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사신의 첫 번째 문 (4)
2017.09.18.
“이런 이런, 전하-. 그리 무섭게 다그치시면 달 마마께서 놀라시겠습니다.”
“크흠. 전하께서 본디 박력 넘치는 사내이시잖는가.”
소희가 환의 말에 커다란 두 눈을 바르르 떨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마치 때를 맞추기라도 한 듯 나긋한 목소리가 때맞춰 환의 시선을 앗아가 주었다.
들어본 적 있는 요염하고도 지극한 권능이 실린 음색에 이어 굵고도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자연스레 말을 받았다.
적발을 달빛 아래 드리운 화려하게 생긴 미녀가 거구의 단단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사내와 함께 내궁 후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치링-
적발 미녀의 소리조차 나지 않는 조신한 걸음에 흔들린 장검이 가늘게 떨며 맑은소리를 내자 소희의 얼굴이 설핏 굳었다.
‘아수라.’
자신의 목에 검붉은 장검, 홍월을 들이밀며 옅게 웃던 염라의 세 번째 불.
창백한 달빛 아래, 눈꼬리를 붉게 물들이며 잔뜩 흥분하던 아수라가 떠올랐다.
짐승의 그것처럼 바짝 날을 세운 동공에 물린 갈증.
허기짐에 달궈진 목소리를 귓가에 속삭여오던 기억이 전신을 덮쳤다.
먹음직스러운 것을 바라보는 눈길로 자신에게 목숨을 내어달라 착실히 유혹을 하던 그녀의 새빨간 홍안.
그리고 달빛을 받아 차게 빛나던 길고 날카롭던 송곳니까지 모조리.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머리털 하나 상하게 하지 않았지만, 온몸을 무겁게 옭아매던 진득한 살기를 잊을 수가 없었다.
손 하나 닿지 않았어도 전신을 압박해오던 그 무형의 기운.
‘꿀꺽-.’
소희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바짝 조여드는 가슴을 진정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진정 되지 않았다.
사박-
자신도 모르게 희게 질린 표정을 지으며 서늘한 환의 품으로 몸을 조금 더 붙였다.
겨우 한걸음이었지만, 환의 곁에 가까워진 만큼의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몸짓이었다.
“…….”
경직된 표정으로 자신에게 파고드는 소희를 의아하게 내려다보던 환은 이내 이유를 깨달은 듯 소희를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줘 조금 더 단단히 품어주었다.
그의 손에 둘러싸인 소희의 어깨는 이미 잘게 떨리고 있었다.
환의 눈동자가 한층 짙게 가라앉았다.
“염라의 첫 번째 불이시며 하계의 지배자이신 염라대왕을 아수라가 뵈옵니다.”
“염라의 두 번째 불, 풍천. 하계의 주인을 뵈옵니다.”
아수라가 소맷자락을 갈무리하며 이마에 공손히 올려 ‘왕’께 예를 올리자, 그녀 옆에 서 있는 풍천 역시 절도 있는 동작으로 인사를 올렸다.
“찾아계시옵니까.”
아수라가 환을 향해 나긋하게 말문을 열었다.
분명 아수라는 홍월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궁 출입조차 금지 당했었다.
‘……환이 아수라를?’
하지만, 불러서 왔노라는 아수라의 말에 소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환에게 바짝 기댔다.
“아니, 이 밤에 무슨 일이십니까.”
아수라에 이어 자신을 풍천이라고 소개한 젊은 장수가 말문을 열었다.
다부지고 단단하게 생긴 외모만큼이나 목소리에 실린 기백이 보통이 아니었다.
창백하게 얼어붙은 공기를 가르는 목소리에는 힘이 있어 듣는 이의 시선을 절로 끌어당겼다.
어투는 퉁명스러웠으나, 풍천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기색은 즐거움이 가득한 호기심이었다.
풍천은 짙고 뚜렷한 눈썹이 하늘로 곧게 뻗어 첫인상이 무척 단호하고 듬직한 사내였다.
그가 아수라에 이어 환에게 그들을 호출한 연유를 묻고 있었다.
“직접 보는 게 좋겠지.”
환은 그들의 하례를 가벼운 눈짓으로 받고는 이내 그 시선을 연못으로 돌렸다.
“도대체 뭐가…….”
“!”
그리고 그들은 내궁 후원 연못에 떠오른 채 시린 빛을 여과 없이 뿌리고 있는 소문의 ‘사신문’을 보게 되었다.
“흐으음…….”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모를 침음성이 새어나오고, 사신문을 바라보는 그들의 두 눈 가득 경탄의 빛이 떠올랐다.
“아아……. 세상에, 이렇게 고귀한 사신의 문이라니.”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던 두 사람 중 먼저 입을 뗀 건 아수라였다.
아수라는 음색 가득 감탄을 담아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않은 채 소희의 사신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끄덕이는 고개를 따라 화려한 적발이 부드럽게 물결치며 출렁였다.
“과연.”
그런 아수라를 바라보며 염라의 두 번째 불이라 소개한 풍천이라는 이 역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여 자신 역시 그러함을 내비쳤다.
소희는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신문은 분명 이 세상 것이 아닌 장엄한 광경이었으나, 저 화려한 자태를 보고 감탄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들은 실제로 ‘사신문’이 아닌 소희의 문에 의미를 두고 천천히 음미하고 있었다.
문틀을 따라 새겨진 문양을 시간을 들여 보았다.
시선은 진중했고, 태도는 경건했다.
‘나의 일생이 이다지도 경탄 받을 만한 것이었던가.’
가감 없는 염라의 불들의 반응에 아주 조금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핑그르르 가볍게 돌아서는 아수라를 보자 살짝 풀어지려던 마음이 다시금 재빠르게 움츠러들고 말았다.
몸을 돌려 마주 선 아수라의 두 눈은 지난번 마주쳤던 날과 같이 동공이 사납게 찢어진 채였다.
뭔가를 잔뜩 억누르는 것이 역력한 그녀의 태도는 마주 잡은 두 손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꼭, 그날과 마찬가지인 손.
가느다란 뼈마디가 잔뜩 돋아 하얘진 채로 눈에 띄게 떨리는 손.
대체 무엇을 참아내는 걸까.
물어보기 차마 미안할 정도였다.
심연같이 어두운 동공 가득 흉포한 기운이 가득 휘몰아치는 홍안이 느리게 깜빡이는 눈꺼풀을 따라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했다.
그런 아수라를 향해 혀를 가볍게 찬 것은 염라의 두 번째 불 풍천이었다.
풍천도 어딘지 모르게 흥분한 기색이었지만 아수라보다는 좀 나은 모양이었다.
풍천은 그녀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으로 아수라의 시선을 가렸다.
그러나 얕고 불안정한 호흡이, 잔뜩 굳어진 입매가, 그 역시 사정이 마냥 좋지 않다는 것을 알려왔다.
“무슨…….”
이글거리는 것 같은 풍천의 은회색 빛의 눈동자를 보며 소희가 작게 중얼거렸다.
자신의 사신의 문을 보고 이러는 것이니, 분명 문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환도 그녀의 문을 보고선, 흘리듯 심통 부린 옛 말까지 더듬어 다그쳤지 않은가.
‘무슨 일이에요.’
‘문제가 생긴 거예요?’
‘왜 그래요.’
소희는 입을 달싹이며 나오지 않는 말을 주워 삼켰다.
‘나에게도 알려주세요.’
스스스슷-
그리고 일순 풍천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오며 그의 전신을 휘감아 올렸다.
마치 솟구치는 물줄기같이 거세고 사나운 기세에 소희는 파드득거리며 환의 가슴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왜…… 그래요.”
무섭게 왜들 그래요.
“이게 가능한 겁니까?”
풍천은 자신을 감싼 검은 안개를 털어내 없애며 어이없다는 듯 말을 픽 던졌다.
일견 무례하기 그지없어 사납게 들리는 그의 말에도 환은 그저 빙긋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저런, 방금 달 마마께오서 놀라시겠습니다, 라며 나를 탓하던 이들의 태도가 겨우 이것이더냐.”
홍안에 은은하게 황금빛을 띄운 환이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제 품 안에서 파드득거리며 잘게 떠는 소희의 등을 느리게 쓰다듬었다.
“그대들, 염라의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좌를 차지하는 자들의 심력이 겨우 이것밖에 안 되다니, 짐은 몹시 슬프기 그지없구나.”
하핫.
작은 웃음을 덧붙인 환은 소희의 어깨에 걸쳐진 도포를 잡아 꼼꼼히 여몄다.
도포 안의 소희는 이내 환의 품에 갇혀버렸다.
“하오나 전하. 지금 그렇게 넘기시기엔, 보셨잖습니까. 저것은 휘의-.”
아수라가 감정이 없는 말투로 환에게 조용히 이의를 제기하려 했지만, 이어진 풍천의 말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한 겁니까?”
“보고도 믿지 못한다면 더 이상 무엇을 어찌해야 하겠느냐 풍천.”
“하지만 두 지존께 한 분의 비라니……! 설마…… 그래서 이렇게!”
환에게 다소 격앙된 어조로 말하던 풍천은 말끝에 무엇인가를 떠올린 모양인지 다급하게 입을 다물고 말을 아꼈다.
기이했던 왕의 행적이 일순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이제야 사정을 알게 된 것은 풍천만이 아니었다.
아수라 역시 믿지 못할 진실 앞에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수라가 풍천의 뒤에서 빠져나오며 환에게 조용히 말을 올렸으나, 돌아오는 대답에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평정을 흐트러트릴 뻔했다.
싱긋 웃으며 사랑스러운 것을 바라보듯 품에 잠겨 있는 소희를 내려다보던 환이,
“아아, 나도 방금 알았다네.”
라며 느긋한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휘……?”
앞섶으로 작은 훈김과 함께 소희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소희의 정수리로 쏟아지는 차가운 달빛을 바라보며 두 눈 속의 일렁이는 황금색 불꽃을 감췄다.
지그시 감았다 뜨는 그의 두 눈은 열기가 가시고도 아름다운 붉은 보석같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잔잔한 시선과는 달리 표정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침통하기도 했으며,
슬퍼 보였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단호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 한 가지는 소희를 향한 시선이었다.
사랑스러운 것을 향한.
“하오면, 오늘 부르신 건…….”
그런 환을 기다리던 풍천이 다시 적막을 깨고 그의 시선을 앗았다.
“비를 상태자로부터 지켜라.”
“하오나!!”
“그럼, 누구에게 맡겨야 하겠느냐.”
짐이 직접 해야겠느냐.
하계는 내팽개쳐 두고, 비의 꽁무니만 따라 다녀야 하는 것이냐.
무겁고 차가운 그의 말과 함께 소희는 다시 피부가 따끔거리고 아려옴을 느꼈다.
일전에 한 번 느껴본 감각이었다.
정수리로 쏟아지는 몸서리쳐지는 차가운 기운에도 소희는 숨소리 한번 흩트리지 않고 묵묵히 참기 시작했다.
‘무슨 문제지.’
그들의 말을 보아하건데 자신에게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환도 모르고 있던 중대한 문제가.
그리고 그것은 상태자, 인세에서 ‘표가 둘째 공자’이며, 자신의 옛 정인이기도 한 그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적의를 피워 올리는 것이리라.
“아수라, 넌 어찌하겠느냐?”
“기꺼이 목숨을 바쳐 보필할 것입니다.”
차라랑-
홍월의 잔 떨림과 함께 아수라가 환 앞에 부복했다.
그녀의 적발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어지럽게 흐트러졌지만, 아수라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던 풍천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차며 무릎을 꺾어 내렸다.
“성심을 다해 명을 받들겠습니다.”
묵직한 목소리로, 아수라와 뜻을 함께할 것임을 망설임 없이 고했다.
나란히 환 앞에 부복한 장군들을 내려다보던 환은 품에 안긴 소희에게 작게 속삭였다.
“그대, 가서 저들을 안심시켜주는 건 어떤지.”
“제가 어떻게.”
“방법을 일러드리지.”
길고 깊은 눈매를 차분하게 내려뜨리고 소희의 대답을 기다리는 환의 모습은 두 장군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앞에서 부복한 두 장군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소희는 환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희에게 환은 잘 웃고, 능글맞으며 아름답고 다정한 남자일 뿐이었다.
소희의 승낙에, 환이 작게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그리고는 이내, 환이 감싸 안고 있던 팔을 풀고 살짝 소희의 등을 밀었다.
용기를 북돋는 듯한 작고도 다정한 손짓이었다.
소희는 두 발에 힘을 줘 떨리는 다리를 지탱하고 환의 품을 벗어났다.
사박-
사박-
그리고 지척에 있는 두 장군 앞으로 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환이 일러준 그대로 읊었다.
“염라의 빛이며, 달로 생명을 잉태할 자, 귀문의 별이 그대들의 마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겠으니, 이만 일어나세요.”
긴 듯, 길지 않은 듯 두 문장의 말을 실수 없이 마치자 소희는 작게 안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단순한 말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일어서서 그녀에게 하례를 올리는 두 장군의 표정은 무척이나 미묘했다.
“진심이시옵니까?”
아수라의 홍안이 부담스럽게 그녀를 쫓으며 되물었다.
“……그래요.”
어째서일까.
소희는 아수라의 반응에 당황하면서도 애써 태연히 대답해 주었다.
등 뒤에 환이 서서 지켜봐 주고 있을 테니까.
아수라가 무섭게 달려들거나 무시무시한 송곳니를 꺼내 목덜미에서 속삭인다 해도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늘한 밤바람에 아수라의 적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관문에 들어섰을 때 사위를 채우던 저승화와 같이 아름다고도 몽환적인 모습이었다.
“역시 염라께선 능글맞다니까.”
안 그러냐, 아수라.
순간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작게 스치고 지나갔지만, 소희는 맞은편에서 생긋 웃는 아수라의 모습에 넋이 빠져버려 그 말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소장, 달 마마께서 귀문의 별로 사시겠다는 말이라 이해하여도 되겠사옵니까.”
다시 한번 아수라가 두 눈을 빛내며 다짐하듯 소희에게 물었다.
‘도대체, 내가 귀문의 별이 아니라면 또 무어가 되어야 한담.’
소희는 자꾸만 엉뚱한 것을 묻는 아수라가 이상했지만 기이할 정도로 단호한 태도에, 이번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아수라의 옆에 선 풍천의 표정이 살짝 흐트러졌지만, 소희가 그를 볼 새도 없이 뒤에 서 있던 환이 다가왔다.
환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소희를 감싸 안아 자연스럽게 그의 팔 안에 가뒀다.
“그대, 영혼의 맹약을 받을 텐가?”
소희에게 팔을 두른 채 시선을 맞춰오며 환이 느긋한 말투로 턱짓으로 눈앞에 선 염라의 불들을 가리켰다.
‘요괴들도 지키는 영혼의 맹약을 인간이 저버렸단 말인가!’
분노한 그가 외치던 영혼의 맹약이 떠올랐다.
맹약을 깨뜨리면 다시는 환생할 수 없다고 했던가.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했지.
소희는 떠오르는 기억을 차분히 더듬었다.
지금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으나, 환은 자신을 염려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볼 때마다 마구잡이로 달려들 듯했던 아수라와 위협적이었던 풍천을 생각할 때, 환이 말하는 영혼의 맹약이라는 건 그들에게서 자신을 지켜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하지만, 강제한 충심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지고한 자.
강제한 충심을 받는다는 건 그들의 충심을 의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식으로 굴욕감을 맛보여 좋은 인연이 될 리 없어.’
소희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들은 지옥불에 내던져지든 환생을 하지 못하든 내킨다면 아무 상관 없이 자신의 목숨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큰 대의를 위해서라면 말이다.
이왕 염라의 빛, 귀왕의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차였다.
그의 장군들에게 맹약까지 강요해 충심을 얻어내느니 조금 더 운명을 믿어보기로 했다.
자신이 정말로 귀문의 별이라면, 그래서 진정으로 귀왕의 신부에 어울린다면.
염라의 불들에게 목숨을 빼앗겨 죽진 않을 것이다.
소희는 작은 새처럼 두근거리며 무섬증에 떠는 제 심장이 내는 가련한 소리를 무시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는 환에게 웃어 보였다.
첫 번째 사신의 문, 둘째 날 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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