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왕의 신부-20화 (20/114)

20. 엉켜 드는 바람 (5)

2017.10.09.

“이상하지?”

새소리만 가득한 아수라전의 후원.

용마루에 홀로 걸터앉은 아수라는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누구에게인지 모를 말을 꺼냈다.

“빛이 꺼졌단 말이야.”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하듯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말을 하는 아수라는 근심어린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 너도 봤을 테지. 갑자기…… 어째서일까?”

아수라는 점점 차가워지는 바람을 맞으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밤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흩날리며 자리로 돌아오길 반복하길 수차례.

마지막 햇살이 그 모습을 감추고 드디어 태양이 사라진 자리에 달빛이 들어차기 시작하는 그때.

아수라의 검은 머리가 끝에서부터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단정한 포가 하늘하늘한 비단소맷자락으로 바뀌며 바람에 매끄러운 소리를 내며 나부끼고.

동곳으로 얌전히 여민 머리타래가 순식간에 늘어지며 화려한 모양새로 꼬아 틀어 올려지며 짤랑이는 머리 꽂이가 동곳의 자리를 대신했다.

흩날리던 적발이 고요해진 사위를 따라 다시금 등 뒤로 가지런히 내려앉고, 또다시 후원의 누각 용마루에선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을 닫아버린 거지.”

하지만, 그 자리에선 조금 전까지의 상냥한 기색의 젊은 남자의 목소리 대신, 나긋하지만 지극히 고압적인 목소리가 잔잔한 물소리를 타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풍천의 탓만은 아니야.”

“이것은 귀문의 별의 문제, 다른 이가 간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이겨내지 못하면 잠식될 뿐, 이미 그녀의 영은 사신의 문을 건너는 중이야.”

나긋한 목소리가 내뱉는 말이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도울 건 없어, 섣불리 손을 댔다간 아직 인간의 태를 벗지 못한 영은 바스라질 뿐이지.”

“마음이 쓰인다면, 나서지 말아.”

타이르듯, 역정을 내듯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엄하게 말을 하는 아수라의 눈동자는 달빛을 받아 곱게 빛을 내는 홍안을 하고 있었다.

다시 붉게 물들인 도톰한 입술이 열리며 요염하기까지 한 목소리가 탄식을 덧붙였다.

“아아…… 가엽기도 하지. 그 맑은 눈에 빼곡히 들어차던 절망이라니.”

“달빛이 차구나. 그만 쉬어라.”

‘혼자’서 이어가던 대화가 끊어지고 사위가 조용한 소음으로 가득 찼다.

멀리서 아직 잠을 못 이룬 새가 꾸르륵 거리는 소리와, 이 밤서부터 움직이는 풀벌레들의 소리가 한창이다.

아수라는 긴 속눈썹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이제 당당히 하늘 한가운데에 올라앉은 달을 무심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새파란 달빛에는 두 뺨이 얼얼할 정도로 엄혹하기 짝이 없는 냉기가 어려있었다.

“아아…….”

짜릿한 냉기였다.

몸속에 흐르는 피는 기분 좋게 달궈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은 밤의 아수라.

저토록 매서운 음기라니, 이내 기분이 들떠버리게 되는 것이다.

온몸 구석구석에 시린 영기가 차곡히 쌓이고 혈관을 따라 충만한 힘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구태여 미소를 짓지 않아도 부드럽게 휘어진 눈썹에 아수라의 심경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치링-

홍월이 제 주인의 기분 좋은 영기에 반갑게 울었다.

아수라는 홍월의 울음소리에 가늘고 고운 손가락을 뻗어 가만히 검신을 두드려주었다.

“가자. 밤은 이 아수라의 지배에 있느니. 가서 염휘께서 귀애하시는 그분을 돌보아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비단이 스치며 기왓장을 가볍게 박차는 소리가 나더니 금세 아수라전의 누각은 텅 비어버렸다.

“아수라의 맹세는 낮과 밤의 경계도 없고, 삼생의 명을 거는 것이니. 걱정말아라.”

아수라의 웃음기서린 목소리만이 뒤늦게 텅 빈 누각을 울렸다.

*

달은 날이 갈수록 매서워졌다.

밤을 보듬어야 할 월광이 흉흉하고 사나워져 밤길을 나서는 자가 드물어진 즈음.

그런 밤길에 등 뒤로 창칼같이 쏟아져 내리는 달빛을 받으며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이가 있었다.

답답하리만큼 단정한 차림새로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이는 지관이었다.

그는 얼마 전 상태자가 하명한 일을 처리하느라 분주했다.

하지만 상태자가 알아오라 시킨 것은 모두 누군가 단단히 방비하여둔 듯 접근하기가 어려워 계속 허탕질 연속이었다.

이제 돌아가면 매서운 질책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음에 쇳덩이를 매단 듯 무겁기 그지없었다.

주인의 질책보다, 실망하실 그분의 표정이 지관의 양 어깨를 자꾸만 꺼져 들게 했다.

“하아…….“

입 밖으로 나오는 한숨이 그사이 뻣뻣하게 얼어 발치로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지관은 검푸르게 물든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사실 그로서도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삼관대제가 휘를 진상하겠노라 맹세를 하였으나, 그것을 지킬 방법이 너무나도 요원하였다.

휘는 이미 귀왕께서 품어 하계로 데리고 간 지 오래고, 심지어 명부마저 착실히 넘어가고 있었다.

벌써 칠 분지 일이 하계로 넘어갔다 들었다.

바로 어제 일이었다.

삼계의 명부를 관리하는 명부청에 알던 이를 통해 확인한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사신의 문은 본디 중천인 인계에서만 열리는 법.

그러나 모든 죽은 것들을 관장하는 왕인, 염라대왕께서 그 문을 하계에서 열었다 한들 그걸 흠이라 할 자가 없었다.

‘사신의 문이 하계에서 열렸다잖습니까?’

‘문제가 되옵니까?’

지관이 단 하나 기댈 곳이었으나, 그것은 애매하기 짝이 없는 문제였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애초에 명이 다하여 귀가 된 이를 귀왕께서 품어 내려가셨습니다.’

‘하지만 사신의 문은 어디까지나.’

‘지관, 사신의 문은 하계의 것입니다. 귀는 생이 끊어진 것을 의미하고, 그들이 건너는 것이 사신의 문입니다.’

‘하오나!’

‘사신의 문은 영을 보호하기 위해 귀왕께서 안배하신 것. 그것을 어디에서 열건, 그것은 왕께서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재고해보십시오!’

‘지관, 상천의 삼관대제가 귀왕이신 염라의 일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되십니까?’

명부청의 선인이 들고 있던 세필에 먹물을 찍어 명부의 이름을 쭉 그어 내렸다.

‘이자는 지금 죽었사옵니다. 명을 달리했어요.’

‘…….’

‘그리고, 그날도 그 여아의 이름이 이렇게 지워졌답니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귀왕의 소관이니 미련을 버리세요.’

전후 사정을 모르는 명부청의 선인은 지관이 마음에 두고 있던 인계의 여아가 죽었기에 찾아와 떼를 쓴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지관은 더 이상 그와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자세히 말해본들 그가 도움을 줄 처지도 아니었으며 잘못하였다간 괜히 태자께 누를 끼치게 될 것이 뻔했다.

‘바쁘신 분을 붙잡고 실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아닙니다. 마음이란 것이 본디 그러하니, 지관께서도 어서 추스르십시오.’

‘감사합니다. 다른 좋은 날 뵙겠습니다.’

‘나가뵈질 못하니, 살펴 가십시오.’

먹을 잔뜩 머금은 붓을 경쾌하게 놀리며 명부청의 선인이 상큼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지관은 하염없이 울적해졌지만, 그의 경쾌한 목소리에 저도 웃는 낯으로 겨우 인사를 하고 물러 나오는 참이었다.

“이를 어쩐다.”

막막하고 근심되어 저도 모르게 수십 번을 되뇌는 소리였다.

자신들이 꼬투리 잡을 것은 오직 그것 하나였으나, 빌미가 되질 못 했다.

오직 그것을 크게 치고 공론화시킬 분은 ‘상제’ 뿐.

그러나 상천의 지존을 움직이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염휘께서 어째서 사신의 문을 직접 여셨는고?’

‘그것을 어찌해 상천의 지관께서 염려하시는가?’

하문할 것이 분명한 것에 답을 할 수가 없으니 도움을 바랄 수 없는 것이다.

지관의 발걸음이 느려지며 어깨도 따라 추욱 내려앉았다.

‘정녕 방법이 없는 것인가.’

“하아아아…….”

맑은 소리를 내며 얼어붙은 날숨이 다시 발치에 떨어져 내렸다.

어깨를 아프게 찔러오는 달빛이 오늘따라 더욱 무심하다.

‘휘께서도 저 달을 지금 보고 계실 것인가…….’

태자께서 인계에 계실 적 얼마나 아껴주셨던가.

육신을 벗고 나니 인계에서의 기억은 모조리 잊어버리신 겐가.

‘어찌 이리 무정하신가.’

지관은 차마 ‘휘’를 향해 갈 곳 없는 원망 어린 속내를 쏟아냈다.

휘께서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육신을 벗고 이제 막 별로 태어나셨으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실 것이다.

어쩌면 아직도 인간의 사고가 남아 육신의 ‘죽음’에 상처받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런 휘의 상황을 짐작하여 배려할 수가 없었다.

이 원통한 마음을 누구에게라도 쏟아야 살 것 같았다.

지관은 자꾸만 터져 나오는 한숨을 막지 않았다.

“하아아아.”

자신이 직인과 같이 삼천를 어우르는 선인으로 태어났다면 휘를 찾아가 이 원망을 말이라도 해보겠건만.

지관은 하릴없는 생각에 고개를 내저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리 답답하기로서니, 삼천외의 선인이라니 그 무슨 말도 안 돼는 소리인가.

“천도를 진상할 것을.”

다시 터져 나오느니 후회이다.

‘차라리 선인을 만들어 버릴 것을. 그러면 일은 복잡했을지언정 영영 태자 곁에 묶어놓을 수 있었을 텐데.’

입장이 곤란해지기야 하겠지만, 죄를 청하여 저 한목숨으로 갚으면 끝날 수도 있는 일.

아랫것의 충심이 과해 일을 벌인 것을 누가 탓을 하랴.

‘진작 천도를 진상할 것을.’

지관은 뒤늦은 후회에 얼어붙은 입김을 연신 내뱉으며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이 목숨 태자께 바치기로 생을 받으며 결심한 것인데. 목숨으로 죄를 청하고 휘를 진상하였으면 됐을 일인데.’

한번 시작된 자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질 않았다.

지관은 실로 막막했다.

휘를 되찾을 방법이란 전무했다.

하여, 지나간 일에 진한 후회를 덧붙일 수밖에 없어 그는 걸음걸음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날숨을 징표처럼 남기며 밤길을 걸었다.

그렇게 반 각을 더 걸어서야 태자궁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태자궁을 바라보는 지관의 시선에 잡힌 건 검푸른 밤하늘을 밝히는 달빛뿐이 아니었다.

태자궁 뒤편의 검푸른 하늘을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또렷한 푸른빛.

지관은 아주 잠시였지만 하늘을 가로질러 나는 소청조를 보았다.

청명한 푸른색의 작은 새가 검게 물든 하늘을 경쾌히 날아가는 모습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마침 지관이 태자궁을 보고 있지 않았다면 모를 정도였다.

저토록 선명한 쪽빛이라니.

설마.

“소청조?”

다시 한 번 기억을 되짚어도 저것은 소청조였다.

직인이 부리는 소청조가 이 밤에 위험을 무릅쓰고 하늘을 날 연유가 무엇인가.

삼천외의 소청조가.

이 밤.

태자궁을.

연관 없는 세 단어가 한자리에 있자 실로 괴이하고 찜찜했다.

지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관이 곧 영력을 둘러 안력을 높여 날아오르는 소청조를 보자 황금빛이 어룽대는 게 슬핏 비추었다.

“!”

도대체.

지관은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날숨을 삼키며 발걸음을 다급하게 놀렸다.

직인. 운명을 잣는 자.

삼천의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치우침 없이 주어진 운명을 지어내는 자.

그런 자가 어째서 자신의 소청조를 태자궁으로 보낸 것인가.

이유는 알 수는 없지만 이것은 좋지 않은 신호였다.

운명은 그 누구의 편을 들어서도 안 됐다.

비정하더라도, 참혹하더라도 흘러가게 두어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정해진 운명 안에서 노력을 하는 것이 주어진 자의 몫이다.

운명을 잣는 자는 결코 치우쳐져는 안 되는바, 지관은 자신이 부디 늦지 않았길 바라며 결국 숨을 헐떡이며 달리기 시작했다.

“안 된다.”

지관은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도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정신없이 달렸다.

운명의 베틀이 더럽혀지지 않았길.

천신 마고께서 이 일을 모르시길.

태자께서 잠시 연정에 눈 멀어 실수 한 것이라 넘길 수 있길.

지관은 비릿한 쇠 내음이 올라오는 숨을 꾹꾹 눌러 참아냈다.

등 뒤로 쏟아져 내리는 달빛이 살을 헤집는 듯 아려왔지만, 지관은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황금빛 영력을 두른 소청조가 향하는 곳은 삼천외로 향하는 이름 없는 강, 그것이 확실했다

상제도 공무가 아니면 직인을 청하지 않는 법이다.

상제의 공무라 함은 그의 치세에 단 두 번.

황후사와 관련된 것이 아니면 상제도 직인을 사사로이 청할 수 없었다.

황후사를 인계하며, 그리고 강보를 받아들며.

그때를 제외하고는 직인을 청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직인은 무거운 업을 지고 가는 자.

그러기에 그는 늘 평정심을 유지하여야 하는 고로, 상제든 염라든 황후사가 아니고서는 직인을 불러들이지 않는다.

삼천외의 선인이란 그런 것이다.

삼계에 속해 있는 모든 것을 관할하는 업을 지고 있는 자들.

삼천안의 지존인 상제와 염라도 그들의 일에 간섭할 수도, 관여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상제께서도 여간해서 청하지 않는 직인을.

그녀의 소청조를 태자궁에서 띄우다니 이 무슨 변고인가.

‘부디 아무 일이 없길.’

지관은 밭은 숨을 내쉬며 간절히 빌고 빌었다.

‘태자께서 너무 많은 업을 만들지 않았길.’

빌고 또 빌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재촉해보는 것이다.

야속한 달이 등 뒤를 따라오며 그런 저를 놀리듯 사납게 몰아치지만, 지관은 입술을 꾹 깨물고 달렸다.

허둥거리는 탓에 이미 동곳은 어디론가 떨어져 잃어버렸고 야무지게 틀어 올린 머리 역시 흐트러져 볼썽사나워진 지 오래였지만, 지관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오늘 밤 제 목숨을 포기했다.

상태자를 만나 고언을 올릴 것이다.

목이 잘리더라도, 상태자께서 직인을 끌어들이는 일만은 막아야 했다

그것은 상계의 휘를 얻기 위해 상천의 태자가 할 일이 아니다.

‘안 됩니다. 이것만은 절대 안 됩니다.’

상천을 보듬어 이끌어 나갈 지존이 되실 분이 상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선택을 하시다니!

휘를 향한 애끓는 그의 연심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무려 이십 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분이 아닌가.

하지만, 겨우 ‘휘’와 상천 전체를 견줄 수는 없는 노릇.

염라께서 먼저 귀문의 별로 그녀를 취하신다면, 마고께 청을 올려 휘를 다시 받아 오는 수도 있을 테다.

물론, 내려주실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휘에게 드린 정성을 생각한다면 마고께서도 그렇게 야박하게 내치지는 않으실 것이다.

‘모든 경우를 따져보아야 함인데, 어째서.’

지관은 울화를 짓씹듯이 어금니가 갈리도록 물었다.

‘어째서!!’

어째서 제 주인은 번번이 최악의 수만을 두는 것인가.

지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목이 잘리더라도 오늘, 제 상전을 말리고 마리라.

지관은 그렇게 다시금 다짐했다.

소청조의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작게 울리다 구름 뒤로 멀어졌다.

이윽고 달빛이 가려진 태자궁 앞에 선 지관은 엉망이 된 차림새를 후들거리는 손으로 매만졌다.

간신히 산발이 된 머리를 가지고 있던 끈으로 급하게 묶어 올리고는 태자께서 계시는 침전으로 향했다.

얇은 장지문 너머 계실 분에게 단정한 목소리로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태자마마, 지관이옵니다.”

문밖에서 소릴 내 말하는 것만으로도 울컥, 비릿한 것이 올라오지만 지관은 가만히 삼켜내며 태자의 허락을 기다렸다.

달빛이 헤집어 놓은 속을 추슬러 갈 여유 같은 건 소청조와 함께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아, 지관이로군? 들어오시게.”

오래지 않아 밝은 음색의 태자가 선뜻 그를 반겼다.

문을 여는 지관의 손이 긴장감에 한차례 가늘게 경련했다.

“불러계시옵니까.”

머리를 조아리며 태자에게 예를 올리는 지관의 얼굴은 평상시와는 다르게 단단하게 굳어져 있었다.

#d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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