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이름 없는 강 건너 (3)
2017.10.27.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시커먼 질투가 환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그녀가 바란 호의가 아니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지난날을 구태여 꺼내 되짚은 건 치졸하게 번진 분노 때문이었다.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먹고 살게 돌보았느니라.
아비의 수명을 늘려주었느니라.
너를 이십 년이나 기다렸느니라.
너를, 내가 기다렸느니라.
이십 년을 하루같이.
수많은 영들을 거두어 보살피고 새로운 달 아이를 내는 왕으로, 그 많은 일을 알아주는 이 없어도 당연하게 묵묵히 해왔건만.
유치한 아이마냥 소희에게 제가 한 일을 조목조목 일러주었던 것은 섭섭함 때문이었다.
자신을 버리고 다른 혼약자를 찾았노라 밀어내는 그녀에게, 제가 들인 정성을 알라 투정부림이었다.
네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느냐 읍소하는 것이었다.
너를 위한 것은 나뿐이었노라.
네 반려는 나이니라.
나만 보거라.
왕 된 자의 차마 발설치 못한 속내였다.
상처 입은 마음이 으르렁거리고 제 단심을 짓밟은 짝을 단죄하여 달라 울었다.
반려의 운명을 거스르고 달아나려는 신부를 잡아 곁에 묶어 달라 소리쳤다.
“귀문의 별을 타고난 아이를 신부로 맞이하는 건 귀왕의 임무. 이 모든 것을 순리대로 풀어가려 네 아비의 더러운 욕심도 눈감고 기다려주었건만. 요괴들도 지키는 영혼의 맹약을 인간이 저버렸단 말인가.”
음산하게 뇌까리는 자신의 말이 수치스러웠다.
더러운 욕심이라니.
허연 수염을 떨며 눈물로 읍소하던 그 딱한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반쯤은 허세인 호기로움으로 그의 소원을 들어준 건 바로, 귀왕인 자신이었다.
그리고 이십 년을 힘겹게 버틴 것은 바로 염라인 바로 자신이었다.
비어있는 내궁을 보며 다스려지지 않는 달빛에 괴로워한 것도 오로지 그의 몫이었건만.
지금은 그런 사실을 삼켜버렸다.
눈앞의 그녀에게 자신의 속내를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사내를 보려 하지 않았던가.
이유야 어찌 됐건 그녀를 이십 년간 기다린 자신에게 한 일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질투와 분노가 이성을 잠식하고 그의 눈을 멀게 했다.
달 마마를 기다린 그의 가여운 마음을 몰라준 그녀가 야속했다.
“무슨……!”
착잡한 목소리 뒤로 숨겨진 시뻘건 질투와 검게 타오르는 분노를 매료안에 사로잡힌 그녀만 몰랐다.
‘혼약자’가 있다며 엷게 웃는 그 모습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오직, 그녀만이 몰라주었다.
그녀만 알아주길 바란 작은 마음을 외면해 버렸다.
그를 몰라봐 주었다.
이십 년을 기다려온 그를.
“하-.”
질투와 대상을 잃은 분노가 머릿속을 붉게 물들였다.
제 낭군을 버리고 다른 사내를 보려 한 소희에게서 무례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발밑이 꺼져들었다.
결국 임계점을 지난 분노가 터져 나와 그를 야차같이 굴게 했다.
가슴 아래, 어두운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아까부터 신경을 거슬리던 가느다랗고 희게 빛내는 목덜미를 잡아 올리게 했다.
한 손에 잡혀 들어오는 가는 목은 조금만 힘을 줘도 부러지고 말 것이다.
자신의 서늘한 손바닥을 타고 보드라움과 따스함이 전해져왔다.
작은 새처럼 두근거리는 맥이 그의 손바닥을 가득 채웠다.
귀여운 두근거림에 그의 마음이 풀어지기도 전,
모른 척 하려야 할 수도 없이, 확실하게 ‘상태자’가 느껴졌다.
“!”
아까부터 제 반려의 목덜미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던, 상태자의 영기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손을 타고 오르는 기분 나쁜 뜨거움.
작렬하는 태양의 빛을 머금은 속박의 인이 오롯이 느껴졌다.
‘지금 네가 누굴 반려로 맞으려 한 건지 알고는 있는 건가!’
포효를 내지르고 싶었다.
두려움에 소희의 작은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세차게 두근거렸지만, 분노가 머릿속을 지배하는 환에게 그녀의 두려움은 숨죽여버린 풀벌레 소리보다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혼약했다는 사내가 상태자임에야.
그의 정신이 온전할 리 없었다.
도도한 사내의 자존심과, 이십 년을 버텨오던 자긍심이 단숨에 짓밟혀버렸다.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왔더니, 다른 사내를, 그것도 상천의 태자를 반려로 낙점해놓았다는 사실에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다.
“신의를 저버렸구나.”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 스산함이 스며들었다.
손바닥 안에서 자신에게 사납게 맞서는 속박의 인이 그를 아프게 파고들어 상처 냈지만, 환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귀문의 별이 상태자에게?
이런 더러운 꼴을 보고자 겨우 인간과 맺은 영혼의 맹약을, 귀왕인 내가 이십 년이나 지켜주었던 것인가.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감히, 나를.
그의 단심은 짓밟히다 못해 갈가리 찢겨 버렸다.
생에 이런 치욕은 처음이었다.
아니, 전대미문의 것이었다.
귀왕의 반려가 상제도 아닌 태자에게 혼약을 약속했다는 일은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이십 년을 기다려 준 자신을 욕보여도 이런 식은 아니어야 했다.
인간의 몸에 묶여 귀문의 별로서의 자각을 못 했다 하더라도 이럴 순 없었다.
귀문의 별을 이렇게까지 잠식하는 인간의 육신에 귀왕의 자비는 더 이상 베풀어질 수 없었다.
염라대왕이자 하계의 지존을 더할 나위 없이 욕보였다.
한 남자로서도 지존으로서도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배덕엔 배려가 없는 법이지.”
홍안을 진한 금빛으로 물들이는 영력이 손끝에서 터져나갔다.
가느다란 목의 골수까지 파고든, 그에게 반발하던 속박의 인을 깨부수고 그녀의 전신에 덧씌워진 진을 걷어냈다.
첩첩히 쌓인 백여덟 개의 진이 그녀와 상태자가 쌓아 올린 마음의 증표인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미줄 같은 것들을 환은 자비 없이 태워버리고 찢어발겼다.
“감히!!”
품에 안고 온 비약 같은 것이 생각날 리 없었다.
아니, 떠올랐다 하더라도 절대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단죄받아야 했다.
귀문의 별의 책무를 저버리고 감히, 귀왕을 능욕한 죄를 받아야 마땅했다.
그리고 귀문의 별을 눈멀게 한 이런 인간의 육신 따위를 남겨둘 순 없었다.
이 죄 많은 육신은 그가 반드시 멸할 것이다.
가느다란 목으로 파고든 손가락이 자비 없이 목뼈를 바스러뜨리고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핏물에 기꺼이 하얀 손을 적셨다.
손가락 사이로 마구 쏟아져 흩어져 내리던 생명을 그는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부정을 제 입으로 떳떳하게 말하던 작은 입에서 흘러내리던 검붉은 피를 즐겼다.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차 생기가 사그라들던 까만 눈동자를 끝까지 지켜보며 상처 입은 왕의 자존심을 다독였다.
그랬다.
환은 소희를 단죄했다.
귀문의 별을 끌어내려 가지고 간 비약은 산산 조각내 없애버렸다.
원수진 양 발로 밟아 산산이 깨트려버리고, 그녀에게 덧입혀진 육신은 망가뜨린 채로 숲에 버려두었다.
불살라 한 줌 흙으로 되돌려줄 수도 있었으나, 산짐승의 먹이가 되라 두고 온 것은 벌이었다.
부정을 저지른 제 반려에게 덧입혀진 육신에게 내리는 참혹한 벌.
감히 귀문의 별을 더럽힌 육신에게 자비를 허락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니.’
멋모르고 잔인하게 살해당한 소희가 자꾸만 생각났다.
“끄으읍-.”
목이 졸려 내던 낮은 신음이 귓가를 울렸다.
빛을 가득 머금었던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어떻게 텅 비어갔는지 반복해서 환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쿨럭.”
부정하다 생각했던 붉은 핏방울이 꽃송이처럼 산개하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피를 토하며 마지막 숨이 끊어지던 순간이 잔인하리만큼 생생하게.
꺾어진 그녀의 가녀린 목덜미에서 뿜어져 나온 피로 범벅이 되었던 작은 몸뚱이.
제 손에 들려 줄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늘어졌던 그날 밤, 그녀의 모습.
모두가 너무도 또렷하게 기억났던 것이다.
소희를 죽인 손에 묻은 업이 까맣게 그의 살을 태웠다.
‘인간 따위를 죽였다고 업이라니.’
같잖게스리.
업을 입고 까맣게 타버린 손이 마치 상태자와 소희의 사이를 방해한 것이 그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손을 볼 때마다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환은 그냥 두어도 될 것을 굳이 환술을 써 말끔하게 덧입혔다.
몇 겹으로 쌓아 올린 환술은 그조차도 업이 묻은 손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고 단단한 것이었다.
업이 태운 손은 영력을 갉아먹고 치유되지 않은 채로 여러 날을 보낸 후에야 되돌아왔다.
이제야 업이 소멸해 새살이 돋은 하얀 손을 내려다보는 환의 표정은 엉망이었다.
자신은 죄를 지었다.
제 반려를 만났을 뿐인 소희를 자신이 참혹하게 살해했었다.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어 주지도 않고, 싸안고 하계로 내려와 내궁 안에 가둬두었다.
자신은.
자신은…….
어쩌면 이다지도 잔악하단 말인가.
야차와 같은 짓을 저질러 놓고, 여태 그녀를 탓하고 있었다.
그 가여운 사람을.
환의 붉게 타오르는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황금빛을 물고 일렁이는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아름답기 그지없었지만, 턱을 타고 흘러내리기도 전 월력에 얼어 그대로 굳어 떨어졌다.
툭-.
투툭-.
왕의 뒤늦은 후회와 참담함이 발치 아래 가득히 쌓여 시린 빛을 발했다.
“아아…….”
그러나 이 순간 그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찢긴 단심을 부여잡고 그녀를 바라고 마는 자신의 이기심이었다.
숨길 수 없는 죄책감에 차마 그녀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절로 얼굴이 굳고, 본능적으로 몸을 내뺐다.
무슨 낯으로 그녀를 본단 말인가!
그의 태도에 상처 입은 눈을 하고 자신을 올려다보던 소희를 못 본 척 침전에 밀어 넣었다.
그 손으로 문을 닫아 놓고는 자신이 두고 온 다정한 까만 눈동자를 바라 울고 마는 것이다.
환은 지금,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왕 된 자의 위엄도 한 남자로서의 자존심도 다 필요 없었다.
소희, 그녀가 보고 싶었다.
품고 싶었다.
‘짐을 용서해다오.’
‘짐을 외면하지 말아다오.’
‘내 곁에 서준다 하지 않았느냐.’
품 안에 가득히 채워 보듬어 안고 상처받은 그녀에게 사죄하고 싶었다.
너를 상처 주고 무섭게, 함부로 대한 나를 용서하라 빌고 싶었다.
‘짐도 몰랐느니라.’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다오.’
절절히 말하고, 다시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그리고 그만큼 무서워 도망가고 싶었다.
나락의 절벽 위에 서서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것은 그리움과 후회뿐이었다.
그녀를 무참히 꺾은 제 손을 탓하고 지척에 계시는 그녀가 그리워져 가슴이 아렸다.
그러나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핏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다 사라지는 태양을 눈이 멀도록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도, 시리게 빛을 뿌리는 엄정한 달빛을 맞고만 서 있었던 것도.
무서워서였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 그녀가 돌아설 거라는 두려움이 그의 다리를 옭아맸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여기에 숨어 있을 수만도 없다.
돌아가면 소희에게 모든 사실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사신의 문은 매 관문마다 열린다.
이번엔 그녀가 모르고 넘어갔다지만 앞으로도 여섯 번은 더 열릴 것이고, 그때마다 그녀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귀문의 별’이자 ‘상천의 휘’.
자신이 어영부영 덮어 넘길 일도 아니었다.
두 지존의 반려에게 이토록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소희는 존중받아 마땅했고, 응당 그래야 한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의 몫이다.
용서를 빈다 하여도 그녀가 받아 줄지는 미지수이다.
“바다를 닮은 벽안에 태양을 머금은 금발의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먼 바다 너머 벽안의 여인들은 활달하고 사랑스럽다지요? 저도 내세엔 사랑받으며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죽은 자의 왕이시여.”
‘금과 청을 바라던 건 그래서였나.’
은과 홍을 내리겠다며 심술 맞게 웃던 자신이 떠올랐다.
‘지워지지 않고 그 흔적이 남은 속박의 인도 그래서였나.’
사실을 알게 되자 이해가 안 되던 것들이 당위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후오오오오오오-
나락의 절벽을 타고 오르는 바람이 다시 한번 찢어지는 포효를 내질렀다.
희게 얼어붙은 그의 얼굴을 세차게 훑고 지나가며 그의 눈물도 가져갔다.
얼어붙은 눈물 자국마저 말끔하게 사라진 얼굴을 환은 가만히 매만졌다.
그건 마치 울 자격도 없다는 것 같아 환은 씁쓸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차게 얼은 제 뺨을 다시 쓸었다.
참회를 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었다.
환은 느릿하게 나락의 절벽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 너머 저 끝에 염라의 궁이 있을 테다.
그의 눈물을 받을 이는 염라의 궁 가장 안전한 곳에서 주무시고 계실 것이다.
“흐으음.”
침통함을 담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안다, 소희를 붙잡는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상태자는 아직 즉위를 하지 않았고, 그런 그에게 ‘휘’를 내릴 수 없다.
소희가 어째서 휘를 타고 난 것인지는 의아했지만, 사신의 문은 운명이 빚어낸 것이다.
천신 마고대할망도 쉽게 관여하지 못하는 운명이 빚어낸 것이니 그것을 받아들여 이겨내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상제도 그의 휘도 상천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바.
즉위하여 비의 자리가 비어있는 자신만이 소희를 취할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환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소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고 원한다면 물러날 각오도 다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소희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죄갚음이었으며 최선이었다.
자신의 마음이 바라는 것은 소희이지만 그보다 더 간절한 것은 그녀의 행복이었다.
가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후오오오오오옹-.
거친 바람이 다시 한번 환을 덮치며 그의 찬란한 은빛 머리칼을 마구잡이로 헤집고 숲으로 내달렸다.
깊게 침전한 그의 홍안은 황금 불꽃을 갈무리하며 힘을 거둬드렸다.
이제, 그가 견뎌야 할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짐작도 안 되었으나 환은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다.
지난 이십 년에 대한 후회는 나락의 절벽에 버려두었다.
그녀가 곁에 남아준다면 이생에서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여 줄 것이다.
성심을 다해 보살피고 어여삐 여길 것이다.
자신의 반려로 극진히 아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남아 준다 할 때의 이야기였다.
금과 청을 바란다며 웃던 소희가 떠올라 가슴 한구석이 칼로 헤집는 듯 아려왔지만, 환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버텼다.
그녀가 떠나버리면 익숙해져야 할 느낌이다.
떠나신다면, 하루라도 빨리 보내드려야 한다.
애달픈 단심은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사실 사신의 문은 하계보다 상계에서 열리는 편이 그녀에게 훨씬 안전했다.
벌써부터 그녀의 부재를 단정하는 자신에게 고소를 금치 못하면서도 환은 딱딱하게 굳은 입매를 풀지 못했다.
“마고대할망을 찾아뵈어야 하려나…….”
소희가 떠나고 귀문의 별이 자릴 비우게 되면 환에겐 안곁이 없다.
그러니 마고께 사정을 설명 드리고 새 별을 받아와야 할 테지만…….
스스로 자조하듯 내뱉는 말에 상처받는 꼴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군.’
환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어금니에 힘을 줘 사리물었다.
죗값을 치르기로 마음먹었던 것이 아니었는가.
스스로를 다독이려는 마음을 독하게 잡아 누르며 환은 몸을 돌렸다.
바람에 아름답게 흩날리는 은발이 흐릿하게 일렁이다 자취를 감춘 건 순식간이었다.
환이 사라진 자리엔 거친 바람과 시린 달빛이 금세 들어찼다.
후오오오오오오오-
나락의 절벽에서 누군가를 대신하듯 다시 한번 바람이 울부짖었다.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