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엉켜 드는 바람 (6)
2017.10.13.
방안을 가득 채운 복숭아 향의 향긋한 태자의 영취는 언제나와 같이 지관을 몹시 흡족케 했지만 그의 굳은 얼굴이 펴지는 일은 없었다.
“어려워 말고 이리와 앉거라. 잔뜩 얼어 이게 무슨 꼴이냐.”
태자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듯 유쾌한 음성으로 딱딱한 표정으로 굳어 있는 지관을 곁으로 불러들였다.
치렁한 백금발이 태자의 걸음걸이를 따라 보드랍게 나부끼며 눈부신 물결을 그려냈다.
태자는 하얗고 섬세한 손으로 찻주전자를 들어 지관 앞에 놓인 찻잔을 그득 채웠다.
“아…….”
한발 늦은 그의 손이 갈 곳을 잃고 허공을 맴돌다 내려앉았다.
‘태자에게 차 시중을 받는 대제라니. 이 무슨 꼬락서니인가.’
지관은 염치없고 황공해 급하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달빛에 얼어버린 것이 비루한 몸뚱이뿐만이 아니라, 이 머리까지 포함이었던 게로구나.
뒤늦은 민망함에 지관이 스스로를 사납게 책망했다.
쪼르륵-
청량한 소리와 함께 뭐라 형언하기 힘든 상쾌한 향이 삽시간에 공기를 채웠다.
향도 향이지만, 백자를 채운 보라색 투명한 물이 보석같이 아름다워 지관은 책망하던 것도 잊고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차라면 지관도 꽤나 조예가 있는 편이었는데, 그로서도 이런 찻물 색은 처음이라 시선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
지관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경탄을 가득 담은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짐작이 맞는다면 저것은.
“아아- 혹시.”
“음? 아……. 지관, 그대라면 알겠군.”
태자는 지관이 놀라는 이유를 짐작하는지라 모양 좋은 입매를 살짝 끌어올리며 미소 지었다.
“서녘 달빛이지.”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소신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지라 그만 이렇듯 추태를 부렸나이다.”
“무슨- 지관에게 한잔 내리지. 마시게.”
태자는 빙긋 웃는 표정으로 가볍게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보랏빛으로 물든 찻잔을 가리켰다.
서녘 달빛은 구하기가 만에 하나라 했다.
만 번을 뜰채로 건져도 얻기가 힘들어 생긴 말이었다.
서녘 달빛은 바람 없는 날, 구름 없이 화창한 하늘에. 만월이 뜨면 그제야 뜰채로 건져내는 것이었다.
구름 없는 만월 밤이야 일 년에 열두 번이니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바람 없는 밤이라 하는 것은 일 년에 하루도 어려웠다.
그런 것이기에 서녘의 달빛을 삼계의 모두가 귀하게 여기게 된 것이었다.
‘이런 귀한 것을 제게 내리시다니.’
지관은 찻잔을 두고 머뭇거렸다.
“사양하지 말고 들거라.”
그런 지관의 마음을 읽은 듯 태자가 한층 더 다정하게 당부를 했다.
그의 푸른 눈빛에 따사로움이 반짝였다.
“…….”
빛을 발하는 태자의 눈빛이 그의 다정한 마음인 양 느껴져 지관은 마음이 울렁였다.
‘이렇듯 다정한 주인이라니.’
지관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깊게 고개를 숙이며 태자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고서야 그가 권하는 찻물을 조용히 머금었다.
그는 이 자리에 선 목적을 떠올렸다.
고언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태자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고언은 그저 하나의 방법일 뿐,
수단은 다양했고 목적은 단 하나였다.
주인이신 태자의 행복.
저의 충심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그것 하나였다.
그러니 그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으리라.
유한 분위기는 외려 태자를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니 지관은 상황을 지켜보다 적절한 시기를 노리기로 했다.
찻물을 달게 삼키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지관에게 태자의 음색이 날아들었다.
“지관, 안색이 그다지 좋지 못하여 근심이구나.”
다정하고 걱정이 가득한 말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 치받치고 말았다.
예고 없는 위안이 주는 따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달빛 아래 차갑게 얼어붙었던 뺨이 온화하게 풀리고, 파랗게 굳었던 손가락이 혈색을 머금었다.
“이 늦은 밤까지 그대가 너무 고생을 하는 고로…….”
제 사정을 살펴 찬찬히 이르는 말에 눈가로 뜨끈한 열감이 쏠리고, 가슴이 작은 새처럼 빠르게 두런거리기 시작했다.
제 주인에게 인정받는 것 같아 고단한 지난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따스하게 녹아내렸다.
“좋은 차가 생기니 청하고 싶어졌음이야.”
태자는 지관이 어려워할 것을 염려한 모양인지 전에 없이 상냥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찻물에 자꾸만 목이 멨다.
자신의 주인은 정말로 영악하다.
‘이렇게 다정하면 그의 의지를 반하는 말을 어찌 할 것인가.’
정신이 산란할 정도로 마음이 수런거렸다.
앙탈인 양 하던 푸념조차 떠오르지 않게 되자, 지관의 눈에선 기어코 뜨거운 무언가가 찻잔 속으로 떨어지며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성격이 까다로운 주인을 만난 고로 늘 고단할 테지.”
그리고 이어지는 태자의 다정한 한마디에, 달빛이 새긴 상처가 주던 아픔이 일시에 멀어졌다.
가슴 속에서 울컥 넘어오는 뜨거운 것이 전신을 따스하게 보듬었고, 머릿속이 말랑하게 풀렸다.
태자의 말이 멀게만 들리고 날뛰는 감정에 자꾸만 눈물이 솟아났다.
죄를 청해야 할 저의 무능함을 너그럽게 싸안아 주는 태자의 아량에 주책맞게 자꾸만 설움이 터졌다.
‘이런 분을 혼자 되게 하다니.’
누구에게인지 모를 분심이 싹트고,
‘이 다정한 분에게서 휘를 빼앗아 가고.’
닿지 못할 원망이 샘솟는다.
제 주인의 평탄치 못한 행보에 더러 억울해지기까지 했다.
‘그 누구보다 온당한 결정을 하시는 분을.’
지관의 머릿속에서 직인이 지워진 건 오래전이었다.
“마시거라.”
“…….”
“고생 많았느니.”
지관은 제가 뉘 앞에 있는지도 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콧날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기 바빴다.
주인의 다정한 위로와 그 마음을 적시는 따스한 차 한 잔.
게다가 주인이 건넨 차는 상제도 귀히 여긴다는 서녘 달빛임에야.
자기 같은 일개 대제에게 태자가 얼마나 과한 애정을 내비친 것인지는 말해 무엇하랴.
지관은 벌게진 눈을 연신 주먹으로 훔쳐냈다.
고언을 올리리다.
이 목숨을 오늘 초개같이 버리리다.
굳건했던 다짐은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지워낸 지 오래다.
자신은 상태자의 수족과 같은 자.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이 목숨을 어디에 써야 할지를 잊었던 것이다.
제 주인을 기쁘게 해드리는데 쓸 것이다.
자신의 지략은 그의 대업을 완성시키기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될 것이고, 제가 하는 모든 일은 그를 웃게 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지관은 다시 한 번 그렇게 다짐했다.
떨어지는 눈물방울만큼 많은 다짐들이 지관의 가슴에서 솟아올랐다.
“저런, 그만 하거라.”
따뜻한 울림을 담은 태자의 근사한 미성이 방안을 다시 한 번 부드럽게 채웠다.
“저하.”
붉은 울음을 매단 지관이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한 번 충심을 다졌다.
지관이 태자궁을 나선 것은 그로부터 일각 후였다.
달빛은 그새 더더욱 차가워져 태자의 영력이 미치지 않는 후원으로 한 발 내딛자마자 곧장 피부가 얼얼해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지관의 표정은 무척이나 평온하고 일견 꿈을 꾸는 듯 몽롱하기까지 해보여 전혀 월광의 기세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얼빠진 것 같은 표정을 한 지관이 후원에서 이내 자취를 감추자 태자의 침전에 나 있던 작은 창이 소리 없이 닫혔다.
“흐음…….”
매끈한 턱을 쓸어내리는 길고 섬세한 손가락이 느긋하게 움직였지만, 차게 가라앉은 태자의 눈동자는 조금 전과는 달리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직인에게 소청조를 날려 보내고 오래지 않아 태자궁 지척에서 지관의 영력이 느껴졌다.
점점 가까워지는 지관의 영력은 삽시간에 심하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태자의 관심을 단번에 끌 정도로.
마치 마구잡이로 헝클어진 머리채같이 엉망이 되어 조금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속도로 맹렬히 태자전으로 향하는 지관을 느끼고 태자는 그를 기다렸다.
‘성가시게 됐군.’
용왕의 아들들은 이상하게도 대대로 무척이나 고지식했다.
그런 성품을 푸념이라도 하면, 용왕에게선 언제나 같은 그야말로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지요. 섭리를 따르는 것이 흠이 될 리 있겠습니까.’
그 아비의 그 아들이라.
상제들은 삼관대제의 올곧기만 한 성품을 트집 잡길 그만두었다지만, 그들의 속앓이까지 그쳐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번 대의 삼관대제도 예외는 아니어서 태자는 삼관대제를 보면서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중 지관은 입안의 혀처럼 굴며 그나마 융통성 있게 굴더니, 그나마도 삼천외의 ‘직인’과 관련된 것에서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 몸을 돌보지도 않고 마구 내달려 그에게로 달려오는 기세에 정말이지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해 참을 수가 없었다.
‘미련한 인사. 어쩔 수 없는 용왕의 아들이란 건가.’
태자는 삐뚜름하게 올라간 입꼬리를 해서는 빠르게 다가오는 지관을 기다리며 고민했다.
보나 마나 제게 와 이것저것 시답지 않은 논리를 내세워 직인에게서 멀어지라 할 것이다.
‘소청조를 날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찢어 넣어줄 것을.’
조금 성가셔 소청조를 오가게 두었더니 이런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태자는 어깨 넘어 타고 흐르는 찬란한 백금발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
‘아니다.’
소청조를 공간을 찢어 보낸다면야 당장에 몇 번은 손쉬울지 몰라도 제 영력의 궤적이 남아 상제가 더 빨리 눈치챌지도 모를 일이다.
상제를 상대하는 것보다 저 어린 용왕의 아들을 다루기가 쉽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니.
‘어찌하면 좋을까.’
태자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지관을 이대로 죽여버리기엔 다소 아쉬웠다.
마음 놓고 부리기에 삼관대제만 한 이가 없었으나, 고지식하기로는 천관과 수관을 따를 자가 없었다.
그들은 사사건건 명분을 내세워 태자의 발목을 잡았다.
기실, 소희에게 천도를 건네는 것에 가장 강력히 반발했던 것도 천관과 수관이었다.
태자와 팽팽히 맞서며 목숨을 걸고 간언하는 그들 사이에서 늘상 중재를 떠안는 건 지관이었고, 바스러지는 소희의 육신을 위해 ‘천도’가 아닌 약수로 타협을 본 것도 그였다.
뻣뻣한 삼관대제 중 지관이 제일로 융통성을 발휘하는바, 그가 빠지면 손해를 보는 것은 태자, 바로 자신이었다.
태자는 조금의 수고로움을 감수하기로 했다.
건방진 입을 놀리기 전 너른 아량을 보여 품어주리라 결심한 것이다.
태자가 마음을 정하자 막, 태자궁 안으로 들어서는 지관이 느껴졌다.
태자는 슬쩍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눈꺼풀이 들리며 진한 하늘빛 눈동자가 빛을 물고 반짝였다.
동공 안쪽을 은은하게 밝히던 황금빛은 곧바로 사라졌지만, 태자의 눈동자는 시시각각 그 색을 달리하며 달빛아래 아름답게 빛을 발했다.
태자는 손을 뻗어 냈다.
손에 닿는 달빛에도 아무 느낌이 없다.
상천에 올라와 각성을 한 후로 아직 마지막 각성은 조짐도 없지만 매일을 새로이 해 차오르는 영력은 그 기세가 사그라들 줄 모르고 있었다.
손끝을 물들이기 시작한 황금빛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태자는 탁자 위에 올려둔 찻주전자 뚜껑을 열어 검지를 가볍게 담갔다.
보라색의 투명한 물 안으로 황금빛이 녹아들며 찻주전자 안이 순간이었지만 환하게 밝아졌다.
찻주전자 안에 가라앉아있던 달빛 조각이 그의 영력을 반사해내며 잘그락 소릴 내며 튕기길 수차례.
이내 은빛 조각들이 황금색으로 물들며 조용히 가라앉고, 빛을 머금었던 찻물이 다시 보라색으로 돌아왔다.
태자는 손가락을 빼고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길 수 분,
드디어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엉망이 된 지관의 영력이 문밖에서 느껴졌다.
“태자마마, 지관이옵니다.”
숨 끝에 매달린 고단함이 진하게 풍겨왔다.
저런, 저런-.
저 딱한 자를 보게.
온통 달빛이 할퀴고 간 지관의 모습은 말 그대로 거지꼴이었다.
너덜너덜한 넝마꾸러미보다 더한 꼴이 된 지관이 자신을 청하는 소리를 듣고 태자는 어여쁘게 웃었다.
방법이야 어쨌든 제 몸 하나 돌볼 생각까지 잊고 내달려 그에게 오는 모습이 잠시였지만 퍽 귀엽게 느껴졌던 것이다.
저 딱한 충심이라니.
애처롭기까지 하다.
“아아, 지관이로군? 들어오시게.”
그를 불러들이는 제 목소리에 담겼던 웃음은 그래서 진심이었다.
태자는 잔뜩 얼고 상처 입은 채 들어서는 지관을 보며 입술을 길게 늘였다.
융통성 없는 용왕의 아들.
하지만 그 충심만은 진심이니 어여뻐 해줄 수밖에 없다.
성가실지언정.
태자는 비단옷자락이 쓸리는 소리를 들으며 지저분한 몰골의 지관에게 다가섰다.
그의 동공에 은은하게 흐르는 황금빛을 지관은 보지 못했다.
그는 이미 태자궁에 들어선 순간부터 태자가 펴놓은 암시에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실패하기는 했으나 한결같은 그의 충심에 주인인 태자가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암시는 대번에 지관의 심계를 파고들었다.
그의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에, 암시를 거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었다.
그저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지관은 제가 원하는 대로 보고 바라는 대로 듣게 되는 것이다.
태자의 말은 더없이 다정하고 상냥하게.
태자의 시선은 따뜻하고 자애롭게.
지관의 마음이 갈구하던 그대로 비칠 것이다.
오래지 않아 태자가 내준 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리던 지관은 찻물을 머금어 삼켰다.
이로서 지관은 태자의 ‘암시’에서 벗어 날 수 없게 되었다.
제 주인이 믿고 있는 자, 의지가 되는 자.
그리고 그의 고단함과 충심을 알아주는 주인.
도리를 벗어나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암시.
술법이나 진이 아니니 들킬 염려도 없고, 도의를 지킨 암시는 업이 되어 태자의 발목을 잡지도 않으니 이 얼마나 완벽한 한 수인가.
태자는 한참을 눈물을 떨구다 돌아간 지관을 떠올리며 빙긋이 웃었다.
아수라는 차게 온몸을 훑어 내리는 밤바람을 맞으며 내궁의 누각 위에 서 있었다.
소리도 없이 뛰어올라 내궁을 찬찬히 내려다보는 아수라의 모습은 숨 막히는 요염함 그 자체였지만, 냉하게 가라앉은 그녀의 눈빛이 따라붙은 시선을 끊어냈다.
하계,
이곳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공기 중에 녹아있는 흩어지지 못한 염이 늘 그득하게 대기를 채운 곳이다.
염, 흩어지지 않는 강력한 마음을 이름이었다.
당사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염은 적당한 조건만 되면 언제든 발현이 되곤 했다.
심지어 사념(邪念)은 더러 요괴가 되기도 했고 재앙이 되기도 했으며 또 다른 염을 무로 돌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아수라를 더듬는 시선은 아직 흩어지지 못한 염의 것.
사내 몫인지 ‘밤’의 아수라를 무엄하게 여자로 보아 더듬어 내리는 것이다.
“츳-“
‘언제고 날 잡아 한번 정화해야겠군.’
아수라는 지저분한 것들로 가득한 공기를 마뜩잖은 눈으로 내려 보며 혀를 찼다.
내궁은 귀문의 별이 머무는 곳.
아직 능력이 발현되지 못했다고는 하나 주인이 있는 궁이며, 지금은 제 주인인 ‘염휘’가 보살피는 곳이기도 하다.
달 마마의 궁을 호위를 자처한 제가 멋대로 정화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수라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염은 하계 어디에든 있다.
한 자리에서 무겁게 묶여있을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내궁의 공기는 마치 염이 고인 것처럼 탁하고 무겁기 짝이 없었다.
‘어째서지…….’
아수라는 붉은 눈동자에 영력을 담아 바쁘게 내궁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염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몰려들어 좋을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 이 궁의 주인은 갓 태어난 영이라, 염에 휩싸이면 위험해질 건 뻔한 사실이었다.
붉은 시선이 밤공기를 바쁘게 헤집었다.
‘도대체 어디냐.’
그리고 아수라는 염을 불러들이는 곳을, 아니 염을 불러들이는 사람을 찾아냈다.
바로 침전에 든 소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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