수라가 기함할만한 소릴 덧붙였다.

“소희님은 귀문의 별, 장차 염휘님의 반려가 되실 분이신데 소장을 이런 야릇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무…… 무슨!”

야릇하다니!

큰일 날 소리에 소희가 말을 더듬거렸다.

두 볼이 삽시간에 뜨끈해졌다. 보지 않아도 얼굴이 온통 새빨개졌을 것이다.

젓가락을 들고서 어버버거리는 소희를 아수라가 매끈한 턱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빤히 바라보았다.

“실은 꽤 제 취향이기도 하고요. 소장, 설레이니…….”

“아…… 아니아니! 아닙니다!”

소희는 여기서 까딱하다간 부정한 여자가 될 참이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필사적으로 항변했다.

젓가락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손을 그대로 활개 치듯 내저었다.

정신없이 팔락거리는 소맷자락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작은 얼굴은 잔뜩 붉어진 채였다.

“그런가요…….”

너무 격렬한 그녀의 부정에 아수라가 민망한 듯 긴 눈매를 처량히 떨어뜨렸다.

“그렇다고 벌레 보듯 하시는 것도…….”

“아…… 제 말은 아수라님! 저…….”

어느샌가 반달처럼 곱게 접힌 까만 눈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아수라의 입매.

필사적으로 그의 오해를 풀려던 소희는 그제야 그가 여태 자신을 놀렸다는 것을 알았다.

“기운찬 모습을 뵈오니 무척 기쁩니다. 소희님.”

“이익!”

저 능청스러운 말에 기어코 소희가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릴 지르려는 순간.

아수라의 뒷말이 이어졌다.

“웃기 힘드시다면, 화라도 내세요.”

“!”

“훨씬 보기 좋습니다.”

아수라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젓가락을 들어 앞에 놓인 반찬을 집어다 입에 넣으며 천천히 씹었다.

“맛이 좋습니다. 어서 드세요.”

소희는 그런 그를 내려다보다 이것이 아수라 식의 위로라는 걸 깨달았다.

‘참, 다정하기도 하지.’

어제부터 정신없이 끌고 다니는 아수라를 보며 어렴풋이 짐작했더랬다.

하지만 서로 그런 마음을 나누기엔 거리가 있어 그저 자신의 외로운 마음이 헛된 망상을 품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럴 리 없다 생각했던 일이 그러하다로 뒤바뀌는 건 생각보다 훨씬 근사한 기분이었다.

마음이 몽글몽글거리며 기분 좋게 맥동했다.

“어서요.”

“네.”

소희는 이어지는 아수라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젓가락을 들면서 작게 대답했다.

‘다정도 하여라.’

소희는 소리 없이 음식을 씹어 삼키며 제 맞은편에 앉은 아수라를 보며 수줍게 웃었다.

비록 첫 만남은 최악이었으되, 실상 하계에 아수라만큼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아수라는 첫날 이후 환의 부름이 있지 않은 이상 ‘밤의’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일이 없었다.

혹시, 무서워하는 자신을 배려해서인가?

소희의 가슴이 작게 두근거렸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호의에 외롭고 기댈 곳 없던 마음이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저…….”

아수라는 소희의 말에 씹고 있던 음식을 삼키고 나서야 대답을 해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소희는 몇 번이고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제 예상이 틀렸다면 얼마나 웃음거리가 될지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소희는 붉은 입술을 이로 질겅거리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아수라에게 제 짐작을 내비쳤다.

“혹시……. 정말 혹시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데 이러십니까? 편하게 말씀하시지요.”

상냥한 아수라의 까만 눈동자가 그녀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다정한 시선을 주었다.

“혹시, 밤의 아수라가 절 찾아오지 않는 건…….”

“…….”

“제가 그녀를 꺼려할까 염려하심입니까?”

“솔직하길 바라십니까, 귀를 즐겁게 하여드릴까요?”

그렇다는 긍정의 말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척 보기에도 소희의 짐작이 틀렸음을 알려주는 아수라의 담담한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하고 말았다.

소희는 가늘게 신음하는 가슴을 꾹 눌러주며 애써 웃는 표정을 고수했다.

“당장에 즐겁자면야 귀만 즐거우면 되겠지만, 하루 이틀 가벼운 인연이 아닐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소희님. 가감 없이 말씀 올리자면, 지금 밤의 아수라는 소희님께 그다지 안전하지 못합니다.”

“!”

“아수라는 전장의 사신이라고도 하지만 사람들은 홍월의 사신이라는 말도 함께 씁니다. 그 이유를 짐작하셔야 합니다.”

달그락-

아수라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상을 물렸다.

그의 말은 침착했지만 이해하긴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소희는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경청했다.

“홍월은 의지를 가진 귀물, 주인과 의식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홍월,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상천의 영력입니다. 극음의 그녀를 달래주는 달콤한 기세를 무척이나 탐합니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어리둥절한 소희의 말에 아수라는 새카만 눈을 들어 소희에게 똑바로 시선을 맞춰왔다.

빙긋-

입술 끝만 들어 올려 웃는 아수라는 지독하게 차갑고 날카롭기 그지없어 보였다.

평소 그와의 아찔한 간극에 소희는 잠시였지만 무섬증이 도졌다.

뒷덜미를 타고 오르는 소름에 팔뚝을 저도 모르게 쓸어내리며 마른 침을 삼켰다.

아수라의 길고도 마른 손가락은 무례하게도 소희를 향해 쭉 뻗어있었다.

그의 검지가 가리킨 곳은 소희의 목덜미였다.

“속박의 인에 눈이 아릴 지경입니다.”

“!”

“낮의 기세를 타고난 제가 이렇게나 벅찬데 밤의 아수라에겐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알고 계시지요? 속박의 인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입니다.”

속삭이듯 내밀해진 아수라의 목소리에 덩달아 소희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압니다. 상…….”

“쉿-. 입 밖으로 꺼내 좋을 것이 없습니다.”

“…….”

아수라의 말에 소희는 황급히 제 입을 가리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홍월은 주인의 의지를 나눠 받기도 하지만 제 스스로 탐(貪)하기도 하여 주인을 이끌기도 합니다. 홍월의 의지는 일개 선인을 능가하니까요.”

“검이 의사를 전달한다구요?”

“네, 그런 홍월이 소희님 목에 묶인 ‘그’의 영취에 얼마나 욕심을 부릴지는 말하기 딱할 정도입니다.”

소희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크게 홉 뜨였다.

옷 아래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게 보였지만 아수라는 한번 말을 꺼낸 이상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수라는 소희의 마음을 돌리려고 작정하였다.

밤의 아수라가 이미 검날을 소희님께 들이대 인심을 잃은 이상 동성으로서의 ‘우정’에 기대 는 수는 이미 물 건너간 셈.

이제는 자신이 분발하는 수밖에 없다.

우직하니 말주변 없는 풍천은 일러 무엇하며. 고지식하고 무뚝뚝한 제 주인은 입에 올리기도 귀찮다.

오해는 말로 푸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인데, 저 우직한 이들은 늘 행동으로 해결하려 했다.

소희를 버려두고 훌쩍 떠난 품새로 미루어 보아 염휘를 독대하지 않아도 그가 마음을 비우러 나갔다 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지식하기로 일등이라. 달리 염라의 첫 번째 불이 아니지.’

게다가 청천의 전 때부터 지켜보아온 그의 성미로 미루어 짐작건대.

간밤에 돌아왔다고 하니 소희의 몸단장이 끝날 무렵이면 내궁으로 건너와 단번에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아마도 다짜고짜 ‘상천으로 보내주마. 넌 상계의 휘이기도 하느니.’라는 말부터 불쑥 던질 것이다.

틀림없다.

앞뒤 없이 꽉 막혀 융통성이라고는 모르는 제 주인은 그러고도 남을 인사였다.

‘미안하구나, 과한 처사를 하였어.’

……라고 덧붙이며 그녀에게 죄를 청하고 물러날 테지.

염휘의 성정에 뻔한 일이었다.

은원(恩怨)을 정리하고 진심을 청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에 발이 잡혀 죄를 청하고 반려를 보내주는 바보 같은 일을 묵과할 정도로 아수라는 착하지도, 미련하지도 않았다.

그 죄, 미안함을 곁에 두고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갚으시란 말입니다.

아수라의 깊이를 짐작할 수도 없는 새카만 눈이 소희를 향해 빛을 머금었다.

“소희님이 이해하여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눈꼬리를 떨구고 하르르 웃어내리는 그 모습은 유약한 서생의 그것이었다.

아수라는 소희를 향해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생을 가진 것에 비할 바는 아니겠사오나, 홍월의 의지는 아수라도 벅차할 때가 많습니다. 그녀도 조심하여 몸을 사리고 있으니 서운타 마시고 이해하여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아수라는 간절한 진심을 담아 소희에게 재차 말을 건넸다.

그의 간절한 표정에서 소희는 문득 달빛을 받으며 피눈물을 흘리던 아수라를 떠올렸다.

무언가를 잔뜩 참아내며 환에게 죽음을 청하였던 그녀의 표정이.

어째서 갑자기 떠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밤의 아수라가 무엇을 인내하고, 홍월이 무엇을 바랐는지를.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는 홍월을 쥐고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던 밤의 아수라의 심정을.

이제야 아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소장, 소희님께 감히 바라오건대 하해와 같은 아량을 청하옵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제 알았습니다. 아수라께서 고의로 그러신게 아니라는 것도, 아…… 물론 홍월도 그렇겠지만요.”

소희는 손을 들어 가만히 제 목을 감싸며 말을 이었다.

속박의 인 때문에 눈이 아리다던 아수라의 말이 생각난 탓이었다.

그런 소희의 마음을 눈치라도 챈 듯 아수라의 시선이 소희의 손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는 곧 진한 미소를 머금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소장 감히 바라건대, 앞으로도 소희님의 너른 이해가 함께하길 바랄 뿐이옵니다.”

“네?”

아수라의 말은 사리에 맞고 타당하였으나 어딘지 석연치가 않아 소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으로도?

마치 당부를 하듯 제게 고하는 모습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면 그건 너무 앞서 나간 것일까.

하지만, 아수라와 처음인 가감 없는 진심 어린 대화에 소희는 모처럼만에 푸근한 기분을 느꼈다.

그와는 어쩐지 마음 벗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에 따스한 태양처럼 마음이 따끈하게 달구어졌다.

그리고 그런 소희의 마음을 아는 듯 마주 웃어주던 아수라가 은근한 제안을 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소희님.”

잦아드는 아수라의 목소리는 미풍에 묻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말의 여운은 아주 오래도록 소희에게 남아 볼을 붉히게 했다.

그리고 아수라가 남긴 말은 환이 소희를 찾아오며 그 진가를 발휘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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